鶴山의 草幕舍廊房

Faith - Hymn

[스크랩] 죽으면 죽으리라

鶴山 徐 仁 2006. 3. 4. 14:54
죽으면 죽으리라

 


  에스더서 4장 14절 - 17절

  “이 때에 네가 만일 잠잠하여 말이 없으면 유다인은 다른 데로 말미암아 놓임과 구원을 얻으려니와 너와 네 아비 집은 멸망하리라 네가 왕후의 위를 얻은 것이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아느냐 에스더가 명하여 모르드개에게 회답하되 당신은 가서 수산에 있는 유다인을 다 모으고 나를 위하여 금식하되 밤낮 삼 일을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마소서 나도 나의 시녀로 더불어 이렇게 금식한 후에 규례를 어기고 왕에게 나아가리니 죽으면 죽으리이다 모르드개가 가서 에스더의 명한 대로 다 행하니라”


  저는 중국에 지금까지 23차례를 다녀왔습니다.  중국에 가면 한 달이나 두 달 가량 머무르며 교회를 순방하며 집회를 인도하고 신학생들을 가르치고 예배당 건축을 소개하여 예배당을 짓게 하고 하였습니다.

  처음에 중국에 갈 때에는 중국이 어떤 곳인가를 알기 위하여 탐색하려 갔습니다. 

흑룡강 성에 갔다가 공안 당국에 붙잡혀서 3일 동안 괴로움을 당하다가 벌금 100원을 내고 풀려난 일이 있었고 1995년도에도 결혼식 주례를 하며 하나님을 증거 하였다 하여 벌금을 내고 결혼식 주례를 안 하겠다는 검사서를 써 낸 일이 있습니다.

  중국에 오랫동안 다니면서 느낀 것은 복음을 전할 때에는 항상 죽으면 죽으리라는 각오로 복음을 전하여야 한다는 것을 느끼고 있습니다.

  지금도 역시 그렇지만 1990년도에는 외국인 목사가 중국 교회에서 설교를 한다는 것은 상당히 위험스러운 일이었습니다.

  설교를 하는 사람도 이번 설교가 마지막이 될 것이라는 각오로 설교를 하고 설교를 시킨 사람도 이 설교로 인하여 감옥에 갈 것을 각오를 하고 설교를 듣는 이도 역시 이 설교가 마지막으로 듣는 목사님의 설교가 될지 모르기에 몇 시간을 꼼짝 안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듣고 하다 보니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이 많이 나타나서 많은 병자가 치료받고 기적이 일어나고 하였습니다.

용정시 어느 처소에서 예배를 인도하다가 설교를 중지 당하고 종교국 사람이 예배를 못 보게 하여 예배를 중단하고 다시 종교국 사람과 교제를 하여 1 시간 후에 다시 처음부터 예배를 다시 드린 일도 있습니다.  마치 장기를 두다가 흩트려 버리고 다시 장기를 다시 두는 것과 같은 기분이었습니다.

  어느 부활 주일은 네 곳의 교회를 순회하며 설교를 한 일이 있습니다. 

어느 교회에는 아침 10시에 예배를 시작한다고 하여 10시에 차를 시간 맞추어 9시 30분에 교회에 도착하였더니 이미 예배를 시작하여 어째서 10시라고 하고 벌써 예배를 시작 하였나 하였더니 오늘은 한 시간 일찍 시작하여 당국의 눈을 피하려고 한 것이니 목사님이 이제부터 설교를 하라고 하여 설교를 시작하여 예배를 마쳤습니다.

  그 때에 기억에 남는 일로는 교인이 점점 늘어서 강대상을 뒤로, 뒤로 물리며 설교를 하다가 나중에는 벽하고 나하고 강대상이 딱 붙어서 숨도 크게 쉬지 못할 정도로 강대상에 밀려서 설교를 한 일입니다. 

  축도를 마치고 부활 주일이 되어 주님의 부활을 축하하는 찰떡을 준비하였는데 떡을 써는 동안에 잠깐 공백 시간이 생겨서 기다리고 있는데 중국 교회의 성도들이 “목사님 설교하나 더하시오” 하는 요청이 불같아서 설교를 예배 마친 후에 성경 공부같이 설교를 하나 더 한 일이 기억에 남습니다.

  그리고 두 교회를 더 순방하고 설교를 한 후에 마지막 저녁 예배를 드리고 나니 신이 없어졌습니다.  내가 어렸을 때에 교회에 갔다가 신을 도둑 맞는 일이 자주 있었는데 근 50년 만에 당하는 일이라 기분이 나쁜 일은 하나도 없고 복음 전하다가 신을 잃어 버렸다는 감사와 옛날 감회가 새로웠습니다.  전도원이 주는 쓰렙바를 끌고 집으로 돌아와서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하였습니다.

지금은 외국인 목사가 중국 교회에서 설교를 하다가 붙들리면 1400 딸라 정도의 벌금을 물어야 하고 설교를 시킨 교회에도 같은 금액의 벌금을 물리기 때문에 많은 제약을 받고 있습니다.

  그 동안 전도원들이 한족과 조선족 전도원들이 약 300명 이상 배출이 되어 그들이 교회를 맡아서 설교를 하고 있는데 교육 기간도 짧고 배운 것도 별로 없어서 설교하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고 하소연하여 저들을 도와주기 위하여 Computer CD에 설교를 담아 주고 있습니다. 

  은혜 브로그의 설교도 중국에 있는 조선족 교회 전도원, 전도사들의 요청에 의하여 설교를 돕기 위하여 기독교 자료와 설교를 매일 올리고 있습니다.  저들의 애로 사항은 배운 것은 짧고 열심은 많아서 일주일에 10번 이상을 설교를 하는데 밑천이 달린다고 하면서 항상 저를 만나면 설교집을 구해 달라고 하여 설교집도 출판하여 보급을 하였지만 요사이는 농촌에도 인터넷이 보급 되어 있어서  로그온 없이 접속이 되는 브로그를 이용하고 있습니다.

다음 브로그 담당자와 회사에 이 시간을 빌려서 감사를 드립니다. 


  성경 창세기 1장 1절부터 요한 계시록 끝장 끝절 까지를 본문으로 이용한 설교 2만 여개와 주석과 계절 설교와 여러 유명한 목사님들의 설교 5,000 여 개와 제가 미국에서 목회를 하는 동안 10년 동안의 설교 2,000개를 합하여 30,000여 개의 설교와 자료와 해설, 주석 등을 CD에 담아서 일차로 보급하고 있습니다.

  이 CD 한 장으로 20년 동안 설교를 할 수 있고 목회를 할 수 있는 재료가 들어 있습니다.

  한족들을 위하여서는 한족 말로 설교집을 출판하여 보급하고 있는데 이것은 어려움이 너무 많습니다.

 

  선교는 죽으면 죽으리라는 각오가 없이는 도무지 되어지지 않는 일임을 알고 있습니다.

  함께 동역을 하던 여의도 순복음 교회 선교사인 안 승운 목사는 북한으로 잡혀갔습니다.

  외국어 훈련원을 하며 영어를 가르치고 Computer를 가르치고 성경을 가르치다가 1기 졸업식 1주일을 앞에 두고 북한 공작원에 납치되어 갔습니다.

 

  중국 선교는 내어놓고 할 수 없이 항상 숨을 죽이며 숨어서 하여야 하는 위험을 갖고 있습니다.

  이러한 죽으면 죽으리라는 각오를 갖고 복음을 들고 나아가는 사람 앞에는 세상의 아무런 권세도 막지 못하는 것입니다.


  죽으면 죽으리라는 말속에는

1. 一死覺悟라는 말입니다.

요한 복음 11장 16절 “디두모라 하는 도마가 다른 제자들에게 말하되 우리도 주와 함께 죽으러 가자 하니라”

  도마라고 말하면 의심 많은 제자로 말하고 있지만 도마는 자기가 말하였던 대로 일사각오로 주의 일을 하다가 인도에서 순교의 피를 흘리었습니다.  주를 위하여 죽었습니다. 

  십자가의 예수를 따라 가려면 자기 생명을 아끼면서는 예수를 따라 갈 수가 없습니다. 

지금 당장에는 어떤 위험이 없다 하여도 진리를 위하여 주와 함께 죽겠다는 각오가 있어야 예수를 끝까지 따라가게 되는 것입니다.

마태 복음 10장 39절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

  우리가 예수를 믿기 때문에 생명을, 목숨을 잃으리라는 일사각오를 갖고 살아야 합니다.

내 평생이 항상 지금과 같이 평안하고 순탄하리라는 보장은 없는 것입니다.  어려움이 왔을 때에 예수를 버리고 살아보려고 하는 사람은 진정으로 죽는 길로 가는 사람이요 예수와 함께 죽겠다는 각오로 십자가를 지고 가는 길은 진정으로 사는 길입니다.

  중국에서 문화 혁명 때에 살아 보겠다고 예수를 멀리한 사람들은 죽었지만 일사각오로 믿음으로 나아간 사람들은 살아 있는 순교자로 지금 간증을 하며 많은 사람을 주 앞으로 인도하고 있습니다.

누가 복음 14장 26절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및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고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도마는 주를 위하여 일사각오를 말한 대로 인도에서 선교를 하다가 인도인의 창에 찔려서 피를 흘리며 순교하였습니다.  7월 1일은 도마의 순교일 입니다.  우리도 주를 위하여 일사각오 하는 정신이 없다면 승리하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위하여 죽는 다는 것은 반드시 殉敎를 하여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1. 다른 사람을 위하여 일사각오로 살아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도 다른 사람의 생명을 구하기 위하여 자기 생명을 버리는 일이 많이 있습니다.

  물에 빠진 사람을 여러 사람을 구하고 자기는 지쳐서 물에 빠져서 죽는 일도 신문 기사에서 자주 보는 일입니다.

  감리교 선교사인 아펜셀러 목사님은 그 선교 활동도 훌륭하였지만 그의 죽음은 더 훌륭한 것입니다. 

  아펜셀러 목사님의 마지막 전도 여행길에 기선을 타고 남쪽으로 가다가 그 배가 파선이 되었습니다.  자기는 1등 선객임으로 구명보트를 타고 살아 날수 있었지만 자기하고 동행하는 朝鮮人 여학생을 건지려다가 그만 죽었습니다.  그는 죽었지만 우리나라의 선교 역사에 살아 있고 하나님 나라에서 영원히 빛나고 있습니다.

  그 자녀들도 계속하여 선교사로 일 하였습니다.  우리가 남은 생애를 다른 사람을 구하는 일에 일사각오를 갖고 도마와 같이 아펜셀러 목사와 같이 거룩한 죽음을 맞아야 할 것입니다.


2. 진리를 위하여 일사각오를 하여야 합니다.

  성경에 기록된 진리는 하나님, 예수님, 성령님, 하나님 말씀이 진리입니다.  우리는 이 진리를 사수하기 위하여 일사각오로 나아가야 합니다. 

  오늘날 우리가 구원의 기쁨과 자유를 누리는 것은 이 진리를 사수하기 위하여 생명을 바친 믿음의 선배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로마 제국의 박해 때에 50만의 성도가 일사각오로 진리를 지키며 피를 흘리고 카타콤의 삶을 살았기 때문에 오늘의 이 영광에 이르렀고 로마 교황의 박해 때에도 백만 성도의 일사각오의 진리 사수로 인하여, 피 흘림으로 인하여 이 진리의 기쁨을 누리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선조들도 일사각오로 진리를 지켰으니 나도 이 진리를 지켜 우리 후손에게, 아직 진리를 모르는 사람에게 진리를 전하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2. 죽으면 죽으리라는 말은 하나님께 전적으로 아낀다는 뜻입니다.

마가 복음 14장 36절 “가라사대 아바 아버지여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예수님께서도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시며 죽으면 죽으리라는 각오로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며 기도하였습니다.

  우리는 지상 최대의 좋은 기도를 하여야 합니다. “모든 것이 주님의 손에 있사오니 아버지의 영광을 위하여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 하는 기도를 하여야 합니다.

내 모든 일들 다 주께 맡기오니 살든지 죽든지 뜻대로 합소서, 라는 찬송가와 같이 하나님께 전적으로 매끼고 살아가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교회에 와서는 이러한 찬송을 부르지만 실제 생활에서는 이러함이 없고 99%의 기도가 희생의 기도는 없고 자기가 잘 살아보겠다고 주시옵소서. 쭛씨옵쏘서하는 기도를 힘 있게 강조하며 기도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아버지의 뜻에 매끼고 기도하면 구하시기 전에 이미 다 아시고 계신 하나님께서 이 모든 것을 더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돈을 많이 벌어야 유익이 아니요 건강하여야 유익이 아니요 살아야만 유익이 아닌 때가 있습니다.  우리는 모든 일을 하나님께 맡기고 살아 갈 때에 하나님께서 가장 좋은 때에 가장 좋은 것을 하나님의 뜻에 따라 주심을 믿고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나의 한정이 된 사고와 주장을 하지 말고, 10리 밖도 못 보는 나의 눈을 따르지 말고 내일 일도 모르고 10분 후에 되어지는 일도 모르는 우리의 사고를 따르지 말고 주님과 같이 우리도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매끼고 하나님의 뜻대로 하시라고 나를 맡기고 살아가는 사람이 되어 죽으면 죽으리라는 각오로 하나님의 손에 매끼고 살아가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3. 사명 완수가 죽으면 죽으리이다입니다.

  사도 행전 20장 22절 - 24절 “보라 이제 나는 심령에 매임을 받아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저기서 무슨 일을 만날는지 알지 못하노라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거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죽으면 죽으리라는 말은 생명을 귀히 여기지 않고 생명보다 더 귀한 사명을 죽음 보다 더 귀하게 여기에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완수하겠다는 뜻입니다.

  군인도 군인의 사명을 완수하기 위하여 자기의 생명을 돌아보지 않고 적진지로 폭탄을 들고 뛰어드는 육탄 십용사가 있고 일본의 가미가제도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예루살렘에 가서 무슨 일을 만날지는 모르지만 하나님이 주신 사명은 시행하겠다는 말을 하였습니다.

  우리는 언제 이런 나에게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감당 할 것입니까?  바로 지금 이때입니다.

내 사명을 감당 할 때는 바로 어렵고 곤란하고 힘들 때가 나의 사명을 감당할 때입니다.

  에스더가 왕후가 되어 진치를 벌이고 있을 때가 에스더의 사명을 감당하는 때가 아닙니다. 

사랑 받고 행복한 때가 나의 사명 감당의 때가 아닙니다.  이러한 것은 하나님이 나에게 사명을 감당하게 하기 위한 하나의 과정에 불과 한 것입니다.

  유대인이 다 죽게 되고 변절되어 죽게 되는 민족의 멸망이 앞에 닥쳤을 때가 에스더의 사명을 감당할 때입니다.

  3일을 단식하며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고 기도를 한 후에 왕후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하여 죽음을 각오하고 나아갔습니다.

에스더서 4장 14절 “이 때에 네가 만일 잠잠하여 말이 없으면 유다인은 다른 데로 말미암아 놓임과 구원을 얻으려니와 너와 네 아비 집은 멸망하리라 네가 왕후의 위를 얻은 것이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아느냐”

  네가 왕후의 위를 얻은 것이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아느냐

  네가 목사가 되고 장로가 되고 권사가 되고 집사가 된 것이 이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아느냐?

  분명한 것은 어려운 때가 나의 사명을 감당 할 때입니다.


내가 넉넉히 팔가자 교회에 헌금을 보냈다면 송 용기 집사가 죽지 않았을 것인데 내가 인색하고 우리 교회의 장로가 거부하여 그런 일이 일어난 것을 생각하면 사명을 감당하지 못한 것이 심히 가슴 아픈 일입니다.

  어려울 때에 교회를 버리고 다른 교회로 옮겨가는 성도들을 흔히 보게 됩니다.  어렵지 않은 교회로 피하여 가는 것은 지혜가 아니고 사명 기피자가 되는 것입니다.

  요나같이 도망을 하여 잠시 낮잠을 달게 잘 수는 있을지라도 큰 풍랑을 만나게 되고 바다 속에 던져지고 고기 뱃속에 들어가는 어려움을 당할 것을 어찌 바라보지 못하는지 답답할 뿐입니다.

  지금 어려 울 때에 에스더와 같이 지금 내가 이 사명을 감당 할 때라도 믿고 금식하며 기도하며 죽으면 죽으리라는 행동으로 나아가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사명 기피자는 병역 기피자 보다 더 큰 부끄러움을 당할 것입니다.


4. 믿음 소망 사랑의 완성이 죽으면 죽으리이다 입니다.

데살로니가 1장에는 믿음에는 역사가 따르고 사랑에는 수고가 따르고 소망에는 인내가 따른다고 하였습니다.

  빨간색, 노란색, 파란색은 색의 3원색이라고 말하고 있고 믿음 소망 사랑은 신앙의 3원색입니다.

  이 3원색을 동량으로 같이 합하면 검은 색이 됩니다. 

  믿음과 소망과 사랑을 동일하게 합치면 죽으면 죽으리라가 됩니다.  죽는 다는 것은 겸손을 말하고 순종을 말하고 헌신을 말하는 것으로 내가 나타나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겸손과 헌신과 순종이 균형 있게 합쳐진 사람이 참 올바른 신앙으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한 가지가 없거나 부족하면 색깔이 나타나고 내가 살아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과 소망과 사랑을 균형 있게 소유한 신앙인은 항상 주님 앞에 순종과 겸손과 사랑으로 주님의 뜻대로 하옵소서 하는 주님을 위하여 내가 죽은 신앙인이 되는 것입니다.


5. 감사하는 사람이 죽으면 죽으리라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주님의 은혜가 너무 고마워서 “늘 울어도 눈물로써 못 갚을 줄 알아 몸밖에 드릴 것 없어 이 몸 바칩니다”로 살아가는 사람이 주님의 은혜를 참으로 깨달은 사람입니다.

  구원의 은혜를 깨달은 사람은 그 보답의 방법으로 죽으면 죽으리라는 헌신의 생활을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지 못한 사람은 아직 내가 살아 나타나고 내가 더 나타나려고 애를 쓰고 있는 사람입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아직 주님의 은혜를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 나타내는 증거입니다.


  정리:

우리가 그냥 예수를 믿을 때는 지났습니다.

  마귀는 그냥 예수를 믿는 자를 삼키려고 우는 사자같이 삼킬 자를 찾아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사자가 사냥하는 것을 보면 약하고 병들은 것을 잡아먹지 무리와 함께 힘 있게 뛰는 놈은 잡지를 못합니다.

  우리는 마귀를 이기고 살아가려면 항상 힘 있고 능력 있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1. 일사각오로 예수를 믿어야 합니다.

  주 기철 목사님도 일사각오라는 설교를 한 후에 감옥에 갇히고 순교를 하였습니다.  계명을 지키는데 일사각오, 복음 전하는데 일사각오, 신앙을 지키며 기도하는 일에도 일사각오가 필요한 이때입니다.  (화전현 교회 예화)

 

2. 하나님께 전적으로 매끼고 살아갑시다.

  내 뜻대로 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좇아 죽으면 죽으리라로 맡기고 살아가야 합니다.


3. 사명 완수를 생명 보다 귀하게 여기고 살아야 합니다.

  생명보다 더 귀한 것이 세상에 없다지만 사명은 생명보다 더 귀한 것입니다.


4. 신앙의 완성은 죽으면 죽으리라로 나타납니다.


5. 감사가 넘칠 때가 죽으면 죽으리라 입니다.

  감사가 터질 때에는 세상에 아까운 것이 없이 생명이라도 바쳐 감사에 보답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마지막 때에 반드시 승리하여 큰 영광과 상급과 구원을 얻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逆轉勝으로 하만이 모르드개 대신에 죽고 유대인이 대적을 이기고 부림의 기쁨을 누린 것은 죽으면 죽으리라는 각오로 기도하고 믿음으로 나아간 결과인 것입니다.

  죽으면 죽으리라는 신앙은 결국 기쁨을 가져다주는 신앙입니다.

  마귀나 악한 하만에게 삼키우지 말고 에스더니 모르드개같이 죽으면 죽으리라는 신앙을 갖고 항상 역전승의 기쁨과 감격 속에 승리의 개가를 부르며 사는 성도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출처 : 블로그 > 은혜(恩惠) | 글쓴이 : 은혜 (恩惠) [원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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