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놈이나 앉지 않아요. 저기
통통해 보이는 저 새는 잘 앉고, 조 놈은 잽싸게 부리로 낚아챈 다음 어딘가 숨겨놓곤 곧바로 돌아와요.” 춘천 삼악산(三岳山·654m,) 정상
용화봉 정상석 옆에서 이혜경씨는 쪼그려 앉은 채 동고비가 손바닥에 내려앉기를 기다렸다. 그러다 한 마리가 쏜살같이 과자 조각을 낚아채자 감격스런
표정을 짓는다. ‘호반의 산’ 삼악산은 산새마저도 사람을 즐겁게 하는 산이었다.
경춘선 열차는 대성리역에 다가설 즈음부터 북한강 줄기를 끼고 달렸다. 젊은이들이 청량리역 출발 이후 내내 시끌벅적하게 떠들어대지만 싫지
않다. 한겨울에도 유유히 흐르는 강물은 모처럼 마음을 넉넉하게 해주어 고맙다는 생각까지 들게 했다.
강촌역에 도착하자 젊은이들은 삼삼오오 짝을 지어 구곡폭포 쪽으로 이동하고, 우리들은 막 도착한 춘천시내행 버스에 올라탔다. 경춘가도를
따르는 사이 차창으로 바라보이는 삼악산은 우뚝 솟구쳐 파고들 만한 틈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이거 한 번 들어서면 못 나오는 거 아니에요?”
이영석(39·청운대 교수)씨는 입이 짝 벌어졌다. 차들이 쌩쌩 달리는 경춘가도에서 산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바위절벽이 양옆에 솟은 좁디좁은
협곡이 나타났다. 크고작은 폭포와 소가 이어지는 등선계곡은 골 바닥이 꽁꽁 얼어붙고, 폭포는 얼음기둥을 곧추 세워놓아 더욱 냉랭한 기운을
자아냈다.
선녀탕을 지나면서 골은 서서히 넓어지고 아늑해졌다. 숲 우거진 골짜기로 올라서자 산중 선술집이 반겨준다. ‘파전, 감자부침, 손두부’
삐뚤삐뚤한 글씨로 쓴 메뉴판이 오히려 정겨워 저로 주저앉아 주인이 직접 담갔다는 막걸리와 두부로 출출한 속을 달래며 옛 얘기를 듣는다.
삼악산은 주막 위쪽 흥국사를 가운데 두고 사각형을 이룬 주능선 안쪽은 완경사의 분지이고, 바깥쪽은 수십 길 벼랑 아니면 급경사 바위지대다.
바로 이 능선을 따라 삼한시대 맥국(貊國) 성터가 남아 있다. 왕건에게 패한 궁예의 피신처였다고도 전한다.
숱한 전설 전해지는 흥국사에 잠시 들렀다 산정으로 향한다. 뻐근한 계단길. 그런데도 아름드리 소나무로 꽉 들어찬 숲이 숨을 고르게 해
준다. 오를수록 산세가 오히려 더욱 유순해지고, 숲은 짙어진다. 그러다 육산에 얹힌 바윗덩이 같은 정상 용화봉 위에 올라섰다. 삼악산은 호숫가의
수석이었다. 발 아래는 수십 길 절벽에 섬뜩케 하고, 산자락은 푸른 물에 잠겨들고 있었다. 짙은 물빛은 멀리서도 우리들을 빨아들이는 듯했다.
“와~, 저게 춘천이에요? 의암호가 정말 넓네요. 저 섬은 정말 물고기 같네요. 그 위쪽 섬은 꼭 한반도를 옮겨놓은 것 같고요. 저건 경기
제1 고봉인 화악산(1468.3m) 아니에요. 와~, 응봉(1436.3m), 명지산(1267m)까지도 보이네.”
이영석씨는 춘천 지형도와 산아래 지형을 맞춰보면서 의암호의 섬인 붕어섬, 중도, 상도를 하나 하나 짚어낸다. 그리곤 바로 옆에서 과자를
들고 있는 이혜경씨에게 “뭐 하는 거냐?” 묻는다. 순간 맞은편 나뭇가지에서 눈치를 살피던 동고비 한 마리가 휙 날아와 과자를 낚아채곤
날아갔다.
산행 가이드
코스는 단순하다. 강촌역에서 춘천 방향으로 약 2.5km 떨어진 산 들머리에서 등선계곡을 따라 흥국사를 거쳐 정상에 올라선 다음 동쪽
의암댐매표소나 정양사, 또는 소문난횟집 앞으로 하산한다. 역으로도 가능하고, 쉬엄쉬엄 걸어도 3시간이면 넉넉하다. 입장료 어른 1600원청소년
1000원, 어린이 600원. 매표소 전화 (033)262-2215, 244-2331.
청량리역 발 경춘선 열차는 1일 19회(06:15~22:20) 운행한다. 강촌역까지 약 1시간35분 소요, 4200원. 강촌역에서
등선폭이나 의암댐을 경유 시내버스는 20~30분 간격으로 운행. 950원. 서울 동서울터미널(02-446-8000)과
상봉터미널(02-435-2122)에서도 강촌 경유 직행버스가 수시로 다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