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대한민국 探訪

[전북 무주] 덕유산 눈꽃 산행

鶴山 徐 仁 2006. 2. 3. 09:29


덕유산의 주봉인 향적봉에서 100m 정도 아래로 내려가면 따끈한 차와 라면으로 몸을 녹일 수 있는 대피소가 있다(위). 아래는 설천봉 정상에 있는 팔각정 상제루. 온통 눈과 서리에 뒤덮인 모습이 동화 속의 한 장면처럼 환상적이다.


(위에서부터)덕유산 설천봉으로 오르는 곤돌라.대피소 안보다는 밖에서 즐기는 라면맛이 일품. 설천봉의 명물 상제루 내부에도 서리꽃이 만발했다. 눈에 폭 파묻힌 덕유산 백련사.


덕유산 설천봉 정상. 눈꽃이 활짝 핀 나무가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더 반짝반짝 빛난다.
쉼 없이 달리다 고개를 들어보니 어느덧 세밑. 지는 한 해는 여전히 아쉽기만 하고, 다가올 또 다른 한 해는 설렘보다 두려움이 더 크다. 좀 더 뜨겁게 시간의 터널을 달리지 못한 이들의 공통된 회한. 그 마음의 짐을 벗기 위해 차곡차곡 배낭을 꾸린다.

덕유산. 천상의 꽃들이 만개한 그곳으로 길을 떠난다. 버림을 위한 길. 비운 자리를 다시 채우기 위한 산행이다. 선계(仙界)로 오를수록 마음이 가볍고, 다시 속세로 내려오는 길은 발걸음이 가볍다.

근래 몇 년 동안 덕유산이 이렇게 두툼한 ‘외피’를 껴입었던 적은 없었다. 벌써 20여 일째 몰아닥친 강추위와 폭설로 덕유산의 덩치는 이미 터질 것처럼 비대해졌다. 눈꽃 산행을 즐기기에는 더 없이 좋은 조건이다.

덕유산은 그다지 어려운 산이 아니라서 꼼꼼한 산행 준비와 이른 출발이 담보된다면 정상 왕복은 추천할 만한 코스다.

삼공매표소에서 백련사를 지나 주봉인 향적봉을 오른다거나 영각매표소에서 남덕유산 쪽으로 향할 수도 있다. 칠연폭포가 있는 안성매표소~동엽령 코스도 좋다. 신풍령~횡경재, 치목~안국사 코스 등 선택의 폭이 무려 열 가지가 넘는다.

잠깐 소강상태에 접어드는가 싶더니 다시금 눈발이 흩날리고, 바람은 꽁꽁 여민 옷깃 사이 아주 조그만 틈마저도 찾아내고는 맨살로 파고든다. 요즘 날씨를 보면 덕유산은 여간해서는 제 몸을 다 내어주지 않을 기세다.

간편하게 덕유산의 진경을 보려면 무주리조트 쪽에서 곤돌라를 이용해 설천봉을 거쳐 향적봉으로 오르는 길이 있다. 무주리조트 설천하우스에서 곤돌라가 운행된다. 곤돌라 이용료는 1인당 편도 6천원, 왕복 1만원이다.

스키어들이 힘차게 활강하는 슬로프 위로 곤돌라가 케이블을 따라 오르기 시작하는 동시에 산행은 시작된다. 곤돌라는 15분여 동안 가끔씩 덜컹거리면서 설천봉을 향해 올라간다. 운행한 지 5분쯤 지나자 서서히 ‘천상의 꽃’이라 불러도 좋을 ‘상고대’가 드러난다. 해발 1000m를 지났다는 신호다.

상고대는 안개나 습기 따위가 나무에 얼어붙어 생긴 산호 같은 설화(雪花)다. 안개가 잦거나 습한 고지대에서 상고대를 관찰할 수 있다. 덕유산은 서해의 습한 대기로 인해 상고대가 발달하고 눈 또한 많은 곳이다. 상고대는 보통 1000m 이상의 고지대에서나 볼 수 있다.

곤돌라를 타고 올라온 탓에 바람의 매서운 기운을 잠시 잊었던 이들은 설천봉(1520m)에 발을 내리는 순간 몹시 당황하게 된다. 어쩔 수 없이 드러낸 피부를 조각낼 듯 바람은 칼날처럼 달려든다.

‘눈 덮인 하늘의 봉우리’라는 뜻의 설천봉은 그 이름 그대로다. 사방을 둘러보아도 가뭇한 점 하나 찾을 수 없다. 흩날리는 눈바람에 모든 것들이 하얗게 물들어 있다.

설천봉의 명물 상제루도 마찬가지다. 팔각 모양의 정자인 상제루도 지붕에는 눈이 수북이 쌓였고, 벽면에는 상고대가 활짝 피었다. 상고대는 건물 안에도 피었다. 그로 인해 명패의 글씨조차 읽기 힘들 정도다. 처음 보는 이 신기한 광경에 사람들은 입을 다물 줄 모른다.

설천봉에서부터 덕유산의 주봉인 향적봉(1614m)까지는 걸어서 20분 정도 걸린다. 눈이 깊게 쌓였지만 등산로가 잘 정비돼 있어 오르기 수월하다.

상고대가 만발한 주목 군락의 터널을 지나는 동안 바람도 잦아들고, 따스한 햇볕도 잠깐씩 비추니 한결 낫다. 고로쇠나무, 신갈나무, 함박꽃나무의 메마른 몸에도 눈꽃이 피어 신선세계가 따로 없다.

‘은은한 향기가 난다’는 뜻의 향적봉은 계절로 치자면 아마 봄의 이름인 듯하다. 봉우리를 둘러싼 철쭉나무들에 붉은 꽃이 피면 그야말로 꽃향기에 젖은 봉우리가 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 겨울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다. 마치 눈에도 향기가 있는 것처럼 하얀 눈꽃이 벌과 나비처럼 사람들을 불러 모으니 허명은 아닌 셈이다.

향적봉에서는 맑은 날이면 덕유산 일대뿐만 아니라 지리산 천왕봉과 마이산, 계룡산, 가야산 등 주변 산들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흐린 날의 운해도 장관이다. 눈 깜짝할 사이 구름이 휘몰아쳐 시야를 가리더니 또 눈 깜짝할 사이 제 몸을 드러낸다.

향적봉 아래 100여m 지점에는 날씨 변덕으로 몸을 피해야 할 사람들을 위한 대피소가 있다. 이곳은 그러나 굳이 날씨가 속 썩이지 않더라도 향적봉을 오른 사람들이 휴식차 찾는 곳이다. 후출해진 배를 채우기 위해 준비해온 라면을 끓여 먹거나 다소 비싸지만 사발면을 사서 먹는 재미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5평 남짓의 대피소 취사장은 앉을 자리가 모자랄 정도로 항상 만원이다.

향적봉에서부터 하산길은 선택하기 나름이다. 그러나 다시 곤돌라를 타고 내려가기에는 하산길 내내 펼쳐질 눈꽃세상을 두고 가기가 다소 아쉽다. 그래서 사람들은 백련사를 거쳐 구천동 삼공매표소로 향하는 하산코스로 발길을 내딛는다.

향적봉에서부터 백련사까지는 2.5km 경사가 있는 코스인 탓에 1시간30분 정도 걸린다. 그리고 백련사에서부터 삼공매표소까지가 다시 1시간30분. 평탄한 이 구간은 5km 남짓 거리다.

백련사는 가을철 만산의 홍엽이 일품이지만 눈에 폭 묻힌 정취도 둘째가라면 서럽다. 주변에는 매월당 김시습의 사리를 모신 매월당 부도 등이 있다.

백련사를 지나면 계곡물 소리가 하산길 내내 동행한다. 계곡은 대부분 얼어붙었지만 얼음 아래로 물은 끊임없이 흐른다. 마음을 정화시키는 맑고도 투명한 소리에 걸음이 가볍다. 가끔씩 무언가 딱딱거리며 나무를 때리는 작은 소리가 들리기도 하는데 그 진원을 좇아가면 오색딱따구리다. 그 소리마저 하산길에 벗을 하니 즐겁기까지 하다.

[여행안내]

★가는 길 ▶기차: 영동역 하차 후 영동터미널에서 구천동행 버스 탑승-삼공주차장 하차 ·대전역 하차 후 대전동부시외터미널에서 구천동행 버스 탑승-삼공주차장 하차 ▶버스: 무주터미널 도착-구천동 행 버스 탑승-삼공주차장 하차(첫차 07:00, 막차 19:45) ▶자가용: 대전~통영간 고속도로-무주 IC 좌회전-19번 국도-49번 지방도 이용 삼공주차장

★숙박: 무주밸리 ·일신산장(삼공리) 063-322-9987 ·낙원산장(삼공리) 063-322-3155 ·초원파크(심곡리) 063-322-9676 ·로얄파크(심곡리) 063-322-3325

★먹을 곳: ·삼공매표소 아래 전주식당(063-322-3125)의 산채정식이 먹을 만하다. 산나물 종류만도 십수 가지. 게다가 전라도 특유의 맛깔스러운 반찬도 상을 가득 채운다. 1인분 1만2천원. ·무주리조트 쪽으로는 예촌본가(063-322-5665)의 버섯전골이 유명하다. 각종 버섯에서 우러나오는 시원한 국물맛이 일품이다. 2인 기준 2만원.

★문의: 덕유산 국립공원(http://www.npa.or.kr/togyu) 063-322-31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