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精神修養 마당

名文시리즈/金聖佑의 '돌아가는 배'

鶴山 徐 仁 2006. 1. 28. 22:14
나는 어릴 때 먹던 멸치와 고구마와 밀감을 먹으러 돌아간다. 내 少時를 양육한 滋養이 내 노년을 保養할 것이다.
金聖佑   
 편집자 注: 이 글은 1999년 ‘삶과 꿈’에서 출간된 ‘돌아가는 배’의 맨 마지막 章을 옮겨온 것이다. 노재봉씨 추천.
 
 나는 돌아가리라. 내 떠나온 곳으로 돌아가리라. 출항의 항로를 따라 귀항하리라. 젊은 시절 수천 개의 돛대를 세우고 배를 띄운 그 항구에 늙어 구명보트에 구조되어 남몰래 닿더라도 귀향하리라. 어릴 때 황홀하게 바라보던 滿船(만선)의 귀선, 색색의 깃발을 날리며 꽹과리를 두들겨대던 그 칭칭이소리 없이라도 고향으로 돌아가리라. 빈 배에 내 생애의 그림자를 달빛처럼 싣고 돌아가리라.
 섬의 선창가에서 소꿉놀이하며 띄워보낸 오동나무 종이 돛배의 남실남실한 걸음으로도 四海(사해)를 좋이 한 바퀴 돌았을 세월이다. 나는 그 종이 돛배처럼 그 선창에 가 닿을 것이다.
 섬을 떠나올 때, 선창과 떠나는 배에서 서로 맞잡은 오색 테이프가 한 가닥씩 끊기는 아픔이었다. 그러나 나는 얼마든지 늘어지는 고무줄처럼 평생 끊기지 않는 테이프의 끝을 선창에 매어둔 채 세상을 주유했다. 선창에 닻을 내린 채 닻줄을 풀며풀며 방랑했다. 이제 그 테이프에 끌려 소환되듯, 닻줄을 당기듯, 작별의 선창으로 도로 돌아갈 때가 된 것이다.
 세상이 아무리 넓어도 온 세상은 내가 중심이다. 바다가 아무리 넓어도 내가 태어난 섬이 바다의 중심이다. 나는 섬을 빙 둘러싼 수평선의 원주를 일탈해왔고 이제 그 중심으로 복귀할 것이다. 세상을 돌아다녀보니 나의 중심은 내 고향에 있었다. 그 중심이 중력처럼 나를 끈다.
 내 귀향의 바다는 離鄕(이향)의 그 바다일 것이다. 불변의 바다, 불멸의 바다. 바다만큼 만고청청한 것이 있는가. 山川依舊(산천의구)란 말은 옛 시인의 虛辭(허사)일 수 있어도 바다는 변색하지 않는다. 그리고 不老(불로)의 바다, 不朽(불후)의 바다. 늙지 않고 썩지 않고 항상 젊다. 내게는 세상에서 가장 오래 되고 가장 변하지 않은 친구가 있다. 그것이 바다다. 그 信義(신의)의 바다가 나의 竹馬故友(죽마고우)다. 나는 태어나면서부터 파도의 유희와 더불어 자랐다.
 어느 즐거운 음악이 바다의 단조로운 海潮音(해조음)보다 더 오래 귀를 기울이게 할 것인가. 어느 화려한 그림이 바다의 푸른 單色(단색)보다 더 오래 눈을 머물게 할 것인가. 바다는 위대한 單調(단조)의 세계다. 이 단조가 바다를 불변, 불멸의 것이 되게 한다. 그 영원한 古典(고전)의 세계로 내가 간다.
 섬에 살 때 머리맡에서 밤새도록 철썩이는 바다의 물결소리는 나의 자장가였다. 섬을 처음 떠나왔을 때 그 물결소리를 잃어버린 소년은 얼마나 많은 밤을 不眠(불면)으로 뒤척였는지 모른다. 이제 거기 나의 安眠(안면)이 있을 것이다.
 고향을 두고도 실향했던 한 浪子(낭자)의 귀향길에 바다는, 어릴 적 나의 襁褓(강보)이던 바다는 그 갯내가 젖내음처럼 향기로울 것이다. 그 정결하고도 상긋한 바다의 香薰(향훈)이 내 젊은 날의 氣息(기식)이었다. 塵網(진망) 속의 塵埃(진애)에 찌든 눈에는 해풍의 청량이 눈물겹도록 시릴 것이다.
 가서 바닷물을 한 움큼 떠서 마시면 눈물이 나리라. 왈칵 눈물이 나리라. 물이 짜서가 아니라 어릴 때 헤엄치며 마시던 그 물맛이므로.
 소금기가 있는 것에는 신비가 있다던가. 눈물에도 바다에도 바다는 신비뿐 아니라 내게 무한과 영원을 가르쳐준 가정교사다. 海鳴(해명)속에 神(신)의 綸音(윤음)이 있었다. 그 목소리를 들으러 간다.
 나의 바다는 나의 공화국. 그 황량한 廣大(광대)가 나의 영토다. 그 풍요한 자유가 나의 主權(주권)이다. 그 공화국에서 나는 자유의 깃발을 공화국의 국기처럼 나부끼며 자유를 심호흡할 것이다. 바다는 자유의 공원이다. 씨름판의 라인처럼 섬을 빙 둘러싸서 나를 가두고 있던 수평선. 그 수평선은 젊은 날 내 부자유의 울타리더니 이제 그 안이 내 자유의 놀이터다. 나의 부자유는 오히려 섬을 떠나면서 시작되었다. 수평선에 홀려 탈출한 섬에 귀환하면서 海鳥(해조)의 자유를 탈환할 것이다. 수평선의 테를 벗어난 내 인생은 반칙이었다.
 섬은 바다의 집이다. 大海(대해)에 지친 파도가 밀려밀려 안식하는 귀환의 종점이다. 섬이 없다면 파도는 그 무한한 표류를 언제까지 계속할 것인가. 희뜩희뜩한 파도의 날개는 광막한 황해의 어느 기슭에서 쉴 것인가. 섬은 파도의 고향이다. 나는 파도였다. 나의 일생은 파도의 일생이었다.
 바다는 인간의 무력함을 느끼게 하는 허무의 광야, 파도는 이 허무의 바다를 건너고 건너서 섬에 와 잠든다. 나의 인생도 파도처럼 섬의 선창에 돌아와 쉴 것이다.
 나는 모든 바다를 다 다녔다. 태양계의 惑星(혹성) 가운데 바다가 있는 것은 지구뿐이라 더 갈 바다가 없었다. 육대양을 회유한 나는 섬에서 태어난 영광과 행복을 찾아 돌아가야 한다. 모든 생명의 어머니인 바다의 모태 속으로.
 바닷물은 증발하여 승천했다가 비가 되고 강물이 되어 도로 바다로 내려온다. 나의 귀향은 이런 환원이다. 바다는 모든 강물을 받아들이면서도 스스로 더렵혀지지 않는다. 고향은 世塵(세진)에 더렵혀진 나를 정화시켜 줄 것이다.
 바다는 年輪(연륜)이 없다. 山中無歷日(산중무역일)이라듯 바다에도 달력은 없어 내 오랜 不在(부재)의 나이를 고향 바다는 헤아리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섬은 이 蕩兒(탕아)의 귀환을 기다려 주소 하나 바꾸지 않고 그 자리에 있을 것이다.
 고향은 집이다. 아침에 나갔다가 저녁에 돌아오는 집이다. 쉬지 않기 위해 집을 나서고 쉬기 위해 찾아온다. 나는 꼭 만 18세의 성년이 되던 해 고향의 섬을 떠나왔다. 내 인생의 아침이었다. 이제 저녁이 된다.
 모든 입항의 신호는 뱃고동소리다. 내 출항 때도 뱃고동은 울었다. 인생이란 때때로 뱃고동처럼 목이 메이는 것. 나는 그런 목메인 船笛(선적)을 데리고 귀항할 것이다.
 돌아가면 외로운 섬에 두고 온 내 고독의 원형을 만날 것이다. 섬을 떠나면서부터 섬처럼 고독하게 세상을 떠다닌 나의 평생은 섬에 돌아가면 옛애인 같은 그 원판의 고독과 더불어 이제 외롭지 않을 것이다.
 고향은 앨범이다. 고향에는 성장을 멈춘 자신의 어린 시절이 빛바랜 사진 속처럼 있다. 모래성을 쌓던 바닷가에서, 수평선 너머에 무엇이 있다는 것을 알아 버리고 돌아온 옛 소년은, 잃어버린 童話(동화) 대신 세상에서 주워온 寓話(우화)들을 조가비처럼 진열할 것이다.
아침녘의 넓은 바다는 꿈을 키우고 저녁녘의 넓은 바다는 욕심을 지운다. 어린 시절의 내 몽상을 키운 바다는 이제 萬慾(만욕)을 버린 내 노년의 무엇을 키울 것인가.
 사람은 무엇이 키우는가. 고향의 산이 키우고 시냇물이 키운다. 그 나머지를 가정이 키우고 학교가 키운다. 그러고도 모자라는 것을 우유가 키우고 밥이 키운다. 사람들은 부모에게 효도하고 나라에는 충성하면서 고향에 대해서는 보답하는 덕목을 모른다. 내게 귀향은 歸依(귀의)다. 나의 뼈를 기른 것은 8할이 멸치다. 나는 지금도 내 고향 바다의 멸치 없이는 밥을 못 먹는다.
 내가 태어나면서부터 먹은 주식은 내 고향 욕지도의 명산인 고구마다. 그 때는 그토록 실미나더니 최근 맛을 보니 꿀맛이었다.
 내가 자랄 때 가장 맛있던 것은 밀감이다. 당시 우리나라에서는 나지 않아 값비싸고 귀하던 것이 지금은 이 섬이 주산지가 되어 있다.
 나는 어릴 때 먹던 멸치와 고구마와 밀감을 먹으러 돌아간다. 내 少時(소시)를 양육한 滋養(자양)이 내 노년을 保養(보양)할 것이다.
 영국 작가 조지 무어의 소설 ‘케리드 川(천)’을 읽으라. ‘사람은 필요한 것을 찾아 세계를 돌아다니다가 고향에 와서 그것을 발견한다.’는 구절이 나온다. 내가 찾아 헤맨 파랑새는 고향에 있을 것이다. 세상은 어디로 가나 결국은 외국. 귀향은 귀국이다. 모국어의 땅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내 고향 섬을 다녀온 한 지인의 말이, 섬 사람들의 말투가 어디서 듣던 것이다 싶어 생각해 보니 내 억양이더라고 한다. 떠난 지 50년이 되도록 鄕語(향어)의 어투를 버리지 못하고 있는 나는 영원한 鄕人(향인)이다.
 물은 위대한 조각가다. 나는 파도의 조각품이다. 파도가 바닷가의 바위를 새기듯 어릴 때의 물결소리가 내 표정을 새겼다. 이것이 내 인생의 표정이 되었다. 한 친구가 나에게 ‘海巖(해암)’이란 雅號(아호)를 권한 적이 있다. 나는 섬의 바닷바위 위에 石像(석상)처럼 설 것이다.
 돌아가 무엇을 할 것이냐고 묻는가. 그림을 그리리라. 고향의 美化(미화)보다 더 아름다운 일이 있겠는가. 나는 알프스 산맥의 몽블랑도 그려왔고 융프라우도 그려왔다. 어릴 적 물갓집의 벽에 걸렸던 ‘시용성’ 그림의 배경이 알프스 산맥이었다. 이 눈 쌓인 고봉들을 물가에 갖다놓고 이제 바다를 그리리라. 섬을 떠난 나의 出游(출유)는 위로 위로의 길이었다. 나는 표고 4000여 m까지 상승한 증표를 가지고 도로 바다로 하강한다. 어느 화가가 내 서툰 그림의 과욕이 걱정되는지 바다를 잘못 그리면 풀밭이 된다고 했다. 그런들 어떠랴, 바다는 나의 大地(대지)인 것을.
 해면을 떠나면서부터의 나의 登高(등고)는 이륙이었고 이제 착륙한다. 인생은 공중의 곡예다.
 해발 0m에서 출발한 나는 해발 0m로 귀환한다. 無에서 시발이었고 無로의 귀결이다. 인생은 0이다. 사람의 일생은 토막난 線分(선분)이 아니라 圓(원)이라야 한다. “자기 인생의 맨 마지막을 맨 처음과 맺을 수 있는 사람은 행복하다.”고 말한 괴테는 나를 예견하고 있었다. 고향에 돌아와 자신이 태어난 방에서 입적한 석가의 제자 舍利弗(사리불)처럼, 그것은 원점으로 회귀하는 일이다. 나는 하나의 라스트 신을 상상한다.
 한 사나이가 빈 배에 혼자 몸을 싣고 노를 저어 섬의 선창을 떠난다. 배는 돛도 없고 발동기도 없고 정처도 없다. 먹을 것도 마실 것도 아무것도 싣지 않았다. 한바다로 나간 뒤에는 망망대해뿐 섬도 육지도 보이지 않는다. 이 배의 최후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런 빈 배라도 띄울 선창을 나는 찾아간다. 물결은 정지하기 위해 출렁인다. 배는 귀항하기 위해 출항한다. 나의 年代記(연대기)는 航海日誌(항해일지)였다.
[ 2006-01-28, 11: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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