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진주시가 요즘 새로운 도약의 꿈으로 부풀어 있다.
1925년 경남 도청이 부산으로 옮겨 간 이후 80년만에 발전의 기회가 왔다고 한다.
지난해 년말 경상남도의 혁신도시로 진주시가 선정 되었기 때문이다.
서울에 있는 공공기관중 경남으로 오는 기관들이 진주시로 오게 되었다.
진주시는 지금 혁신도시 유치에 대한 기대로 넘쳐나고 있다.
그리고 이어서 2010년 전국체전을 진주시가 유치를 하였다.
과거에도 창원과 마산에서 개최되는 전국체전의 일부종목을
진주에서 치른적은 있지만 이번처럼 진주시가 단독으로 유치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아래 사진은 공공기관들이 들어설 진주시 문산읍 소문리이다.
남강을 끼고 있는 이 지역은 진주시내와 가깝고 진주시의 관문지역이어서 교통도 좋다.
지금은 비닐하우스 단지로 대부분 농지이지만
혁신도시로 선정되고 땅 투기바람이 심하게 불었다고 한다.
나도 진주시가 혁신도시가 되고 발전하는 것을 반대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여러가지로 염려 되는 일도 많이 있다.
조상대대로 농사를 짓던 이 지역의 주민들은 어디론가 떠나야 한다.
몇 년후 이 넓은 땅들은 건물들로 가득할 것이다......
도시가 넓어지고...
건물이 많이 들어서고....
그런 모습들이 발전인지 나는 잘 모르겠다.
혁신도시와 관련하여 요즘 진주지방 방송에 자주 등장하는 것이 대형유통점 문제이다.
우리집에서 불과 10여분 거리인 하대동에는 요즘 대형 유통점의 신축공사가 한창이다.
이 대형 유통점의 공사가 진행되면서 인근의 재래시장 상인들이 반발이 심하다.
텔레비젼 뉴스에서 상인들이 진주시청을 찾아가서 항의를 하는 모습을 보았다.
상인들의 주장에 의하면 진주시가 혁신도시를 유치하기 위하여
혁신도시 부지와 가까운 이곳에 삼성 홈플러스 유통점을 허가 하였다고 한다.
시청에서는 쉬쉬하였지만 오래전부터 삼성 홈플러스가 온다는 소문이 돌았다.
나도 아내로 부터 이 이야기를 듣고 설마 하였는데 현장을 보니 사실이라는 생각이 든다.
유통점 공사현장에 가면 공사 조감도와 개요에 대한 안내문이 있다.
그런데 아무리 살펴 보아도 건축주가 누구인지는 기록이 없다.
시민들은 모두 알고 있는데...
왠지 기분이 씁쓸하다.
아래 사진은 진주시 동부지역의 대표적인 재래시장인 자유시장이다.
우리집에서 걸어서 20분 거리인 이 시장은 아내와 내가 자주 찾는 곳이다.
지금 이 시장의 상인들은 재벌기업의 대형 유통점 문제로 노심초사하고 있다.
진주시청과 자유시장은 꽃나무 담을 사이에 두고 있다.
(아래 사진의 잔디밭이 시청 마당이다.)
가까운 거리이지만 상인들과 시청의 거리는 너무도 멀다는 생각이 든다.
80년만에 발전의 기회가 왔다고 진주시청은 희망에 부풀고
그 발전의 그늘속에서 수 많은 상인들과 농민들은 설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변화하고 발전하는 진주시....
그러나 그 변화와 발전은 누구를 위한 것인지....
자유시장 옆 육교 위에서 재래시장을 바라 보는 마음이 너무 무거웠다.
우리나라 다목적 댐 1호가 남강댐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남강댐은 1960년대에 조성되어 서부 경남 주민들을 홍수로 부터 해방시켰다.
최근 댐의 규모를 확장하는 공사가 완료되어 지금은 면적이 훨씬 넓어졌다.
남강댐의 조성으로 만들어진 호수를 진양호라고 부른다.
진양호 호수를 일주하는 도로는 환상적인 드라이브 코스로 알려져있다.
진양호의 환상적인 드리이브 코스는 남강댐의 물 문화관 휴게소에서 출발하여
진주시 나동면과 대평면, 사천시 곤명면과 산청군 단성면을 지나는데 약 30km 정도 된다.
이 도로는 평소 오고 가는 차량이 작아서 늘 한산한 시골길이다.
우리 부부는 진양호에서 꿈의 드라이브를 즐긴다.
자동차 드라이브는 젊은사람들만 하는게 아니다.
우리처럼 중년의 부부가 자동차를 타고 달리면 나이를 잊는다.
창문을 열고 달리면 시원한 강바람에 마음이 상큼하여 날아갈 것 같다.
아내는 신랑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호수길을 달리면 어린아이 처럼 좋아한다.
진양호 남쪽 언덕위에는 한국 수자원 공사의 물 문화관이 있다.
믈 문화관에는 남강댐의 건설 과정과 주변 풍경등이 전시 되어 있다.
아래 사진은 물 문화관에서 바라 본 진양호의 전경이다.
호수 건너편에는 진주시민의 휴식처인 진양호 유원지가 있다.
아래 사진은 물 문화관에서 바라본 남강 다목적 댐이다.
남강댐 아래 진주시의 서부지역 신 시가지가 보인다.
이 지역은 진주의 신흥 주택지로 각광을 받고 있는 곳이다.
즐비한 아파트와 상가들로 진주에 사는 나도 길을 잘 모르는 경우가 있다.
남강댐 아래 큰 딸의 모교인 경해여고가 보인다.
우리집에서 버스로 한 시간이나 걸리는 먼 학교를 3 년 동안 참고 잘 다녔다.
아래 사진은 진양호의 명물인 진수대교이다.
진수대교는 진주시 덕천강을 가로지르는 다리로서 길이가 800m 가 넘는다.
이 다리를 건너면 삼거리가 나오는데 오른편은 산청군 경호강으로 이어진다.
왼편은 사천시 곤명면 완사와 하동군 옥종면으로 이어지는데 경관이 아주 좋다.
물 문화관에서 이 다리를 건너 진향호 호반을 달리는 마라톤 코스가 있다.
나는 자전거로도 이 길을 달려 보았는데 정말 환상적인 코스이다.
아래 사진은 진양호의 대평교이다.
나는 아내와 오늘도 시원한 강바람을 마시며 이 도로를 달린다.
특히 여름철은 수량이 많아서 호수의 모습이 더욱 아름답다.
대평교를 지나면 호수를 구경할 수 있는 장소가 있다.
이 부근에 수달이 서식한다는 안내문이 있다.
진양호의 모습이 바다처럼 보인다.
아래사진에 보이는 곳은 대평면이 있던 곳인데 진양호에서 가장 넓은 지역이다.
면의 이름을 대평면이라 하였으니 얼마나 들이 넓었는지 알 수 있다.
대평면 소재지는 수몰되고 지금은 높은 지역으로 옮겼다.
여름이 다 가기전에 진양호 일주 도로를 달려 보시기를 추천합니다.
대평교를 지나 조금 더 상류로 가면 성철스님의 생가와 겁외사가 있고
부근에 문익점 선생이 우리나라 최초로 면화를 재배한 면화 시배지가 있습니다.
진양호 일주도로는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 수 있는 꿈의 도로입니다.
드라이브를 하고 돌아 오는 길에 성철스님 생가 앞에서 고구마를 한 박스 샀습니다.
남강변 모래밭에서 자란 이곳 고구마는 정말 맛이 있습니다.
꿈의 진양호 드라이브와 고구마......여러분에게 드리고 싶습니다.
나는 진주성을 자주 찾아간다.
계절마다 변화하는 진주성을 산책하면서 세월을 느낀다.
지난 7월 16일 토요일 오후 늦게 아내와 진주성을 다녀왔다.
아내는 하얀 양산을 쓰고 나는 카메라를 메고....
진주성을 한바퀴 돌려면 한 시간 정도 걸린다.
고즈녁한 성벽길을 데이트 하는 기분을 이디에 비길까?
촉석루는 언제 보아도 멋스러운 모습이다.
촉석루 넓은 누각에 오르면 시원한 남강바람이 불어온다.
한 여름이지만 강바람이 마음까지 상큼하게 한다.
남강을 바라 보며 시를 짓던 선조들의 멋을 생각해 본다.
잘 가꾸어진 잔디가 녹색 바다를 이루고 있다.
날씨가 더워서인지 사람들은 별로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가끔 젊은 연인들이 팔장을 끼고 걷는다.
녹색 잔디와 아름다운 젊은 연인들의 모습이 잘 어울렸다.
영남포정사 건물에 전에 없던 초병이 둘이나 있다.
실제 사람 크기의 인형을 두개 세워놓았다.
영남포정사의 2층 누각을 망미루라고 부른다.
망미루에서 바라본 밥짓는 연기는 예전 진주 10경의 하나였다.
진주성의 민가는 모두 철거되고 지금은 잔디가 조성되었다.
멀리 바라보며 혼자서 밥짓는 연기를 상상해 본다.
진주성에서 가장 높은 곳인 서장대도 그 자리에 늠늠하게 서 있다.
서장대에도 베낭을 멘 젊은 남,녀가 구경을 하고 있다.
젊은이들이 우리를 보고 무슨 말을 할 듯하더니 그냥 간다.
나는 젊은이들이 유적을 찾아 다니는 것이 매우 흐뭇하였다.
멀리 진주시의 서부지역이 한눈에 들어온다.
신안동, 평거동, 판문동의 드넓은 들판들....
그리고 아파트...아파트...그 사이를 달리는 자동차....
그 넓은 들판이 도시로 변하였지만 서장대는 그냥 바라만 보고 있다.
국립 진주 박물관 앞의 야외공영장이다.
숲과 잔디에 둘러 쌓인 야외 공연장은 오늘 조용하다.
이제 한여름이 지나고 선선한 바람이 불면
사람들은 이곳에서 노래하고 춤을 추게 되겠지...
그리고 추억을 만들고 사랑을 이야기 할 것이다.
진주성에는 곳곳에 총통이 설치되어 있다.
조선시대에 사용하던 총통인데 금방이라도 불을 뿜을 듯하다.
한여름 매미 소리가 조용한 진주성의 적막을 깨운다.
매미들의 합창을 가만히 듣고 있으면
413년전 진주성을 지키던 시민들의 함성처럼 느껴진다.
이끼가 낀 담장이 정겨운 모습이다.
생명은 이리도 귀하고 질긴 것이다.
아내와 나는 한참을 서서 그냥 바라 보았다.
진주성에서 천수교를 바라보는 경치도 빼 놓을 수 없다.
망진산과 남강이 나란히 아름다움을 뽐내고
남강을 가로 지르는 천수교에는 차량들이 줄을 이어달린다.
진주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 올리는 것이 논개와 촉석루이다.
나는 진주에 살면서 진주성과 논개가 순국한 의암을 자주 찾는다.
그리고 여린 여인의 몸으로 왜장을 안고 남강에 뛰어든 기개를 생각한다.
촉석루 옆에는 의기 논개를 모신 의기사라는 사당이 있다.
아래 사진은 지난해 겨울에 찍은 것인데 의기 논개의 영정이 모셔져 있다.
그러나 지금은 두번째 사진에서 보는바와 같이 논개의 영정이 없다.
지난 5월 진주시내의 시민단체들이 논개의 영정을 철거하였기 때문이다.
시민단체에서 논개 영정을 철거한 것은 영정을 그린 화가가 친일파라는 이유이다.
현재의 논개 영정은 이당 김은호 화백이 그린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당 김은호 화백은 일제시대 친일 화가라고 한다.
그동안 친일파가 그린 논개 영정에 관하여 논란이 많이 있었다.
그러나 진주시를 비롯한 관계 기관에서 이런 저런 이유로 미루는 바람에
시민단체가 나서서 강제로 이당 김은화 화백이 그린 영정을 철거한 것이다.
지금은 영정은 없고 사진에서 보는 바와 같이 위폐를 모시고 안내문을 게시하였다.
보도에 의하면 관계기관과 시민단체가 협의하여 새로운 영정을 모시기로 하였다고 한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새로운 영정을 모시기로 한 것은 매우 잘 된 일이다.
의기사에 새로운 논개 영정이 하루속히 모셔지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의암은 이런 소동을 아는지 모르는지 오늘도 그 자리에 있다.
이번 영정 철거 소식을 보면서 참으로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민족의 정기를 바로 세우는 일은 정말 중요하다.
왜장을 안고 남강에서 순국한 논개의 영정을 친일 인사가 그렸다니 부끄러운 일이다.
지금이라도 제대로 된 영정을 모시게 되어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모르겠다.
이번 일을 계기로 진주성을 우리민족의 긍지를 되살리는 교육의 장으로 가꾸어야겠다.
아래 사진을 자세히 보면 오른편 담장이 약간 높다.
오른편이 논개를 모신 의기사 담장이고 왼편이 촉석루 담장이다.
의기사에 심어진 능소화가 당장 밖으로 얼굴을 내밀고 있다.
새로운 논개 영정을 하루속히 모시라고 지나가는 시민들에게 호소를 하는 듯하다.
南 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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