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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군 50년사 화보집 중 자주국방 기반 조성기(1972~1980) . 1식 3찬을 분배하는 취사병 군은 장병의 사기앙양을 위한 급식향상을 기하고자 1976년 6월 1 일부터 기본메뉴 2찬(국.김치) 외에 찜, 튀김, 부침 또는 볶음 중 에 추가로 1찬을 급식토록 1식 3찬 제도를 운영, 장병 체력향상에 기여하였다. ... 76년 5월달까지는 밥 국 김치만 줬다는 건가...? 너무 했다--; --------------------------------------------- 이 기간은 1972년 10월 이후부터 1980년까지 제4공화국의 정부가 자주국방의 기반구축을 추진했던 시기이다. 1970년대 들어 주한미군의 감축과 함께 미 군사원조가 종식되면서 우리 나라의 안보문제는 우리 자체의 문제라는 현실적 인식과 더불어 자주국방문제가 큰 과제로 대두하게 되었다. 이처럼 자주국방이 절실해지면서 국가 목표달성을 위한 군의 역할과 군사력의 운영개념을 재정립하고 국방 정책방향과 군사전략 목표설정의 기초가 되는 국방목표를 제정하는 한편, 국방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국방기구를 합리적으로 통합정리하고, 군의 지휘체계를 공고히 했으며, 각군의 조달기구 및 각군 병원의 통합, 예비군지휘체계의 개선, 국방정책 연구기반 조성 등의 사업을 추진하였다. 또한 자주국방을 효율적으로 추진할 수 있도록 국방과학연구소를 설립하여 국방과학연구소가 국방과학기술의 제공, 연구개발사업의 수행 및 업체연구활동 지원 등 방위산업육성을 효과적으로 지원할 수 있도록 하였으며, 정부 주도하에 국방과학연구소가 역설계한 기본장비를 국산화하는 번개사업을 추진하였다. 1977년에는 방위산업에관한특별조치법 시행령을 제정.공포함으로써 방위산업발전을 위한 제도적 근거를 마련하는가 하면, 제1차 율곡사업을 추진하여 전력증강에 박차를 가하였다. 또 국방대비태세와 한.미 연합방위태세 강화를 위하여 육군 제3군사령부의 창설을 비롯한 주요부대 구조를 개선하였고, 한.미 연합군사령부를 창설하게 되었다. 국방목표제정 자주국방 추진을 위해 국가목표를 효율적으로 뒷받침하고 국군의 월남 파병과 주한미군 감축에 따른 선행조치로 한.미 양국 간에 합의된 국군현대화 5개년계획 (1971.1975)을 일관성 있게 추진할 수 있도록 1972년 12월 29일 국방목표를 처음으로 제정하였다. 당시 국방목표는 ① 국방력을 정비 강화하여 평화통일을 뒷받침하고 국토와 민족을 수호한다. ② 적정 군사력을 유지하고 군의 정예화를 기한다. ③ 방위산업을 육성하여 자주국방체제를 확립한다는 것이었다. 국방목표의 제정으로 국방이 지향해야 할 목표가 명확하고 일관성 있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체계적으로 국방기본정책을 수행할 수 있게 되었다. 국방부는 자주국방을 조기에 달성하도록 하기 위해 국군현대화계획의 지속적인 추진과 경제적이고 정예화된 질 위주의 군 육성, 방위산업의 육성, 정신무장의 강화, 예비군의 전력화 및 병무행정의 쇄신에 중점을 두고 정책을 추진하였다. 방위산업의 육성 국방과학연구소의 창설 1.21사태, 푸에블로호 피랍사건, 울진.삼척 무장공비 침투사건, EC-121기 격추 사건 등 북한의 도발이 노골화되는 가운데 1969년 7월 닉슨 대통령의 괌선언은 우리 나라로 하여금 자주국방의 필요성을 절감케 하였다. 그리하여 자주국방을 조기에 달성하기 위해 1970년 8월 국방관련 연구개발사업 추진과 방위산업육성을 위해 기술을 제공하는 국방과학연구소가 탄생되었다. 설립 이후 국방과학연구소는 소총, 기관총, 박격포 등 기본병기개발을 위한 긴급병기개발사업(일명「번개사업」)을 3차 에 걸쳐 1974 년까지 성공적으로 수행하여 부분적인 성능개량과 독자적인 한국형 장비의 개발을 위한 기반을 조성하였다. 1980년 말까지 국방과학연구소는 총 220개 장비의 개발에 착수하여 155개를 완료 하여 한국적 여건에 부합되는 무기체계 개발능력을 확보함과 동시에, 제3국에도 수출할 수 있는 능력을 구비하게 되었다. 특히 1978년 9월 26일 안흥시험장에서 실시된 한국형 장거리 지대지 유도탄 및 중거리 유도탄, 다련장 로켓, 대전차 로켓 발사 시험을 성공함으로써 세계에서 7번째 미사일 개발국으로 등장하게 되었다. 방위산업 기반조성 한국군의 전력증강과 무기체계의 해외종속으로부터 탈피뿐만 아니라 선진국의 첨단군사기술 이전 기피 및 급격한 군사과학기술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도록 한다는 방침에 따라 방위산업 육성을 적극 추진하였다. 이를 위해 다수의 민간공장에 의한 분업생산과 조립방식이라는 한국 특유의 독창적 방법으로 정부 주도하에 방위산업 육성을 추진하는 한편, 국방과학연구소로 하여금 개발대상 장비의 TDP(Technical Data Package : 기술자료 묶음)를 미국으로부터 도입하여 한국화하거나 역설계하여 방산업체에 제공하고 시제품을 제작하여 시험평가 후 양산하는 모방개발 방식을 택하였다. 방위산업의 육성목표는 정부의 제3차 경제개발5개년계획이 끝나는 1976년까지 총포, 탄약, 통신기기, 차량 등 기본병기를 국산화하고, 제4차 경제개발5개년계획이 끝나는 1980년대 초까지 전차, 항공기, 유도탄, 함정 등 정밀무기의 국산화 능력을 보유한다는 것이었다. 1975년 월남이 패망하고 국방비에 대한 부담이 커지자, 정부는 즉각 방위세를 신설하여 방위산업 육성에 더욱 박차를 가하였다. 이리하여 방위산업은 준비단계(1971.1972)를 거쳐 기본병기 기반조성단계(1973.1976)에 이르러서는 M-16 소총을 비롯하여 60/81미리 박격포, 소화기탄, 박격포탄, 각종 유.무선 통신장비, 고속정 등 기본병기 개발과 이를 통한 생산기반을 구축하게 되었으며, 1977년 1월 충남 대덕군에 국방과학연구소 대전기계창이 준공됨으로써 약진의 발판을 마련하게 되었다. 기본병기 기반완성단계(1977.1981)에 이르러서는 축적된 기술을 바탕으로 기본병기의 완전 국산화를 통한 양산과 일부 고도정밀 병기의 국산화 개발 및 생산기반 구축에 중점을 두고 M60 기관총, M203 유탄발사기, 20미리 발칸포, 곡사포/탄, 표준차량, 전차 개조, 구축함, 한국형 전투함, 다련장로켓 등을 양산함으로써 방위력 강화에 많은 기여를 하게 되었다. 제1차 율곡사업의 추진 자주국방을 조기에 달성하기 위해 1974년 2월 25일 8개년(1974.1981)을 대상기간으로 하는 제1차 전력증강계획을 확정하였는데 사업계획의 기본전략은 한.미 연합억제전략을 바탕으로 하여 전략개념을 한.미 군사협력체제 유지, 주한미군 계속 주둔 보장, 방위전력의 우선적 발전 및 자주적 억제전력의 점차적 형성 등을 추진 한다는 것이었다. 사업지침으로는 국방비 가용액을 GNP의 4% 수준으로 유지하며, 투자비는 15억 2,600만 달러로 계획하고, 전력증강 투자를 위하여 효율적인 국방관리를 통해 운영유지비를 최대로 절약할 것과 방위산업을 육성하여 자체 생산기반을 구축하며, 증 강 우선순위는 대공.대전차 억제능력, 공군력 증강, 해군력 증강, 예비군 무장화순 으로 한다는 것이다. 보안유지를 위해 전력증강계획을‘율곡계획’이라고 가명칭을 붙였는데, 이것은 임진왜란 당시 왜적의 침입을 예견하고 10만 양병론을 주장했던 율곡 이이 선생의 호를 딴 것으로 유비무환 사상을 본받고자 하는 뜻이 내포된 것이었다. 제1차 율곡사업기간(1974.1981) 8년 동안 총 가용액 3조 6,076억원(국고 2조 7,702억원, FMS차관 8,374억원) 중 차관원리금 상환액 4,674억원을 제외하고 실투자비는 3조 1,402억원이었으며, 율곡사업 추진에 의해 각군별 개선.발전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육군 가장 중요한 사단전력이 전투사단, 예비사단 개념에서 전투사단, 전투준비사단, 후방경비사단의 개념으로, 다시 상비사단, 동원사단, 향토사단의 개념으로 발전되었으며, 보병연대 부대구조도 4각 편제로 개편되어 인력 위주에서 기동력 위주로 변모 하였다. 즉, M-1 소총, 카빈 소총, LMG 경기관총이 M-16 소총, M-60 기관총으로, M-47/48계열 전차가 M-48 A3/A5 개조 전차와 한국형 전차 개발로, 구형 105/155미리 야포가 신형 개량포(사거리 연장포)로 대체되었다. 그리고 불과 10여 대의 헬기 와 O-1기를 보유하고 있던 육군 항공전력이 UH-1H, AH-1J, 500MD 등 무장헬기가 대폭 늘어나는 등 양적인 증강뿐만 아니라 질적인 면에서도 2차대전형의 군대에서 근대화된 군대의 모습으로 탈바꿈하게 되었다. 해군 구형 구축함이 도태되고 한국형 구축함 및 경비함 그리고 각종 대.중.소형 미사일 고속정(PGM, PKM, PK)이 증강되었으며, 대잠초계기, 대잠헬기와 이에 따른 각종 대잠 감시장비의 확보로 주요 해역의 수중감시체계 강화 및 대잠수함 공격능 력이 강화되었다. 그 외에도 해상수송능력과 소해능력을 향상시켰으며, 북한의 상륙전에 대비하여 서해 5개 도서 및 수도권 서부축선 방어를 더욱 공고히 하고, 유사시 다양한 상륙작전 수행을 위한 해병사단 및 여단을 증.창설하였다. 공군 구형 전투기인 F-86을 도태시키고 F-5A 전투기에 이어 이의 개량형인 F-5E를 조립생산하여 배치하였고, 공지합동작전 능력을 보강하기 위해 O-2A 항공기를 도입하였다. 그리고 다목적 항공기인 A-37 및 F-4E 전폭기를 도입하는 한편, 4개 전 투비행단과 1개 전술통제비행단을 창설하여 대북 항공열세를 질적으로 상당히 만 회할 수 있게 되었다. 이와 함께 레이저 유도폭탄, CBU폭탄, 매브릭(Maverick)탄, 사이드와인더(Sidewinder), 스패로우(Sparrow) 공대공 유도탄, 채프(Chaff)탄, 방공체제 자동화 등 첨단 무기체계 및 장비를 획득함으로써 양적, 질적 향상을 이룩하였다. 한미연합훈련 및 한미연합사 창설 팀스피리트(Team Spirit) 연습 1975년 인도지나반도 전역이 공산화되면서 이에 고무된 북한이 정세 오판에 의한 전면 무력 도발을 일으킬 가능성이 높아지자, 이를 억제하기 위해서는 한.미 안보 체제를 더욱 강화하여 국민들에게 국가안보에 대한 신뢰감을 심어 줄 필요가 있다 는 인식하에 한.미 국방부는 한.미 연합훈련을 매년 실시하되 점차적으로 그 규모를 확대 실시하기로 합의.서명하였다. 이리하여 최초의 팀스피리트 연습이 1976년 6월 7.24일까지 국군 31,000여 명과 미군 15,000여 명이 참가한 가운데 수도권과 경기도 여주 및 강원도 횡계지역에서 18일 동안 4단계로 나뉘어 실시되었다. 이 훈련을 통해 한.미 양국군은 미 증원부대의 한국전개 및 수용능력 검토, 한.미 연합 및 합동작전능력 향상, 공지 화력지원체제의 통합 및 협조, 연합.합동 비정규전 능력 향상, 연합.합동 군수지원능력 및 통신전자능력 향상 등의 성과를 거둠으로써 북한의 도발 억제 및 대비태세 강화에 많은 기여를 하였다. 한.미 연합군사령부(CFC) 창설 1971년 미 제7사단의 철수와 함께 한.미 제1군단이 창설되었으며, 1977년 1월 미국의 제39대 대통령에 취임한 카터는 한국에 하나 남아 있는 미 제2사단마저 철수 시키겠다고 선언함에 따라 작전지휘체계를 효율적으로 통합, 한국의 방위력을 증진 시키기 위해 1978년 11월 7일 한.미 연합군사령부가 창설되었다. 이를 계기로 한국전쟁 직후의 대전협정에 따라 그 동안 유엔군사령관에게 위임되었던 작전통제권에 한국이 참여 개입하게 됨으로써 자주성을 회복할 수 있는 단계에 이르게 되었고, 이제까지 수직 관계에 있어 온 한.미 군사관계에서 수평적 관계를 구축함으로써 대외적으로 미 지상군 철수에 대비하는 한.미 군사 협력의 효율적인 제도적 장치를 갖추게 되었다. 부대 창설 및 증개편 . 수도기계화사단 창설(1973. 3. 22) 북한 기갑부대 운용양상에 대처하고 부대구조의 기계화, 기동화 필요성에 부응하여 1972년 10월 1일 보병 제32사단이 최초의 기계화사단으로 개편된 이후 1973년 3 월 파월군 복귀에 따라 보병수도사단이 제32사단의 기계화 전력과 제51사단병력을 인수, 수도기계화사단으로 개편되었다. . 육군 제2, 제3사관학교 통합(1972. 4. 26) 제2사관생도들이 영천역에서 하차, 제3사관학교로 이동하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 . 제3군사령부 창설(1973. 7. 1) 1971년 초 미 제7사단의 철수를 계기로 155마일 전선을 담당하는 제1야전군의 임무 과중을 해소하기 위해 제3야전군이 창설되었다. . 제7, 제9공수특전여단 창설(1974. 10. 1) . 육군 제1항공단 창설(1973. 9. 1) . 육군 통신사령부 창설(1977. 12. 1) 군은 다원화된 후방지역 통신체계를 일원화하여 효율성 있는 지원체제로 개선코자 제2, 제5통신단 을 개편하여 통신사령부를 창설하였다. . 정신전력학교 개교식(1977. 9. 5) . 육군 제1항공여단 창설(1978. 6. 1) . 해군 해역사령부 창설 1973년 7월 1일 제1, 제2, 제5해역사령부를 창설하였으며 계속하여 1974년 1월 28일 제 3, 제6해역사령부를 창설하고 관할 해역의 해군 기지 지휘와 해상방어 임무 를 수행하게 되었다.(사진은 제1해역 사령부 본관) . 함대 항공대 건물 해군은 1973년 5월 1일 함대 항공대를 창설하였다. . 공군에서 인수한 O-1A 항공기(1973. 1. 5) . 해군 제2사관학교 제1기 입교식(1975. 5. 3) 해군 초급장교의 만성적 부족현상을 해소하고 기간장교를 확보하기 위하여 1975년 5월 10일 제2사관학교가 정식 창설되었다. . 해병대사령부 해체식(1973. 10. 10) 경제적인 군 관리운영을 위하여 해병대가 해군에 통합 되었다. . 공군 교육사령부 기상관측교육 장면 . 공군 교육사령부 창설식(1973. 4. 10) 공군 교육체계의 효율적인 관리운영과 기술군 양성을 위한 기술교육체계를 강화하기 위해 1973년 4월 10일 공군 기술교육단을 해편하고 공군의 교육 분야를 통합 관장하는 교육사령부를 창설하였다. . 공군 제2사관학교 전경 공군 전력증강에 따른 조종사 수의 대량 확보를 위해 공군 제2사관학교를 창설하여 제1기생부터 제7기생까지 초급장교를 양성하였다.(1975. 12. 1. 창설) . 공군 제15전투비행단 창설식(1974. 5. 1) . 공군 제18전투비행단 창설(1977. 6. 1) . 공군 제17전투비행단 창설(1978. 9. 1) . 공군 제16전투비행단 창단 1주년 기념식(1976. 8. 1) 1977년 3월 9일 카터 미 대통령의 주한 미 지상군 철수선언에 따라 1977년 5월 서울에서 개최된 제10차 한.미 연례안보협의회에 서 한국에 대한 방위공약을 확고히 하고, 철군에 따르는 보완책의 일환으로 1978년 11월 7일 한.미 연합사령부가 창설되었다. . 박정희 대통령으로부터 부대기를 인수 . 한.미 연합군사령부 창설(1978. 11. 7) . M-16 소총 생산(1974. 3. 2) 군 전력증강사업(일명 율곡사업) 초년도인 1974년에 M-16 소총의 국내생산이 가능하게 됨에 따라 기존의 M-1 카빈소총의 대체가 가능해졌다. . 야포(105미리, 155미리, 8인치) 포탄 생산(1974. 9. 30) . 20미리 발칸포 생산(1977) . 81미리 박격포 생산(1975. 7. 8) . 다련장 로켓포 생산(1978) . 에리콘 도입(1975) . 105미리 야포 조립(1978. 1) 국산 신형 155미리 야포 시험발사(1978. 4) . 토우 미사일 도입(1975) . 국산 자동차(K-511, K-512) 생산(1977. 3) M-48계열 국산전차 생산(1978) 미국으로부터 M-48계열 전차를 도입하여 개량 생산 함으로써 전차생산 기술능력을 축적 하였다. . 500MD 헬기 생산(1976) 외국 항공사의 기술을 도입하여 1976년부터 1988년까지 200여 대의 500MD 헬기를 국내생산함에 따라 기초적이나마 항공기 조립기술과 부품 제작기술 습득이 가능해졌다. . 한국형 지대지 유도탄 개발발사 성공(1978. 9. 26) 500MD 헬기사격 . 유도탄을 탑재 후 시운전 항해중인 고속정 (공창 건조 : 1974. 4. 30) . 고속정(PKM) 개발 배치(1978. 5) 1970년대 초반 북한 고속정의 해상도발에 대응하기 위해 건조된 고속정은 현재 연안 및 항만 방어의 첨병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 PKM : Patrol Killer Medium . 최초의 국산 고속정「학생호」(진수 : 1972. 11. 18) 최초의 한국형 호위함 진수(1980. 4. 8) 사상 최초로 우리 기술진에 의해 1,500톤급 한국형 호위함을 건조 진수함에 따라 해군 전력증강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 미국 롱비치에서 인수한 구축함(1972. 10. 30) . 소해함(MSC) 도입 주요항구 출입항로에 대한 기뢰탐색 및 제거 임무를 수행한다. ※ MSC : Mine Sweeper Coastal . 함대함 하푼미사일 발사(도입 : 1978) . PL-2 국산 항공기 제작 기념식(1972. 7. 28) . PL-2 국산 항공기(새매호) 제작(1972. 7. 28) 대한민국 공군이 최초로 자체 제작하여 정보부대에서 운용하던 항공기로 1973년 4월 1일부터 1995년 3월 퇴역시까지 총 1,355시간을 비행하였으며, 주임무는 대적 첩보 및 정보 수집 활동과 초등비행 훈련용으로 사용하였다. . T-41 훈련기 도입(1972. 3. 27) 조종석이 좌우에 있는 기초 훈련기로 체공시간이 길고 안정성이 입증되어 현재까지 사관생도의 초등비행 훈련기로 사용하고 있다. . T-37 중등 훈련기 도입(1973. 6. 7) 공군 중등 비행과정 훈련기로서 유사시는 공중 통제 및 통신 중계 임무를 수행한다. . O-1G(관측기) 도입(1972. 4) 전후방 조종석의 2인승 관측기로서 정찰 비행전대에 배치하여 정찰임무 와 작전연락 및 조종사 양성을 위한 초등비행 훈련임무에 사용하였다. . C-123 수송기 도입(1973. 8. 3) 전술수송기로 총 22대를 도입, 부대 이동 및 전개, 장비.보급 물자 수송, 공중화물 투하 등의 임무수행에 활용되었으며 1994년 12월 31일 퇴역하였다. . O-2A 항공기 도입(1974. 8. 15) . 해상초계기(S-2E) 도입(1976) 해상초계 및 대함, 대잠수함전을 수행한다. . OH-58 헬기 도입(1974. 3. 29) 전남도내 학생들의 방위성금으로 구입된 장비로 정찰 및 인원수송, 교육훈련용으로 운용된다. . A-37B 공격기 도입(1976. 10. 6) 근접 항공지원 작전 및 공중통제 임무에 운용된다. . F-5E 전투기 항공기에서 하역 1970년대 초 북한 공군이 MIG-19 전투기에 이어 MIG-21 전투기를 도입하는 등 공군력을 증강시키자 공군은 이에 대처할 수 있는 고성능 항공기로서 1974년 11월 11일 F-5E 전투기를 도입, 그간 공군의 주력기로 사용하던 F-5A 전투기와 대체하 였다. . 성환 비상활주로 공군은 작전기지의 부족으로 예상되는 전쟁상황하에서 항공작전에 많은 제약이 따르자 경부고속도로상에 비상활주로를 건설하여 전술기의 작전이 가능하도록 하였다. . EC-47Q 수송기 인수식(1975. 6. 28) . F-4E 전폭기(일명 : 팬텀) 도입(1977. 9. 20) 다목적 전투폭격기로서 3시간 이상의 장기 체공능력, 우수한 기동성, 다양한 공대공 및 공대지 무장능력 등 MIG기를 비롯한 공산권 전투기를 제압하는 탁월한 성능을 갖추어서 F-16 신예기가 도입되기까지 공군의 핵심 기종으로 방공, 요격, 근접지원, 후방차단 등 다양한 임무에 운용하고 있다. . 해상작전헬기(ALT-Ⅲ) 도입(1977) 대함, 대잠수함전 수행, 인원구조 및 물자 수송용으로 운용된다. . 서울특별시 민방위대 신고식(1975. 9. 22) 1975년 3월 제2땅굴 발견과 동년 4월 월남의 패망에 자극을 받아 1975년 9월 22일 전쟁 또는 각종 재난에 대비한 민방위대와 전국 고교 이상 남녀학생, 교직원으로 학도호국단이 창설되었다. . 학도호군단 중앙발단식에 이은 시가행진(1975. 9. 2) . 방위성금 항공기(F-4D) 헌납식 국민들의 방위성금으로 마련한 F-4D 팬텀 전폭기 5대에 대한 헌납식이 거행되었다.(1975. 12. 12) . 1식 3찬을 분배하는 취사병 군은 장병의 사기앙양을 위한 급식향상을 기하고자 1976년 6월 1 일부터 기본메뉴 2찬(국.김치) 외에 찜, 튀김, 부침 또는 볶음 중 에 추가로 1찬을 급식토록 1식 3찬 제도를 운영, 장병 체력향상에 기여하였다. . 대전 국방과학연구소(ADD) 전경 육.해.공군의 연구개발기능을 통합 수행하며, 병기장비 및 물자 의 국산화를 위한 기술을 개발하고, 방위산업 육성을 기술적으로 지원함을 목적으로 1970년 8월 6일 국방과학연구소가 창설되었다. . 거북선 원형 복원(1980. 1. 31) 임진왜란 당시 왜선을 격침시키는 데 큰 수훈을 세운 세계 최초의 철갑선인 거북선, 우리 해군에 의해 실제의 크기 모습으로 복원 건조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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