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순위를 매기면서 나타나는 긍정적인 효과는 물론 여러 가지가 있다. 그렇지만 현재 대학순위 매기기는 '연구중심대학'을 모델로 하고 있기 때문에 대학서비스 소비자들의 실제 수요와 따로 노는 문제점이 있다. 평가기준에는 '해외 발표 논문 수' '외부 연구과제 규모' 등 연구실적이 절대적 비중을 차지한다. 교육부문은 '학생당 교수 숫자' '졸업생들의 사회적 평판' 등의 항목에 간접적으로 들어가지만 교육의 질을 객관적으로 따지기 어렵기 때문에 대학들은 연구실적 올리기에 중점을 둔다. 그러나 소비자 입장에서 문제를 근본적으로 다시 살펴보자. 대학서비스의 가장 큰 소비자는 등록금을 내는 학생과 학부모들이다. 또 학생들 중 대부분은 대학원까지 진학하지 않고 학부만 졸업한 뒤 사회에 진출한다. 이들에게 대학의 연구능력은 부차적 관심사다. 이들이 대학을 다니면서 가장 원하는 것은 사회 진출에 필요한 교육이다. 대학에 기부금을 많이 내는 기업이나 사회 단체들도 대학서비스의 큰 고객이다. 대학의 연구성과를 활용하기 위해 내는 기부금도 있다. 그렇지만 기업이 필요로 하는 좋은 인재가 많이 배출될 수 있도록 내는 기부금도 많다. 교육과 연구 수요 간 비중이 정확히 어느 정도인지 계산하는 것은 불가능하겠지만 필자가 짐작하기에 국가 전체적으로 보면 교육의 비중이 80% 이상은 되는 것 같다. 그렇지만 대학 순위 매기기 경쟁에 따라 대학 당국들은 현재 80% 이상의 노력을 연구 부문에 쏟아 붓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200여 개가 넘는 국내 대학 모두가 연구중심이 될 수는 없다. 연구중심 대학이라 하더라도 그곳에 들어오는 학생들의 교육 수요를 잘 해결해줘야 하는 책임이 있다. 미국 유명 대학에서는 뛰어난 연구업적을 올리지만 학생들을 가르치지 않으려는 교수들이 늘어나고 있다. 교육의 실적은 눈에 잘 띄지 않지만 연구업적은 바로 드러나고 자신의 몸값을 올릴 수 있는 기반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연구지원금으로 강의를 대신할 강사를 사는 경우도 있다. 학생들에게는 실망감만 안겨 주는 일이다. 필자가 가르치는 경제학의 경우 연구실적 올리기 경쟁으로 나아가니까 나타나는 다른 부작용도 있다. 학부를 졸업하는 학생들에게는 경제이론뿐만 아니라 경제사.학설사 등 경제를 폭넓게 바라볼 수 있도록 도와주는 과목들을 다양하게 가르쳐야 한다. 그러나 경제사.학설사 등에서 새 작품을 내놓기는 대단히 어렵다. 이론 중에서도 학부 학생들이 필요로 하는 수준의 새 논문을 쓰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이러다 보니 학생들이 필요로 하는 내용을 그 수준에 맞게 가르치는 교수들이 점점 줄어들고 고전 읽기가 등한시된다. 경제학이 점점 기술적으로만 어려워지고 '경제학은 알지만 경제는 잘 모르는' 학생.교수가 많이 배출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는 것 같다. 이곳 싱가포르 국립대학에서도 이러한 사회적 필요와 대학순위 높이기 간의 상충 때문에 많은 고민을 한다. 그렇지만 교육서비스를 제대로 제공하기 위한 몇 가지 장치는 마련해놓고 있다. 예를 들어 학생들의 강의평가 항목에 '얼마나 유용했는가'라는 내용이 들어 있다. 연구업적은 별로 없어도 강의를 정말 잘하는 교수들에게는 종신교수가 될 수 있는 길도 열어 놓았다. 미국에도 연구실적은 별로 없지만 학부 학생들을 잘 가르치는 것으로 유명한 교육중심 대학들이 여럿 있다. 하지만 현재 국내의 대학평가는 연구중심대학 모델에 맞춰 200여 개 대학을 일렬종대로 줄 세우는 듯한 느낌이다. 연구와 교육을 합쳐서 종합순위를 매기기보다 연구와 교육을 나누어 순위를 매기는 것도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교육서비스의 질을 평가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렇지만 수요와 공급이 동떨어지는 상황은 어떻게든 시정해야 한다. 대학 소비자들이 원하는 서비스를 제대로 공급하는 방안을 제시할 혁신적 교육행정가들이 나오기를 기대하는 마음 간절하다. 신장섭 싱가포르 국립대학 교수.경제학 |
2005.10.07 20:41 입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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