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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돈희(68) 민족사관고등학교장은 숨어 있는 저소득층 영재도 발굴해 영재성을 개발해 줘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부산에서 택시를 모는 분의 딸이 우리 학교에 들어와 전액장학금을 받았습니다. 극히 드문 경우죠. 저소득층 자녀가 자력으로 준비해 우리 학교 입학 전형을 통과하기란 하늘의 별 따기입니다. 정작 문제는 저소득층 자녀를 일정 비율 뽑는다고 하더라도 이들이 들어와 제대로 적응을 못 한다는 거예요.”
-학생 나름이겠죠.
“입학을 허용해도 바닥을 헤맬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열등감에 시달리게 되죠. 그래서 앞으로 도시와 농촌의 저소득층 자녀를 30명 정도 아예 중학교 2학년 때 뽑아 1년 동안 미리 가르치려고 합니다. 재학 중인 학교에 재정지원을 해 이들에게 영어·수학·과학·국어 등을 가르치게 하고, 방학 때는 우리 학교 캠프에 참여시키는 겁니다. 그랬다가 일정한 수준이 되면 우리 학교에 입학시켜 무상교육을 하는 거예요. 입도선매 (立稻先賣)식 모집이랄까요? 이렇게 해야 저소득층 자녀들이 우리 학교에 들어올 수 있습니다. 이에 따른 장학금 등 소요자금은 따로 구해 봐야죠.”
최순영 민주노동당 의원은 최근 “세간의 우려대로 입시 위주의 귀족 사립학교로 전락한 자립형 사립고 정책에 대해 근본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자립형 사립고의 입학전형 자료와 교육 과정을 분석해 보니 입시 위주의 교육이 행해지고 있었다”는 말도 했다.
이돈희 교장은 그러나 저소득층 자녀에 대한 진입장벽은 학비 부담 이전에 자립형 사립고의 교과 과정을 따라갈 수 있는 학습 능력 결핍으로 인해 더 높게 둘러쳐져 있다고 말했다. 사실 대안학교들 빼고 입시 위주의 교육을 하지 않는 고등학교가 있을까? 오히려 입시 위주의 교육을 ‘제대로’ 하지 않는 것이 교육 수요자들의 불만 아닐까?
이돈희 교장은 교육학자 출신이다. 서울대 교육학과 교수와 사범대 학장을 지냈고, 한국교육개발원장을 거쳐 국민의정부 시절 교육부 장관으로 있었다.
-처음 학교 이름을 들었을 때 섬뜩했습니다. 글로벌한 차원의 영재를 키워내기에는 민족사관고라는 이름이 배타적이지 않나요?
“일본 NHK 기자가 비슷한 질문을 합디다. 이름 때문에 배타적이고 국수주의적 지도자를 양성하려는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지 않으냐는 거죠. 우리가 약소민족이었을 때라면 이른바 저항적 민족주의를 고취하려는 것으로 오해받을 수 있겠지만 지금은 그럴 이유가 없지 않으냐고 했습니다. 우리의 문화적·정신적 전통을 익히고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는 글로벌 리더를 키우자는 뜻이 담겼습니다.”
-민족사관고 학생들의 특권이 있다면 뭔가요?
“민족사관고는 동일계 특별전형이 적용되지 않습니다. 과학고·외국어고 등 특목고 출신들이 동일계에 진학할 때 누리는 이점이 없는 반면 진로에 제한이 없어 운신의 폭은 오히려 넓다고 할 수 있죠. 민족사관고는 국가교육과정을 그대로 따르지 않아도 됩니다. 일례로 2학년부터는 7차 교육과정에 구애받지 않아 국제계열(국제반)의 경우 미 대학의 교과목을 미리 이수하고 대학 진학 후 이에 대해 학점을 인정받는 ‘대학과목 선이수제(AP, Advanced Place-ment)’ 과목 수업을 들을 수 있죠. 내년 3월에는 무학년 교육과정을 도입합니다. 이에 따라 학생들이 학습 능력에 따라 자신의 교육 과정을 스스로 만들어 가게 될 겁니다. 80여 개의 클럽이 활동하고 있고, 졸업 인증 제도인 민족 6품제, 자주적인 지도자로 키우기 위한 학생 공화정 등을 운영하는 것도 우리 학교의 자랑거리죠.
능력 발휘하는 사람이 ‘영재’
-내신 경쟁에서 상대적으로 불리해 학생들이 불안해하지 않나요?
“제가 부임하기 전 어느 해인가는 30명 중 12명만 남았다고 하더군요. 나머지 학생은 전학을 가거나 검정고시로 빠진 거죠. 내신상의 상대적 불이익은 다른 문제를 해결하려다 보니 생긴 불합리한 조치이지만 바로잡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 바람에 우리 학교는 소수의 영재들을 교육하면서도 제도적으로는 제대로 대우를 못 받는 거죠. 2002년부터 특기 적성에 대한 배려, 수시모집 등으로 숨통이 조금씩 트이고 있어 초기만큼 문제가 심각하지는 않습니다. 요즘 내신 때문에 학교를 떠나는 학생은 1년에 한두 명이에요. 대개 특기 적성이 두드러지지 않는 아이들인데, 부모들이 데리고 나가지만 정작 아이들은 몹시 서운해 하죠.”
-정원을 늘리고 있는데, 학생 수 증가가 교육의 질에 어떤 영향을 미치지는 않나요?
“학생 수가 늘어났습니다만 인가받은 정원을 채운 겁니다. 학급당 학생수 15명은 계속 유지하고 있고, 교사 대 학생 비율은 초기의 1:4에서 내년이면 1:7 정도 될 겁니다. 부시 대통령 부자가 나온 필립스 아카데미, 케네디 대통령을 배출한 초트 로즈메리 홀 같은 미국 명문 사립고등학교(기숙학교)의 교사 대 학생 비율이,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사 기준으로 1 대 13 수준입니다.”
-소수 부유층만을 위한 귀족학교라는 평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사실 월 130만 원이면 저소득층으로서는 부담스러운 액수죠. 민족사관고는 기본적으로 고비용 구조입니다. 교사 대 학생 비율이 높고, 교사들의 급여도 일반 고등학교 대비 150%로 높습니다. 시설도 방대하고 보조인력도 많죠. 기숙사에서 일하는 직원들 말고도 20명의 인력이 학교 일을 돕습니다. 교사들이 가르치는 일에만 몰두하도록 하기 위해서죠. 하지만 내년에 학생 수가 450명이 되고, 학교에서 여는 캠프 등 수익사업으로 부족분을 충당하면 학교를 운영하는 데는 별문제 없습니다. 시설을 확충하기는 어렵겠지만. 교육비는 납입금과 기숙사비·특기적성교육비 등 수익자 부담 경비를 포함해 연간 1,500만 원가량 들어갑니다. 미국 명문고의 3분의 1 수준, 일본이 추진 중인 도요타(豊田)학교의 절반 수준이죠. 상하이(上海) 사립학교와 비슷합니다. 졸업생 중 상당수가 외국 명문대에 진학하는 만큼 이런 국제 비교도 필요합니다.”
-영재란 어떤 사람입니까? 영재교육의 의미는 어디에 있다고 보나요?
“예술·체육·산업·기술 등 어느 분야든 그 분야에서 능력을 발휘하는 사람이 영재죠. 민족사관고는 그 중에서 학문을 통해 사회에 봉사하는 인재를 길러내려고 합니다. 지식기반사회에 들어서면서 갈수록 영재의 사회적 효용이 커지고 있습니다. 문제는 영재를 선발하기가 쉽지 않다는 거예요. 잠재력이 잘 개발된 영재도 있지만 부모들의 극성으로 만들어진, 외형만 영재들도 있기 때문이죠. 만들어진 영재는 잠재력이 없기 때문에 계속 성장할 수 없습니다. 영재를 발굴하고 잘 개발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도 국가 지도자가 할 일이라고 봅니다.
-학교 인수를 둘러싼 논의는 어떻게 돼 가나요?
“지난해 학교 운영권을 넘기기 위해 재단이 인수자 측에 학교를 기부하려고 했지만 성사되지 않았습니다. 기업 경영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계속 돈이 들어가는 만큼 인수 부담이 큰 학교죠. 지금은 아무런 움직임이 없고, 최명재 이사장도 자립 구도로 가는 쪽으로 결심했습니다. 이 학교를 하겠다고 파스퇴르유업을 일으킨 분이죠. 시설 확충은 기부금을 모금해서 해야죠.”
이필재 월간중앙 편집위원 / 월간중앙 10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