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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자민당 고이즈미 총리의 승리에 대해서는 오히려 외국인들이 더 흥분하고 있다. ‘올드 재팬’은 가고 ‘뉴 재팬’시대가 열리고 있다는
것이다. 고이즈미 총리는 한국의 정보통신부 산하 우정사업본부에 해당하는 우정공사 민영화 법안이 부결되자 중의원을 해산하고 조기총선으로 신임을
물었다. 정치적 도박이었지만, 국민 다수는 고이즈미의 손을 들어주었다. 그 의미는 단순한 우정공사 매각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일본 우정공사는
3조달러의 자산을 갖고 있는 세계최대의 금융기관이다. 일본 전체 개인예금의 30%, 보험시장의 40%를 점하고 있는 금융계의 큰손이다. 이 돈을
일본 유력 정치인들은 자신의 선거구 사업을 벌이는 데 경쟁적으로 갖다 썼다. 이런 식으로 자원배분이 왜곡되어 경제 전체의 능률을 떨어뜨리고,
결국 성장률 저하→공공부문 부채 확대→노령사회 대비 불능이라는 악순환이 벌어졌던 것이다. 우정공사가 민영화되면, 이 엄청난 금융자산이 정치인의
검은 손에서 벗어나, 시장을 통해 가장 경쟁력 있는 부문으로 흘러가게 되어 경제에 역동성을 불어넣게 될 것이다. 우정공사 민영화는 2007년부터
10년간에 걸친 머나먼 장기과제인데도, 옛날 일본에서는 기대하기 힘들었던 작은 정부, 자유시장의 희망을 보게 되자 일본경제의 낙관론이 부활하고
있다.
독일 총선에서는 여야 모두 노동시장과 복지체제의 개혁을 내세웠다. 누가 급진적이냐, 점진적이냐만 달랐다. 독일은 지구상에서 제조업 노동
코스트가 가장 비싼 나라다. 미국의 두 배 가까이 된다. 노동조합은 경영에도 당당히 참여한다. 영세기업 이외에는 근로자를 해고할 수도 없는
나라다. “실업도 직업”이란 말이 나올 만큼 복지 역시 세계 최고 수준이다. 그 결과 성장은 멈췄고, 실업자는 전 국민의 11.6%인
500만명에 달한다. 이런 독일식 ‘사회적 시장경제’를 급진적으로 뜯어고쳐 ‘독일병(病)’을 치유하겠다고 나선 것은 ‘독일의 마거릿 대처’로
불리는 야당의 앙겔라 메르켈 후보였다. 공산 동독에서 자란 메르켈 기민당 후보가 로널드 레이건식의 규제 완화를 외치고 나선 것은 흥미롭다.
메르켈은 실업 구제와 복지부채 감축의 길을 기업경쟁력 증진을 통한 경제성장에서 찾았다. 그래서 해고를 쉽게 하는 노동법 개정과 작은
정부-자유시장-개인책임을 들고 나왔다. 비록 어느 당도 과반에 크게 못 미쳤지만, 독일 국민들은 급진적 자유화 개혁을 부르짖은 메르켈 후보의
기민당을 1당에, 중장기적 온건개혁을 추진 중인 슈뢰더 총리의 사민당을 2당으로 주저앉혔다. 한국의 참여정부 실세들이 그토록 모델로 삼고
싶어했던 독일 경제 체제는 이처럼 정작 독일 내에서는 여야 막론하고 개혁대상으로 삼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자신의 정치적 소신을 펴기 위해 의회를 해산한 고이즈미와 슈뢰더 총리를 부럽다고 말했다. 그러나 노 대통령이 정치적 승부를 걸려고 했던 것은 ‘국민을 먹여살리는 문제’가 아니라, 정치적 지역구도 극복이란 한가한 명분이었다. 지역구도 때문에 경제성장이 안 된다는 어떤 연구결과도 우리는 들어본 적이 없다. 일본과 독일 같은 경제수준에 도달하려면 우리는 앞으로 길고 긴 성장의 길을 가야 한다. 경제대국들도 파이를 키우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데, 우리가 벌써부터 파이를 나눠 먹는 일에나 몰두하고, 민생(民生)과는 전혀 상관없는 정략으로 온 국가의 에너지를 낭비해서야 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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