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우리나라 畵壇

[스크랩] 박수근 -10-

鶴山 徐 仁 2005. 8. 19. 13:54
 
가장 서민적이고 한국적이면서도 가장 현대적인 화가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박수근. 가난하고 궁핍한 생활을 겪으면서 서민의 애환을 느끼며 살았기에, 그는 서민화가라는 말도 듣고 있지요. 논과 밭 사잇길의 흙 같기도 한 그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고향에 대한 향수가 느껴지기도 합니다. 도시에서 태어나 도시에서 살아가고 있기에 흙을 모르는 제게도 가슴과 머리 속에만 있는, 그리운 고향이란 느낌이 전해올 정도니까요.

일제의 탄압이 한창이던 1914년 강원도 양구의 한 기독교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12살 때 즈음, 밀레의 “만종”을 보고선 큰 감동을 받았답니다. 그리고 "하나님, 저도 이 다음에 커서 밀레와 같은 화가가 되게 해 주옵소서" 라며 늘 기도했다고 해요. 그러나 아버지의 광산 사업 실패로 보통학교(현 초등학교) 졸업 후 중학교 진학을 포기한 채 생계를 위해 일을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재능을 아꼈던 일본인 교장 선생은 도화지와 연필을 사다 주며 격려하였고, 그 뒤로 그는 날마다 산과 들을 다니면서 일하는 여인들과 나물캐는 소녀들을 스케치 하면서 거의 독학으로 혼자서 그림 공부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봄이 오다>라는 제목의 수채화를 [조선미술전람회(鮮展)]에 출품하여 입선을 하였는 데요, 그 때 그의 나이는 18세 였습니다.

그 뒤에도 박수근은 자립을 위해 여기 저기를 떠돌면서 꾸준히 그림 공부를 하던 중, 부모님의 소개로 이웃집 처녀(^^) 김복순을 알게 되었지요. 그리고 주변 사람들의 얘기를 듣거나 멀리서 바라보기만 했을 뿐 말 한마디 제대로 해보지 않은 채, 그는 그녀를 아내로 맞이하기로 결심하였답니다. 그렇게 시작된 그의 사랑은 처음이자 마지막이며 유일한 사랑이 되었고, 그의 아내는 그에게 유일한 모델이자 생애의 모든 것이었습니다. 이 시기를 살아갔던 우리네 할머니, 할아버지의 사랑은 아무런 허영이나 계산 없이 그저 순박하기만 했던 것 같습니다.

25살의 나이로 18세의 꽃다운 처녀를 아내로 맞이한 후 평양의 도청 서기관으로서의 공무원 생활을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아들, 딸과 함께 행복한 가정을 꾸미면서도 결코 붓을 놓지는 않았구요. 가족을 모델로 그린 그의 그림들은 꾸준히 선전에서 입선을 하였습니다. 또 1945년에는 금성중학교 미술 교사로 교직생활도 하였구요.

해방 후 곧 들이닥친 공산정권은 기독교 신자이자 자유사상을 가지고 있던 그를 감시하기 시작하였고, 그는 갖은 문초를 당하기도 했습니다. 게다가 6.25 전쟁의 발발로 인해 가족들과의 생이별을 당하기도 하고, 그의 두 아들들이 병으로 죽는 아픔을 겪기도 하였답니다. 그 뒤에는 군산에서 부두 노동을 하기도 하고, 미군에서 초상화를 그리는 일을 하기도 하면서 간신히 생활을 유지하였지요.

다행스럽게도 그 인생의 아픔과 고통은 그에게 절망만을 남긴 것이 아니라, 예술로 승화되었어요. 이 시기에 그의 작품들은 박수근만의 독특하고 단순한 화법들로 작품 속에 자리잡기 시작하였습니다. 굵고 명확한 선의 윤곽, 흰색, 회갈색, 황갈색 특유의 평면적 색채, 그리고 명암과 원근감은 배제한 채 작가가 강조하고자 하는 사물의 특징만을 살려낸 구성 등이 뚜렷하게 나타난 것이죠. 박수근은 그가 간절히 바라던, 서민적인 화가 밀레에게 한 발자국씩 다가가고 있었습니다.

가난과 싸우면서 그림에만 전념했던 박수근은 작품마다 자신의 총역량을 쏟아 부었습니다. 하지만 정치적으로, 사회적으로 혼란했던 전쟁 직후의 한국 미술계는 그의 그림에 대한 올바른 평가를 내리지 못했죠. 그러나 화상 겸 수집가인 미국여성 실리아 짐머맨(Celia Zimmerman)의 후원 덕분에 그의 작품들이 유네스코 미국위원회와 뉴욕의 회화전에 전시되기도 하였습니다. 그 뒤 독학으로 그림공부를 했던 그에게 국전의 심사위원으로 위촉되는 영광이 주어지기도 하였습니다.

그림에 대한 열정이 강했던 만큼, 혼란했던 사회는 그에게 많은 아픔을 주었습니다. 지나친 과음으로 인해 그는 신장과 간이 나빠졌고, 결국에는 왼쪽 눈이 백내장이 걸리고 말았죠. 화가로서의 명성은 있었으나 여전히 가난했던 그는 수술을 너무 늦게 받아 결국 한쪽 시각을 잃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1965년 간경화와 응혈증으로 힘들었던 생애를 마감하였습니다.

 

 

 

 

[ 나물캐는 여인들(봄) (1940) ]
대각선으로 나뉜 화면에서 아이를 등에 업은 어머니와 소녀가 앉아서 나물을 캐고 있는 모습입니다. 박수근이 시골에 살면서 너무나 많이 보아왔던 모습이겠죠. 눈을 감아도 그려낼 수 있는 시골 아낙의 뒷 모습. 이 주제의 작품은 1937년에 이미 수채화로 제작한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북한에다 두고 왔기 때문에 다시 제작하였다고 하네요. 그리고 봄이라는 부제를 단 건 봄을 기다리는 여인들의 마음을 느끼기 때문이겠죠.

 

 

[ 아기보는 소녀 (1953) ]
아이를 등에 업은 소녀가 들에 일하러 간 어머니를 기다리고 있나 봅니다. 화면 한 가득 소녀의 옆 모습을 채우고 다른 모든 배경을 생략했네요. 작가의 가슴에는 소녀의 기다림 만이 가득합니다. 굵은 흙 선으로 대상만을 강조하고 있으며, 왠지 조각의 느낌도 나는 듯 합니다. 박수근은 같은 주제로 여러 작품을 제작했습니다.

 

 

[ 우물가(집) (1953) ]
우물가는 예전부터 마을의 아낙들이 모여서 빨래도 하고, 설거지도 하며 수다를 떨기 위해 모였던 장소이죠. 특별히 따로 모일 일도, 모일 장소도 없던 시골 마을에서 만남의 장의 역할을 훌륭하다 게 했던 곳입니다. 초가를 배경으로 우물가에 모여 볼 일을 보고 있는 아낙네들의 모습 또한 평화롭고 정겹습니다. 박수근이 그리는 그림 속에는 따뜻한 시골 마을의 여유가 가득합니다.

 

 

 판잣집 (1953) ]
이 시기에 그는 미군들의 초상화를 그려주고 번 수입으로 간신히 창신동에 조그마한 판잣집을 마련하고, 생활의 터전으로 삼습니다. 당시 전쟁으로 인해 피폐된 삶들을 보면서 가난한 도시 서민의 생활을 기록하듯이, 그리고 좋지는 않지만 힘들게 벌어서 얻은 자신의 결실에 대한 뿌듯한 마음을 담아 그려낸 게 아닌가 싶습니다.

 

 

[ 풍경(산) (1959) ]
북한산 밖 풍경을 그렸습니다. 잎이 떨어진 나무들이 드문드문 서 있는 적막한 산골짜기 아래에 집 한 채가 아스라히 보이네요. 거친 필치의 질감이 늦가을 시골 정취의 황망함을 더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늦겨울의 메마른 풍경사이로 이른 봄의 기운이 조금씩 퍼져가고 있는 게 느껴지죠. 우리 정서의 근본인 마음 속 고향의 정취입니다.

 

 

 나물캐는 소녀들 (1961) ]
따뜻한 봄날, 올망 졸망 모여 앉아 싱그러운 봄나물이라도 캐고 있는 듯 하네요. 슈퍼에만 가서 깨끗하게 손질되어 포장된 나물을 사먹고 있는 우리들은 그 나물의 뿌리 모양도, 어느 풀 섶에서 자란 것인지도, 어떤 햇빛을 받고 자랐는 지도 알지 못합니다. 도시에 살고 있어 흙 냄새를 모르는 우리는 시골 들에서 나물을 캐고 있는 이 소녀들에게서 배워야 할 것 같습니다.

 

 

[ 모자 (1961) ]
박수근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아내와 아이를 모델로 하여 그렸지요. 보채는 아이에게 젖을 물리는 모습이, 전형적인 한국 아낙이죠. 아이를 품에 안고 지긋이 바라보는 어머니의 모습에서 가장 한국적인, 은근한 아름다움을 느끼게 합니다. 이 작품은 후에 뉴욕의 월드 하우스 갤러리에서 개최된 [한국 현대 회화전]에서 출품되기도 합니다.

 

 

 나무와 두 여인 (1962) ]
화가는 이와 같은 소재와 구성으로 여러 작품을 제작하였는 데요, 특히 조형미가 느껴지는 나무가 박수근만의 독특한 화풍으로 느껴집니다. 그리고 머리에 짐을 이고 돌아가는 사람과 아이를 등에 업고 누군가를 기다리는 사람의 대비된 구조가 화면에 안정감과 균형을 주고 있습니다. 박수근 예술의 전형성을 가장 잘 보여주고 있죠.

 

 

[ 여인과 소녀들 (1962) ]
한 여인을 중심으로 세 소녀가 모여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것 같네요. 언제 어디서나 흔하게 마주칠 수 있는 이 풍경에 박수근은 의미를 부여하여 작품으로 남겼습니다. 가장 일상적이면서 흔하게 보일 수 있는 모습 또한 다시 느낄 수 있다면 우리는 더 많은 것을 놓치지 않을 것 같습니다.

 

 

[ 길 (1964) ]
두 개의 나무가 가야할 길을 제시라도 해주는 듯 길 옆에 서 있습니다. 그 길을 앞에 두고 두 모자가 나란히 걷고 있네요. 걸어가야 할 길은 앞으로도 많이 있고, 어머니는 머리에 짐까지 이고 있지만 맞잡은 두 손이 두 모자에게 힘을 실어주는 듯 합니다. 서로를 의지하며 살아가는 덕분에 그 길이 마냥 고되기만 하지는 않을 듯 하네요. 아마도 우리네 인생길과 같게 느껴집니다.


 
가져온 곳: [..]  글쓴이: 너와집나그네 바로 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