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어린 양 우익을 보호했다. 수천 수만의 이리떼로부터 경찰이 어린
양을 보호했다. 정의의 제단에서, 우익의 제단에서, 민족의 제단에서, 좌익의 원조를 모시고 수천의 좌익들이 감격에 겨워 치르는 '묵념' 의식에
감히 뛰어들어 제단을 사수하려던 한 줌의 어린 양 우익을 대한민국 경찰이 보호했다.
민족 화합의 큰 마당에서, 세계 평화의 큰
마당에서, 수만의 좌익들이 자기들만의 축제에 정체불명의 깃발을 내걸고, 한반도기를 흔들며, 광란의 축제를 벌이는 현장에 한 줌의 어린 양들이
감히 나타나 유관순 누나가 흔들던 민족의 깃발을 흔들다가, 태극기를 나눠주다가, 분노한 이리떼의 이빨에 목숨은커녕 양털 하나 남아나지 않을
듯하자, 민주 경찰이 재빨리 달려와서 그 어린 양들을 보호했다. 닭장에 가두어 어린 양들을 보호했다. 그 많던 우익은, 그 사납던 우익은,
4천만 호랑이들은 대체 어디로 갔을까. (2005. 8.
15.)
------------------------------------------ 우익은 왜 뭉치지 못할까
경제를 보나 정치를 보나 안보를 보나 외교를 보나, 나라가 바람 앞의 촛불 신세임이 분명하건만, 왜? 여전히 압도적 다수인
듯한 우익이 뭉치지 못할까.
민주화 이후 대학에서는 전대협이나 한총련 또는 비운동권 학생회 주도로 집회를 열면, 많아야 300여명!
대개 100여명 정도 모인다. 학생회 임원만 모이는 셈이다. 이들이 꽹과리를 울리며 확성기를 틀어놓고 목이 터져라 비분강개하며 전 대학의 면학
분위기를 박살내도 99.5% 학생과 100% 교수는 그들을 미치광이 보듯이 힐끔거리거나 아예 못 본 척 제 할 일만 한다. 큰 대학은 학생이
무려 2만여 명. 2만 명 대 1백 명, 200 대 1! 이건 숫제 싸움이 안 된다. 한 해만 지나면 절로 없어질 것 같다. 그러나 이런 현상이
20년이 다 되도록 면면히 이어지고 있다. 어느 날 TV를 보니, 이들 선후배가 정권을 거의 다 장악하고 있다!
어떻게 하여
이렇게 황당한 일이 일어났을까? 수수께끼는 조직과 명분이다.
100여명 데모꾼들의 깽깽이 소리가, 흘러간 옛 노래를 다
깨진 SP판으로 온 동네가 시끄럽도록 그 머리 속에서 세월이 정지된 어느 미치광이가 틈만 나면 틀어 젖히는 것과 같아서, 참다 못한 한 의인이
분연히 떨치고 일어나 그 미친 짓과 시대착오적인 노랫말을 조목조목 통렬히 나무라는 내용의 대자보를 담벼락에 턱 붙이면, 대학 동네의 2만 명은
속이 후련해진다. 너도나도 구경하느라 정신이 없다. 밟고 밟히고. 그러나! 사람들이 뜸할 즈음인 해질 무렵이나 귀신이 나타나는 이슥한 밤, 그
대자보는 시뻘건 피를 흘리면서 갈가리 찢어진다. 100명의 미치광이가 일제히 1명의 정상인에게 달려들어 묵사발을 만들어 버린다. 그들의 논리는
봉황에게 덤비는 참새 수준이지만, 100명이 피를 토하며 한결 같은 소리를 내기 때문에, 직접 이해 관계가 없는 19,999명은 거짓말같이
침묵을 지키기 때문에, 그들의 참새 소리는 이윽고 천둥소리로 변한다. 그에 맞춰 봉황의 청아한 노래는 가느다란 모깃소리로
잦아든다.
왜 그럴까? 이게 바로 조직의 힘이다. 원래는 100대 20,000이었으나 100대 1로 바뀐 것이다. 조직 없는
20,000명은 1명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2만이 아니라 2천만, 2천만이 아니라 4천만도 조직이 없으면 1명이나 마찬가지이다. 한 줌밖에
안 되는 노사모가 전국을 휘어잡고, 70만밖에 안 되는 민주노총이 그 20배나 되는 1400만 전 노동자를 좌지우지하는 이유도 민주주의의 허점을
교묘하게 이용하는 그 조직에 있다. 경찰과 검찰도, 언론과 민심도 어쩌지 못하는 그 '강철' 조직에 있다. 코드가 같은 정치권력으로부터 은근슬쩍
비호 받는 그 '핵' 조직에 있다. 70만이라는 민주노총도 입사와 더불어 자동 가입되어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는 절대다수의 박수부대를 빼면,
실지로 무시무시한 조직을 갖추고 신출귀몰하는 핵심 요원은 1천 명 정도밖에 안 될 것이다.
그러면 명분은 어떻게 되었을까?
민주화 이전에는 경찰의 곤봉이나 군인의 군홧발이 멀찍이 떨어져 있으면, 민주화의 깃발 만 올리면 순식간에 1만여 명이 모였었다. 그러나
민주화 이후에는 명분이 서지 않아서 자진해서 모이는 사람이 없었다. 겨우 100명, 200명. 그래서 명분을 재빨리 통일로 바꿨지만, 역시 별무
효과였다. 이유는 그들의 논리가 북한의 그것과 너무 흡사했기 때문이다. 만경대 김씨의 독재는 누구나 다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세월이 지나면서 시나브로 뭔가 요상하게 바뀌기 시작했다. 운동권이든 비운동권이든 통일 복창과 반공 매도와 반미 획책,
일제잔재 청산과 수구세력 타파와 분배정의 실현에 대해서는 목소리가 거의 같아지게 된 것이다. 대체 무슨 조화인가?
그 이유는 크게
두 가지이다. 첫째, 선전선동이다. 지속적으로 로봇처럼 반복하고 반복하고 또 반복하자 그들뿐만 아니라 2만 명이 전혀 안 듣는 척했지만,
자기도 모르게 그 무지막지한 논리에 무의식이 저당 잡히게 된 것이다. 2004년 3월 12일 국회가 대통령 탄핵 소추안을 193대 2로
가결하자, 끈질기게 계속된 그 세뇌의 효과는 선전선동꾼들도 놀랄 만큼 엄청나다는 것이 입증되었다. 베수비우스 화산이 폭발하여 폼페이시를 순식간에
덮쳐 버렸듯이 일시에 '정의'의 분노가 폭발하여 대학의 지성을 완전히 뒤덮어 버렸다.
둘째, 학습효과이다. 대학 교수든 학생이든
우리 현대사를 서구의 민주주의 이론이나 동구의 사회주의 이론 또는 재야 민족주의 이론에 비추어 난도질하는 걸 위대한 지성과 동일시했다. 운동권은
그 사이 공산주의와 종속이론과 주체사상으로 무장했다. 세계 12위권의 경제력, 70%의 중산층; 아시아 2위 수준의 민주화, 누구나 데모할 수
있는 자유는 어디로 사라졌다. 더불어 세계 200위권의 경제력, 1%의 중산층; 아시아 아니 세계 꼴찌의 민주화, 누구도 만경대 김씨의 신화와
전설에 대해 토를 달지 못하는 강철 억압도 슬그머니 사라졌다. 마치 그런 비극은 대한민국의 1992년 이전 또는 1997년 이전의 부끄러운
자화상처럼 각인되었다. 주체사상을 아름답게 포장한 민족, 평화, 자주, 통일이란 말만이 유령처럼 돌아다녔다.
다시 한 번
말하거니와 결론은 조직과 명분--이것이다. 히틀러가 그 매뉴얼을 만들고 레닌이 개정한 걸 스탈린, 모택동, 김일성, 카스트로 등이 요긴하게
써먹은 방식이다. 이들은 처음에는 선량한 다수에게 개별적으로 다가가서 조직의 시위로 폭력을 강하게 암시하면서 각개 격파하다가 세력이 점점
커지면서 노골적으로 폭력을 자행했다. 또한 처음에는 머리와 그 팔다리들이 사이비 명분을 확신하고 맹신하고 광신하다가 나중에는 그 모순점에 서서히
눈을 뜨게 되지만, 주체할 수 없이 높아지고 커지고 부풀려진 권력과 부와 명예에 취하여 오히려 더 한층 경직되어 버려서 거대한 파국을 향해서
일제히 달려갔다.
그러면 이제 '어떤 명분으로 우익을 조직할까'.
다시 대학으로 돌아가서 왜 아직도 2만 명이
조직되지 않을까. 위기 의식이 없기 때문이다. 사이비 명분을 압도할 명분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점 대학 교수들의 책임이 크다.
앵무새 학문을 했을 뿐, 봉황새 학문을 못했던 것이다.
대한민국도 마찬가지이다. 외환위기 때 기업과 서민은 정신 차렸지만,
정치인과 관료와 노조와 은행원과 대학생은 전혀 정신을 못 차리고 손가락을 곧추세우고 핏대를 올리며 '남 탓'만 했다. 그래서 이젠 국방위원장이
살아있는 신으로 군림하는 땅의 '강시' 군사 집단에 의해 안보 위기가 올 수밖에 없다. 경제든 정치든 문화든 한 줌의 잿더미로 만드는 안보
위기가 올 수밖에 없다. 미사일 한 방에 아파트 단지 하나가 통째로 날아가고 따발총 한 방에 나이트 클럽이 온통 아수라장이 되고 빨간 완장
하나에 로데오 거리 전체가 괴기스러워지면, 그 때야 우익이 배부른 행복이 아닌 배고픈 생존을 위해서 뭉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 이전에는
'설마, 설마'를 연발하며 방관과 냉소로 일관할 것이다. 혹 누가 나와서 머리를 풀어헤치고 신발도 신는 둥 마는 둥 거리를 헤매며 누란의 위기를
목이 터져라 외쳐도, 다들 극좌를 보던 그 눈으로 그를 바라보고 극우라며 속으로 혀를 찰 것이다. 설령 공감하더라도 주위를 휘휘 둘러보며 자기
목을 어루만질 것이다.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 녹 쓴 문고리 위에 색 바랜 나일론 노끈 하나 더 걸칠 것이다.
6·25를 겪고서야
비로소 북한 공산주의의 무서움을 알게 되었듯이, 외환위기를 겪고서야 비로소 시장 경제와 세계화의 무서움을 알게 되었듯이, 제2의 6·25를
겪고서야 비로소 대한민국 국민은 '천출 명장'의 '강시' 군대가 얼마나 무서운지를 알게 될 것이다. 그 때야 대한민국의 50년 성취가 얼마나
위대하고 소중한 것인지 깨닫고 안보의 울타리와 경제의 봉이 되어 준 양키의 중요성과 고마움도 알게 될 것이다. 아직은 너무 배가 부르고 아직은
너무 철이 없다. 대한민국이 얼마나 위대하고 고마운 나라인지, 다름 아닌 대한민국 국민이 거의 실감하지 못하고 있다.
감사할 줄
모르는 자에게는 억만 금이 쌓여 있더라도 아무 가치가 없다. 그것은 배고픈 자의 손에 쥐어진 빵 한 조각만큼의 가치도 없다.
(2004. 5.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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