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종교도 식민지 건설에 크게 기여합니다. 영국의 종교 개혁은 헨리 8 세에 의해 행해지지 않습니까? 헨리 8세는 종교에 큰 관심이 있는 건 아니었어요. 마르틴 루터가 95 개조를 발표하고 교황청에 반기를 들었을 때 헨리 8세는 루터를 성원하지 않았어요. 오히려 그것을 잘못이라고 했어요.
그래서 교황은 헨리 8 세가 고마워서 디팬더 오브 더 페이드(Defender of the Faith), '신앙의 수호자' 라는 칭호를 주었습니다. 그러나 헨리 8 세에게 문제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여러 가지 문제를 안고 있었습니다. 그 중의 하나는 성숙한 영국의 입장에서 볼 때 왜 교황청이 영국에 이만한 재산을 가지는가? 영국은 영국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런 민족주의적인 관념이 크게 작용하자 헨리 8세는 모든 재산을 자기가 마음대로 관리 처분할 수 있기를 바라서 종교 개혁에 손을 대게 되지요. 그것도 하나의 동기입니다.
또 하나는 헨리 8세가 결혼을 했는데, 자기 형의 아내인 캐더린을 아내로 맞습니다. 형이 후사 없이 죽었기 때문에 후사를 잇기 위한 것이었지요. 어떤 방법으로든 후사를 마련하는 것이 영국의 규례였어요. 그래서 원치 않았으나 형의 아내와 결혼을 한 겁니다.
그런데 그에게는 아들이 없었어요. 그래서 늘 마음을 쓰고 있었고, 혹시 저주를 받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러다가 본시 많은 여자를 상대하던 헨리 8세는 궁녀 출신인 앤 볼레인을 사랑하게 되어 결혼을 하고 싶어합니다. 그러나 교황청에서 허락을 하지 않습니다. 그러자 교황청과의 사이가 벌어지게 되고, 이 사건의 와중에 유명한 토마스 무어의 희생이 있게 됩니다.
헨리 8 세가 이름도 8 세인데다가 여자가 많다니까 8명의 여자가 있는 줄 아는 사람도 있는데, (웃음) 그렇진 않고 6 명의 여자가 있었어요. 그러나 6명의 여자를 동시에 데리고 산 것이 아니고 자꾸 갈아치운 거죠. 그 중에는 죽인 여인도 많아요. 여러 가지 핑계를 대서 죽였어요.
결국 헨리 8 세는 종교 개혁을 했고, 영국 국교회를 설립하여 그 머리가 됩니다. 물론 켄터베리의 대승정이 우두머리로 앉아서 종교의 권위자로 군림하지만 법적으로는 영국의 왕이 그 최고의 머리입니다. 영국 국교니까 영국 교회의 머리가 왕인 것이지요. 이것이 다른 프로테스탄트 나라들과 다른 것입니다. 카톨릭 밖으로 나갔으니까 영국 국교회도 프로테스탄트이지만 다른 프로테스탄트 나라들과 다른 것은 왕이 우두머리라는 사실이었어요. 그런데 이러한 사실이 영국의 식민 활동에 굉장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데, 그게 무슨 뜻입니까? 왜 식민활동에 영향을 미칩니까?
프로테스탄트인 영국 국교회가 왜 카톨릭적인 요소가 많은가? 거기에 반감을 가지고 항의하는 사람들, 그 사람들에 의해서 영국 국교회에 카톨릭적인 요소를 정화해야 한다는 운동이 일어났어요. 즉 퓨리파이(purify), 정화해야 한다 하는 것이었는데, 그래서 퓨리턴(Puritan)입니다. 전부 깨끗한 사람들이 모여서 청교도가 된 것이 아니라, 다시 말하면 청교도란 영국 국교회가 지닌 카톨릭적인 요소를 정화해야 한다 해서 일어난 것을 말합니다. 퓨리턴 가운데에는 깨끗하지 않은 사람이 많습니다.
나다니엘 호돈의 '주홍 글씨'를 읽으셨으면 아시겠지만, 거기 나오는 퓨리턴 목사인 딤즈데일의 내적인 고민을 보세요. 또 작중의 주인공으로 순수한 여인인 헤스터 프린이 있지요. 그 여인은 딤즈데일의 상대역으로 사생아를 낳지만 더욱 양심적이고 보다 인간적이지 않습니까? 그러나 딤즈데일 목사는 많은 교인과 당대의 유명인들에게 존경받는 인물로서 그 수준에 맞는 인간이어야 한다는 위선 때문에 고민에 찬 생을 살고 있습니다. 물론 딤즈데일 목사가 헤스터 프린과의 사이에 낳은 사생아인 펄에 대해 만천하에 공개하지 않은 것은 위선 때문만은 아닙니다마는 현실적인 상황에서 너무 큰 어려움 때문에 오히려 양심적인 고민이 말로 다 할수 없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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