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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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김동길 교수의 미국사 강의-4. 콜롬부스의 서항

鶴山 徐 仁 2005. 7. 31. 1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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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 아메리카의 꿈 - 4. 콜룸부스의 서항(西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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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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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도 말씀드린 것처럼 마르코 폴로는 중국에 가서 얼마동안 머무르게 됩니다. 물론 마르코 폴로뿐만 아니라 다른 선교사들도 중국에 가서 중국이라는 나라가 어떻다는 것을 보고 배우고, 그것을 다시 글로 엮어서 책을 만들어 여러 사람이 볼 수 있도록 했어요.

그것은 풍부한 상상을 자극하는 결과가 됩니다. 이미 항해술이 많이 발달했기 때문에 가능성이 생겼습니다. 배도 갑절이나 커지고 나침반도 생기고 그 밖에 항해에 필요한 것들이 점차 발달해서 멀리 갈 수도 있게 되었어요.

또 십자군의 성지 탈환의 꿈이 뜻대로 이루어지지는 않았지만 그 과정에서 많은 지식을 습득하게 된 것은 사실입니다. 물론 불상사도 많았지요. 성지 회복이라는 것 자체가 그렇습니다. 다른 나라 백성들이 거기 사는데 다 쫓아내고 그 땅을 되찾는다는 것은 이치에 어긋나는 일 아닙니까? 그러나 어찌 되었건 꿈이 있어서 밖으로 밖으로 나간 사람들 때문에 세계는 가히 넓구나 하는 깨달음을 얻었다는 점에서 잘 된 것 아닙니까?

종교 개혁 이후에 신구 교회의 대립과 갈등이 심해져서 17세기에 유럽에 30년 전쟁이 일어납니다. 이것이 종교 전쟁입니다. 신구교가 판도 쟁탈권을 위해서 일대 접전을 일으켜 30년 동안의 긴 전쟁으로 끌고 간 겁니다. 그러니까 그 전쟁을 통한 시달림이야 컸겠지요.

어쨌든 새로운 꿈을 심어 볼 만한 새로운 땅은 없을까 하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미지의 꿈을 찾아 아메리카로 아메리카로 간 것이지요.
항해열은 포르투갈에 의해 불이 붙었습니다. 포르투갈이 항해열이 가장 강했습니다. 그 나라에는 항해에 이름 높은 프린스도 있잖아요. 프린스 헨리. 그의 별명도 네비게이터(navigator), 항해가에요. 그 분은 무공을 세워 이름을 얻을 수도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개인의 명예보다는 항해에 뜻을 두고 항해 학교도 만들고, 전 세계적으로 우수한 선장들도 모집해서 해외에 대한 모험의 꿈을 키웠어요.

물론 포르투갈에 이러한 프린스 헨리 같은 사람은 있었지만 그 나라가 아메리카를 발견하지는 못했습니다. 아메리카 발견은 여러분이 잘 아는 이탈리아 사람 크리스토퍼 콜룸부스에 의해 이루어졌지요.

콜룸부스는 스페인의 도움을 받아 스페인을 위해 항해합니다. 그 때는 확신 있는 사람이 이 나라 저 나라를 찾아다니면서 지도자들에게 호소를 했습니다. 콜룸부스도 그런 사람 중의 하나죠. 대서양을 서항(西航)하면 육지에 도달할 수 있다고 하면서 지원을 요구했지요.

물론 어떤 사람은 꿈 같은 얘기라고 하면서 일소에 붙이고 어떤 사람은 귀를 기울이기도 했지요. 귀를 기울이는 사람들은 어느 정도 시대 정신을 파악해서 미래에는 바다로 가야 한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었지요. 그들이 결국은 후원을 하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콜룸부스는 스페인의 지원을 받아 출범을 하게 됩니다.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당시는 지리에 대한 지식이 부족해서 고생을 많이 했지만, 어쨌든 플로리다쯤 가면 그곳이 일본에 도달하는 게 아닌가 하는 계산을 하고 떠납니다.

사실은 이 아메리카에는 기원 10 세기쯤에 노스맨이라는 스칸디나비아 사람들이 이미 갔었어요. 그러나 갔다 오는 것만으로는 소용이 없어요. 다녀온 근거를 남겨 놓아야 합니다. 노스맨이 오늘의 노바스코시아 지역을 갔다 온 것은 확실합니다. 그런데 남겨 놓은 것이 없으니 역사에 이렇다 할 공헌을 남기지 못한 겁니다.

출처 : 교육학 관련강의
글쓴이 : 관리자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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