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들 역사란 지나간 일들에 대한 기록인 줄만 알기 때문에 잡다한 사건의 나열이 역사인 줄 알지만 사실상 역사란 그런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인류의 지금까지의 체험이 역사라 하더라도 그것을 정리하는 사람이 어떤 의견을 가지고 정리를 해야 역사가 되는 것이지, 그 많은 사실을 기록이나 정리없이 다 아는 사람이 누구겠습니까? 또 다 안다 해도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여러분에게 누가 이력서 한 장을 써오라고 부탁했다면 그 이력서에 무엇을 쓰겠어요? 자기의 모든 일들을 다 쓸 수 있습니까? 그럴 수 없는 거지요. 이력서도 개인의 역사니까 간추리고 정리해서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것만을 쓸 수밖에 없지요.
따라서 어제 일어난 일들이 무수히 많지만 그것을 정리하는 이유는 오늘과의 관련이 있는 것만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 미국의 역사를 얘기한다 해도 오늘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어야 할 게 아니겠습니까?
유명한 E.H.카의 저서인 '역사란 무엇인가'에서 그는 역사란 무엇인가에 대한 해답으로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다' 그랬어요. 그러면 역사를 이해한다는 것은 어제와 오늘의 대화를 통하여 오늘을 사는 데 지혜를 얻을 뿐만 아니라 미래에 대해서 어느 정도 전망할 수 있다는 것이 역사를 공부하는 사람의 중요한 책임이라고 봅니다.
그뿐만 아니라 역사란 인간의 신비스런 모든 체험의 종합이기 때문에, 칼 베커는 말하기를 역사가는 어떤 노력을 하는 사람이냐 하면 '인간 생존의 영원한 수수께끼를 푸는 노력을 하는 이들'이라고 했어요.
따라서 오늘 시작하고자 하는 미국의 역사라는 것도 그런 의미에서 가치가 있겠다고 보겠는데, 그러면 한국 사람이 굳이 미국 역사를 공부할 필요가 뭔가? 이렇게 의문을 일으킬 수도 있어요. 우리 역사도 제대로 모르면서 남의 역사를 알아서 무엇을 하느냐 하는 얘기겠지요.
그러나 미국이라는 나라는 우리와 아주 가까운 나라라는 점에서 우리는 이 문제를 생각해야 합니다. 미국이 왜 우리와 가까운가? 생각해 보세요. 미국을 모른다고 할 사람은 없겠지요? 그뿐만 아니라 우리가 근세사에 접어들어서 세계속의 한국이라는 하나의 멤버로서 끼게 될 때 미국의 역할이 컸던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지요.
1882년에 슈펠트라는 미국의 제독이 주동이 되어 중국의 이홍장(李鴻章)을 설득시켜 마침내 한미 수호 통상 조약을 얻어냈습니다. 이 조약의 내용이 어떤 것이었던간에 한국을 하나의 독립된 국가로 인정하고, 한국을 이제부터 세계 여러 나라 속의 커뮤니티에 낄 수 있는 멤버로 받아들인 것이 1882년의 그 조약이었다고 하면 그 때부터 미국과 한국은 깊은 관계였다고 볼 수 있지 않겠습니까?
물론 그 뒤 러일 전쟁 때라든지 그런 때 미국은 한국에 대해서 신의를 저버린 것도 사실이지만, 어쨌든 그 때 이룩된 관계는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는 겁니다.
그 후 우리나라에 개신교의 선교사를 보낸 것이라든지, 그들 선교사에 의해 기독교가 전파되었을 뿐만 아니라 학교도 건립되고 병원도 세워지고 하는 일들이 다 그런 관계를 바탕으로 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리고 사실상 근년에 이르기까지는 미국이라는 나라에 대해서 전혀 나쁘게 말하는 사람들이 없었어요. 다만 근년에 와서 다소 변화가 생기는 것은 여러분도 다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이전의 미국과 한국의 관계는 좋은 사이였어요. 무슨 표어 비슷하게 '우리 사이 좋은 사이' 였어요. 무슨 사이냐 할 때 무슨 사이라고 할 수는 없으나 어쨌든 좋은 사이였어요.
그것은 슈펠트가 주동한, 주도적 역할을 담당한 조약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뒤에 죽 내려온 인간 관계가 좋았습니다. 물론 분단이 된 것은 남쪽에 미군이 진주하고 북쪽에 소련군이 진주해서 대립된 관계로 미국을 받아들이게 되지요. 그리고 대립은 북쪽의 반이 6·25 사변을 일으키게 됨으로써 복잡하게 얽히는 데서 더욱 심해지지요. 그러나 미군이 계속 주둔하고 있다는 사실, 휴전 후에도 미군이 주둔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지도자들은 미군의 한국 주둔은 한국 안보에 절대 필요하다는 주장을 하지 않아요? 물론 그렇지 않다는 주장을 하는 사람도 있기는 있어요.
그런 인연으로 하여 미국은 한국에 자유, 인권, 민주주의에 대해서 부단히 얘기를 합니다. 누가 다녀갈 때 우리 한국에 대해 뭐라고 했다던가, 누구는 어떻게 논평을 했다던가……. 그것은 어떻게 생각하면 일방적인 면도 있습니다. 우리나라 정부 지도자는 미국에 가도 무슨 말을 하는 일이 없으니까요. 미국이 이래서 되겠는가? 혹은 미국이 오늘의 흑인 문제를 이렇게 해서 되겠는가? 또는 이상한 병이 자꾸 퍼지는데 조심해야 되지 않겠는가……등의 말을 우리는 하지 않잖아요?
그러나 그쪽에서는 우리에 대해서 관심이 있어서 그러는지, 무슨 관계 때문에 그러는지 우리에게 번번이 무슨 얘기를 하게 됩니다. 이런 것에 대해 좋아하는 사람도 있어요. 아주 좋아하면서 미국은 참으로 우리 우방이다 그러는 사람도 있어요. 그런가 하면 왜 그들이 우리 문제를 얘기하느냐 해서 싫어하는 사람도 있어요.
어쨌든 이래저래 미국과 우리가 얽혀 있는 사실에 대해서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미국에 우리 교포가 이제는 거의 1 백만 명이라는 숫자에 육박하게 되었으니 굉장한 숫자입니다. 그 1 백만의 한국인이 그 곳에 살고 있다고 하면, 물론 더 늘어날 추세일 수도 있습니다마는 그런 숫자라면, 그만한 힘이라면 아마 미국 안에서도 굉장한 발언권을 가질 날도 멀지 않을 겁니다.
또 한국인으로서 미국에 가서 사는 사람들, 이민을 간 사람이거나 어떻게 간 사람이거나간에 미국에 사는 사람들은 우리나라에서는 다 중류 계급이기 때문에 중산층이 간 겁니다. 바닥에서부터 일어난 사람들이 간 것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 사회에서 지금도 큰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그 세력이 더욱 커질 것을 동시에 우리는 내다보고 있습니다.
이러한 여러 가지 이유 밑에 한국인으로서 미국을 알고 미국의 역사를 이해한다는 것은 그런 면에 있어서도 중요하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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