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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유리천장’ 美 대통령에 도전하는 해리스

鶴山 徐 仁 2024. 7. 27. 14:15

국제 2024 미국 대선

 

‘마지막 유리천장’ 美 대통령에 도전하는 해리스

 

  • 주간동아
  • 업데이트 2024-07-27 10:332024년 7월 27일 10시 33분 

흑인·여성·아시아계 3중 유리천장 부순 기록 제조기

 

‘유리천장(glass ceiling)’은 충분한 능력을 갖춘 사람이 성차별이나 인종차별 같은 이유로 고위직을 맡지 못하는 상황을 비유적으로 표현하는 경제학 용어다. 이 용어는 난청, 실명 등 장애가 있거나 나이가 많아 승진에서 차별을 받는 경우에 쓰이며, 정치 분야에서도 여성 지도자들을 대상으로 사용된다.

8년 만에 두 번째 도전

전 세계적으로 여성 정치인에게 최고지도자라는 유리천장은 상당히 높다. 세계 최고 민주주의 국가라는 얘기를 들어온 미국 역시 흑인 대통령은 배출했지만 여성은 백악관에 입성하지 못했다. 유럽 각국에서 여성 총리가 선출돼온 것과는 대조적이다. 1870년 헌법에서 흑인의 참정권을 보장한 미국은 그 후 50년이 지나서야 여성의 참정권을 인정했다. 헌법이 여성의 참정권을 보장한 지 100년 만인 2020년 미국에선 첫 여성 부통령이 탄생했다. 여성·아프리카계·아시아계 등의 상징성을 가진 카멀라 해리스 미국 부통령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해리스 부통령이 힐러리 클린턴 전 미국 국무장관에 이어 8년 만에 두 번째로 ‘마지막 유리천장’을 깨기 위해 도전한다. 2016년 대선에서 클린턴 전 장관은 유권자들로부터 더 많은 표를 얻었지만, 선거인단 확보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에게 뒤져 낙선했다. 당시 여성 유권자의 54%가 클린턴 전 장관에게 투표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얻은 여성 표(39%)보다는 많았지만, 아쉽게도 대권을 거머쥐지 못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대선 후보에서 중도 사퇴해 해리스 부통령이 민주당 대선 후보로 선출될 것이 유력한 상황이다.

해리스 부통령은 1964년 미국 캘리포니아주 오클랜드에서 중남미 섬나라 자메이카 출신인 흑인 부친과 인도 브라만(인도 신분제인 카스트 제도 최고 계급) 모친 사이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미국 명문 스탠퍼드대 경제학과 교수고, 어머니는 암을 연구한 과학자로 캐나다 명문 맥길대 교수를 지낸 학자다. 해리스 부통령은 12세 때 부모의 이혼으로 어머니·여동생과 함께 캐나다 퀘벡주 몬트리올로 이주했다. 그는 당시 백인이 대부분이고 심지어 프랑스어를 쓰는 몬트리올에서 소수 인종으로서 겪는 소외감이 컸다고 한다.

고등학교 졸업 후 미국으로 돌아온 그는 워싱턴DC의 흑인 명문 하워드대에서 정치학과 경제학을 전공했다. 해리스 부통령은 대학생 시절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아파르트헤이트 반대 시위에 참여하는 등 사회문제에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냈다. 이 대학에서 그는 자신의 정체성을 확고히 할 수 있었다. 이후 캘리포니아대 헤이스팅스 로스쿨을 거쳐 1990년 변호사 자격을 취득했다.

해리스 부통령은 백인·남성이 주류였던 미국 사회에서 유리천장을 깨고 ‘최초’ 역사를 써왔다. 2003년 아프리카계 미국인 여성이자 남아시아계 미국인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샌프란시스코 지방검사에 임명됐다. 2010년에는 캘리포니아주 법무장관 겸 검찰총장으로 선출된 최초 아프리카계 미국인이자 첫 여성이 됐고, 2016년 캘리포니아주를 대표하는 연방 상원의원으로 중앙 정치 무대에 진출했다. 남아시아계의 연방 상원의원 진출은 해리스 부통령이 처음(흑인 여성으론 두 번째)이었다. 2019년 대선 출마를 선언한 해리스 부통령은 경선 도중 중도 하차했지만, TV 토론 당시 날카로운 질의로 바이든 당시 후보를 몰아붙이면서 강한 인상을 남겼다. 이후 2020년 바이든 대통령의 러닝메이트로 부통령 후보에 낙점됐고, 대선 승리로 2021년 백악관에 입성하면서 또다시 미국 최초 흑인·아시아계 부통령이자 여성 부통령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당시 워싱턴DC 링컨기념관 광장에는 깨진 유리로 해리스 부통령의 초상을 형상화한 작가 사이먼 버거의 조형물이 전시돼 그가 부순 유리천장의 상징물이 됐다. 이처럼 해리스 부통령은 흑인·여성·아시아계라는 ‘3중의 유리천장’을 최초로 깨뜨린 기록 제조기다.

검사 vs 중범죄자 구도 부각

해리스 부통령은 8월 19일부터 22일까지(현지 시간) 일리노이주 시카고에서 열리는 전당대회에서 민주당 대선 후보로 최종 확정될 것으로 보인다. 그는 이미 민주당 대선 후보 지명 요건보다 많은 대의원의 지지를 확보했다. 해리스 부통령이 대선에서 승리한다면 미국 역사상 최초 여성 대통령이자 첫 아시아계 대통령이 된다. 말 그대로 백인과 남성이 주류인 미국 사회에서 유리천장을 깨는 셈이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에 이어 두 번째 흑인 대통령이라는 타이틀도 얻게 된다.

해리스 부통령의 이번 도전은 8년 전 클린턴 전 장관 때와는 다르다는 미국 언론들의 지적이 나오고 있다. 무엇보다 미국의 대졸 여성 노동자 수가 남성을 추월했고, 조직이나 권력관계에서 상위에 있는 남성의 성폭력을 고발하는 ‘미투(Me Too) 운동’이 성 평등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변화시켰다.

특히 미국 연방대법원이 2022년 헌법에서 여성의 낙태권을 인정한 ‘로 대 웨이드 판결’을 뒤집으면서 많은 여성 유권자가 분노한 상황이다. 당시 연방대법원이 판결을 내린 이후 전국을 돌며 낙태권 보호의 중요성을 설파한 사람은 바이든 대통령이 아닌 해리스 부통령이었다. 바이든 대통령은 낙태 문제를 집중적으로 거론하긴 했지만, 낙태에 부정적인 가톨릭 신자라는 점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을 제대로 공격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해리스 부통령은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하면 여성의 낙태권이 더욱 위협받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우리는 생식의 자유를 위해 싸울 것”이라며 “만약 트럼프 전 대통령이 기회를 얻으면 그는 모든 주에서 낙태를 불법화하는 낙태 금지법에 서명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그동안 성차별적 언행과 성 스캔들 등에 휘말려 여성 유권자들로부터 상당한 반감을 사왔다.

여성 정치인에 대한 미국 유권자의 인식이 변화된 것도 해리스 부통령에게 유리한 대목이다. 2020년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여성 상원의원인 엘리자베스 워런(매사추세츠)과 에이미 클로버샤(미네소타)가 상당한 경쟁력을 보였고, 올해 공화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도 니키 헤일리 전 유엔대사가 돌풍을 일으켰다. 크리스티나 울브렉트 미국 노터데임대 교수는 “클린턴 전 장관의 대선 도전이 여성 정치인의 한계에 대한 유권자들의 인식을 변화시켰다”며 “고위 선출직에 도전하는 여성 정치인에게 유권자들이 예전보다 훨씬 열린 자세를 보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주목할 점은 해리스 부통령이 언변 좋은 검사 출신이라는 것이다. 반면 트럼프 전 대통령은 △성 추문 입막음 △1·6 의회 난입 사태 선동 △백악관 기밀문서 유출 △2020년 대선 당시 조지아주 선거 결과 번복 시도 등 총 4건의 형사사건으로 기소된 상태다. 이 4개 사건에서 제기된 혐의만 91개에 달한다. 이 가운데 성 추문 입막음 사건에서는 5월 배심원단의 유죄 평결을 받아 ‘중범죄자’라는 꼬리표까지 달았다. 해리스 부통령은 공식 선거운동 첫날부터 트럼프 전 대통령의 이런 점에 대해 공세를 폈다. 그는 “검사 시절 나는 여성을 학대하는 이들, 사기꾼 등 온갖 종류의 사람을 기소했다”며 “나는 트럼프 전 대통령 같은 유형을 잘 안다. 이번 선거운동에서 내 경력을 트럼프의 경력에 맞서 부각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CNN 방송은 “해리스는 상원의원이나 부통령보다 검사로서 훨씬 더 많은 시간을 보냈다”며 “이것이 바로 트럼프 전 대통령과 맞붙게 될 방식”이라고 지적했다. 해리스 부통령은 트럼프 전 대통령을 상대로 ‘검사’ 대 ‘중범죄자’ 구도를 집중 부각할 것으로 보인다.

‘국경 차르’ 비판 직면

그동안 대선판의 최대 뇌관이던 ‘고령·건강 리스크’에서 자유롭다는 점 역시 해리스 부통령의 최대 장점이다. 60세인 그는 이제 역으로 78세인 트럼프 전 대통령의 건강 문제를 겨냥하고 세대교체론을 펼칠 것으로 보인다. 바이든 대통령의 고령 문제를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던 트럼프 전 대통령 입장에서는 지금까지 퍼부었던 공격이 부메랑이 돼 돌아올 수도 있다.

해리스 부통령에게도 약점은 있다. 그는 중남미에서 멕시코를 통해 미국으로 유입되는 불법 이민 문제를 직접 맡아 해결하려 했으나 별 성과를 내지 못했다. 이 때문에 트럼프 전 대통령은 해리스 부통령을 ‘국경 차르(border czar)’라는 별명으로 부르며 비판해왔다. 국경 차르는 2021년 바이든 대통령이 해리스 부통령에게 불법 이민의 원인을 찾아 해결하라고 지시했지만, 오히려 불법 이민이 폭증했다는 점을 부각하고자 공화당 측에서 만든 별명이다. 트럼프 캠프는 해리스 부통령이 캘리포니아주 법무부 장관 시절부터 불법 입국 범죄자에게 관대했으며, 현재의 불법 이민 문제와 남부 국경 문제를 해결할 의지도, 능력도 없다고 공격하고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취임 첫날 불법 이민자들을 대대적으로 추방할 것이라고 공언하고 있다.

해리스 부통령이 민주당 ‘구원투수’로 등판하면서 이번 미국 대선은 인종·성별·세대·이념 대결로 확대돼 지구촌이 주목하는 경쟁 무대가 될 것이 분명하다.

미국 첫 ‘퍼스트 젠틀맨’ 꿈꾸는 더글러스 엠호프


2022년 5월 윤석열 대통령 취임식 축하 사절단장으로 방한한

더글러스 엠호프 변호사(오른쪽)가 방송인 홍석천과 함께 서울 광장시장을 찾았다.


미국 민주당 유력 대선 후보로 부상한 카멀라 해리스 미국 부통령의 남편 더글러스 엠호프 변호사. ‘세컨드 젠틀맨’(부통령의 남편)인 그는 해리스 부통령이 민주당 대선 후보로 확정되고 대선에서 승리하면 미국 헌정사상 첫 ‘퍼스트 젠틀맨’(대통령의 남편)이 된다. 미 서부에서 태어난 엠호프는 서던캘리포니아대 법학대학원을 졸업한 뒤 세계 3대 로펌으로 꼽히는 DLA파이퍼에서 파트너 변호사로 일한 미디어·엔터테인먼트 분야 법률 전문가다. 1992년 첫 결혼 생활을 통해 두 자녀를 뒀으며, 2008년 이혼했다. 2014년 동갑인 해리스 부통령을 만나 그해 결혼했다. 결혼 후 해리스 부통령이 2017년 상원의원, 2021년 첫 여성 부통령에 올랐는데, 엠호프의 외조 덕분이라는 평가가 많다. 엠호프는 해리스가 부통령이 되면서 연봉 120만 달러(약 16억6000만 원)인 파트너 변호사를 그만두고 현재는 조지타운대 법학대학원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엠호프는 한국과 인연도 있다. 2022년 5월 윤석열 대통령 당선 취임식 축하 사절단 단장으로 방한해 방송인 홍석천 씨와 함께 한국 문화를 체험했다. 엠호프는 당시 자신의 X(옛 트위터) 계정에 홍 씨와 광장시장에서 찍은 사진을 올리고 “공동체를 하나로 모이게 하는 장소를 방문하는 것을 좋아한다”며 “먹거리와 옷감, 수공예품으로 유명한 광장시장은 실망시키지 않았다”고 남겼다. 홍 씨도 “참 좋은 분을 만났다. 광장시장에서 한국 전통시장과 음식을 경험하고, 상인과 인사하고, 청계천도 함께 걸으며 한국 문화에 대한 여러 이야기를 했다”면서 “누구에게나 마음을 열고 다가가는 멋진 마인드를 가진 어른의 모습, 오늘도 소중한 걸 배운다”며 엠호프에 대한 글을 남겼다.




〈이 기사는 주간동아 1450호에 실렸습니다〉

한여진 기자 119hotdog@donga.com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truth21c@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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