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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을 말하기 힘든 22대 국회

鶴山 徐 仁 2024. 6. 4. 11:51

오피니언 중앙시평

희망을 말하기 힘든 22대 국회

중앙일보 입력 2024.06.04 00:38


 

무릇 새로운 출발은 희망과 기대감을 주기 마련이지만, 최근 개원한 22대 국회를 바라보면 오히려 걱정과 불안감이 앞선다. 어느 면에서 보더라도 역대 최악이었던 21대 국회보다 더한 상황이 생겨날 것 같아서다. 국회가 문을 열자마자 야당은 기다렸다는 듯 공세에 나섰다. 더불어민주당은 22대 국회에서 다룰 첫 법안으로 ‘채 상병 특검법’과 전 국민에게 25만원을 지급하는 ‘민생위기 극복 특별조치법’을 당론으로 채택했다. 흥미롭게도 이 두 법안은 향후 정국에 대한 민주당의 입장을 가늠하게 하는 상징성이 있다.

개원하자마자 야당은 탄핵 압박
대통령과 국정 주도권 힘겨루기
‘두 개의 태양’ 떠 있는 정치 상황
87년 체제 한계에 봉착, 개헌 필요

 

‘채 상병 특검법’은 이미 지난 국회에서 야당 주도로 통과되었고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했던 법안이다. 21대 국회 종료 전 민주당은 이에 대한 재의결을 시도했고 부결되었다. 이미 두 차례나 국회 표결을 거쳤던 사안을 22대 국회가 열리자마자 다시 꺼내 든 건 이것이 윤석열 대통령 개인을 직격할 수 있는 효과적인 소재라고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 특검법 공세로 대통령을 압박하고 이를 통해 정국의 주도권을 잡겠다는 것이 일차적 목표겠지만, 문제는 그 이상을 염두에 두고 있을 수 있다는 점이다. 채 상병 건이든 김건희 여사 건이든 그 사건을 통해 대통령에 대한 국민 다수의 공분을 끌어낸다면 임기 중 퇴진으로 몰아붙이는 것도 가능하다는 계산을 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미 민주당은 여러 차례 탄핵을 언급했다. 지난 총선 때 이재명 대표는 ‘잘못된 머슴은 내쫓아야 한다’고 했고, 민주당 원내대표 역시 국회 개원 전 탄핵을 거론한 바 있다. 22대 국회가 막 개원한 상황에서 ‘채 상병 특검’에 대한 장외 집회를 열고 거기에 이 대표까지 참석한 것도 민주당이 이 사안을 원내용으로만 보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야당의 공세가 대통령과 행정부에 대한 비판을 넘어, 아직은 가능성을 상상하는 차원이라고 해도, 대통령 퇴진이나 탄핵을 최종 목표로 삼게 되면 정치는 길을 잃게 되고 극단적 대립과 갈등이 그 자리를 채울 것이다.

특검법과 함께 민주당이 내세운 건 ‘전 국민 지원금’ 관련 법이다. 어쩌면 특검법 공세보다 더 주목해야 할 것이 바로 이 법안이다. 지원금 지급의 필요성이나 적정성에 대한 논란은 차치하고, 이 사안에 주목하게 되는 까닭은 이것이 민주당의 국정 주도 의지로 읽히기 때문이다. 제헌헌법 이래 우리 정치에서 주요 정책 사안을 제시하면서 국정을 주도해 온 건 대통령과 행정부였다. 야당은 이러한 대통령의 정국 주도권을 인정하면서 그 정책의 방향이나 실행을 감시하고 비판해 왔다. 그런데 이 법안의 추진은 국회를 장악한 야당이 이제 그 역할을 함께 맡겠다는 것이다. 더욱이 이 건은 예산편성권과 같은 국가 재정 운영에 대한 논란이 있는 사안이다. 국정 운영의 주도권을 두고 대통령과 국회라는 두 기관이 서로 힘을 겨루는 상황이 되었다. 그동안 우리 정치사에서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낯선 길로 22대 국회가 나아가고 있다.

이렇듯이 민주당이 추진하는 이 두 법안은 이제 우리의 대통령제가 이전과는 다르게 작동하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임기 중 내각 불신임이 가능한 의회제와 달리, 대통령제의 제도적 특성은 임기의 안정성이다. 그런데 이제 그 안정성이 무너지고 있다. 이미 두 명의 대통령에 대한 탄핵이 국회에서 가결되었고, 장관, 판사, 검사 등 누구에게라도 탄핵을 시도하는 것이 딱히 특별한 일이 아니게 되었다. 윤 대통령뿐만 아니라 차기에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취임 직후부터 반대자들은 탄핵의 기회만을 호시탐탐 노리게 될 것이다. 우리 민주주의가 건강하지 않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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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이 국회를 장악한 야당이 대통령과 정국 주도권을 다투게 되는 상황은 더욱 위험하다. 과거 여러 나라의 역사에서 보듯이, ‘두 개의 태양이 떠 있게’ 되는 상황은 정치체제의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 여소야대의 어려움 속에 노무현 대통령은 2005년 ‘대연정을 하거나 권력을 통째로 내놓으라면 내놓겠다’고 말한 바 있다. 그 제안은 당시 야당인 한나라당에 의해 거부되었지만, 오늘날 야당은 그 스스로 통치 행위에 간여할 태세를 갖추고 있다. 22대 국회의 여소야대는 노무현 때와는 비교할 수 없는 질적으로 전혀 다른 상황이 되었다.

이런 모습은 모두 ‘87년 체제’가 이제 한계에 봉착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 당시 체제를 만들었던 이들이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방향으로 정치가 나아가고 있다. 프랑스 방식의 대통령제이든, 국회가 총리를 추천하는 방식이든, 국회와 대통령 간의 대립과 갈등을 피할 수 있는 방식의 개헌이 필요해 보인다. 두 기관이 대립하는 지금의 시스템으로는 소모와 분열의 정치를 넘어설 수가 없다. 국회가 새로이 구성되었는데 이렇듯 희망을 말할 수 없는 건 안타까운 일이다. 뭐랄까, 22대 국회가 여명을 앞둔 짙은 어둠의 시간이라도 되면 좋겠다.

강원택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