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시론
반도체 인력난, 땜질 처방은 효과 없어
중앙일보 입력 2022.06.22 00:22
서승우 대한전자공학회 회장·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 교수
글로벌 반도체 패권 경쟁이 한국 대학들의 반도체 계약학과 설립 추진에까지 여파를 끼치고 있다. 윤석열 정부는 4대 과학기술원을 중심으로 5년간 석·박사급 반도체 전문 인력 3000여 명을 양성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하지만 반도체 산업의 중요성을 고려하면 이 숫자로도 미래 수요를 충당하기엔 부족해 보인다.
거시적 관점에서 보면 한국 사회를 덮친 심각한 저출산 문제로 인해 특정 분야에 대한 인력 양성은 다른 분야에 대한 인력 부족 사태를 초래할 수밖에 없다. 제로섬 게임에서 생기는 풍선 효과 때문이다. 한국의 반도체 경쟁국인 대만이 보유하고 있는 세계 최고 수준의 경쟁력은 다른 산업이 거의 없는 상황에서 인재들이 반도체 분야에 몰리는 대만의 독특한 현실이 빚어낸 결과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반도체 말고도 배터리·바이오·자동차·조선·석유화학 등 세계 정상급 경쟁력을 갖춘 산업 분야가 수두룩하다.
다학제 교육으로 인재풀 키워야 대학 등에 전직 프로그램 설치를 |
기술 분야를 막론하고 산업계는 만성적 기술인력 부족 사태로 몸살을 앓고 있다. 대기업은 신사업 확장과 국제 경쟁력 확보를 위해 새로운 인재를 끊임없이 채용하고, 지난 수년간 급성장한 플랫폼 기업들은 시장 지배력과 넘쳐 나는 자금으로 정보기술(IT) 인재를 블랙홀처럼 빨아들이고 있다. 그런데도 공급은 수요를 감당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흐름에 이름을 올리지 못한 기업들과 고용의 90% 이상을 담당하는 전통적 중소·중견 기업들도 구인난으로 신사업 분야 진출은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 특히 인공지능(AI)·빅데이터·로봇·반도체 분야는 산업 전반에 파급 효과가 큰데도 정규 교육과정 수료자만으로 충당하기에 턱없이 부족하다.
이런 현실을 고려할 때 지금 같은 사일로 구조의 기술인력 육성 전략은 인구가 절대적으로 줄어가는 현실에서 산업계의 변화무쌍한 수요를 맞추지 못할 것이다. 정부 부처별로 시행 중인 인력 양성 사업들은 특정 분야에 대한 인력 부족 사태가 발생하면 그 분야에 대해 공고를 내는 땜질식 조치다. 4~5년의 시차로 인해 파급 효과도 크지 않다.
따라서 이제는 뒷북식 인력 양성 방식에서 탈피해 잠재적 기술 인력풀의 크기를 키워야 한다. 산업 트렌드 변화에 따라 최소한의 재교육을 통해 수요가 폭등하는 분야의 인력을 최단 시간에 양성할 수 있는 근본적 대책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대학은 계열별 모집뿐 아니라 다소 극단적이지만 무전공 모집 방안까지 도입해 다학제적 교육을 추진함으로써 잠재적 기술 인력풀을 키우는 데 참여할 필요가 있다. 즉, 세부 전공별로 선발하고 교육할 것이 아니라 1~2학년까지는 각 계열에서 제공하는 교양 및 전공 기초 과목을 두루 수강하게 한다. 이어 3~4학년에 진입할 때 세부 전공을 정하고 졸업 요건을 충족한 경우 학사 학위를 수여한다. 이렇게 하면 학생들의 다양한 기술에 대한 이해도와 융합 능력을 최대한 높일 수 있다.
시론 다른 기사 |
산업기술인력 육성전략도 잠재적 기술 인력풀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대폭 보강해야 한다. 산업 현장에서는 신기술을 빠르게 습득해 새로운 제품과 서비스를 개발할 수 있는 응용 개발인력이 많이 필요하다. 잠재적 기술인력풀이 넓어지면 각 기업에서 현장 맞춤형 교육을 통해 적은 비용으로 개발 전문가를 육성해 낼 수 있다. 이를 위해 정부는 대학과 연구소 시설들을 활용해 다른 전공 인력들이 필요한 분야로 입문할 수 있도록 체계적이고 종합적인 전직(轉職) 사다리 프로그램을 상시 제공해야 한다.
저출산 해결책이 없다는 이유로 기술인력 육성대책마저 소홀히 한다면 국내 산업계가 그동안 쌓아온 최상위권 기술경쟁력이 위태로워질 것이다. 향후 인구 절벽 시대에 대비할 다면적 기술인재 육성 정책을 새 정부에서 조속히 마련하길 기대한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서승우 대한전자공학회 회장·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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