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어떤 때보다 위기” 5년차 직원이 이재용에 보낸 경고메일
[기자의 시각]
입력 2022.04.27 03:00 | 수정 2022.04.27 03:00
“회사를 다니면서 위기라는 얘기를 꽤 많이 들어왔지만, 그 어떤 때보다 지금이 위태롭다고 여겨집니다.”
최근 삼성전자 입사 5년 차 반도체 엔지니어가 이재용 부회장과 경계현 대표이사에게 보냈다는 이메일의 내용 일부이다. 그는 “불이익을 받을 가능성이 있더라도 꼭 필요하다는 생각에 글을 올린다”며 과도한 납기 설정과 낮은 업무 성취, 연구소 내의 열패감 등을 조목조목 짚었다. 위계질서가 강한 한국 조직 문화에서 이례적인 일이다.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서초 사옥 모습. /뉴스1
이뿐 아니다. “그간 내부 단속용으로 부르짖던 위기가 아닌 진짜 위기가 오는 듯한 불안감” “언제 1등을 뺏겨도 이상하지 않을 회사”…. 기업 평가 사이트, 온라인 블로그 등에는 삼성전자 직원들이 남긴 이 같은 글이 올해에만 1000건 넘게 올라와 있다. 으레 나오는 임금·복지 문제, 상사에 대한 불만도 있지만 회사의 현재를 진지하게 고민한 글도 적지 않다. 제품 발열을 낮추려 강제로 스마트폰 성능을 저하시킨 GOS(게임 최적화 서비스) 논란, 신사업인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경쟁력 등 현재 삼성이 겪는 문제의 배경을 짐작하게 하는 내용들이다.
제품 엔지니어 사이에선 “원가 절감, 개발 기간 단축에 빠져 중요한 걸 버려가는 중” “‘네가 책임질 거야?’란 회피 문화” “퀄리티보다 스피드를 중시” 같은 지적이 공통적으로 나온다. 빠른 속도, 원가 절감은 후발 주자였던 삼성을 스마트폰·TV 세계 1등으로 이끈 원동력이었지만, 정상에 오른 뒤에도 여전히 ‘패스트 팔로어’ 전략에 빠져 혁신을 이끌지 못한다는 토로다. 한 직원은 “침몰하는 타이태닉”이라고 표현했다.
이재용 부회장 등 오너 리더십이 부재한 가운데 경영진이 눈앞의 단기 성과에 급급하다는 지적도 있다. 예를 들어 “임원은 단기 성과를 위해 미래를 버리며 올인” “회사 미래나 진정한 경쟁력 강화는 뒷전”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라도 시간이 오래 걸리면 내쳐지기 일쑤”라는 지적들이 그렇다.
삼성전자는 ‘원 삼성(One Samsung)’이란 모토 아래 사업부 간 통합과 시너지 확대를 외치고 있다. 하지만 직원들은 “임원들의 생존 경쟁 때문에 서로 협력해 시너지를 내기보다는 내실 없는 속도 경쟁을 하고 책임 회피, 서로 정보를 은닉하는 경향이 크다” “내부 사일로(silo·부서 간 장벽)가 심각하다”고 토로한다.
‘국민주(株)’가 된 삼성전자가 현재 반도체·스마트폰 등 주요 사업에서 경쟁력 위기를 맞고, 주가 역시 ‘6만 전자’의 늪에서 허덕인다는 사실을 모두가 안다. 그런데 삼성 내부에서 어느 누구도 위기 경보를 울렸단 말이 들리지 않는다. 고 이건희 회장은 끊임없이 위기 의식을 불어넣으며 삼성을 세계 최고 기업으로 이끌었다. 그가 떠난 이후, 이제는 직원들 스스로 ‘삼성의 위기’를 입에 올리는 상황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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