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사설
러시아군의 민간인 학살은 인류 존엄 짓밟는 전쟁범죄다
중앙일보 입력 2022.04.06 00:09 업데이트 2022.04.06 08:04
3일(현지시간) 러시아군이 철수한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 인근 소도시 부차에서 시 직원들이 거리 등에 방치된 민간인 희생자의 시신을 검은색 비 닐백에 수습해 옮기고 있다. 이날 부차의 한 교회 앞마당에서는 최소 118구의 시신이 매장된 집단 매장지가 발견됐다. [AFP]
야만의 시대로 되돌리는 잔혹 행위
우리도 국제연대 더 적극 동참해야
시곗바늘을 수십 년 전으로 되돌리지 않는 다음에야 다시는 목격할 일이 없을 것이라 믿었던 현장이 눈앞에 펼쳐졌다. 러시아군이 한 달여 동안 점령했다가 퇴각한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 외곽 도시 부차의 참혹한 모습은 인류의 양심과 존엄에 대한 믿음에 의문을 던진다. 비무장 상태의 민간인이 집단으로 살해당한 뒤 암매장된 무덤은 전쟁 범죄의 움직일 수 없는 증거다. 동시에 후세 사가들이 이번 전쟁을 문명과 야만의 전쟁으로 규정짓게 하는 유력한 근거가 될 수 있다. 현재까지 드러난 참사가 빙산의 일각이 아니기만을 바랄 뿐이다. 더 이상의 비극은 없어야 한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내건 명분이 무엇이든, 국제사회는 러시아의 침공 자체를 국제법 위반으로 규정했다. 영토와 주권의 불가침을 규정한 유엔 헌장을 거스르는 행위였다. 침공 과정에서 이미 반인도적 전쟁범죄의 전조들이 우려를 불러일으켰다. 집속탄과 열압력탄 등 사용이 금지된 무기를 서슴지 않고 사용한 것이 그랬고, 병원·학교 등 비군사시설을 가리지 않고 집중 폭격과 포격을 가한 것이 그랬다. 여기에 더해 결정적으로 민간인 학살과 집단적 여성 성폭행 등의 증거가 속속 드러난 것이다.
전쟁의 역사는 인류 탄생의 역사만큼이나 길다. 상대방을 못 이기면 내가 죽는 무자비한 전쟁을 거듭한 끝에 인류는 전쟁에도 최소한의 규범이 필요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하고 이를 넘어서는 행위를 전쟁범죄로 규정했다. 인간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지금 전 세계 여론은 푸틴을 전범으로 규정하고 국제 체포영장을 발부해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지만 당장 이를 실행할 수단은 없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효과적인 책임 규명을 보장하기 위해 독립적인 조사가 필수적”이라는 성명을 발표했지만 실효적 방법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이상의 야만 행위가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한 국제사회의 연대는 더욱 굳건해져야 한다. 한국 정부도 러시아에 대한 제재를 강화하고 우크라이나에 대한 인도적 지원을 확대하는 대열에 동참하는 것에 인색해선 안 된다. 러시아와의 교역 및 대북정책 협력 등을 의식해 국제 연대에 소극적인 태도로 뒷짐을 지는 것은 힘들게 쌓아올려 성취한 선진국으로서의 위상을 스스로 반납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사설 다른 기사 |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통화하며 지지를 표명한 것은 시의적절한 일이었다. 다소 늦은 감이 있지만 젤렌스키 대통령이 한국 국회에서 화상 연설을 하게 해 달라는 요청을 받아들인 것도 잘된 일이다. 강대국이 약소국을 침공하고 민간인을 학살하는 비극이 21세기에 다시 일어나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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