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Faith - Hymn

너는 나를 치라 왕상 20:35-43

鶴山 徐 仁 2022. 1. 25. 12:15

너는 나를 치라 왕상 20:35-43

 
 
01월 25일 (화)
   
너는 나를 치라 왕상 20:35-43


35. 선지자의 무리 중 한 사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그의 친구에게 이르되 너는 나를 치라 하였더니 그 사람이 치기를 싫어하는지라
36. 그가 그 사람에게 이르되 네가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아니하였으니 네가 나를 떠나갈 때에 사자가 너를 죽이리라 그 사람이 그의 곁을 떠나가더니 사자가 그를 만나 죽였더라
37. 그가 또 다른 사람을 만나 이르되 너는 나를 치라 하매 그 사람이 그를 치되 상하도록 친지라
38. 선지자가 가서 수건으로 자기의 눈을 가리어 변장하고 길 가에서 왕을 기다리다가
39. 왕이 지나갈 때에 그가 소리 질러 왕을 불러 이르되 종이 전장 가운데에 나갔더니 한 사람이 돌이켜 어떤 사람을 끌고 내게로 와서 말하기를 이 사람을 지키라 만일 그를 잃어 버리면 네 생명으로 그의 생명을 대신하거나 그렇지 아니하면 네가 은 한 달란트를 내어야 하리라 하였거늘
40. 종이 이리 저리 일을 볼 동안에 그가 없어졌나이다 이스라엘 왕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스스로 결정하였으니 그대로 당하여야 하리라
41. 그가 급히 자기의 눈을 가린 수건을 벗으니 이스라엘 왕이 그는 선지자 중의 한 사람인 줄을 알아본지라
42. 그가 왕께 아뢰되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멸하기로 작정한 사람을 네 손으로 놓았은즉 네 목숨은 그의 목숨을 대신하고 네 백성은 그의 백성을 대신하리라 하셨나이다
43. 이스라엘 왕이 근심하고 답답하여 그의 왕궁으로 돌아가려고 사마리아에 이르니라
 
<선지자의 무리 중 한 사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그의 친구에게 이르되 너는 나를 치라 하였더니 그 사람이 치기를 싫어하는지라>(35절).
<선지자의 무리>(메네 하느비임)란 <선지자의 아들들>이란 뜻으로, 물론 이 말은 선지자의 혈육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B.C. 11세기경 사무엘 시대부터 등장하기 시작한 선지 학교의 생도들을 뜻하는 말입니다. 


그런데 아합 앞에 나아가 하나님의 심판을 선고해야 할 선지자가 왜 이처럼 남에게 얻어터져 상처 입은 모습을 연출했을까요? 아마도 앞으로 하나님의 심판을 면치 못하게 될 아합으로 하여금 그런 모습을 보고 뭔가를 깨닫게 하기 위해서였던 것 같습니다. 아무튼 본문의 이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기 위해 온갖 고초를 다 무릅쓰는 등 하나님의 신실한 종으로서의 헌신을 다 보여주고 있습니다. 반면 그의 동료는 <나를 치라>는 선지자의 단호한 주문 속에 담긴 하나님의 뜻을 제대로 분별치 못하고 단지 인간적인 생각에 붙잡혀 <치기를 싫어하다> 결국은 화를 당하고 말았습니다. 


이 사건에 대해 우리는 다소 의아해 할 수도 있겠으나 아합 왕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가 그만큼  단호하셨음을 이해한다면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일이라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즉 그 선지자가 인간적 감정에 연연할게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순종했어야 옳았다는 것입니다. 


드디어 다른 동료에게 부탁해 몸이 상하도록 맞은 선지자가 아합 왕 앞에 나서서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을 전합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멸하기로 작정한 사람을 네 손으로 놓았은즉 네 목숨은 그의 목숨을 대신하고 네 백성은 그의 백성을 대신하리라>(42절). 


그러자 이번에는 아합이 <근심하고 답답하여 그의 왕궁으로 돌아가려고 사마리아에 이르니라>(43절)고 했습니다. 아합이 선지자의 예언을 듣고 <근심하고 답답해했다>는 것은 참회했다는 뜻이 아니라 자신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경고한 선지자에 대해 격노하고 하나님에 대해서도 선고된 형벌이 너무 가혹하다는 듯 몹시 불만스러워하는 심기를 드러냈다는 뜻입니다. 


<그런즉 군왕들아 너희는 지혜를 얻으며 세상의 관원들아 교훈을 받을지어다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섬기고 떨며 즐거워할지어다>(시 2:10-11).
 
-<한 달란트>(39절)의 무게는 얼마나 될까요?
-나의 인간적인 생각과 하나님의 말씀이 서로 상반되거나 대립할 때 당신은 어떻게 하십니까?
-본문 42절과 열왕기하 10:32-33 말씀을 서로 비교, 확인해 보십시오.
 
주님, 저희도 항상 인간적인 판단과 생각에 약해 때로 하나님의 뜻을 외면하기도 하고, 또 합리화와 정당화로 내 생각을 하나님의 뜻처럼 포장하기도 합니다. 
<나를 치라>는 선지자의 말에 <치기를 싫어하다> 하나님의 진노를 산 오늘 본문의 어느 선지자 생도를 기억하게 하사 저희로 하여금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뜻에 우선적으로 순종하고 복종하며 사는 성도들이 되게 해주시옵소서. 
아합이 하나님의 심판의 예언을 듣고 <근심하고 답답해> 했다는 대목도 결코 잊지 않게 하사 징계나 심판이 아니라 은혜와 축복의 예언을 들으며 살게 해 주시옵소서.
 
   
깨진 유리창
 
“‘깨진 유리창 효과’는 범죄학 이론으로, 미국의 정치학자 제임스
월슨(James Wiison) 과 범죄학자 조지 켈링(Georgr Kelling)이 처음으로
제기하였다. 또한 1969년 미국 스탠퍼드대학교 심리학자 필립 짐바르
도가 이와 유사한 실험을 진행하였다.”


장원청 저(著) 김혜림 역(譯) 《심리학을 만나 행복해졌다》
(미디어숲, 314쪽)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짐바르도는 ‘차 훔치기 실험’을 실시했습니다. 똑같은 차량을 한 대는
가난하고 치안이 허술한 브롱크스에,다른 한 대는 중산층이 살고 있는
팰러앨토에 방치했습니다. 브롱크스에 둔 차에는 번호판을 떼고 보닛을
열어 두었습니다. 그 결과 하루도 안 되어 도둑 맞았습니다. 그러나 팰
러앨토에 세워 둔 차는 일주일이 지나도 그대로 있었습니다. 그래서 일
부러 차 유리창 한쪽 깨뜨렸더니 몇 시간이 안 되어 도난 당했습니다.
이 실험에 근거하여 월슨과 켈링은 ‘깨진 유리창 효과’라는 이론을
제기하였습니다. 그들은 만약 누군가가 한 건물의 창문을 깨뜨리고 방
치하면 깨진 창은 사람들에게 유리창을 깨도 좋다는 무질서한 느낌을 줄
것이고 이로 인해 남은 유리창도 마구 깨어지고, 범죄 역시 만연해질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깨진 유리창 이론’을 예방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첫번째 유
리창이 깨졌을 때’ 즉시 유리창을 갈아 끼우는 것입니다.
사사기에 나오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을 잘 관리
하지 못하고, 축복 속에서 늘 범죄하고, 그 죄로 인해 고난이 오면 살려
달라고 기도하는 일을 반복했습니다.  축복의 때에, 아니 일상 속에서
깨진 유리창이 없는가? 늘 살펴서 미리 영적 정비를 해야 합니다.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네게 부탁한 아름다운 것을
지키라.” (딤후1:14)
   
갈라디아서 3장 26절
 
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
You are all sons of God through faith in Christ Jesus,
Galatians 3:26 [NIV]
   
성찬
모임마다 기도의 전통이 만들어지고 있었지만, 기도는 여전히 즉흥적으로 진행되었습니다. 기도하는 사람들이 기도를 종이에 적어 오는 경우는 없었습니다. 성직자들은 지역사회의 전통 안에서 자신의 능력에 따라 기도했지만, 똑같은 단어를 외운 공식에 넣어서 기도하지는 않았습니다. 성찬이 초대교회의 초기와 같이 제대로 된 식사와 함께 진행되었을까요? AD 3세기 대부분의 도시 교회에서는 그렇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쯤에는 모인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예배 때에는 이전보다 훨씬 적은 음식이 준비되었습니다. 그러나 떡을 떼는 것과 물과 섞인 포도주를 마시는 경험은 여전히 영적으로 강력한 힘이 있었습니다. 
-알랜 크라이더의 [초대교회에 길을 묻다] 중에서-


예수님의 살과 피를 마시는 일이 초대교회를 움직이는 힘이었습니다. 각 지체됨을 공감하는 자리가 성찬의 자리입니다. 또한 예수 신앙을 재현하는 천국 잔치가 성찬이었습니다. 주님이 우리를 위해 당신의 살과 피를 깨뜨려 주심같이 우리도 세상속에서 나 자신을 깨뜨려 나눠주는 삶, 이것이 천국을 미리 맛본자의 삶이며, 재현해야 할 삶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