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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남북] 아프간과 한국, 원조받던 두 나라의 다른 운명

鶴山 徐 仁 2021. 8. 27. 11:58

[동서남북] 아프간과 한국, 원조받던 두 나라의 다른 운명

 

아프간이 보여준 ‘원조의 역설’
‘번영 마중물’ 활용한 韓은 예외
자부심 가질만한 발전 역사에
끊임없는 자해는 뭘 위함인가

 

임민혁 기자


입력 2021.08.27 03:00

 

 

<YONHAP PHOTO-4267> 국외 탈출 위해 카불 국제공항 담 넘는 아프간인들 (카불 로이터=연합뉴스) 16일(현지 시각)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의 하미드 카르자이 국제공항에서 국외 탈출을 위해 주민들이 담을 넘어 공항으로 들어가고 있다. 아프간의 이슬람 무장 조직 탈레반이 정권 재장악을 선언하자 카불 국제공항에는 외국으로 탈출하려는 군중이 몰려들었으며 결국 항공기 운항이 중단되고 공항은 마비됐다. sungok@yna.co.kr/2021-08-17 07:18:27/ <저작권자 ⓒ 1980-2021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10여 년 전 위키리크스가 폭로한 외교 문서에는 아프가니스탄 정부의 부패 실상이 적나라하게 묘사돼 있다. 아프간 주재 미국 대사는 본국에 보낸 전문에서 “두 달 동안 아프간 고위 관리들이 카불 공항을 통해 해외로 빼돌린 현금이 2억달러(약 2300억원)가 넘는다”고 했다. 아프간 부통령이 직접 5200만달러(약 600억원)가 든 현금 가방을 들고 UAE에 입국하려다 적발된 적도 있다. 이를 정부가 뇌물을 써서 또 입막음했다고 한다. 정치 지도자들이 ‘못 먹는 놈이 바보’라는 일념으로 국제사회 원조금을 빼돌렸다는 것이다. 오랜 대테러 전쟁으로 고통받는 국민, 무너진 경제와 인프라는 뒷전이었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국제사회가 지난 20여 년간 아프간에 지원한 금액은 1000조원이 훨씬 넘는다. 말 그대로 돈을 쏟아부었다. 그런데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서류상 30만명인 군대가 실제로는 5만명이었고, 대통령이 차량 4대에 현금을 가득 싣고 외국으로 도망쳤다는 등의 보도들은 말을 잃게 한다. 아프간 사태는 미국의 오판을 비롯해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하지만 정치 지도자들이 최소한의 능력이나 사명감을 갖췄다면 그 많은 원조금을 갖고 이렇게 무기력하게 국민을 사지(死地)로 내몰지는 않았을 것이다.

 

국제 원조가 ‘번영의 마중물’이 아니라 ‘밑 빠진 독에 붓는 물’이 되는 것은 아프간만의 경우는 아니다. 수십 년간 원조받은 국가들 대부분이 여전히 빈곤에 허덕인다. 아프간을 포함한 20여 국은 1인당 소득이 1960년대보다도 줄었다. 이런 ‘원조의 역설’을 유발하는 주요 원인 중 하나가 정부의 무능·부패라고 한다. 지원금이 경제 현장에 전달되기 전에 정부 관리들의 개인 재산으로 빼돌려진다. 몇 년 전 해외 원조 업무에 관여하는 공무원에게서 일부 개도국 관료의 무능·부패·태만에 대한 하소연을 들은 적이 있다. 그는 “신음하는 자국민들을 생각한다면 어떻게 저럴 수 있을까 속이 터진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라고 했다. ‘이러니 못살 수밖에 없다’는 생각까지 했다고 한다.

 

아프간 사태를 보면서 한국의 경우를 되돌아본다. 한국의 발전 스토리는 세계 원조사(史)에 극히 예외적인 모범 사례로 기록돼 있다. 우리도 해방 이후 90년대 후반까지 국제사회에서 127억달러의 원조를 받았다. 아프간보다 처참했던 전쟁 폐허에서 이런 원조를 디딤돌 삼아 선진국 문턱까지 도약했다. 도움을 받던 나라에서 주는 나라로 탈바꿈한 유일한 나라다. 미국이 과거 아프간·이라크 재건 지원을 시작할 때를 포함해 세계 원조 현장에서는 ‘제2의 한국이 되길 희망한다’는 말을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다.

 

진부하지만 ‘기적’이라는 표현은 과장이 아니다. 허리띠를 졸라맨 국민들, 혁신을 주도한 기업들과 함께 자유민주주의·시장경제·한미 동맹의 길로 이끈 정치 지도자들이 모두 제 역할을 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세계사에 유례없는 압축 성장을 하면서 부작용도 많았지만 큰 틀에서 대한민국의 국력과 국격은 늘 우상향해왔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우리 사회엔 발전 과정의 그늘만 부각해 업적을 깔아뭉개고, 국민 절반을 반민족·친일 기득권으로 매도하고, 나라의 정통성마저 부인하는 목소리가 넘친다. 몇몇 편향된 개인이라면 무시하면 그만이지만, 이런 사람들이 세금 쓰는 자리를 차지하고 이런 인식을 정부 핵심 세력과 지지자들이 공유한다면 차원이 다른 문제다. 현 정권 지지자들은 논란의 여지가 많은 방역 정책에도, 대통령이 국제 회의에서 찍은 사진 한 장에도 ‘든든하다’ ‘자랑스럽다’며 국뽕을 강요한다. 그런데 진짜 국뽕 스토리에는 끊임없이 자해(自害)를 해대는 것은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