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의 삽십 명 용사 삼하 23:24-39
07월 20일 (화)
다윗의 삽십 명 용사 삼하 23:24-39 24. 요압의 아우 아사헬은 삼십 명 중의 하나요 또 베들레헴 도도의 아들 엘하난과 25. 하롯 사람 삼훗과 하롯 사람 엘리가와 26. 발디 사람 헬레스와 드고아 사람 익게스의 아들 이라와 27. 아나돗 사람 아비에셀과 후사 사람 므분내와 28. 아호아 사람 살몬과 느도바 사람 마하래와 29. 느도바 사람 바아나의 아들 헬렙과 베냐민 자손에 속한 기브아 사람 리배의 아들 잇대와 30. 비라돈 사람 브나야와 가아스 시냇가에 사는 힛대와 31. 아르바 사람 아비알본과 바르훔 사람 아스마웻과 32. 사알본 사람 엘리아바와 야센의 아들 요나단과 33. 하랄 사람 삼마와 아랄 사람 사랄의 아들 아히암과 34. 마아가 사람의 손자 아하스배의 아들 엘리벨렛과 길로 사람 아히도벨의 아들 엘리암과 35. 갈멜 사람 헤스래와 아랍 사람 바아래와 36. 소바 사람 나단의 아들 이갈과 갓 사람 바니와 37. 암몬 사람 셀렉과 스루야의 아들 요압의 무기를 잡은 자 브에롯 사람 나하래와 38. 이델 사람 이라와 이델 사람 가렙과 39. 헷 사람 우리아라 이상 총수가 삼십칠 명이었더라 <요압의 아두 아사헬은 삼십 명 중의 하나요 또 베들레헴 도도의 아들 엘하난과>(24절). <아사헬>은 요압과 아비새의 아우이자 다윗의 조카로 그 발이 들노루처럼 빠른 용사였습니다(2:18). 그는 이스보셋의 군장 아브넬을 추격하다 그의 창에 찔려 죽었습니다(2:23). <아나돗 사람 아비에셀>(27절) - <아나돗>은 베냐민 지파 내에 있는 레위인의 성읍, 제사장의 성읍으로 아비아달의 출생지요(왕상 2:26), 선지자 예레미야의 고향이기도 했습니다(렘 1:1, 수 21:18, 사 10:30). <가이스 시냇가에 사는 힛대>(30절) - <가이스> 시내는 에브라임 산지에 있는 가이스 산의 한 시내를 의미합니다(수 24:30). 그러므로 <힛대>는 에브라임 지파입니다. <바르훔 사람 아스마웻>(31절)) - <바르훔>은 <바후림>을 가리키고, <바후림>은 예루살렘 동북쪽 약 6km 지점에 있으며 그곳은 베냐민 지파의 성읍이었습니다. <하랄 사람 삼마>(33절) - 여기 나오는 <삼마>는 11절에서 소개된 다윗의 첫 세 용사 가운데 한 사람이었던 <삼마>와 동일한 인물이었습니다. <갈멘 사람 헤스래>(35절) - <헤스래>는 대상 11:37에서 <헤스로>로 소개된 사람이고, <갈멜>은 헤브론에서 남쪽으로 약 10km 정도 떨어진 유다의 성읍입니다. <암몬 사람 셀렉>(37절) - <셀렉>은 암몬 출신으로 이방인이었으나 다윗에 의해 30인 용사로 발탁된 사람입니다. <헷 사람 우리아>(39절) - <우리아>는 다윗이 범한 밧세바의 남편이자(11:3) 다윗의 충신이었으나 다윗의 책략으로 모살 당합니다(11:14-17). 그리고 <헷>은 가나안 족속으로 이방인들이었습니다(창 10:15). 그런데 이 다윗의 삼십 명 용사 명단에는 <요압>의 이름이 빠졌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는 다윗의 헌신적인 장수였음에도 아브넬과 압살롬, 그리고 아마사 등을 살해하는 무자비한 행동으로 큰 아픔을 안겼을 뿐 아니라 후에는 솔로몬 왕을 대적하는 반란에도 가담했기 때문에 영예로운 다윗의 삼십 명 용사 명단에서 제해 버린 것입니다. -<아르바>(31절)는 유다 광야에 속한 저지대 <아라바 광야>(수 18:18)를 가리키는데 이 광야의 또 다른 이름은 무엇일까요(수 18:22, 15:61)? -다윗이 바산 북동쪽 헬몬산 서남쪽에 위치한 아람 소국 마아가를 정복하고 그곳에서 삼십 인 용사에 발탁한 사람은 누구였을까요(34절)? -다윗의 용사 삼십 명의 명단(24절)이라고 했는데, <이상 총수가 삼십칠 명이었더라>(39절)는 말씀은 또 무슨 뜻일까요? 주님, 일찍이 다윗에게는 자신의 생명을 돌아보지 않고 전쟁에 뛰어들어 용맹을 떨쳤던 신실한 용사들이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 시대에는 저희들이 다 주님의 그런 용사들입니다. 부디 저희로 하여금 더욱 민감하게 주님 뜻에 반응하며 헌신하고 충성하는 복된 주의 용사들이 되기에 부족함이 없게 해주시옵소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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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다움이 아름다움 “나다움 너다움 그다움이 인간다움 아름다움” 한재욱 저(著) 《인문학을 하나님께 3집》 (규장출판사, 29쪽) 중에 나 오는 구절입니다. 영성학자 토머스 머튼(Thomas Merton)은 “나무는 나무가 됨으로써 하 나님께 영광을 드린다”라고 말했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은 나 로서 살아갈 때 하나님께 영광입니다. 하늘이 땅이 될 수 없고 땅이 하 늘이 될 수 없습니다. 태양이 달이 될 수 없고 달이 낮을 주관할 수 없 습니다. 모두 다 높낮이가 없는 자신의 역할이 있고 자신의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흙은 부드러워서 좋은 것이고 돌은 딱딱하기에 나쁜 것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장미꽃이 할미꽃보다 더 고매하다든가, 호랑이의 삶이 두더지의 삶보다 더 늠름하고 보람 있다고 말할 수도 없습니다. 말이 달팽이를 보고 너는 왜 그리 느리냐고 말한다면,코끼리가 돼지를 보고 코도 없는 놈이라고 비아냥거린다면, 하나님의 창조를 모독하는 것입니다. 나다움이 아름다움이고, 너다움 그다움이 아름다움입니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은 멋져 보이는 ‘그’의 사명을 흉내 낼 때가 아니라 ‘나’에게 주신 사명을 다할 때입니다.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 (요17: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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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27장 1절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요 (시편 27:1) The LORD is my light and my salvation-- whom shall I fear? The LORD is the stronghold of my life-- of whom shall I be afraid? (Psalms 27: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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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와 복음 교회와 복음에 의해 부조리와 불의가 떠나고, 온 땅에 사랑과 공의가 실현되는 꿈입니다. 개 교회 만이 아니라 오고 가는 세대의 모든 교회가 함께 이루어야 하는 꿈, 나 혼자만이 아니라 온 식구와 함께 자손대대 이루어야 하는 꿈입니다. 나의 열정과 능력을 다할 뿐만 아니라 성령과 함께 성령의 인도를 따라 이루는 꿈입니다. 무엇보다 부활 주님에 의해 시작되었기에 언젠가 반드시 성취되고야 마는 불변의 꿈이며,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는 그날에 온전히 이루어지는 영원한 꿈입니다. -김석년의 [질문하는 교회] 중에서- 좋은 교회는 누구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함께 수고하는 성도들의 사랑으로 이루어집니다. 한 사람의 열심은 오래 가지 못합니다. 함께 하는 수고가 하나님의 꿈을 만듭니다. 부활의 산 소망으로 사는 우리가 부활 신앙으로 살아가고 있다면 우리는 교회와 성도가 무엇을 전해야 하는지 압니다. 그때 삶의 양상도 바뀌고, 가치관도 바뀝니다. 당신은 주님께서 다 이루신 부활의 산 소망으로 오늘을 시작하십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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