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Faith - Hymn

가장 존귀한 자 삼하 23:18-23

鶴山 徐 仁 2021. 7. 19. 10:26

가장 존귀한 자 삼하 23:18-23

 

 

07월 19일 (월)

   
가장 존귀한 자 삼하 23:18-23


18. 또 스루야의 아들 요압의 아우 아비새이니 그는 그 세 사람의 우두머리라 그가 그의 창을 들어 삼백 명을 죽이고 세 사람 중에 이름을 얻었으니
19. 그는 세 사람 중에 가장 존귀한 자가 아니냐 그가 그들의 우두머리가 되었으나 그러나 첫 세 사람에게는 미치지 못하였더라
20. 또 갑스엘 용사의 손자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이니 그는 용맹스런 일을 행한 자라 일찍이 모압 아리엘의 아들 둘을 죽였고 또 눈이 올 때에 구덩이에 내려가서 사자 한 마리를 쳐죽였으며
21. 또 장대한 애굽 사람을 죽였는데 그의 손에 창이 있어도 그가 막대기를 가지고 내려가 그 애굽 사람의 손에서 창을 빼앗아 그 창으로 그를 죽였더라
22.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가 이런 일을 행하였으므로 세 용사 중에 이름을 얻고
23. 삼십 명보다 존귀하나 그러나 세 사람에게는 미치지 못하였더라 다윗이 그를 세워 시위대 대장을 삼았더라



<스루야의 아들 요압의 아우 아비새이니 그는 그 세 사람의 우두머리라 그가 그의 창을 들어 삼백 명을 죽이고 세 사람 중에서 이름을 얻었으니 그는 세 사람 중에 가장 존귀한 자가 아니냐...>(18-19절).
여기서 말하는 <그 세 사람>이란 다윗을 위해 베들레헴 성문 곁 우물에서 물을 길러 온 <세 사람>, 즉 아비새, 브나야, 그리고 뛰어난 익명의 한 용사를 가리킵니다. 그런데 본문은 그 셋 가운데서 가장 존귀한 자는 <아비새>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존귀한 자> 아비새에게서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첫째, 때로 고난이 예견되는 부르심이라 할지라도 솔선하여 선뜻 나서라는 것입니다. 
어떻게든 나만은 빠지겠다는 것과는 대조적인 삶을 선택하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십자가가 끝이 아님을 잘 알기에, 도리어 그게 새로운 삶을 보장하는 생명의 길목임을 확신하기에 사랑을 위해서라면 손해도 마다하지 않는 것입니다. 나의 그런 희생적인 결단으로 누군가가 살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크게 감사하며 살라는 것입니다. 


둘째, 남을 정죄하는 마음을 내려놓으라는 것입니다. 
이는 탕감 받은 자의 제3자에 대한 탕감 행위입니다. 오늘 우리로 말하면 예수의 피가 그 피를 믿는 자에 대한 정죄함을 소멸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정죄함이란 생명의 기운을 꺾고 대립과 반목을 부르며 결국은 모두를 파멸하게 하는 일의 시작이라는 것을 알기에 모든 대립을 뛰어넘어 오직 남을 위하고 축복하는 일에 모든 시간과 정력을 다 쏟는 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그의 길을 걷는 자는, 덤으로 받은 자신의 생명을 귀하게 여길 줄 알아야 합니다. 
귀하게 여긴다 함은 생의 목적을 이제까지와는 달리 세울 줄 알게 된다는 사실을 뜻하는 것입니다. 욕망과 본능을 충족시키는 인생이 아니라 자기에게 맡겨진 거룩한 사명을 깨닫게 되는 삶이 되는 것입니다. 자신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 참다운 가치를 새롭게 발견하고 그 가치의 빛을 발하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다면 얼마나 아쉬운 일이었을까 하고 평가받는 인생이 되라는 것입니다. 


-본문 19절이 말씀하는 <첫 세 사람>은 누구를 가리킬까요?
-<장대한 애굽 사람>(21절)이란 어떤 사람들이었을까요?
-<다윗이 시위대 대장>(23절)으로 세운 사람은?


주님, 오늘 본문이 말씀하는 <가장 존귀한 자>란 그를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새로운 존재 방식이 무엇인지를 깨우치는 기쁨이 넘치는 사람입니다. 사람들이 헛되이 살지 않도록 세상의 본이 되는 사람입니다. 또한 제대로 사는 길을 가며 자신의 유익보다는 남의 행복을 위해 봉사하고 희생하는 사람임을 깨닫습니다. 저희야말로 주 안에서 그런 <존귀한 자>로 살아가기에 부족함이 없게 해주시옵소서.
 
   
반향실(反響室)에서 나오는 법


“자기편 집단의 결속력이 강하면 이른바 ‘집단 애착(in-group love)’
이 생겨난다. 이런 경우 집단이 구성원들끼리 상호작용이 활발해지는
‘반향실(echo chamber)’ 역할을 해서 자기들이 가진 우려나 신념을
키워 결국 다른 사람들에 대한 증오심으로 발전하는 경향을 보인다.”


강준만 저(著) 《감정독재》 (인물과 사상사, 282-283쪽)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좁은 욕실에서 노래를 부르면 자기 목소리가 크게 공명이 되어 울려서
성량이 풍부해진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킵니다. 그렇게 소리가 잘 울리
도록 설계한 방을 에코 체임버(echo chamber), 즉 반향실(反響室)이라고
합니다. 자기가 듣고 싶은 이야기만 해줄 사람들로 소셜미디어의 관계를
구축하고 비슷한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가득한 커뮤니티에만 가입하면,
반향실 안에 갇히게 되어 자기 목소리가 합리적이고 대세라고 착각할
가능성이 많습니다.
‘독서’가 반향실에 갇힌 우리를 꺼내 주는데 큰 도움을 줍니다. 그리
하여 카프는 책을 ‘도끼’라 하였고, 니체는‘망치’라고 하였습니다.
이렇듯 독서는 편견과 아집이라는 거대한 감옥을 쪼갭니다.
최고의 독서는 성경을 읽는 것입니다. 성경은 죄에 빠진 인간들의 죄
성을 만족시켜주는 말을 하지 않습니다. 다윗의 허물까지도 모두 말하면
서,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 줍니다. 또한 성경은 사람의 관점을
넘어 사람이 인지할 수 없는 낯선 하나님의 관점까지 보여 주면서, 고
착된 우리의 사고를 깨주는 망치의 역할을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히4:12)
   
빌레몬서 1장 7절


형제여 성도들의 마음이 너로 말미암아 평안함을 얻었으니 내가 너의 사랑으로 많은 기쁨과 위로를 받았노라 (빌레몬서 1:7)
Your love has given me great joy and encouragement, because you, brother, have refreshed the hearts of the saints. (Philemon 1:7)
   
긍휼
모세가 그들을 미워하지 않은 이유는, 출애굽을 위한 전쟁의 진정한 상대는 바로가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마귀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모세는 마귀에게 사로잡혀 이용당하고 있는 그들을 오히려 불쌍히 여겼다. 출애굽을 위한 영적 싸움은 사람의 문제가 아니었던 것이다. 모세는 바로와 애굽과 싸우면서도 그들에게 매이지 않았다. 하나님의 사람이 사람에 매여 미움을 품는 순간, 시야에서 하나님을 놓치고 만다. 
-유재명의 [나는 너의 하나님이라] 중에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긍휼의 마음을 심어 놓으셨습니다. 모세가 자신의 인생에 굴레를 씌운 바로를 향하여 긍휼함을 품고, 계속해서 하나님께로 돌아설 것을 요구합니다. 하나님은 10가지 재앙을 통해 바로의 마음을 부드럽게 하시려고 합니다. 그러나 바로의 마음은 긍휼을 베풀어 주시는 주님을 보지 못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동행하는 증거는 내 안에 미움대신 긍휼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긍휼이 당신의 인생을 살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