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Faith - Hymn

인구조사 삼하 24:1-9

鶴山 徐 仁 2021. 7. 21. 20:48

인구조사 삼하 24:1-9

 

 

07월 21일 (수)

   
인구조사 삼하 24:1-9


1. 여호와께서 다시 이스라엘을 향하여 진노하사 그들을 치시려고 다윗을 격동시키사 가서 이스라엘과 유다의 인구를 조사하라 하신지라
2. 이에 왕이 그 곁에 있는 군사령관 요압에게 이르되 너는 이스라엘 모든 지파 가운데로 다니며 이제 단에서부터 브엘세바까지 인구를 조사하여 백성의 수를 내게 보고하라 하니
3. 요압이 왕께 아뢰되 이 백성이 얼마든지 왕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백 배나 더하게 하사 내 주 왕의 눈으로 보게 하시기를 원하나이다 그런데 내 주 왕은 어찌하여 이런 일을 기뻐하시나이까 하되
4. 왕의 명령이 요압과 군대 사령관들을 재촉한지라 요압과 사령관들이 이스라엘 인구를 조사하려고 왕 앞에서 물러나
5. 요단을 건너 갓 골짜기 가운데 성읍 아로엘 오른쪽 곧 야셀 맞은쪽에 이르러 장막을 치고
6. 길르앗에 이르고 닷딤홋시 땅에 이르고 또 다냐안에 이르러서는 시돈으로 돌아
7. 두로 견고한 성에 이르고 히위 사람과 가나안 사람의 모든 성읍에 이르고 유다 남쪽으로 나와 브엘세바에 이르니라
8. 그들 무리가 국내를 두루 돌아 아홉 달 스무 날 만에 예루살렘에 이르러
9. 요압이 백성의 수를 왕께 보고하니 곧 이스라엘에서 칼을 빼는 담대한 자가 팔십만 명이요 유다 사람이 오십만 명이었더라



<여호와께서 다시 이스라엘을 향하여 진노하사 그들을 치시려고 다윗을 격동시키사 가서 이스라엘과 유다의 인구를 조사하라 하신지라>(1절).
이것은 당시 다윗의 인구조사가 범죄한 이스라엘을 징계하시려는 하나님의 의도적인 계획에서 나온 것임을 분명히 하는 구절입니다. 즉 여호와께서 범죄한 이스라엘을 응징하시기 위해 다윗으로 하여금 그릇된 판단을 하도록 부추기셨다는 것입니다. 더 엄밀히 말하면 다윗이 사단의 유혹에 빠지는 것을 방임하셨다는 뜻입니다(대상 21:1).


한편 다윗의 이 인구조사는 그의 통치 말년에 이루어진 것입니다. 따라서 이때는 대내외적으로 모든 정벌과 반란이 완료되고 그야말로 태평성대를 구가하던 다윗 통치의 말기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에 왕이 그 곁에 있는 군사령관 요압에게 이르되 너는 이스라엘 모든 지파 가운데로 다니매 이제 단에서 브엘세바까지 인구를 조사하여 백성의 수를 내게 보고하라>(2절). 


이로 보건대 당시 다윗은 단순한 인구조사가 아니라 군사적 목적과 함께 더욱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군인인 요압에게 그 인구조사를 명령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다윗의 그 같은 처신이 결국은 하나님을 배반하는 행위에 다름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전쟁에서의 승리를 오직 하나님께 구하지 않고, 더욱 강화되고 조직화된 군사력과 더욱 막강해진 왕권에서 보장받으려 했기 때문이었습니다(삼상 17:47). 이것은 후일 바벨론 왕의 사신들에게 히스기야 왕이 이스라엘의 보물 창고와 무기고를 보여주며 군사력과 재력을 과시하고 자랑한 교만의 죄와 그 성질이 같은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렇듯 다윗은 인구조사를 통해 오직 자기의 세력과 영광과 번영을 확인하고 시위하려 했습니다. 이것은 당시 다윗이 하나님보다는 어디까지나 군사력을 더 신뢰하려 한 교만의 소치였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그가 비록 다윗일지라도 자신에게 찾아온 행복과 안정과 번영을 하나님께 대한 감사보다는 자신의 영광으로 돌리며 그것을 널리 선전하고 싶어 합니다. 그리고 그게 결국은 하나님의 진노를 자초하며 화를 부른다는 사실을 여기서도 거듭 확인하게 됩니다(시 94:2, 잠 21:4). 


-본문 3절을 읽고 처음 다윗의 인구조사에 반대한 요압의 입장을 간략히 적어보십시오.
-요압에게 지시하여 이루어진 다윗의 인구조사는 그 기간이 얼마였습니까(8절)?
-인구조사 결과 다윗 시대 이스라엘 중에서 전투 가능한 장정의 수는 도합 몇 명이였습니까(9절)?


주님, 다윗 같은 성군도 그 사정이 좋아지고 태평성대가 이어지자 그렇게 생각이 바뀌고 교만해져 하나님의 뜻에 합당치 못한 일을 자행하므로 징계를 자초했습니다. <요압> 조차도 <어찌 그런 일을 기뻐하시냐>며 반대했음에도 기어이 그걸 결행하여 하나님의 진노를 샀습니다. 저희로 하여금 더욱 겸허하고 겸손하게 하사 모든 것을 오로지 주님 뜻에 합당하게 행하고 오직 하나님의 영광과 기쁨을 위해 살아가도록 인도해 주시옵소서. 
 
   
비교해서는 안 되는 것이 있다


“우리 곁에는 누군가와 비교해서는 안 되는 것들이 있다. 내 어머니 내
아버지,내 남편,내 아내, 내 아이, 그리고 나다.  또한 주님이 내게
주신 사명이다. 남과 비교하면 나다움으로 빛나는 아름다움이 사라진다.
피아노와 멜로디언을 비교하는 순간, 궁전과 오두막을 비교하는 순간,
드레스와 티셔츠를 비교하는 순간,한쪽은 의미를 잃고 슬퍼진다(중략).
달팽이는 자신의 보폭으로 노아의 방주에 들어갔다. 달팽이가 참새와
자신을 비교했다면, 좌절하면서 방주에 들어가 지 못했을 것이다.”


한재욱 저(著) 《인문학을 하나님께 3집》 (규장출판사, 33쪽) 중에 나
오는 구절입니다.
지붕 위의 둥근 박이 늘 보름달을 부러워하고 또 보름달은 태양을 부러
워하여 불평한다면 가장 불행한 삶이 됩니다. 박은 목마른 사람에 물을
떠주는 바가지가 될 때, 보름달은 어둔 밤을 은근히 비추며 사람들에게
시심(詩心)과 정감을 줄 때 가장 행복합니다.
잘 보십시오. 나무는 자신의 가지 위에 앉아 노래하는 새들을 시기하지
않고, 여름에 피는 꽃은 봄에 피는 꽃을 질투하지 않고, 오로지 자기다
움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냅니다. 꽃과 나무들도 이러할진대 꽃보다
더 귀한 우리는 자신의 모습으로 더 맑게 웃을 수 있습니다.
‘자기(自己)의 존재 이유(理由)’를 줄이면 ‘자유(自由)’가 됩니다.
비교하지 않고 나답게! 자신의 존재 이유로 살아갈 때, 가장 자유롭고
행복한 삶이 됩니다.


“내가 주께 감사하옴은 나를 지으심이 심히 기묘하심이라.”
(시139:24)
   
에베소서 4장 24절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에베소서 4:24)
and to put on the new self, created to be like God in true righteousness and holiness.(Ephesians 4:24)
   
이성
설교를 들으며 말씀을 읽으며 이성적으로 판단하기 시작하면 이성이 우상이 됩니다. 만일 우리의 판단이 지나친 비판이 되어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면 우리의 이성이 우상이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이 시대의 철학적 사조가 이성주의를 앞세우면서 하나님을 버리기 시작했습니다. 이성으로 이해되지 않는 한 하나님은 없다고 선언했습니다.
-김병삼의 [치열한 순종] 중에서-


우리는 판단의 영에 속지 말아야 합니다. 세상은 무엇이든 평가하고 판단하려고 합니다. 있는 그대로를 봐주지 못합니다. 말씀을 들으면서 우리는 내 뜻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시간으로 삼아야 합니다. 전하는 자도, 듣는 자도 아무런 판단 없이 순수하게 듣고 전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말씀이 말씀되길 원하십니다. 주님의 말씀을 읽고 듣고 지키는 자가 복이 있습니다. 거짓 없이 주님의 말씀 앞에 내가 먼저 세워지는 수고가 있을 때 이 땅의 교회와 성도는 진실함을 회복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