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제자는 망하리라 (다니엘 11:20-27)
07월 22일 (목)
압제자는 망하리라 (다니엘 11:20-27) 20. 그 왕위를 이을 자가 압제자를 그 나라의 아름다운 곳으로 두루 다니게 할 것이나 그는 분노함이나 싸움이 없이 몇 날이 못 되어 망할 것이요 21. 또 그의 왕위를 이을 자는 한 비천한 사람이라 나라의 영광을 그에게 주지 아니할 것이나 그가 평안한 때를 타서 속임수로 그 나라를 얻을 것이며 22. 넘치는 물 같은 군대가 그에게 넘침으로 말미암아 패할 것이요 동맹한 왕도 그렇게 될 것이며 23. 그와 약조한 후에 그는 거짓을 행하여 올라올 것이요 소수의 백성을 가지고 세력을 얻을 것이며 24. 그가 평안한 때에 그 지방의 가장 기름진 곳에 들어와서 그의 조상들과 조상들의 조상이 행하지 못하던 것을 행할 것이요 그는 노략하고 탈취한 재물을 무리에게 흩어 주며 계략을 세워 얼마 동안 산성들을 칠 것인데 때가 이르기까지 그리하리라 25. 그가 그의 힘을 떨치며 용기를 다하여 큰 군대를 거느리고 남방 왕을 칠 것이요 남방 왕도 심히 크고 강한 군대를 거느리고 맞아 싸울 것이나 능히 당하지 못하리니 이는 그들이 계략을 세워 그를 침이니라 26. 그의 음식을 먹는 자들이 그를 멸하리니 그의 군대가 흩어질 것이요 많은 사람이 엎드러져 죽으리라 27. 이 두 왕이 마음에 서로 해하고자 하여 한 밥상에 앉았을 때에 거짓말을 할 것이라 일이 형통하지 못하리니 이는 아직 때가 이르지 아니하였으므로 그 일이 이루어지지 아니할 것임이니라 본문은 당시의 역사적 상황을 잘 알지 못하면 해석이 어려운 몹시 난해한 대목 가운데 하나입니다. 남방 애굽의 톨레미 왕조와 북방 시리아의 셀류시드 왕조는 서로 견제하며 끊임없이 그세력을 다툽니다(5-20절). 남방 왕이 딸을 주어 정략결혼을 통해 연합하지만 곧 깨어지고, 복수하고, 서로가 침략하고, 또 다시 북방 왕이 계략적으로 딸을 주어 남방 왕국을 파멸시키려 음모합니다(17절). 그러나 그게 남방이든 북방이든 <압제자는 분노함이나 싸움이 없이 몇 날이 못되어 망할 것>(20절)이라는 게 하나님의 엄한 경고십니다. 아합 왕과 왕비 이세벨은 엘리아와 같은 하나님의 선지자들을 압제하고 박해하며 살해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정말 누구의 눈에도 하나님의 역사는 더 이상 돌이킬 수 없는 쇠락의 길을 걷는 것만 같았습니다. 그런데 아무도 예상치 못한 시각에 놀라운 반전의 불길이 일어났습니다. 그 유명한 갈멜산 대결에서 압제자 아합 왕과 이세벨을 업고 나온 수 백 명의 바알, 아세라 선지자들을 하나님의 사람 엘리아가 홀홀 단신으로 이겨 내지 않았습니까? 하나님은 우리가 세상의 폭력이나 압제에 굴하지 않고 비록 그 수가 미미하더라도 끝끝내 하나님의 길을 가고 지키는 자들이 되기를 바라십니다. 사울의 칼날을 피해 유다 광야의 굴 많은 바위산으로 피신한 다윗은 간신히 목숨을 건지긴 했으나 이제는 세상 끝까지 몰리고 몰려 실로 몰락 직전의 딱하디 딱한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어두운 동굴 속에 갇힌 당시 그에게 아마도 칠흙 같은 좌절감이 엄습해 왔을 것입니다. 시편 57편은 바로 그런 상황에서 고백한 그의 탄원입니다. <하나님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영혼이 하나님께로 피하니 이 재난이 지나갈 때가 당신의 날개 그늘 아래 있게 하소서>. 그런데 돌연 그의 어조가 급격하게 바뀝니다. <하나님이여 내가 노래하고 찬양하리이다 내 영혼아 깰지어다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 누가 보아도 새벽을 깨우기는커녕 도리어 밤의 어두움에 삼킴을 당할 것 같은 그가 대체 어디에서 이런 용기와 힘이 솟아난 것일까요? 그것은 하나님이 무고한 자신을 압제하며 해치려는 사울 왕을 반드시 손보실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맡깁시다. 엘리야처럼 다윗처럼 다니엘처럼 압제자를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공의를 믿읍시다. 그러면 우리의 삶의 장도 낙심과 탄식의 어둡고 음습한 동굴이 아니라 은혜와 희망이 샘솟는 <아둘람의 굴>로 변화될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볼 때 압제자의 권력은 결코 오래 가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이 이미 <몇 날이 못되니 망할 것>이라고 예언하셨기 때문입니다. 당신도 하나님의 이 말씀을 확신하십니까? -오늘 이 본문 말씀에 비추어 현 북한 정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엘리야와 다윗, 다니엘처럼 횡포하는 권력, 압제하는 권력자에 대해 하나님의 엄정하고도 공의로우신 심판이 있으시길 기도합시다. 주님, 그가 누구든, 어느 나라 권력자든 함부로 힘을 과시하며 남을 억압하고 압제하는 자는 하나님이 반드시 심판하시고 망하게 하신다는 사실을 저희로 하여금 깊이 깨닫고, 또 두 눈으로 보게 해주시옵소서. 이 시대 저희의 역사를 통해서도 하나님의 공의로우심과 살아 역사하심을 구체적으로 체험하게 해주시옵소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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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는 아픔이지만 “하나의 존재는 하나의 아픔이다. 꽃은 꽃이라는 상처와 아픔이 있고, 강물은 강물이라는 이름의 상처와 아픔이 있다. 사람도 늘 불완전하고 죄성이 가득하기에 사람만큼의 상처와 아픔을 안고 산다. 그 상처 때 문에 비난, 분노, 열등감, 이기심,거부의 가시가 돋아나 자신의 심장을 찌르고 이웃을 찌르기도 한다(중략). 상처는 잘 익어야 한다. 잘 익은 밥이 맛있듯이 상처도 잘 익히면 꽃향기가 난다.” 한재욱 저(著) 《인문학을 하나님께 3집》 (규장출판사, 225쪽)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상처가 잘 익어 아물면 무늬가 되고, 상처가 치유되지 않으면 얼룩과 흉터가 남습니다. 햇빛을 받으면 습기가 마르듯,상처가 잘 익기 위해 서는 하나님께 가져와야 합니다. 하나님께로 가져온 상처는 꽃이 되고 노래가 되어 ‘상처 입은 치유자’로서 살 수 있습니다. 땅바닥에 유리를 떨어뜨리면 깨지고, 진흙을 떨어뜨리면 달라붙고, 공을 떨어뜨리면 튀어 오릅니다. 같은 상처를 입더라도 ‘상처 입은 피해자’ 가 있고, ‘상처 입은 복수자’가 있고, ‘상처 입은 치유자’가 있습니 다. ‘상처 입은 치유자’는 자신이 받은 상처 때문에 이웃을 더욱 이 해하고 공감하며 치유해주는 사람입니다.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 로다.” (고후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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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엘 2장13절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올지어다 그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나니 (요엘 2:13) Rend your heart and not your garments. Return to the LORD your God, for he is gracious and compassionate, slow to anger and abounding in love, and he relents from sending calamity. (Joel 2: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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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인의 죄 대부분의 사람들이 인간의 본성은 착하다고 믿습니다. 죄를 짓는 이유, 악해지는 이유는 환경과 제도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사람은 죄를 지을지 몰라도 최소한 나는 죄인이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 이유로, 자신은 다른 사람보다 도덕적으로 윤리적으로 완벽한 삶을 살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거짓말한 일도 없고 남을 해코지한 일도 없고 법을 어긴 일도 없다고 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의식적으로 죄를 지은 것이 아니라, 상황 때문에 무의식적으로 죄를 지었다고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핑계입니다. 사람의 마음속에는 본질적인 죄가 있습니다. 내가 죄를 지었기 때문에 죄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죄인이기 때문에 죄를 짓는 것입니다. -하용조의 [예수님과의 사귐] 중에서- 신앙은 나의 죄 됨을 보는 일부터 시작됩니다. 그래야 하나님이 처음에 지으신 모습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고,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일이 회개 없이, 주님을 닮아가지 않고는 안 됨을 인정하게 됩니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 안에 있는 죄를 보지 못합니다. 공동체가 무너지는 일도 자신의 죄인 됨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자신 안에 숨어 안에 감춰진 죄를 드러내지 않고는 새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성령 앞에 나아가 우리의 죄악을 인정할 때 우리는 예수님과의 사귐이, 누림이 가능해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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