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의 용사들 삼하 23:8-17
07월 14일 (수)
다윗의 용사들 삼하 23:8-17 8. 다윗의 용사들의 이름은 이러하니라 다그몬 사람 요셉밧세벳이라고도 하고 에센 사람 아디노라고도 하는 자는 군지휘관의 두목이라 그가 단번에 팔백 명을 쳐죽였더라 9. 그 다음은 아호아 사람 도대의 아들 엘르아살이니 다윗과 함께 한 세 용사 중의 한 사람이라 블레셋 사람들이 싸우려고 거기에 모이매 이스라엘 사람들이 물러간지라 세 용사가 싸움을 돋우고 10. 그가 나가서 손이 피곤하여 그의 손이 칼에 붙기까지 블레셋 사람을 치니라 그 날에 여호와께서 크게 이기게 하셨으므로 백성들은 돌아와 그의 뒤를 따라가며 노략할 뿐이었더라 11. 그 다음은 하랄 사람 아게의 아들 삼마라 블레셋 사람들이 사기가 올라 거기 녹두나무가 가득한 한쪽 밭에 모이매 백성들은 블레셋 사람들 앞에서 도망하되 12. 그는 그 밭 가운데 서서 막아 블레셋 사람들을 친지라 여호와께서 큰 구원을 이루시니라 13. 또 삼십 두목 중 세 사람이 곡식 벨 때에 아둘람 굴에 내려가 다윗에게 나아갔는데 때에 블레셋 사람의 한 무리가 르바임 골짜기에 진 쳤더라 14. 그 때에 다윗은 산성에 있고 그 때에 블레셋 사람의 요새는 베들레헴에 있는지라 15. 다윗이 소원하여 이르되 베들레헴 성문 곁 우물 물을 누가 내게 마시게 할까 하매 16. 세 용사가 블레셋 사람의 진영을 돌파하고 지나가서 베들레헴 성문 곁 우물 물을 길어 가지고 다윗에게로 왔으나 다윗이 마시기를 기뻐하지 아니하고 그 물을 여호와께 부어 드리며 17. 이르되 여호와여 내가 나를 위하여 결단코 이런 일을 하지 아니하리이다 이는 목숨을 걸고 갔던 사람들의 피가 아니니이까 하고 마시기를 즐겨하지 아니하니라 세 용사가 이런 일을 행하였더라 <다윗의 용사들의 이름은 이러하니라...>(8절). 본문에 소개되고 있는 용사들은 다윗 왕국에서 크게 활약했을 뿐 아니라 다윗이 이스라엘의 왕으로 등극하는 데도 큰 공을 세운 6백 명의 용사 중 일부라고 볼 수 있습니다. 사실 다윗의 마음속에는 언제나 이들에 대한 사랑과 감사가 깊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또 삼십 두목 중 세 사람이 곡식 벨 때에 아둘람 굴에 내려가 다윗에게 나아갔는데 때에 블레셋 사람의 한 무리가 르바임 골짜기에 진 쳤더라>(13절). 그렇습니다. 다윗이 사울 왕의 추격을 피해 아둘람 굴에 은신해 있을 때 많은 사람들이 다윗을 찾아와 새로운 시대에 대한 열망과 비전을 공유하며 새벽을 깨우는 노래를 부르고 함성을 질렀습니다. 사실 이 시대 교회들도 누군가에게 아둘람의 굴 같은 존재가 돼야 합니다. 때로 살아가는 일이 힘들고 벅차 피신하듯 아둘람 굴을 찾아오는 자들에게 다윗의 리더십과 신념이 큰 격려가 되고 희망이 되었던 것처럼 이 시대 교회들도 그들과 함께 그렇게 희망의 노래를 불러야 합니다. 그래서 그들의 삶의 장과 현실이 낙심과 탄식으로 어둡고 음습한 동굴이 아니라 은혜의 노래와 희망이 샘솟는 변화의 현장,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축복의 자리가 되게 해야 합니다. <다윗이 소원하여 이르되 베들레헴 성문 곁 우물 물을 누가 내게 마시게 할까>(15절). 다윗은 베들레헴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그 우물 물을 마시고 자랐고, 피난 시절 진치고 있던 아둘람 굴 주변의 물은 그다지 좋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다윗이 고향의 우물 물을 그리워했고, 그 사실을 호소하자 3인의 충정어린 용사들이 가서 그 우물 물을 길어 왔으나 결국 다윗은 그 물을 마시지 않고 <여호와께 부어 드렸다>(16절)고 합니다. <여호와여 내가 나를 위하여 결단코 이런 일을 하지 아니 하리이다. 이는 목숨을 걸고 갔던 사람들의 피가 아니니이까>(17절). 다윗은 자신의 경솔함을 뉘우치며 마치 부하들의 피와도 같은 그 우물물을 다 하나님께 전제로 부어 바친 것입니다. -본문에 등장하는 다윗의 용사 중 세 사람의 이름만 적어 보십시오. -옛 이스라엘 지도에서 <아둘람 굴>(13절)의 위치를 확인해 보십시오. -본문 11절에 나오는 <녹두나무>란 무엇을 가리킬까요?(대상 11:13) 주님, 그렇습니다. 다윗의 왕국은 다윗 홀로 이룩한 나라가 아니고 뛰어나지만 자신을 드러나지 않았던 많은 용사들과 함께 세운 왕국이었습니다. 그들은 아둘람 굴에서부터 시작하여 한결같이 충성하며 헌신함으로 다윗으로 하여금 이스라엘 통일 왕국을 이룩할 수 있게 했습니다. 다윗과 그의 신실한 용사들을 통해 동역과 더불어 사는 지혜를 배울 수 있게 해주시옵소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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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것은 “돈이면 뭐든지 바꿀 수 있다 Money changes everything. 미국 가수 신디 로퍼가 1984년에 불러 히트시킨 노래 제목입니다. 이를 인정하듯, 미국 철학자 마이클 샌델은 『돈으로 살 수 없는 것 들』(2012)의 서문에서 ‘세상에는 살 수 없는 것들이 있다. 하지만 요즘에는 그리 많이 남아 있지 않다’고 개탄합니다. 강준만 저(著) 《수렁 속에서도 희망은 보인다》 (인물과 사상사, 99쪽)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현대 철학의 새로운 흐름을 제시한 언어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은 세계를 언어로 명제화 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는 것을 느껴, 그의 명저 《논리철학 논고》의 마지막 구 절을 철학사에 남는 유명한 말로 장식합니다.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 (Wovon man nicht sprechen kann, darüber muß man schweigen.) 하버드 대학의 마이클 샌델 교수는《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에서 현대 사회가 돈으로 살 수 없고 값을 매길 수 없는 것들을 돈으로 사고 값을 매기려 하면서 부작용이 발생한다고 했습니다. 삶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들, 이를테면 사랑, 그리움, 자유 등은 과학적 언어로, 그리고 돈으로 담을 수 없는 그 무엇입니다. 우리의 이성과 언어와 돈으로 담을 수 없는 최고의 존재는 ‘하나님’입니다. 우리가 말로 표현하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사랑은 지극히 일부일 뿐입니 다. 말로 다 담을 수 없는 하나님이 우리의 언어 속으로 들어오신 그 사랑에 감사할 뿐입니다. “그들을 주신 내 아버지는 만물보다 크시매” (요10:29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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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3장 5절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요한복음 3장 5절) Jesus answered, "I tell you the truth, no one can enter the kingdom of God unless he is born of water and the Spirit. (John 3: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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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제자들을 이렇게 바꾸게 했을까 사실 예수님은 죄인들과 함께 십자가에 죽으셨다. 그런데 예수님의 죽음 이후 두려움에 방문을 굳게 닫아 벌벌 떨던 제자들이 달라졌다. 예수님의 죽음을 보며 고난을 받기 싫어 숨어있던 제자들이 예수님을 위해 고난받는 것을 영광으로 여기는 사람으로 달라졌다. 예수님을 배반하던 베드로가 설교를 하자 하루에 3천명이 회개하는 역사가 일어났고 성전 미문에 앉아 구걸하던 앉은뱅이를 향해 “은과 금은 없지만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어라.”고 말하자 일어나 걷는 역사가 일어났다. 무엇이 제자들을 이렇게 바꾸게 했을까? 그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성령이었다. -강용규 목사의 ‘부활하신 예수님’에서- 사도행전 1장 8절에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는 말씀대로 제자들이 성령을 받자 완전히 새롭게 되었습니다. 성령 받은 베드로가, 성령 받은 사도들이 복음을 전할 때 세상의 역사는 변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성령을 받은 베드로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고난을 전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책임이 바로 유대인 너희에게 있다고 말했을 때 이야기를 듣는 사람들 가운데 “어찌할꼬”하며 회개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회개할 때 그들은 성령을 선물로 받아 변화의 역사가 일어났고 이것이 초대 교회의 부흥의 시작이었던 것입니다. |
들나귀처럼 호 8:8-14
07월 15일 (목)
들나귀처럼 호 8:8-14 8. 이스라엘은 이미 삼켜졌은즉 이제 여러 나라 가운데에 있는 것이 즐겨 쓰지 아니하는 그릇 같도다 9. 그들이 홀로 떨어진 들나귀처럼 앗수르로 갔고 에브라임이 값 주고 사랑하는 자들을 얻었도다 10. 그들이 여러 나라에게 값을 주었을지라도 이제 내가 그들을 모으리니 그들은 지도자의 임금이 지워 준 짐으로 말미암아 쇠하기 시작하리라 11. 에브라임은 죄를 위하여 제단을 많이 만들더니 그 제단이 그에게 범죄하게 하는 것이 되었도다 12. 내가 그를 위하여 내 율법을 만 가지로 기록하였으나 그들은 이상한 것으로 여기도다 13. 그들이 내게 고기를 제물로 드리고 먹을지라도 여호와는 그것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이제 그들의 죄악을 기억하여 그 죄를 벌하리니 그들은 애굽으로 다시 가리라 14. 이스라엘은 자기를 지으신 이를 잊어버리고 왕궁들을 세웠으며 유다는 견고한 성읍을 많이 쌓았으나 내가 그 성읍들에 불을 보내어 그 성들을 삼키게 하리라 <그들이 홀로 떨어진 들나귀처럼 앗수르로 갔고 ...>(9절). <들나귀>란 히브리어 <페레>로 발이 빠르고 좀처럼 길들여지지 않으며 들에서 자유로이 뛰노는 <야생나귀>를 가리킵니다. 이 나귀는 호세아 당시만 해도 메소포타미아를 중심으로 아라비아 지역에 많이 서식했지만 지금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고 합니다. 창세기 16:12은 하갈에게 <이스마엘과 그 후손이 들나귀 같으리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데 이 예언은 3천 년의 역사 속에서도 여전히 문명생활을 마다하고 낙타나 말을 타고 창을 든 채 광활한 자연을 누비며 난폭하고도 거칠게 살아가는 베두인들과 사라센(Saracens) 족에 의해 그대로 성취되었습니다. 예레미야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방의 신들을 갈망하는 모습을 마치 들암나귀가 욕정에 헐떡거리는 것과 같다고 했고(렘 2:24), 이스라엘 땅에 임할 가뭄에 대해서도 들나귀가 나무 없는 산에서 풀을 구하지 못해 헐떡이는 모습에 비유하기도 했습니다(렘 14:6). 오늘 본문도 이스라엘이 임자 없는 들나귀처럼 아무런 돕는 손길도 없이 앗수르로 끌려갔다는 사실을 말씀합니다. 8절에서는 범죄한 이스라엘이 온 세계 가운데서 천대와 멸시를 당할 것이고 토기장이가 마음에 들지 않아 깨뜨려버리는 그릇과 같은 신세가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실제 이스라엘은 선지자들의 거듭된 만류에도 불구하고 기어이 앗수르에게 조공을 바치며 굴욕적인 동맹을 맺었고, 또 그들의 우상을 수입하여 음란하게 섬겼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그같은 처신과 행보는 그들에게 평안을 가져다 주기는커녕 도리어 멸망을 안겨 줄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들이 여러 나라에게 값을 주었을지라도 이제 내가 그들을 모으리니 그들은 지도자의 임금이 지워준 짐으로 말미암아 쇠하기 시작하리라>(10절). 하나님 없이 홀로 이방종교와의 혼합을 통해 정욕에 날뛰다 결국 굶주림과 목마름에 시달리며(렘 14:6) 맹수와도 같은 앗수르에게 삼키우고 말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나라나 개인이나 하나님 없이 홀로 들나귀처럼 떨어지면 과거 이스라엘처럼 멸망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깊이 명심할 일입니다. -당신에게도 <홀로 떨어진 들나귀> 같은 경험이 있으십니까? -당신은 하나님이 즐겨 드시는 그릇입니까? <즐겨 쓰지 아니하는 그릇>(8절) 입니까? -당신은 과거 이스라엘처럼 하나님보다는 오히려 이방나라인 앗수르의 도움을 받고자 한 적이 없습니까? 주님, 호세아 시대 이스라엘은 홀로 떨어진 들나귀처럼 하나님을 등지고 앗수르에게로 가서 제살 길을 찾았으나 결국은 그들이 지워 준 짐으로 말미암아 쇠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을 기뻐하지 아니하시고 그 죄악을 벌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하나님은 유다가 견고한 성읍을 많이 쌓았으나 내가 그 성읍에 불을 보내어 그 성들을 삼키게 하리라고도 하셨습니다(13-14절). 부디 고집 센 들나귀가 아니라 하나님이 즐겨 쓰시는 그릇이 되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성도로 살아가도록 은혜 베풀어 주시옵소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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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과 반딧불 “누구나 하늘 높이 날아오르는 연을 보면 영혼이 있는 생물인 것처럼 느낀다. 그러나 연이 땅에 내려앉으면 아무런 생명도 움직임도 없는 종 이와 대로 만든 물건으로 변해 버린다. 꿈에서 깨어나는 것 같은 체험 이다.” 이어령 저(著) 《하이쿠의 시학》 (서정시학, 167쪽) 중에 나오는 구절 입니다. 비단 연 뿐만이 아닙니다. 반딧불도 그러합니다. “밤에 보는 반딧불이 반딧불의 본질인 것처럼 인식하고들 있지만 대 낮에 보면 보석처럼 빛나던 저 단풍잎의 이슬이 한낱 물이었던 것처럼 그 불빛 또한 벌레에 불과하다.”(168쪽) 연이나 반딧불 뿐만이 아닙니다. 우리들이 그토록 가지고 싶던 욕망 또한 아무것도 아닐 수가 있습니다. 죽는다는 사실과, 주님의 심판대 앞에 선다는 사실. 성경은 이것을 망 각한 채 그 어떤 성공을 이루었어도 안개 같은 인생이라는 진리를 말해 줍니다.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약4: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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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30장 18절 그러나 여호와께서 기다리시나니 이는 너희에게 은혜를 베풀려 하심이요 일어나시리니 이는 너희를 긍휼히 여기려 하심이라 (이사야 30장 18절(1)) Yet the LORD longs to be gracious to you; he rises to show you compassion. (Isaiah 30:18(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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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더불어 살 줄 모르는 사람은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사람이 아니다. 기독교는 감사의 종교이다. 그래서 어거스틴(Augustin)은 고린도전서 13장 13절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는 말씀에 하나를 더 보탠다면 '감사'라는 단어를 보탤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미국의 신학자인 라인홀드 니버도 '믿음, 소망, 사랑에 감사도 추가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현대인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감사를 모르고, 만족을 모르는 것이다. 디모데후서 3장 1-5절에 말세의 도덕적 타락상태가 나타날텐데 그 타락 중에 하나가 '감사하지 않는 것'이라고 하였다. -고신일 목사의 ‘하나님의 뜻이니라’에서- 사람들은 감사한 것, 좋은 점을 보기보다는 나쁜 점, 흠을 더 잘 봅니다. 자식이 부모에 대해 감사할 줄 모르고, 제자가 선생님에 대해 감사할 줄 모르고, 범사에 감사할 줄 모르는 것이라고 합니다. 원망하고, 탄식하고, 불평하는 것은 잘합니다. 그러나 감사를 표현하라고 하면 잘 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범사에 감사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고 다른 사람에게 감사를 가르치며 살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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