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Faith - Hymn

생과부로 삼하 20:1-8

鶴山 徐 仁 2021. 6. 16. 10:11

생과부로 삼하 20:1-8

 

 

06월 16일 (수)

   
생과부로 삼하 20:1-8


1. 마침 거기에 불량배 하나가 있으니 그의 이름은 세바인데 베냐민 사람 비그리의 아들이었더라 그가 나팔을 불며 이르되 우리는 다윗과 나눌 분깃이 없으며 이새의 아들에게서 받을 유산이 우리에게 없도다 이스라엘아 각각 장막으로 돌아가라 하매
2. 이에 온 이스라엘 사람들이 다윗 따르기를 그치고 올라가 비그리의 아들 세바를 따르나 유다 사람들은 그들의 왕과 합하여 요단에서 예루살렘까지 따르니라
3. 다윗이 예루살렘 본궁에 이르러 전에 머물러 왕궁을 지키게 한 후궁 열 명을 잡아 별실에 가두고 먹을 것만 주고 그들에게 관계하지 아니하니 그들이 죽는 날까지 갇혀서 생과부로 지내니라
4. 왕이 아마사에게 이르되 너는 나를 위하여 삼 일 내로 유다 사람을 큰 소리로 불러 모으고 너도 여기 있으라 하니라
5. 아마사가 유다 사람을 모으러 가더니 왕이 정한 기일에 지체된지라
6. 다윗이 이에 아비새에게 이르되 이제 비그리의 아들 세바가 압살롬보다 우리를 더 해하리니 너는 네 주의 부하들을 데리고 그의 뒤를 쫓아가라 그가 견고한 성읍에 들어가 우리들을 피할까 염려하노라 하매
7. 요압을 따르는 자들과 그렛 사람들과 블렛 사람들과 모든 용사들이 다 아비새를 따라 비그리의 아들 세바를 뒤쫓으려고 예루살렘에서 나와
8. 기브온 큰 바위 곁에 이르매 아마사가 맞으러 오니 그 때에 요압이 군복을 입고 띠를 띠고 칼집에 꽂은 칼을 허리에 맸는데 그가 나아갈 때에 칼이 빠져 떨어졌더라



<마침 거기에 불량배 하나가 있으니 그의 이름은 세바인데 베냐민 사람 비그리의 아들이었더라 그가 나팔을 불며 이르되 우리는 다윗과 나눌 분깃이 없으며 이새의 아들에게서 받을 유산이 우리에게 없도다>(1절).
<거기에>라고 번역된 히브리어 <솽>은 두 가지 의미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먼저 장소적 의미로 <그곳에서>를 뜻합니다. 따라서 당시 <세바>라는 자가 지파간의 갈등과 다툼이 벌어진 현장인 그 길갈에 있었음을 가리킵니다. 또한 이 말은 시간적인 의미로 <그 일로부터>라는 뜻으로도 해석됩니다. 따라서 이 어휘는 <세바의 난>이 결국은 다윗 왕의 환궁을 둘러싼 지파간의 다툼에서 비롯된 것이었음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세바에 관해 <불량배>라고 한 것은 그가 곧 부도덕하고 사악한 자로서 하나님과 사람에게 아무런 유익도 끼칠 수 없는 무익한 자라는 뜻입니다(고후 6:15). 그런 자가 유다와 이스라엘간의 갈등의 틈을 노려 <나팔>을 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는 <우리는 다윗과 나눌 분깃이 없다, 이새의 아들에게서 받을 유산이 없다>며 다윗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식의 표현은 물론 아예 다윗으로부터 독립하여 새로운 나라를 세우겠다는 의도까지 드러냅니다. 


<이에 온 이스라엘 사람들이 다윗 따르기를 그치고 올라가 비그리의 아들 세바를 따르나 유다 사람들은 그들의 왕과 합하여 요단에서 예루살렘까지 따르니라>(2절). 
그런데 예루살렘 왕궁으로 돌아온 다윗이 <전에 머물러 왕궁을 지키게 한 후궁 열 명을 잡아 별실에 가두고 먹을 것만 주고 그들에게 관계하지 아니하니 그들이 죽는 날까지 갇혀서 생과부로>(3절) 지냈다고 합니다. 그들은 다 예루살렘 성에 남겨져 있다 압살롬에게 백주에 강간당했던 후궁들이었습니다. 


사실 다윗이 그들을 성 밖으로 내쫓을 수도 있었으나 그렇게 별실에 가둔 것은 당초 그들을 궁에 남겨놓은 자신에게도 일말의 책임이 있음을 인정하고 죽이거나 추방하는 대신 격리하여 평생을 생과부로 살게 한 것입니다. 따라서 그들도 결국은 이용당할 대로 당하다 마침내 비참하게 버려진 수많은 이름 없는 하나님의 불쌍한 백성들 중 하나였다고 봐야 합니다. 비록 왕궁에서 살았던 후궁들이었지만 그럼에도 자신의 선택과는 상관없이 불행한 삶을 산 역사와 권력의 진정한 피해자였음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불량배요 반역자가 된 <세바>에 대해 아는 대로 적어보십시오.
-이스라엘 사람과 유다 사람의 갈등과 대립에 관해 당신의 판단과 견해를 적어 보십시오.
-별실에 갇혀 평생 생과부로 지냈다(3절)는 다윗의 후궁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주님, 겨우 압살롬의 반란을 격퇴하고 수습했는데 그 혼란을 틈타 다시 불량배 <세바>가 나팔을 불며, 이스라엘 사람들을 선동했다고 합니다. 그런가 하면 예루살렘 왕궁에 남아있다 압살롬에게 가장 치욕적으로 당한 후궁 열 명은 별궁에 갇혀 평생을 생과부로 지냈다고 합니다. 역사의 이런 숱한 우여곡절과 모순을 보며 오늘 저희로 하여금 하나님의 뜻과 섭리와 경륜을 보다 깊이 깨닫게 해주시옵소서. 
 
   
습관과 관습


“습관을 뒤집으면 관습.
 관습을 뒤집으면 습관.”


정철 저(著) 《꼰대 김철수》(허밍버드, 119쪽)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개인과 사회는 연결되어 있습니다. 서로 거울과 같습니다. 개인의 습
관이 사회적인 관습이 될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나 한 사람이 ‘습관’을 바꾸면 사회 전체의 ‘관습’이
달라질 수 있는 첫 출발이 됩니다. 첫 시작은 늘 한 명, 한 뼘, 한 톨
에서 시작됩니다. 한 사람이 말을 하면 주장이 되지만, 한 사람 한 사
람이 동의하여 많은 사람이 같은 말을 하면 법칙이 됩니다.  
겨자씨 같은 그 작은 움직임이 결국 거대한 물결을 만들어 냅니다.
가정이 화목해지는 첫 걸음도 내가 먼저 변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가 먼저 변하는 첫 걸음은 신실한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의 은
혜를 받는 것입니다.


“마치 사람이 자기 채소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 자라 나
무가 되어 공중의 새들이 그 가지에 깃들였느니라.” (눅13:19)
   
요한복음 8장 32절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요한복음 8장 32절)
Then you will know the truth, and the truth will set you free. (John 8:32)
   
궁극적인 행복을 위해 사는 사람들
리의 믿음은 우리가 가진 소망으로 인하여 
때로 인간의 보편적 감각과는 등져야 할 때가 있다. 
아마 보통 사람들이라면
 ”당신이 원하는 것들을 취하라. 
또한 당신의 후각을 자극하며,
 미각을 돋구는 것들을 맘껏 맛보라. 
그리고 당신의 욕구대로 당신이 얻을 수 있는 것이면 
무엇이나 손에 넣으라”는 식의 말을 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세인(世人)들의 생각과는 달리 
성경은 ”너의 감각을 의지하지 말고 오직 
믿음의 눈으로만 볼 수 있는 하나님을 의지하라”고 말하고 있다.
-존 맥아더 목사의 ‘믿음이란 무엇인가’에서-


그리스도인은 미래의 하나님의 약속들로 인하여 
현실의 쾌락을 포기합니다. 
오래 전, 에피큐루스는
 인생의 주된 목적이 쾌락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일시적이 아닌 궁극적이고도 
영원한 행복을 찾기 위해 긴 안목을 가져야 하는데 
대부분 일시적 쾌락은 곧 괴로움으로 화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인 우리는 궁극적인 행복을 위해 사는 사람들입니다.
 내세(來世)에서의 영화로운 삶을 기대하며, 
이 세상에서의 작은 고통을 기꺼이 감수해 나가십시오.
그리스도인은 그런 믿음을 가진 신앙인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