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Faith - Hymn

누이야, 지금은 잠잠히 있으라 (삼하 13:15-22)

鶴山 徐 仁 2021. 5. 7. 12:18

누이야, 지금은 잠잠히 있으라 (삼하 13:15-22)

 

 

05월 07일 (금)

   

누이야, 지금은 잠잠히 있으라 (삼하 13:15-22)


15. 그리하고 암논이 그를 심히 미워하니 이제 미워하는 미움이 전에 사랑하던 사랑보다 더한지라 암논이 그에게 이르되 일어나 가라 하니
16. 다말이 그에게 이르되 옳지 아니하다 나를 쫓아보내는 이 큰 악은 아까 내게 행한 그 악보다 더하다 하되 암논이 그를 듣지 아니하고
17. 그가 부리는 종을 불러 이르되 이 계집을 내게서 이제 내보내고 곧 문빗장을 지르라 하니
18. 암논의 하인이 그를 끌어내고 곧 문빗장을 지르니라 다말이 채색옷을 입었으니 출가하지 아니한 공주는 이런 옷으로 단장하는 법이라
19. 다말이 재를 자기의 머리에 덮어쓰고 그의 채색옷을 찢고 손을 머리 위에 얹고 가서 크게 울부짖으니라
20. 그의 오라버니 압살롬이 그에게 이르되 네 오라버니 암논이 너와 함께 있었느냐 그러나 그는 네 오라버니이니 누이야 지금은 잠잠히 있고 이것으로 말미암아 근심하지 말라 하니라 이에 다말이 그의 오라버니 압살롬의 집에 있어 처량하게 지내니라
21. 다윗 왕이 이 모든 일을 듣고 심히 노하니라
22. 압살롬은 암논이 그의 누이 다말을 욕되게 하였으므로 그를 미워하여 암논에 대하여 잘잘못을 압살롬이 말하지 아니하니라

 

 

<그리하고 암논이 그를 심히 미워하니 이제 미워하는 미움이 전에 사랑했던 사랑보다 더한지라 암논이 그에게 이르되 일어나 가라>(15절).

조금 전까지만 해도 병이 날만큼(2절) 사랑하더니 이제 성적 욕구를 채우고 나자 다말이 <심히 미워졌다>고 합니다. 상대의 인격에 대한 진정한 사랑 없이 본능적인 욕구에만 사로잡힌 경우 일단 그 육체적 욕망이 충족되고 나면 수치감, 허탈감, 상대에 대한 혐오감에 사로잡혀 그 대상을 병적으로 외면하기도 한다는데 암논이 지금 바로 그런 심리현상을 드러내고 있는 것입니다. 

 

<다말이 그에게 이르되 옳지 아니하다 나를 쫓아 보내는 이 큰 악은 아까 내게 행한 그 악보다 더하다>(16절).

암논은 자기로 인해 불행한 생을 맞게 된 다말에 대해 일말의 동정심이나 죄의식도 없이 <일어나 가라!>며 쫓아냈습니다. 그래서 다말이 이것이야말로 아까 행한 성폭력보다도 더 악한 짓이라고 성토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암논은 비정했습니다. 

<그가 부리는 종을 불러 이르되 이 계집을 내보내고 곧 문빗장을 지르라>(17절).

암논의 이러한 만행은 실로 자신의 양심에 빗장을 지르는 것이고, 하나님의 심판의 문빗장을 지르는 짓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우리는 각자의 집을 하나님의 슬기로움으로, 경건으로 지어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면 그 집의 기둥은 어느 새 좀이 쓸고 말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으로 <사귐의 의미>를 배우며 자라는 가정은 쉽게 무너지지 않고 오히려 세월의 흐름 속에서 더욱 영글고 사랑이 성숙해지는 집이 될 것입니다. 그것은 서로 간에 나누는 인생의 지혜가 풍족하기 때문이며, 그 나눔으로 인해서 서로를 다함없이 아끼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런 가정이 양육하는 인간형은 이 세상을 참으로 위로하고 또 변화시켜 나가는 힘을 갖게 될 것입니다. 

 

보십시오. 그렇지 못하고 서로 간의 거리가 얼마나 멀어지고 말았는지를 뒤늦게 서야 발견하는 아픔을 겪게 된 다윗 집의 비극이야말로 얼마나 참혹합니까? 

<다말이 재를 자기의 머리에 덮어 쓰고 그의 채색 옷을 찢고 ... 크게 울부짖으니라>(19절).

<그의 오라버니 압살롬이 그에게 이르되 누이야 지금은 잠잠히 있고 ... 근심하지 말라>(20절).

<다윗 왕이 이 모든 일을 듣고 심히 노하니라>(21절). 

 

-암논이 다말을 강제로 범한 후 왜 버렸을까요?

-다윗은 왜 암논을 징계하지 않았을까요?

-압살롬은 왜 다말에게 <지금은 잠잠히 있으라>(20절)고 했을까요?

 

과연 암논은 무책임하고 비정했습니다. 배다른 누이 다말을 사랑한 게 아니라 오직 육체적 욕구를 채우기 위한 도구쯤으로 여겼습니다. 그래서 강제로 그게 충족되자 일말의 여지도 없이 다말을 버렸습니다. 다말이 눈물로 호소했지만 소용없었습니다. 암논의 그런 죄악이 결국은 엄청난 가정적 비극을 초래하고 말았음을 저희로 하여금 바르게 보고 또 깊이 깨닫게 해주시옵소서.

 
   

'개미와 베짱이’ 찬란한 오늘도 중요하다

 

“이솝의 개미와 베짱이 우화는 그런 이데올로기를 어린아이들에게 주

입시켰다. 언제나‘10년 후 영광’을 들으며 죽어라 앞으로 내달렸다.

그렇게 우리는 늘 현재의 행복은 바람직한 것이 아니라 멀리해야 하는

것으로 세뇌당했다.”

 

김경집 저(著) 《인생의 밑줄》 (한겨레출판, 249쪽) 중에 나오는 구절

입니다.

고진감래(苦盡甘來). 쓴 것이 다하면 단 것이 온다는 뜻으로, 고생 끝에

즐거움이 온다는 것을 이르는 말입니다. 찢어지게 가난했던 시절,죽음

과도 같은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고진감래는 거의 신앙과도 같은 말이

었습니다. 지금은 새로운 해석이 필요합니다. 고진감래를 잘못 해석하

면, 지금 누리는 즐거움은 낭비의 지름길이고 미래를 망치는 타락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지금 행복하지 않으면 정작 행복이 무엇인지

모르고 살게 됩니다. 행복도 경험하고 연습해야 합니다. 경험하지 못한

행복은 관념이고 허위의식일 뿐입니다.

하버드대학의 탈 벤 샤하르 교수는 미래의 보상을 위해서 현재의 고통을

참아내야 한다는 삶의 태도를 ‘채식주의자의 맛없는 음식’ 이라고 비

유했습니다. 지금 당장 맛은 없지만 훗날 몸에 좋기 때문에 꾹 참고

먹는 음식이라는 것입니다. 내일도 없이 오직 오늘의 쾌락을 위해 정크

푸드를 마구 먹는 인생은 두말할 것도 없이 미련한 인생입니다. 그러나

내일을 위해 오늘을 죽이는 것은 반쪽의 행복입니다. 찬란한 미래를

위한 오늘이 아닌, 찬란한 오늘을 살아 그것을 미래로 이어가기 위한

오늘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오늘의 중요성과 오늘의 행복과 오늘의

헌신을 얼마나 강조하시는 지 모릅니다.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고후6:2)

   

잠언 16장 9절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 (잠언 16장 9절)

In his heart a man plans his course, but the LORD determines his steps. (Proverbs 16:9)

   

기도가 없는 사람은

기도가 없는 사람은 십자가를 질 수가 없다.

 기도가 없는 사람은 핍박이 오면 도망간다.

기도가 없는 사람은 환란과 시험을 이길 수 없다.

기도가 없는 사람은 유혹을 물리칠 힘이 없다.

 기도가 없는 사람은 누구나 베드로처럼 

실패할 수밖에 없다.

 -정필도 목사의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웠으니’에서-   

 

직분을 막론하고 기도가 없는 사람은 

신앙생활을 바르게 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기도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기대를 걸지 않습니다. 

오늘날 이 세상이 얼마나 악하고 유혹과 시험이 많습니까!

 신앙생활 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이런 세상을 살면서 기도가 없는 사람은 

  바른 신앙생활을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도하십시오

기도하지 않으면 실패할 수 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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