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Faith - Hymn

당신이 바로 그 사람 (삼하 12:7-15)외 1

鶴山 徐 仁 2021. 5. 2. 11:52

당신이 바로 그 사람 (삼하 12:7-15)

 

 

05월 01일 (토)

   

당신이 바로 그 사람 (삼하 12:7-15)


7. 나단이 다윗에게 이르되 당신이 그 사람이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이르시기를 내가 너를 이스라엘 왕으로 기름 붓기 위하여 너를 사울의 손에서 구원하고
8. 네 주인의 집을 네게 주고 네 주인의 아내들을 네 품에 두고 이스라엘과 유다 족속을 네게 맡겼느니라 만일 그것이 부족하였을 것 같으면 내가 네게 이것 저것을 더 주었으리라
9. 그러한데 어찌하여 네가 여호와의 말씀을 업신여기고 나 보기에 악을 행하였느냐 네가 칼로 헷 사람 우리아를 치되 암몬 자손의 칼로 죽이고 그의 아내를 빼앗아 네 아내로 삼았도다
10. 이제 네가 나를 업신여기고 헷 사람 우리아의 아내를 빼앗아 네 아내로 삼았은즉 칼이 네 집에서 영원토록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고
11. 여호와께서 또 이와 같이 이르시기를 보라 내가 너와 네 집에 재앙을 일으키고 내가 네 눈앞에서 네 아내를 빼앗아 네 이웃들에게 주리니 그 사람들이 네 아내들과 더불어 백주에 동침하리라
12. 너는 은밀히 행하였으나 나는 온 이스라엘 앞에서 백주에 이 일을 행하리라 하셨나이다 하니
13. 다윗이 나단에게 이르되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 하매 나단이 다윗에게 말하되 여호와께서도 당신의 죄를 사하셨나니 당신이 죽지 아니하려니와
14. 이 일로 말미암아 여호와의 원수가 크게 비방할 거리를 얻게 하였으니 당신이 낳은 아이가 반드시 죽으리이다 하고
15. 나단이 자기 집으로 돌아가니라 우리아의 아내가 다윗에게 낳은 아이를 여호와께서 치시매 심히 앓는지라

 

<나단이 다윗에게 이르되 당신이 그 사람이라 ... 내가 너를 이스라엘 왕으로 기름 붓기 위하여 너를 사울의 손에서 구원하고 ... 이스라엘과 유다 족속을 네게 맡겼느니라 만일 그것이 부족하였을 것 같으면 내가 네게 이것저것을 더 주었으리라 그런데 어찌하여 네가 여호와의 말씀을 업신여기고 나 보기에 악을 행하였느냐 네가 칼로 헷 사람 우리아를 치되 암몬 자손의 칼로 죽이고 그의 아내를 빼앗아 네 아내로 삼았도다>(7-9절).

 

나단의 비유를 남의 얘기로만 알고 분노하는 다윗의 무딘 양심을 찌르며 결정적으로  <당신이 바로 그 사람이라>고 지적하는 대목입니다. 하나님은 나단 선지자의 입을 통해 <네가 암몬 자손의 칼로 우리아를 살해하고 그의 아내를 빼앗았다>고 적나라하게, 통렬하게 단죄하셨습니다. 

 

또한 그것은 누구보다도 풍성한 은혜를 체험한 자로서 하나님을 배반한 배은망덕이라는 사실도 고발하셨습니다. <부족하였을 것 같으면 내가 네게 더 주었으리라>는 말씀은 부족함 없이 채워주셨건만 다윗이 더욱 과욕을 부려 큰 범죄에 빠졌다는 책망입니다. 

 

감사의 행위는 은혜의 원천적 존재에 대하여 그가 귀중하게 인식하고 있다는 것과 그 하나님의 하나님 다움을 전폭적으로 받아들인다는 신뢰감의 표현입니다. 그러한 인식과 믿음 속에서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는 회복되는 것이며 구원은 바로 그렇게 되살려진 관계를 통해 성취되는 사건입니다. 만일 이와는 달리 자신이 받은 은혜의 원천에 대하여 귀하게 여기지 않는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은총을 멸시하는 것이자 관계회복에 이르는 길을 외면하는 결과를 가져올 뿐입니다. 

이제 다윗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가 선고됩니다. 

<칼이 네 집에서 영원토록 떠나지 아니하리라>(10절)

<그 사람들이 네 아내들과 더불어 백주에 동침하리라>(11절)

<당신이 낳은 아이가 반드시 죽으리이다>(14절)

그리고 이 말씀들은 후에 실제 다 이루어졌습니다. 물론 다윗은 나단 선지자의 이 말씀을 듣고 즉각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며 회개했습니다. 비록 간단한 한 마디이지만 그럼에도 이것은 다윗의 진정한 자복이었습니다. 이 때 지은 다윗의 회개의 시가 바로 시편 32편입니다. 

 

-<칼이 네 집에서 영원토록 떠나지 아니하리라>(10절)는 말씀은 후에 어떻게 성취되었을까요(13:28-29, 18:14, 왕상 2:24-25)?

-<네 아내들과 더불어 동침하리라>(11절)는 말씀은 후에 어떻게 성취되었을까요(16:21-22)?

-다윗은 자신의 죄에 대한 변명이나 일체 정당화 하려는 시도가 없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주님, 다행히도 다윗은 나단 선지자의 그 찌르는 듯한 고발 앞에서 순순히 자신의 범죄 를 시인하며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했다>고 진술했습니다. 그 어떤 부인이나 변명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도 그의 <죄를 사하셨다>(13절)고 했습니다. 그럼에도 징계는 피하지 못했습니다. 저희로 하여금 다시 한 번 죄의 무서움과 하나님의 징계의 혹독함을 다윗의 경우를 통해 깨닫고 또 배우게 해주시옵소서.

 
   

거북이가 이길 수 밖에 없는 이유

 

 

거북이가 이길 수 밖에 없는 이유

 

“거북이가 이길 수밖에 없는 이유는

토끼는 경쟁 상대를 보고 달리기 경주를 시작했지만

거북이는 목표를 향해 달렸기 때문이지요”

 

김수민 저(著) 《너에게 하고 싶은 말》 (샘앤 파커스, 173쪽) 중에 나

오는 구절입니다.

거북이는 산꼭대기가 목표였지만, 토끼는 거북이가 목표였습니다.

거북이는 목표를 바라보며 계속 달렸지만,토끼는 목표가 아닌 거북이를

바라보았기에 낮잠을 자다가 경주에서 지고 말았습니다. 목표를 보지 않

고 경쟁 상대만 신경 쓰는 인생은 자신의 삶이 아닌 남의 삶을 살려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목표와 비슷한 말은 ‘비전’입니다. 하나님은 비전이 없는 백성을 가

리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묵시가 없으면 백성이 방자히 행하거니와 율법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느니라.” (잠29:18)

 

비전이 없는 인생은  그저 살아 있다는 것이 루머 같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나의 이유가 있습니다.

그 길이 자유의 길입니다.

   

능력

만일 다윗이 사울 왕의 갑옷을 입고 나가서 싸워 골리앗을 이겼다면, 이스라엘 군사들은 이렇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사울 왕의 갑옷 때문에 다윗이 이겼을 거야. 나에게도 사울 왕의 갑옷같이 안전한 옷이 있다면 나가서 싸웠을 거야.’ 아무도 사울 왕의 갑옷을 입혀 주기 전까지는 싸우려고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다윗이 목동의 옷을 입고 나가서 골리앗을 이겼을 때, 이스라엘 군사들은 그 모습을 보고 자신들도 싸울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을 것입니다. 힘은 사울의 갑옷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온다는 것을 자신들의 눈으로 봤기 때문이죠.

최병락의 [부족함] 중에서-

 

다윗은 사울의 갑옷과 투구와 칼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부족하지만 하나님을 의지하며 골리앗과 한판 승부를 버립니다. 사람들은 아직 싸울 준비가 안되었다고 말합니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고 무조건적으로 나가 싸우라는 말도 아닙니다. 일상의 삶속에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했다면 하나님은 골리앗과의 싸움에도 함께 해 주실 것을 믿는 믿음으로 나가라는 것입니다. 더 큰 칼과 창을 준비하는 교회는 세상과 비슷한 성장논리에 빠진 것입니다. 지금 내게 있는 물맷돌을 집어 들고 부족함은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04월 30일 (금)

   

나단의 비유 (삼하 12:1-6)


1. 여호와께서 나단을 다윗에게 보내시니 그가 다윗에게 가서 그에게 이르되 한 성읍에 두 사람이 있는데 한 사람은 부하고 한 사람은 가난하니
2. 그 부한 사람은 양과 소가 심히 많으나
3. 가난한 사람은 아무것도 없고 자기가 사서 기르는 작은 암양 새끼 한 마리뿐이라 그 암양 새끼는 그와 그의 자식과 함께 자라며 그가 먹는 것을 먹으며 그의 잔으로 마시며 그의 품에 누우므로 그에게는 딸처럼 되었거늘
4. 어떤 행인이 그 부자에게 오매 부자가 자기에게 온 행인을 위하여 자기의 양과 소를 아껴 잡지 아니하고 가난한 사람의 양 새끼를 빼앗아다가 자기에게 온 사람을 위하여 잡았나이다 하니
5. 다윗이 그 사람으로 말미암아 노하여 나단에게 이르되 여호와의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이 일을 행한 그 사람은 마땅히 죽을 자라
6. 그가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고 이런 일을 행하였으니 그 양 새끼를 네 배나 갚아 주어야 하리라 한지라

 

하나님이 나단 선지자를 다윗에게 보내셨습니다. 나단은 다윗이 자신의 성전 건축 계획을 상의한 적이 있는 선지자입니다(7:2). 나단은 특히 왕의 권세 앞에서도 주눅 들지 않고 당당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외치는 용기 있고, 담대한 선지자였습니다. 

 

<... 한 성읍에 두 사람이 있는데 한 사람은 부하고 한 사람은 가난하니>(1절).

나단 선지자가 이렇게 비유로 다윗을 비판하고 책망한 것은 한 나라의 왕인 다윗과의 직접적인 충돌을 피하고, 다윗 스스로 자신의 죄를 깨닫고 고백하도록 유도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비유는 어리석고 완악한 인간을 진리 가운데로 이끄는 아주 효과적인 방법 가운데 하나입니다(사 5:1, 겔 17:3, 19:2-3, 24:3, 마 13:34). 

 

<그 부한 사람은 양과 소가 심히 많으나>(2절). 

이 <부한 사람>이 바로 다윗입니다. 그리고 심히 많은 <양과 소>란 다윗의 수많은 처첩들을 가리킵니다(3:2-5, 5:13-16, 대상 3:1-9). 나단 선지자가 이 비유를 통한 고발은 다윗은 이미 수많은 아내들을 거느리고 있었음에도 다시 하나 뿐인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빼앗기 위해 그 몹쓸 범죄를 저질렀다는 것입니다. 

 

<가난한 사람은 아무것도 없고 ... 작은 암양 새끼 한 마리뿐이라>(3절). 

<부자가 자기에게 온 행인을 위하여 자기의 양을 잡지 아니하고 가난한 사람의 양 새끼를 배앗아다가 자기에게 온 사람을 위하여 잡았나이다>(4절).

나단 선지자의 고발을 듣고 과연 다윗이 크게 노했다고 합니다. <... 나단에게 이르되 여호와의 살아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이 일을 행한 그 사람은 마땅히 죽을 자라 그가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고 이런 일을 행하였으니 그 양 새끼를 네 배나 갚아 주어야 하리라>(5-6절). 

 

자신이 바로 그 부자인 줄도 모르고 흥분하여 <죽을 자라>, <네 배나 갚아 주어야 하리라>며 열심히 심판하고 있는 다윗의 모습을 보십시오. 자기의 입으로 자신의 행위를 정죄하고 있습니다. 

 

-주님이 말씀하신 비유 가운데서 당신이 기억하는 것 다섯 개만 간략히 적어 보십시오.

-나단 선지자에 대해 아는대로 적어 보십시오.

-다윗이 왜 <양 새끼를 네 배나 갚아 주어야 하리라>(6절)고 했을까요(출 21:37, 22:1)?

 

주님, 나단 선지자의 비유가 주효했습니다. 그 비유의 진정한 의미를 미처 깨닫지 못한 다윗이 흥분하며 <그 사람은 마땅히 죽을지라>고 했고, <네 배나 갚아 주어야 하리라>며 자신을 심판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저희 인생은 누구나 자기 눈의 들보는 깨닫지 못하면서 남의 눈의 티끌에는 흥분하여 쉽게 형벌을 선고합니다. 그 점에서는 다윗도 예외가 아님을 확인하며 더욱 자신을 돌아보게 되오니 늘 겸허하게 회개하며 사는 저희들 되게 해주시옵소서. 

 
   

아버지라고 부른다는 것

 

“플라톤에게 하나님은 ‘선한 것의 이데아’였으며,아리스토텔레스에

게는‘원동자’였다. 헤겔은 하나님을 ‘절대자’로 보았고,

스펜서는 ‘불가지론의 존재’(the Unknowable)로 보았다.

헉슬리는 하나님을 ‘인간의 생각이 만들어낸 존재’라고 말했고,

프로이트는 하나님을 ‘이상화된 초인’이라고 보았다.”

 

웨렌 위어스비 저(著) 김창동 역(譯)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

서도》 (디모데, 78쪽)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사도 바울은 아테네의 한 제단에서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고 적힌

문구를 보았습니다(행17:22-23). 성령을 받지 못한 사람의 눈에 하나

님은 추상적이고 멀리 있는 절대 타자(他者)일 뿐입니다. 그런데 예수

님은 우리에게 기도를 가르쳐 주시면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

도록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마6:9)

 

우리가 기도하는 대상이신 하나님은 무서운 폭군도 아니고, 거래처 사

장님도 아니고, 이웃집 아저씨도 아니고, 더군다나 미지의 신도 아닌

하늘의 아버지이십니다.

아버지는 자녀들에게 좋은 것을 채워주는 것이 가장 큰 기쁨입니다. 그

러기에 하늘의 아버지에게 기도하는 성도들의 기도는 강력한 힘이 있

습니다.  

   

에베소서 4:3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에베소서 4:3>

Make every effort to keep the unity of the Spirit through the bond of peace.

   

헌신

헌신이란 몸과 마음을 바쳐 있는 힘을 다하는 것이다. 이 말을 새겨보면 부지런하고, 진실하며, 성실하고, 참아내며, 충성한다는 단어를 생각나게 한다. 이런 단어들이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성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인 성령의 열매와 비슷한 것은 부부의 사랑에서 나오는 깊은 헌신이 성령이 충만한데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이리라

-신언혁의 [사랑, 다시 한 번] 중에서-

 

헌신은 사랑입니다. 부부가 서로 헌신한다는 것은 충성을 다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이기고 견디어 한 몸을 이룬 가정을 세워갈 때, 부부는 서로에 대한 예의와 헌신을 다짐하였습니다. 이 일을 위해 가정은 늘 주님의 주권가운데 있어야 하며, 늘 주의 성령이 운행하시도록 깨어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부부를 통해 온전한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시는 훈련을 시키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