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논과 다말 (삼하 13:1-6)
05월 05일 (수)
암논과 다말 (삼하 13:1-6) 1. 그 후에 이 일이 있으니라 다윗의 아들 압살롬에게 아름다운 누이가 있으니 이름은 다말이라 다윗의 다른 아들 암논이 그를 사랑하나
<다윗의 아들 압살롬에게 아름다운 누이가 있으니 이름은 다말이라 다윗의 다른 아들 암논이 그를 사랑하나 그는 처녀이므로 어찌할 수 없는 줄을 알고 암논이 그의 누이 다말 때문에 울화로 말미암아 병이 되니라>(1-2절). 암논은 다윗의 맏아들로 그의 후계를 이을 왕세자였습니다. 그런데 그가 이복누이인 다말을 <사랑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실은 사랑이 아니라 범하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힌 것이었습니다. 암논은 이 문제를 그의 사촌 형인 요나답에게 털어놓고 의논하는데 간교한 요나답이 암논에게 한 가지 꾀를 일러줍니다. 즉 아픈 척하여 다말을 자신의 방으로 유인해 강간하게 한 것입니다.
<침상에 누워 병든 체하다가 네 아버지가 너를 보러 오거든 너는 원하건대 내 누이 다말이 와서 내게 떡을 먹이되 내가 보는 데에서 떡을 차려 그의 손으로 먹여주게 하옵소서 하라>(5절). 이것은 자식에 대한 다윗 왕의 남다른 애정을 이용하여 암논의 성적 욕망을 이루게 하려는 요나답의 간교한 계략이었는데 사촌인 요나답이 암논에게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그같이 도운 것은 암논이 다윗의 장자로서 왕위 계승 서열 1위였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다말>은 <종려나무>란 뜻으로 다윗이 그술 왕 달매의 딸 <마아가>에게서 얻은 자식인데 다말은 오빠인 <압살롬>과 함께 외모가 남보다 매우 뛰어났습니다(14:25). 그래서 다윗이 이스르엘 여인 아히노암에게서 얻은 장자 암논이 그 이복누이 동생인 다말을 사랑했다는 것인데, 그가 다말을 범한 후 오히려 그를 버린 사실에서도 잘 드러나듯 암논은 다말을 사랑한 게 아니라 단지 그의 육체를 탐했을 뿐이었습니다.
역사의 수많은 고비 고비마다 권력과 폭력에 짓밟힌 수많은 여인들의 모습이 이 다말 사건에 그대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성폭력 가해자, 방조하고 협조한 자들의 죄악상과 위선이 그대로 다 폭로되고 있습니다. 이 사건은 그 진상이 자세하게 고발되면서 가해자들을 성토하게 하지만 결국 다말의 친오빠인 압살롬이 자신의 이복형인 암논을 살해함으로써 다윗에게 더욱 견딜 수 없는 아픔을 안깁니다.
-<압살롬>은 다윗의 몇째 아들이었습니까(1절)? -다윗의 형 <시므아>(3절)는 이새의 몇째 아들이었습니까(대상 2:13)? -다윗의 장남 암논의 성폭력 사건을 보며 당신은 어떤 생각을 하셨습니까?
주님, 암논의 다말에 대한 성폭행은 인간의 악함을 여실히 드러낸 사건이었습니다. 비록 배다른 형제지만 자신의 누이를 해치기 위해 사촌과 수작하고 아버지까지 이용해 결국은 씻을 수 없는 악을 범하고 자신의 욕구를 채운 후에는 또 비참하게 버렸습니다. 그리고 그 사건이 또 엄청난 비극을 불러 다윗의 가슴에 큰 못을 박았습니다. 저희들 다시 한 번 자신을 살피며 더욱 바르게, 더욱 경건하게 살아가도록 성령으로 이끌어 주시옵소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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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와 거북이」 무언가 부족한 이야기
“인간들은 참으로 기이한 동물이다. 토끼와 거북이에게 경주를 시키고 빠른 토끼를 방심과 나태로 낮잠에 취하도록 만든다. 그리고 느린 거북 이를 성실과 인내로 토끼보다 먼저 골인 지점에 도달하는 승리자로 만든 다. 하지만 왜 토끼의 홈그라운드인 육지에서 한 번만 경주를 시키고 마는가. 거북이의 홈그라운드인 바다에서 경주를 시켰다면 다른 결과가 나타날 수도 있지 않은가.”
이외수 저(著) 《청춘불패》(해냄, 270-271쪽)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굴 파는 데는 토끼가 선생이고, 구르는 데는 굼벵이가 선생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미물들에게 자신의 길을 주었습니다.
“제비는 하늘을 잘 날고, 두더지는 땅을 잘 파고, 잉어는 헤엄을 잘 치 고, 다람쥐는 나무를 잘 탄다. 각기 다른 성정과 재능을 가지고 태어난 동물들을 같은 날, 같은 장소에 모아놓고 같은 방법, 같은 규칙으로 우 수성을 측정하는 행위가 과연 타당한 것일까.” (271쪽)
미물들도 이러할진대 사람은 더할 나위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내게 주신 분량만큼 삶을 결산하십니다. 거북이에게 토끼같은 능력이 왜 없냐고 질책하시지 않습니다. 나에게 주신 것, 나에게 하라고 하신 것. 그것이 가장 아름다운 것이 요, 그 일을 이룰 때 하나님이 영광 받으십니다.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 (요17: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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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디아서 6장 9절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갈라디아서 6장 9절) Let us not become weary in doing good, for at the proper time we will reap a harvest if we do not give up. (Galatians 6: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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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종이 직무 유기를 하면 왜 하나님은 이 시대에 실력있고 능력있는 사람이 많을 텐데 하필이면 우리를 먼저 구원하셨을까요? 우리에게 영혼 구원을 맡기시기 원해서입니다. 갈릴리 바닷가에서 베드로와 안드레, 야고보 요한을 뽑으신 이유도 그렇습니다. 주님은 그들을 통해 그 땅에 복음이 전파되길 원하셨습니다. 오늘 이 시대에 저와 여러분을 먼저 부르신 것도 그 직무를 수행하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 섭리와 계획을 발견하시고 하나님의 종으로 구원 받고 부름 받은 우리는 주신 직무를 태만히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최영환 목사의 ‘죄인을 추적하시는 하나님’에서-
직무유기가 뭡니까? 자기의 일을 포기하거나 그 일을 수행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형법 제7장 제122조에 의하면 “공무원이 정당한 이유 없이 그 직무수행을 거부하거나 그 직무를 유기한 때에는 1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3년 이하의 자격정지에 처한다.” 라고 했습니다 세상 공무원도 직무를 유기하면 엄벌에 처하게 되는데 하나님의 종인 우리가 영혼 구원의 일을 태만히 하면 하나님은 우리를 그냥 두질 않고 어디라도 쫓아가 붙잡으시고 붙들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지 않으면 안 되도록 엄히 역사하실 것입니다. |
05월 04일 (화)
솔로몬 (삼하 12:24-31) 24. 다윗이 그의 아내 밧세바를 위로하고 그에게 들어가 그와 동침하였더니 그가 아들을 낳으매 그의 이름을 솔로몬이라 하니라 여호와께서 그를 사랑하사
<다윗이 그의 아내 밧세바를 위로하고 그에게 들어가 그와 동침하였더니 그가 아들을 낳으매 그의 이름을 솔로몬이라 하니라>(24절). 이제 밧세바를 <우리아의 아내>(15절)라 하지 않고 <다윗의 아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밧세바를 다윗의 아내로 인정하셨다는 사실과 그 둘 사이에서 태어난 솔로몬이 그들의 적자라는 사실을 뜻하는 것입니다.
<솔로몬>이란 <평강의 사람>이란 뜻입니다. 다윗이 아들의 이름을 <솔로몬>이라 지은 것은 다윗 당대의 피 흘리는 전쟁의 시대가 끝나고 아들의 시대라는 하나님의 은혜로 평화의 시대가 도래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나단 선지자를 통해 하나님이 지어주신 이름은 <여디디아>였습니다. <여디디야>란 <여호와께서 사랑하시는 자>란 뜻입니다. 그렇습니다. 솔로몬은 다윗이 자신의 죄를 회개한 후 하나님께서 다윗과 밧세바 부부에게 허락하신 축복으로 솔로몬이야말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고 화해되었음을 뜻하는 상징적 존재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여디디야>라는 이름을 주사 <여호와께서 그를 사랑하셨다>는 사실을 강조하신 것입니다.
그럼에도 솔로몬은 이스라엘 역사 속에서 가장 피 비린내 나는 골육상쟁을 치러낸 인물이었습니다. 정적이라면 누구든 가차 없이 제거한 그의 권력투쟁은 가장 지혜가 뛰어났던 현군 이미지 이전에 포악한 전제군주적 인상을 주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흔히 우리가 말하는 <솔로몬의 지혜>라는 것도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만 그 실체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가 피 비린내 나는 암투와 모살 끝에 왕권을 쥐긴 했지만 백성을 다스리는 일은 또 다른 문제였습니다. 정적을 제거하듯 권력을 휘둘렀다가는 민심이 다 떠날 것이고, 그에 대한 원성도 높아질 게 뻔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잘 아는 대로 그가 하나님께 지혜를 얻고자 기도한 것입니다. 이로써 그는 자칫 포악한 군주로 남을 뻔한 기로에서 현군의 길로 들어설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곧 그가 피의 과거를 청산하고 백성들의 마음에 따뜻한 온기가 돌게 하고 섬뜩한 살기대신 기쁨과 놀라움과 화평의 분위기로의 일신이 이루어졌다는 뜻입니다.
-<솔로몬>에게 하나님이 다시 <여디디야>란 이름을 주신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25절)? -하나님께서 <솔로몬>을 특별히 사랑하신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24-25절)? -본문 27절에 나오는 <물들의 성읍>이란 어떤 곳을 가리킬까요?
주님, 본문은 여호와께서 솔로몬을 사랑하셨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솔로몬은 다윗과 밧세바 사이에서 난 둘째 아이인데 하나님이 그를 사랑하사 나단 선지자를 통해 또 다른 이름까지 지어주셨다고 했습니다. 비록 밧세바와의 관계와 우리아에 대한 범죄가 크고 중했으나 다윗의 처절한 회개를 들으시고 그렇게 은혜를 베푸신 것입니다. 저희도 회개하는 일에 태만하거나 무책임하지 않게 하사 다윗처럼 사죄의 은총과 사랑의 축복을 누리기에 부족함이 없게 해주시옵소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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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북아 이젠 전략을 바꿔
“개인 간의 경쟁이든, 기업 사이의 경쟁이든 단 한 번으로 끝나는 경 주는 없다. 다음번의 경주에서 토끼는 잠을 자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따라서 거북이가 이길 가능성은 없다.”
전옥표 저(著) 《킹핀》 (위즈덤하우스, 106쪽)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날개에 상처를 입은 새는 날지 못합니다(과거의 상처). 또한 나뭇가지가 너무 좋으면 안주하며 날지 않습니다(과거의 성공). 스티븐 코비는 명저 《성공하는 사람들의 8번째 습관》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위대한 역사가 아널드 토인비(Arnold Toynbee)는 사회와 조직의 역 사를 ‘성공만큼 큰 실패는 없다’ 는 말로 잘 표현했다. 성공은 도 전을 이겨내는 것이지만, 성공 다음에 새로운 도전에 직면했을 때 과 거에 성공했던 낡은 방식으로 대응하면 실패하게 된다는 의미이다.”
옛 성공에 안주하지 않고, 끝없는 자기 성찰과 겸손과 연구가 승리의 길입니다.
“사람의 마음의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요 겸손은 존귀의 길잡이니라.” (잠18: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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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디아서 6장 8절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갈라디아서 6장 8절) The one who sows to please his sinful nature, from that naturewill reap destruction; the one who sows to please the Spirit, from the Spirit will reap eternal life. (Galatians 6: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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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요? 내 자식이기 때문에 여러분이 길을 가시다가 중학생들이 골목에서 담배를 피우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십니까? 대부분 그냥 지나칩니다. 그러나 속으로는 한마디씩 하겠지요? “뉘 자식인지 모르지만 속깨나 섞이는 놈들이구먼”하고.... 그러나 그 가운데 여러분 아들이 들어 있다 합시다. 그러면 어찌 합니까? 그때도 뉘자식인지 모르지만 ... 하고 그냥 지나갑니까? 아니지요. 당장 붙들어다 요절을 낼 것입니다. 왜요? 내 자식이기 때문입니다. -최일환 목사의 ‘죄인을 추적하시는 하나님’에서-
여러분이 범죄를 계속하고 있음에도 하나님이 징계의 채찍을 내리지 않으시면 둘 중 하나입니다. 하나는 길이 참고 기다리시는 것이든지, 아니면 여러분이 버림받은 백성이든지. 그래서 하나님 백성이 아닌 사람들이 우상 숭배하고 각종 죄를 지으면 그냥 내버려두지만 그러나 당신의 백성이 그 짓 하면 그냥 두지 않습니다. 당장 매를 듭니다. 당신의 자녀들이 죄를 지으면 끝까지 그 잘못을 추적하여 그 죄를 깨닫게 하고 돌이키게 합니다 우리 아버지 하나님은 결코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끝까지 추적합니다. 그리고 망신을 당하게 해서라도 돌아서게 합니다. |
05월 03일 (월)
아이가 죽다 (삼하 12:16-23) 16. 다윗이 그 아이를 위하여 하나님께 간구하되 다윗이 금식하고 안에 들어가서 밤새도록 땅에 엎드렸으니
나단 선지자가 다윗에게 <당신이 낳은 아이가 반드시 죽으리라>(14절) 예언한 그대로 우리아의 아내에게서 태어난 아이가 죽었습니다. <다윗이 그 아이를 위하여 하나님께 간구하되 다윗이 금식하고 안에 들어가서 밤새도록 땅에 엎드렸으니>(16절). 다윗이 이렇게 금식하며 밤새도록 땅에 엎드려 기도한 것은 자신의 죄 때문에 죽을 수밖에 없게 된 아이를 위해서였습니다. 그럼에도 결국 <이레 밤에 그 아이가 죽었다>(18절)고 합니다.
그런데 그 사실을 확인한 후의 다윗의 행동이 의외입니다. <다윗이 땅에서 일어나 몸을 씻고 기름을 바르고 의복을 갈아입고 여호와의 전에 들어가서 경배하고 왕궁으로 돌아와 명령하여 음식을 그 앞에 차리게 하고 먹은지라>(20절). 즉, 지금까지는 아이를 위해 금식을 하며 기도했으나 이제 하나님의 뜻이 분명하게 드러나자 죽은 아이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그 하나님의 뜻을 순순히 받아들였다는 것입니다. <아이가 살았을 때에 내가 금식하고 운 것은 혹시 여호와께서 나를 불쌍히 여기사 아이를 살려 주실는지 누가 알까 생각함이거니와 지금은 죽었으니 내가 어찌 금식하랴 내가 다시 돌아오게 할 수 있느냐...>(22-23절).
다윗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섭리에 의해 이루어진 아이의 죽음에 대해 인간적인 미련을 가지는 대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한 것입니다. 비록 범죄하여 하나님의 징계를 당했으나 회개와 동시에 하나님께 전적으로 순종한 다윗의 이런 모습이야말로 대단히 모범적인 것입니다.
이것은 그게 어떤 것이든 하나님의 최종 결정을 전폭적으로 받아들인다는 깊은 신뢰감의 표현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인식과 믿음 속에서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는 비로소 회복되는 것이고, 구원이란 바로 그렇게 되살려진 관계로서만이 성취되는 사건입니다.
만약 이와는 달리 다윗이 당시 하나님의 그 결정을 귀하게 여기지 않았다면 그것은 곧 하나님의 뜻을 멸시하는 것이자 관계 회복에 이르는 길을 외면하는 결과를 가져오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순종과 믿음, 그리고 구원은 서로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임을 깨달을 일입니다.
-본문 21절 말씀을 읽고 당신의 소감을 적어 보십시오. -당신은 다윗처럼 금식하며 밤새워 기도해본 경험이 있습니까(16절)? -순종과 믿음의 관계에 대해 말씀해 보십시오.
주님, 다윗은 병든 아이를 위해 금식하며 밤을 새워 기도했습니다. 울며 기도했다(21절)고도 했습니다. 그것은 혹 하나님께서 자신을 불쌍히 여기사 아이를 살려주실지도 모른다는 기대감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아이가 죽자 다윗은 그 하나님의 뜻에 깨끗이 승복하고 더 이상 금식하며 간구하지 않고 도리어 몸을 씻고 의복을 갈아입고 식사를 했다고 합니다. 이미 내려진 하나님의 뜻에 전적으로 복종한 것입니다. 저희에게도 다윗과 같은 그런 순종, 그런 믿음을 허락해 주시옵소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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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북이, 가장 빛날 수 있는 너의 자리로!
“우화 〈토끼와 거북이〉에서 거북이가 알아야 할 것은(중략) 토끼와 겨루는 경주가 아니라 자신이 가장 빛날 수 있는 바다를 향해 떠나는 것. Lets go back to your place. 당신이 가장 빛날 수 있는 당신의 자리로!”
김수현 저(著) 《180도》 (마음의 숲, 58쪽)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거북이는 육지에서는 한없는 느림보지만, 바다로 나가면 하늘을 나는 새들처럼 물 속을 유영합니다. 그러니 거북이는 자신이 무능하거나 열 등한 존재가 아닌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토끼의 주 무대는 땅이고 거북이는 바다입니다. 거북이는 바다로 가야 합니다. 자신이 빛날 수 있는 자신의 자리를 찾는 것이 승 리의 비결입니다.
그리스도인이 가장 빛나는 자리는 예배의 자리입니다. 시1편에 나오는 시냇가에 심기운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는 이 유는 시냇가에 심기웠기 때문입니다. 그 kan가 사막에 심어졌으면 조금 후 고사(枯死)하고 맙니다. 죄의 자리에 앉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가 흐르는 자리에 앉는 습관이 모든 승리의 첫째 비결입니다.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 라.” (요4: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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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언 10장 12절
미움은 다툼을 일으켜도 사랑은 모든 허물을 가리느니라 (잠언 10장 12절) Hatred stirs up dissension, but love covers over all wrongs. (Proverbs 10: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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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시험에 빠지고, 실수하는가 왜 시험에 빠지고, 실수하고, 넘어지는가? 그것은 기도 없이 살기 때문이다. 왜 마음이 약해지는가? 왜 마음이 울적해 지는가? 왜 짜증이 자꾸 나고 근심 걱정에 사로잡힐 때가 많은가? 그 이유는 단 한 가지이다. 그것은 기도 없이 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베드로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고 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권면하셨던 것처럼 베드로는 ‘모든 성도들에게 깨어 기도하라’고 권면 한 것이다. -정필도 목사의 ‘깨어 있어 기도하라’에서-
우리가 과거에 기도 많이 했다 하더라도 과거에 기도 많이 한 것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오늘의 기도, 바로 이 시간에 기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전설에 의하면 베드로는 닭이 우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정신을 번쩍 차리고 즉시 기도했다고 합니다. 닭 우는 소리가 들릴 때마다 옛날에 잘못한 일을 생각하고 깨어 기도했다 합니다. 그렇게 하다 보니, 베드로는 새벽마다 기도하는 신앙생활을 하게 된 것입니다. 새벽마다 기도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새벽마다 교회에 나와서 기도하는 사람은 승리할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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