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를 물 같이 공의를 강 같이 (암 5:18-27)
03월 24일 (수)
정의를 물 같이 공의를 강 같이 (암 5:18-27) 18. 화 있을진저 여호와의 날을 사모하는 자여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의 날을 사모하느냐 그 날은 어둠이요 빛이 아니라
<화 있을 진저 여호와의 날을 사모하는 자여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의 날을 사모하느냐 그 날은 어둠이요 빛이 아니라>(18절). 이것은 아모스 선지자가 선포한 여호와의 날을 조롱하며 감히 그 날에 도전하는 자들을 향한 하나님의 경고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이시여, 어디 한 번 그 최악의 재앙을 우리에게 내려줘 보시지요!>하며 비웃었습니다. 그들은 그날이 온다는 사실을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이런 사람들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이 세상에는 마지막 심판의 날이 온다는 사실을 믿는 사람들보다 안 믿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을 뿐 아니라 종말이나 최후 심판을 조롱하며 비웃는 사람들도 널렸습니다. 따라서 그들은 종말을 실감하지 못하고 믿지 않음으로 그것을 두려워하지도 않습니다. 심지어는 심판을 내려 달라며 <그날을 사모하고> 희롱하기까지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호와의 날을 무시하거나 조롱하는 것은 미친 짓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마치 <사자를 피하다가 곰을 만나거나 혹은 집에 들어가서 손을 벽에 대었다가 뱀에게 물림과도 같을 것>(19절)이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심판의 끊임없는 추격을 받게 될 것이라는 겁니다. 이것은 하나의 심판을 피하면 또 다른 하나의 심판이 그들을 덮칠 것이라는 경고입니다. 따라서 <오직 정의를 물 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게 할지어다>(24절). 너희가 정말 하나님의 불같은 심판을 면하고 피하고 싶으면 그걸 부정하거나 비웃거나 조롱할 게 아니라 도리어 정의와 공의를 물 같이, 강 같이 도도히 흐르게 하라고 촉구하십니다. 당시 북 이스라엘의 가장 심각한 죄악은 바로 <성문>에서 자행된 그 정의와 공의의 유린이었습니다.
어느 시대 어느 나라든 정의와 공의라는 사회적 덕목이 훼손되지 않고 그야말로 물 같이 강 같이 흘러야 그 사회 그 나라가 복되고 건강합니다. 지금 우리 사회의 가장 심각한 장애와 걸림돌도 바로 정의와 공의의 실종에 있습니다. 지금 우리 사회의 회생과 살 길도 바로 이 정의와 공의를 물 같이, 강 같이 흐르게 하는 데 있습니다. 우리는 반드시 이를 실현하고 관철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야말로 <사자를 피하다 곰을 만날 것이고, 손을 벽에 대었다가 뱀에게 물리는> 꼴이 될 것입니다.
-지금 이 세상에는 세상 종말과 하나님의 최후 심판을 비웃고 조롱하는 사람들이 그것을 믿는 자 보다 훨씬 더 많다는 사실을 알고 계십니까? -본문 21-22절에서 하나님이 왜 절기와 성회를 기뻐하시지 않고 번제, 소제, 화목제 등을 받지 않겠다고 하셨습니까? -지금 우리 사회의 정의와 공의 지수를 생각해 보신 적이 있습니까?
주님, 예나 지금이나 이 세상에는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최후 심판을 준비하며 사는 사람들보다 오히려 하나님의 존재에 도전하고 하나님의 심판을 비웃으며 조롱하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습니다. 오늘 아모스 선지자를 통해 계시하신 대로 그들은 결국 사자를 피하다 곰을 만나듯 그렇게 하나님의 혹독한 심판과 진노를 면치 못하게 될 것입니다. 부디 저희는 더욱 근신하며 정의와 공의를 구현하고 실천하며 늘 역사의 종말과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을 예비하며 살게 해주시옵소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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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샌델교수가 코로나19로 깨달은 것
“2020년 코로나19 바이러스 팬데믹은 잡화상 계산원들, 배달원들,방문 의료서비스 담당자들, 그 밖의 매우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으면서도 박 봉에 시달리는 사람들의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해주었다.”
마이클 샌델 저(著) 함규진 역(譯) 《공정하다는 착각》 (와이즈베리, 330쪽)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바울이 로마서는 더디오라는 사람이 대필하여 기록합니다.
“이 편지를 기록하는 나 더디오도 주 안에서 너희에게 문안하노라. 나와 온 교회를 돌보아 주는 가이오도 너희에게 문안하고, 이 성의 재 무관 에라스도와 형제 구아도도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롬16:22,23)
이 구절에서 나오는 더디오란 말은 셋째라는 뜻입니다. 또한 구아도란 말은 넷째라는 뜻입니다. 이들은 노예였으리라 추정됩니다. 당시 로마 시대의 노예들은 주인에게 첫째, 둘째, 셋째 등으로 불리웠습니다. 이들이 예수님을 믿고 바울 사도와 귀한 동역을 하였던 것입니다. 더디오는 바울의 로마서를 대필(代筆)했습니다. 자기의 생각을 적을 수 없는 따분하면서도 이름 없고 빛도 없는 일을 신실하게 하였습니다. “평생 노예로 산 것도 서러운데, 예수 믿고 나서도 겨우 편지 베끼는 일이나 하다니” 하며 불평하거나 거부하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오늘날 우리가 로마서를 읽을 수 있습니다. 코로나19로 인해 우리가 참 고마움을 느끼는 사람들 중 하나가 바로 배 달원들입니다. 사회의 선에 기여하는 참 고마운 존재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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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119편 105절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시편 119편 105절> Your word is a lamp to my feet and a light for my path. <Psalms 119:1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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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신분이 바뀐 것을 주지하시라 성도가 은혜를 받았다고 하면 승리를 할 것 같은데 왜 막상 실패를 하게 되는가? 실패의 이유는 구원 후의 삶의 방법을 모르기 때문이다. 우리가 구원 받기 전에 예수를 믿어서 구원을 받았다면 구원을 받은 후의 삶에서도 예수 방식으로 살아야 한다 그런데 우리가 구원을 받은 후에 막상 삶의 현장에서는 이전처럼 자기의 방식대로 살기 때문에 실패하는 것이다. -민경설 목사의 ‘구원 후의 삶’에서-
우리는 구원 받은 후의 살아가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배워야 하는데 구원 받은 사람은 이 세상을 사는 방법도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세상 권세 잡은 자에 속해서 살지는 않았습니까?. 우리의 신분이 바뀐 것을 주지하십시오. 그러나 우리가 예수를 믿어 구원을 받았다면 우리는 다 하나님 나라의 소속이 되었으므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내 마음대로 살 수는 없는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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