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인과 아벨의 제사는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는가 (창세기 4장 1-12절)
03월 18일 (목)
가인과 아벨의 제사는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는가 (창세기 4장 1-12절) 1. 아담이 그의 아내 하와와 동침하매 하와가 임신하여 가인을 낳고 이르되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 하니라
신앙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바로 예배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 시키신 이유는 그들이 고통당하지 않게 하기 위함이 아니라 하나님을 예배하게하기 위함이셨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 삼아주신 가장 중요한 이유는 예배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을 보면 가인이 아벨을 살인하는 시작이 예배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지금 우리 교회에서 이런 모습이 얼마나 많습니까? 예배를 드리는 곳이 지옥처럼 변한 곳이 얼마나 많습니까? 많은 교회가 서로 나누어져 예배를 놓고 싸우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성경은 예배의 자리에서 얼마든지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음을 우리에게 경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예수님을 믿는 것’보다 ‘예수님을 제대로 믿는 것’이 훨씬 더 힘들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우리는 이 애통함을 가져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예배 가운데 살인이 일어나고 있는데도 깨닫지 못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가인의 예배는 어디서부터 문제였을까? 5절에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아니하신지라”라는 단어는 히브리어로 “샤아”라는 단어인데, “쳐다보지 않으셨다”는 뜻입니다. 무슨 이유인지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하나님은 가인과 그의 제물을 쳐다보지 않으셨습니다. 가인에게는 그런 마음이 있었을 것입니다. “내가 이렇게 열심히 하나님을 위해서 준비해서 드렸는데, 하나님이 아벨의 것만 받으시고 내 것만 안 받으실 수가 있지?” 그에게는 분노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히브리서 말씀에 보면 아벨은 ‘믿음으로’ 제사를 드렸기 때문에 받으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예배를 드릴 때, 우리가 예배의 형식을 ‘행 했냐, 행하지 않았느냐’가 아니라 ‘믿음으로 드렸느냐, 그렇지 않았느냐’에 따라 하나님이 ‘쳐다보시느냐, 쳐다보시지 않느냐’가 결정된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왜 그것을 깨닫지 못하는 것일까? 예배를 내 관점으로 보기 때문입니다. “내가 헌신하고, 내가 드렸다.”라는 사실에 집중하니까 그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인가”에는 전혀 관심이 없고 오로지 내가 한 일에 대한 결과만을 기대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예배의 모습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나 중심’의 예배를 ‘하나님 중심’의 예배로 바꾸지 않으면 우리의 예배의 비극은 계속 될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삶의 예배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을 찾고 끊임없이 재조정하는 열정을 잃어버리면 우리의 삶의 예배도 예배의 비극으로 치달을 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오늘 우리의 삶 속에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의 모습이 회복되기를 소원합니다.
우리의 삶과 예배 가운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하나님의 중심’의 예배에 대한 갈급함이 있는지 점검해 봅시다.
주님! 우리의 예배가 가인처럼 예배의 비극으로 치닫고 있는 부분이 있다면 깨닫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항상 기억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하여 주시고, ‘나 중심’의 예배가 아닌, ‘하나님 중심’의 예배로 인도해 주시옵소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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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샌델의 《공정하다는 착각2》그대를 인정해 주는 사회가 있으니
“르브론 제임스는 매우 인기 있는 스포츠인 농구를 하며 수백만 달러를 벌었다. 탁월한 운동 재능을 가진 것 말고도, 르브론은 그 재능을 가치 있게 여기고 보상해 주는 사회에 서 산다는 행운을 누린다. 그가 잘할 수 있는 스포츠를 좋아하는 사람 이 많은 사회에 살고 있음은 그가 노 력한 결과가 아니다. 가령 르네상스 시대 피렌체처럼, 농구선수가 아닌 프레스코 화가가 각광을 받던 사회에 태어났다면 어땠을까.”
마이클 샌델 저(著) 함규진 역(譯) 《공정하다는 착각》 (와이즈베리, 200-201쪽)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르브론 제임스는 자신이 피나는 노력을 해서 최고의 농구 선수가 되었 고, 그에 걸맞는 대우를 받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다가 아 닙니다. 그는 농구를 굉장히 좋아하는 사회에서 태어났고, 최고의 농구 선수에게 큰 보상을 해주는 사회에서 살고 있습니다. 만약 그가 이탈 리아 르네상스 시대에 태어났다면, 아무리 농구에 대해 뛰어난 재능이 있고, 하루 종일 슈팅 연습도 하였다 하더라도 소용없습니다. 당시 사 람들은 농구보다도 프레스코 화가의 작품에 더 관심이 있었습니다. 샌델교수에 의하면, 르브론 제임스는 내가 가진 능력에 높은 보상을 해 주는 사회, 즉 시대를 잘 타고 태어난 ‘행운’이 분명 있습니다. 따 라서 우뚝선 지금 자신의 모습이 내 능력의 결과라는 우쭐함이 아닌, 겸손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나의 나 된 것은 나의 노력 때문이지만, 분명히 하나님의 은혜가 있었던 것이고, 나의 실력을 인정해 주는 사회적 배경도 큰 역할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이웃에게 늘 미안해하고 고마워하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하나 님은 이런 마음을 가리켜 ‘빚진 자’의 마음이라고 하셨습니다.
“헬라인이나 야만인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 (롬1: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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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보서 5장 15절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그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하심을 받으리라 (야고보서 5장 15절) And the prayer offered in faith will make the sick person well; the Lord will raise him up. If he has sinned, he will be forgiven. (James 5: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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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보다는 모든 것을 생각할 줄 아는 주님의 몸된 전인 교회에서는 항상 겸허한 심정으로 있어야 한다. 항상 큰 소리보다는 작은 소리, 배짱보다는 겸허한 태도, 그리고 트집보다는 이해를 먼저 하려는 자세를 가지고 교회생활을 해야 한다. 또한 교회 등록도 심각하고 신중하게 하고, 등록한 후에는 이곳이 나의 행복의 원천이라는 심정으로 교회생활을 해야 한다. 생각 없이 등록해 놓고 갖가지 이유를 대고 떠나는 사람이 있다. "교회가 사랑이 없다, 사람을 무시한다, 무엇이 부족하다..." 그렇게 따지면 어찌 그것만 부족하겠는가? 찾아보면 훨씬 더 많을 것이다. -이한규 목사의 ‘영적인 눈을 뜨는 비결’에서-
그런 식의 이유를 대고 떠나면 기분만 상하고 신앙성숙도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어느 교회든지 문제는 있는 것을 알고 그것을 자신의 성숙을 위한 진통의 과정, 껍질을 깨는 과정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언제 어디서나 자기보다는 공동체, 하나보다는 모든 것을 생각할 줄 아는 그러한 태도를 보이십시오. 우리의 신앙은 보다 성숙한 모습으로 바뀌어 갈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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