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政治.社會 關係

[선데이 칼럼] ‘코로나 정치’ 때문에 더 지친다

鶴山 徐 仁 2020. 12. 27. 12:35

[선데이 칼럼] ‘코로나 정치’ 때문에 더 지친다

 

[중앙선데이] 입력 2020.12.26 00:30 | 717호 31면 지면보기

 


양선희 기자

 

양선희 대기자/중앙콘텐트랩 대학평가원장

 

 

어쩌면 사람의 역사는 꾸준한 ‘희생양’ 만들기의 반복인지도 모른다. 사람은 위기와 재난 앞에서 그 책임을 지울 누군가를, 또 탓하고 비난할 누군가를 찾는다. 나는 잘못한 게 없는데 느닷없이 덮친 재난의 두려움과 공포를 ‘독기’로 버티려는 자기 방어기제일 수도, 자신의 무고함과 억울함을 해소하려는 욕망의 표현일 수도 있다. 그래서 위기와 재난의 고비마다 괴담과 음모론이 판을 치는 것은, 합리적으로 설명되지 않는 현실적 고통과 분노의 분출구를 찾는 행동일 수 있다고 이해한다.
 

 

코로나도 음모론에 이용하는 정치권
위기에 사회적 불안감 가라앉히도록
관리하는 사회지도층의 리더십 실종
이성적으로 균형잡는 역할 복귀해야

 

 

코로나19. 올 한 해 내내 지속되고 있는 전 세계적인 감염병 재앙에서 괴담과 음모론이 퍼지는 건 어쩌면 자연스러운 ‘인간의 과정’이다. 오히려 지금 닥친 재앙의 규모로 보자면 요새 나도는 괴담과 음모론의 수준은 그렇게 최악도 아니다. 일본 관동대지진 당시 조선인 대학살처럼 재앙 앞에서 이성을 잃은 사람들이 무고한 사람을 죽이며 공포의 분풀이를 했던 숱한 역사를 밟고 온 인간사에 비하면 그렇다는 말이다.
 
미국엔 가짜 뉴스와 음모론을 작정하고 조직적으로 생산하는 큐아논(QAnon) 같은 조직까지 있다. 그러다보니 미국에서 나오는 음모론도 깨알같이 다양하다. 빌 게이츠가 자신이 개발한 백신을 팔기 위해 바이러스를 일부러 퍼뜨렸다거나 백신에 사람을 추적할 수 있는 마이크로 칩을 심었다거나 하는 스케일이 큰 괴담은 너무 커서 ‘믿거나 말거나’ 같은 얘기다. 그런데 이런 비상식적 음모론을 미국인 30% 가까이는 믿는단다. 이렇게 사람들은 돌발적으로 일어난 비합리적 재난 앞에서 비합리적인 것을 믿어버리는 경향이 있다. 이 역시 어쩔 수 없는 일인지 모른다.
 
재난에 따른 괴담과 음모론은 어쩔 수 없다고 치자. 중요한 것은 그것이 사람의 심성을 파괴하지 않도록, 집단 광기로 발현되지 않도록 사회적 관리 기능이 잘 돌아가는 것이다. 그 일은 이성적 국가 시스템과 사회지도층, 지성인 집단의 지성적 견제와 이성적 호소를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 위기의 시절에 이들은 불안과 공포 심리를 가라앉히는 데 힘을 보태고, 이성과 합리가 사회적 균형을 잡을 수 있도록 지탱하는 일을 해야 한다. 불안을 부추기고 공포심에 불을 지르는 것은 지성인이 할 일이 아니다.
 
지난 주말 잠시 장을 보러 갔다가 뒤따라오는 주부들이 열변을 토하며 나누는 얘기를 들었다. 이번 코로나 대확산이 보궐선거를 겨냥한 음모라는 설이었다. 일부러 코로나를 확산시키기 위해 누가 무슨 짓을 했고, 보궐선거에 맞춰 치료제를 풀 거라는 등의 음모론. 들을수록 어이없는 얘기였는데 그들은 진지했다. SNS를 좀 뒤져 봤더니 우리나라 코로나 관련 음모론의 대부분은 보궐선거 같은 정치일정에 맞춰져 있었다.
 

선데이 칼럼 12/26

 

 

그런가하면 문재인 대통령 아들 문준용씨의 개인전을 둘러싸고 3단계 격상 내지는 거리두기 강화 관련 음모론도 제기됐다. 3단계 격상은 문씨의 개인전이 끝나는 23일 이후에 할 것이라는 가로세로연구소의 멘트 한마디로 한 예술가의 개인전은 정치적 음모론에 휘말렸다.
 
그런데 차분하게 생각해보자. 누가 자기 부모의 인생을 대신 살아줄 수 있으며, 자식의 인생을 대신 살아줄 수 있는가. 각자 자기 살기 바빠서 가족 인생까지 생각할 겨를이 없는 게 정상이다. 각자 매 순간 부지런히 살지 않으면 금세 뒤처지고 지리멸렬해지는 게 인생이다. 그러면 대통령의 아들은 아버지 재임 기간 중엔 동굴 속에 숨어 살아야 하는가. 그렇게 뒤처진 5년을 누가 보상해줄 것인가.
 
정치권은 나가도 너무 나가고 있다. 자녀와 가족 공격으로 포인트를 몇 개 챙기더니 이젠 무차별로 자녀들을 공격한다. 꼬투리라도 잡으면 온 식구를 ‘여론연좌제’에 묶으려는 듯 맹렬하다. 자녀 세대 발목까지 붙들고 늘어져 우리가 챙길 게 뭔가. 문씨의 경우 작가 지원 프로그램 지원을 받은 것까지 의혹이 제기된다. 아버지가 부자라도 자녀는 자립해야 한다. 예술가가 예술인 지원 프로그램에서 지원받아 예술활동을 하는 게 도대체 무슨 문제가 된다는 말인가. 우리나라 예술가 중 기금을 지원받지 않고도 활동할 수 있는 젊은 예술가가 얼마나 될까.

 

인간이 인간다운 것은 아무리 어려워도 문화를 포기하지 않고, 아름다움을 지향하는 의지가 있어서다. 올해 예술가들은 힘겨운 한 해를 보냈다. 공연도 전시회도 제대로 된 게 없다. 최근엔 내 친애하는 예술가 친구들이 관객도 없이 한 연주회나 초청장을 돌리지 못한 전시회 동영상을 SNS에 올리곤 한다. 코로나에도 굴하지 않는 그들의 용기에 절로 박수가 나온다. 어려운 시기일수록 문화적 감수성을 잃지 않는 것이야말로 인간다움을 지키는 자존감과 용기라고 나는 생각한다.
 
서글픈 것은 이런 용기를 꺾고 분열을 조장하는 선봉에 서 있는 게 언제나 우리나라 정치엘리트라는 이 허접한 현실이다. 어려운 민생보다 정치적 이해득실 싸움에 올인하며 ‘아무 말 대잔치’에 나선 정치권, 내다버려도 무방한 SNS멘트까지 실어나르며 논란을 확대 재생산하는 언론. 백신 확보조차 무사안일하게 처리하고 변명에 급급한 관료들. 사회 지도층이 앞장서 코로나 위기를 정치음모론에 이용하는 나라. 이젠 코로나19보다 ‘코로나 정치’에 더 지친다. 제발 좀 그만할 수 없을까.
 
양선희 대기자/중앙콘텐트랩 대학평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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