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적 제거하는 특별기관의 창설... 독재의 출발점
송재윤 캐나다 맥매스터대 교수
입력 2020.12.26 09:00
<1967년 우한 백만웅사의 붉은 수장(袖章). 중앙문혁소조에 의해 우파로 낙인찍혔던 백만웅사는 아이러니컬하게도 “마오쩌둥 사상”을 보위하는 “우한 지구 무산계급 혁명파”를 자처했다./ 공공부분>
송재윤의 슬픈 중국: 문화혁명 이야기 <37회>
시대가 바뀌고 제도가 변해도 인간의 권력투쟁은 비슷한 양상을 보인다. 미국의 역사학자 폴 스미스(Paul J. Smith)의 관찰에 따르면, 구폐(舊弊)의 혁파를 내걸고 등장한 중국 북송(北宋, 960-1127)의 신진세력은 권력투쟁의 과정에서 대체로 다음 5단계를 거쳐 갔다.
1) 파죽지세로 정권을 탈취한 후 주요 정부기관을 점령한다. 2) 역사적 선례가 없는 정체불명의 특별기관을 창설한다. 3) 무리한 비상수단을 써서 정적(政敵)을 제거한다. 4) 저항세력의 무력화를 위해 집요하게 추종세력을 규합한다. 5) 정변의 합리화를 위해 황권(皇權)의 절대화를 꾀한다.
이중 특히 “특별기관의 창설”은 어김없이 독재의 출발점이 된다. 독재정권은 흔히 비상위원회를 구성하고 각종 특별기관을 창설한다. 법적 제약을 최소화하고 반대세력을 무력화하기 위함이다. 중립, 공정, 정의실현, 구악철폐 등 혁명의 미사여구로 치장하지만, 권력독점의 잔꾀일 경우가 대부분이다. 역사가 증명하듯 독재정권의 특별기관은 얼마 못가 구악(舊惡)의 상징물로 전락하고 만다.
<1967년 마오쩌둥, 저언라이와 함께 있는 중앙문혁소조의 멤버들: 왼쪽부터, 장춘차오, 장칭, 저우언라이, 야오원위안, 마오쩌둥, 치번위(戚本禹), 왕리(王力), 관펑, 무친(穆欣)/ 공공부문>
문혁의 특별기관, 중앙문혁소조와 혁명위원회
문화혁명 과정에서도 정규 정부조직 밖에 특별기관이 생겨나 큰 권력을 행사했다. 중공중앙의 핵심에서 비상대권을 행사한 중앙문혁소조와 전국에서 지방행정의 전권을 장악했던 혁명위원회가 대표적이다. 이 두 특별기관의 창설은 곧 정상적 중앙행정의 마비와 지방권력의 교체로 이어졌다.
1966년 5월 문화혁명의 공식적 시작과 더불어 창설된 중앙문혁소조는 마오의 심복들로 구성된 조직이었다. 조장 천보다(陳伯達, 1904-1989) 아래 정보통의 권력자 캉성(康生, 1898-1975), 마오의 부인 장칭(江靑, 1914-1991)이 요직을 점했다. 형식적으로 중공중앙 정치국 상무위원회에 예속돼 있었지만, 중앙문혁소조는 1969년 자체 해산되기 전까지 실제적으로 중공중앙 최고의 권력기구로 기능했다.
당시 정치국 상무위원 5인에는 마오쩌둥, 국방부장 린뱌오(林彪, 1907-1971), 국무원 총리 저우언라이(周恩來, 1898-1976)와 함께 중앙문혁소조의 천보다와 캉성이 포함돼 있었다. 린뱌오는 마오의 총애를 받아 문혁 당시 당내 서열 제2위에 오른 인물이었다. 국무원 만년 총리 저우언라이는 “황제” 마오에 충성하는 유약한 “충신”이었다. 결국 정치국 상무위원회가 중앙문혁소조에 장악돼 있었다 해도 과언은 아니었다.
중앙문혁소조는 문혁 과정에서 비상전권을 행사했다. 언론매체를 장악하고, 문예계를 관장하고, 문혁의 의제를 설정하고, 군중조직을 통어했다. 1969년 자체 해산 이후, 장칭이 이끄는 4인방은 1970년 “중앙 조직 선전조”를 형성하고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했는데, 이 역시 마오 직속의 권력기구였다. 마오쩌둥은 그렇게 비상 특별기관을 통해 권력을 행사했다.
<1967년 베이징 4월 20일, 베이징시 혁명위원회 성립 기념식/ 공공부문>
중앙문혁소조가 중앙정치를 좌우할 때, 지방정부는 혁명위원회에 넘어갔다. 1967년 1월 31일 헤이룽장성에서 최초의 혁명위원회가 생겨났다. 이후 1968년 9월 5일 신장자치구를 끝으로 전국의 각성에 혁명위원회가 창설됐다. 혁명위원회는 인민해방군, 혁명간부 및 혁명적 좌파군중의 삼결합(三結合)을 표방했지만, 실권은 군부가 장악했다. 전국적으로 4만 8천 명을 헤아리는 혁명위원회 구성원 중 압도적 다수는 인민해방군의 장교들이었다. 특히 광둥, 랴오닝, 산시(山西), 윈난, 후베이 등지에선 현 단위 이상 혁명위원회는 81-98%를 인민해방군 장교들이 장악했다.
마오쩌둥은 혁명군중의 자발적 기의(起義)와 탈권(奪權) 투쟁을 선동한 후, 수많은 군중조직들이 난립하여 걷잡을 수 없게 되자 곧바로 군대의 투입을 결정했다. 이로써 지방행정을 군대가 장악하는 기묘한 형태의 군부독재가 시작됐다. 물론 그 과정은 결코 순조롭지 않았다.
중앙문혁소조와 지역 군부의 대립
마오의 뜻을 받들어 중앙문혁소조는 인민해방군에 좌파군중의 지원을 명령했지만, 질서 회복과 치안 유지는 군의 기본임무다. 군부는 소요와 파괴를 일삼는 조반파 혁명 군중을 적대시했다. 우한 군구의 사령관 천자이다오(陳再道, 1909-1993)는 1967년 3월부터 “조반파(造反派)” 공인총부(工人總部)를 탄압하고, 지도부 485명을 체포한다. 같은 해 5월-6월 120만의 구성원을 자랑하는 “보수파” 군중조직 백만웅사(百萬雄師)는 군대의 지원을 받아 순식간에 군용트럭, 군용헬멧, 장모와 대검 등으로 무장한 준군사조직으로 성장했다.
상황을 예의주시하던 중앙문혁소조의 핵심인물들은 우한 군구가 조반파 군중집단을 진압하는 상황을 용인할 수 없었다. 그들의 눈에 백만웅사는 조반정신을 결여한 보수파일 뿐이었고, 진정한 좌파 혁명군중은 조반의 소요를 이어가던 조반파 공인총부였다.
바로 그 점에서 1967년 7월의 “우한사건”은 중앙문혁소조와 지역 군부 사이에서 발생한 권력투쟁으로 볼 수도 있다. 실제로 마오쩌둥과 중앙문혁소조는 우한의 사태를 “적대세력의 반격,” “반혁명 무장투쟁,” “중앙권력에 맞선 무장 세력의 도전”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만약 천자이도가 우한의 보수세력과 결탁해 중앙문혁소조에 반기를 든다면, 새로운 “군벌시대”가 펼쳐질 수 있었다.
<1967년 우한의 군중조직의 군사화/ 공공부문>
군부의 착오, 마오의 친국(親鞫) 시작
극단 사태를 막기 위해서 7월 14일 새벽 3시 마오쩌둥은 베이징을 떠나 16시간의 기차를 타고 저녁 9시 경 우한에 도착했다. 이에 앞서 비행기를 타고 우한에 도착한 저우언라이는 마오가 체류할 둥후(東湖)호텔에 미리 가서 상황을 점검했는데, 놀랍게도 직원들 대부분은 백만웅사 소속이었다. 저우언라이는 직원들을 모두 공인총부의 멤버들로 교체했다. 전 도시가 두 패로 갈라진 내전의 상황에서 마오와 저우언라이는 조반파를 지지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이틀 후 7월 16일, 우한에서 비밀회의를 소집한 마오쩌둥은 단도직입적으로 우한 군구가 좌파를 지원하는 과정에서 큰 착오를 범했다고 지적했다. 다음 날 아침 서남 지역 순방을 하다 호출을 받고 급히 달려 온 중앙문혁소조의 셰부치(謝富治, 1909-1972)와 왕리(王力, 1922-1996)와의 면담에서 마오는 우한 군구 사령관 천자이다오가 스스로의 오류를 인정할 경우 그를 타도할 필요까진 없다고 말한다.
7월 17일, 18일 이틀 간 저우언라이는 우한에 모인 중앙문혁소조의 핵심인물과 군구의 영도자들과 함께 연속 회의를 열었다. 우한 군구 사령관 천자이다오를 향해 저우언라이는 노선의 착오를 지적한 후 진정한 자아비판을 요구했다. 무엇보다 그는 백만웅사가 보수파이며, 공인총부가 진정한 좌파 군중조직이라 단정했다.
천자이다오는 굽히지 않고 우한의 상황을 조목조목 설명했다. 그의 해명에 따르면, 백만웅사야 말로 우한 지역 유일무이의 진정한 좌파 혁명군중 조직이었다. 그는 항변했다. “마오쩌둥 동지께선 언제나 대다수를 믿으라 하셨잖소! 간부의 대다수, 군구 전사들의 대다수, 군중의 대다수가 모두 백만웅사를 지지하고 있소!” 중앙권력과 지역 군부 사이에서 좌·우의 판단이 극적으로 엇갈리는 순간이었다.
결국 저우언라이는 천자이다오로 하여금 마오쩌둥를 알현(謁見)케 한다. 그때까지 마오가 우한에 있다는 사실은 극비에 부쳐져 있었다. 비로소 우한 군구 사령관 천자이다오에 대한 마오의 친국(親鞫)이 시작됐는데······. <계속>
#송재윤의 슬픈 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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