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Faith - Hymn

후회하시는 하나님 (삼상 15:10-16) 외 2

鶴山 徐 仁 2020. 10. 2. 10:26

10월 02일 (금)

   

후회하시는 하나님 (삼상 15:10-16)

10. 여호와의 말씀이 사무엘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11. 내가 사울을 왕으로 세운 것을 후회하노니 그가 돌이켜서 나를 따르지 아니하며 내 명령을 행하지 아니하였음이니라 하신지라 사무엘이 근심하여 온 밤을 여호와께 부르짖으니라

12. 사무엘이 사울을 만나려고 아침에 일찍이 일어났더니 어떤 사람이 사무엘에게 말하여 이르되 사울이 갈멜에 이르러 자기를 위하여 기념비를 세우고 발길을 돌려 길갈로 내려갔다 하는지라

13.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른즉 사울이 그에게 이르되 원하건대 당신은 여호와께 복을 받으소서 내가 여호와의 명령을 행하였나이다 하니

14. 사무엘이 이르되 그러면 내 귀에 들려오는 이 양의 소리와 내게 들리는 소의 소리는 어찌 됨이니이까 하니라

15. 사울이 이르되 그것은 무리가 아말렉 사람에게서 끌어 온 것인데 백성이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하려 하여 양들과 소들 중에서 가장 좋은 것을 남김이요 그 외의 것은 우리가 진멸하였나이다 하는지라

16.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가만히 계시옵소서 간 밤에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신 것을 왕에게 말하리이다 하니 그가 이르되 말씀하소서

 

<내가 사울을 왕으로 세운 것을 후회하노니 그가 돌이켜서 나를 따르지 아니하며 내 명령을 행하지 아니하였음이니라 하신지라 사무엘이 근심하여 온 밤을 여호와께 부르짖으니라>(11절).

물로 왕 삼으신 것을 <후회한다>는 말씀은 흔히 말하는 인간의 후회와는 그 성격이 다른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후회는 자신의 어떤 행위가 잘못되었음을 인정하며 아쉬워하는 것을 가리키지 않습니다. 오히려 인간의 불순종과 거역에 대한 신적 슬픔을 의인화한 묘사입니다. 사울에 대한 하나님의 안타까운 심정을 인간적으로 표현한 말씀입니다. 얼마나 실망하시고 안타까우셨으면 하나님이 다 후회하신다고 하셨겠습니까?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느니라>(롬 11:29).

 

또한 사무엘 선지자가 <근심하여 온 밤을 부르짖었다>는 것은 왕과 백성들을 위해 <기도 쉬는 죄를 범하지 않겠다>(12:23)고 한 자신의 다짐과도 무관치 않은 행위입니다.

<근심하다>란 말의 히브리어 <하라>는 <화가 치밀다>란 뜻이어서 <근심>보다는 <분노>로 번역했더라면 더 좋을 뻔 했습니다.

사무엘로서는 자신의 간곡한 권면에도 불구하고 사울이 자기의 이기적 충동에 따라 하나님께 불순종함으로써 결국 왕을 세운 하나님의 뜻을 손상시키고 파괴했다는 사실에 대해 의분을 느꼈다는 것입니다. 계속되는 사울의 헛발질을 보십시오. <... 사울이 갈멜에 이르러 자기를 위하여 기념비를 세우고 발길을 돌려 길갈로 내려갔다>(12절). 하나님을 위한 기념비가 아니라 아말렉 전투의 승리를 자축하는 승전비를 세웠다는 뜻입니다. 이는 사울의 교만을 뜻하는 명백한 상징물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감사의 비를 세워야지 자신의 공적과 이름을 높이기 위해 비석을 세웠다니 참 어처구니가 없습니다. 이게 다 사울이 하나님이 아니라 열방의 세속 왕들의 행태를 모방하고 따라간 결과입니다.

 

-<후회하신다>는 하나님의 말씀에 사무엘 선지자가 <온 밤을 부르짖었다>(11절)고 했는데 당시 그는 뭘 기도했을까요?

-사울이 자기를 위해 기념비를 세운 <갈멜>(12절)은 어디에 있습니까?

-사무엘이 사울 왕에게 <가만히 계시옵소서>(16절)라고 했는데 이는 무슨 뜻일까요?

 

주님, 사울 왕의 불순종과 반역이 얼마나 하나님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으면 하나님이 그를 왕 삼으신 사실에 대해 <후회한다>고까지 하셨을까 생각해 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다>고 했는데 얼마나 실망하셨으면 그렇게까지 표현하셨을까 하고 자문해 봅니다.

과연 사울은 사무엘 선지자의 간곡한 당부에도 불구하고 항상 자신의 뜻과 자신의 영광만을 좇았습니다. 그래서 전리품을 챙겼고, 자신을 위해 기념비를 세웠습니다. 사울의 불순종과 버림받음이 오늘 저희에게도 큰 깨달음이 되게 해주시옵소서

 
   

총보다 강한 실

 

“천이 있었기에 인류는 추운 지방에 거주할 수 있었고 여행도 다닐 수

있게 되었다. 만약 천이 없었다면 인류는 일부 지역에서만 거주했을

것이다. 고급스러운 비단과 따뜻한 모직물이 비단 길Silk Road과 같은

교역로를 통해 거래되는 과정에서,서로 다른 문명들 사이에 사상과 기

술의 교환이 활발해지고 사람들이 오가게 되었다.”

 

카시아 클레어 저(著) 안진이 역(譯) 《총보다 강한 실》(윌북, 16쪽)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저널리스트이자 작가인 카시아 세인트 클레어는 총보다 강하고 균보다

끈질기며 쇠보다 오래된 것이 바로 ‘실’이라고 하였습니다.

《총보다 강한 실》은 인류의 역사를 총이나 칼이 아닌 실의 관점에서

살펴 본 책입니다. 세계사의 중요한 순간마다 실이 있었습니다. 바이

킹족이 해협을 건널 수 있었던 원동력은 ‘천으로 만든 돛’에 있었습니

다. 산업혁명의 원동력 또한 직물이었습니다. 이후 화학섬유의 개발은

우주정복의 기반이 되는 등 인류 역사의 진짜 주인공은 바로 ‘실’이

었다는 것입니다. 연약해 보이는 가느다란 실이 역사를 움직인 커다란

동력이었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약해 보이는 실과 같은 할머니 아

주머니의 기도가 세계를 움직이는 동력이 될 수 있습니다.

근대 선교의 아버지라는 칭호를 받는 윌리엄 캐리는 선교, 성경번역, 출

판, 사역자 훈련, 신문사, 학교설립 등을 통해 선교의 씨앗과 토태를

놓았습니다. 캐리가 이런 위대한 일을 할 수 있었던 가장 큰 힘은 바로

누이 때문이었습니다. 평생을 병으로 고생하며 침대에 누워있던 그의

누이는 캐리의 선교 사역을 위해 온전히 침대에서 누워 기도로 그를 도

왔습니다. 캐리는 그의 누이에게 선교사역의 모든 어려움을 세세하게

알려줘서 기도요청을 하고 누이는 신실하게 기도하였습니다.

총보다 실이 강합니다. 총을 든 사람보다 실을 든 사람이 힘이 있습니

다. 기도하는 사람이 힘이 있습니다.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 그가 비가 오지 않기를 간

절히 기도한즉 삼 년 육 개월 동안 땅에 비가 오지 아니하고 다시 기도

하니 하늘이 비를 주고 땅이 열매를 맺었느니라.” (약5:17,18)

   

갈라디아서 6:2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

Carry each other's burdens, and in this way

you will fulfill the law of Christ.(NIV)

   

어린양의 희생 제사가 없었다면

거룩한 하나님을 알려주는 구약의 율법은

분명한 공의를 보여준다.

살인자는 죽임당하고,

부모를 욕하거나 때리는 자 역시 죽임당하고,

누구를 유괴해도, 간음해도 죽임당하고,

내가 키우는 동물이 사람을 해하여 죽여도

주인인 내가 죽임당하고, 동물과 관계해도

하나님을 욕해도 죽임당하고,

의도적으로 하나님께 불순종해도 죽임당하고,

우상을 숭배해도, 안식일에 일해도 죽임당한다.

따라서 구약 사람들은 어린양의 희생 제사가 없었다면

대다수가 매해 죽었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속죄일로 인해

그들은 매해 죽음을 피하고 살 수 있었다.

하지만 구약의 제사는 참으로 하나님을 만족시킨 것이 아니다.

“이 제사들에는 해마다 죄를 기억하게 하는 것이 있나니

이는 황소와 염소의 피가

능히 죄를 없이 하지 못함이라”(히 10:3-4).

-스데반 황 목사의 ‘그리스도의 보혈 교회’에서-

 

사실 동물 제사로는 결코 죄 사함을 받지 못하지만

그 제사가 가리키는 하나님의 어린 양의 보혈의 능력이

구약에서도 주의 백성을 용서하고 그들을 보호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없이 억만 마리의 동물의 피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면

하나님께서 죄인들을 받아주시겠습니까?

그렇다면 돈 많은 부자들은 돈 만으로

천국에 들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결코 그럴 수 없습니다.

이는 이 세상의 모든 재물로도

우리의 죄를 단 하나라도 씻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10월 01일 (목)

   

말씀을 들으소서 (삼상 15:1-9)

1.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나를 보내어 왕에게 기름을 부어 그의 백성 이스라엘 위에 왕으로 삼으셨은즉 이제 왕은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소서

2.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아말렉이 이스라엘에게 행한 일 곧 애굽에서 나올 때에 길에서 대적한 일로 내가 그들을 벌하노니

3. 지금 가서 아말렉을 쳐서 그들의 모든 소유를 남기지 말고 진멸하되 남녀와 소아와 젖 먹는 아이와 우양과 낙타와 나귀를 죽이라 하셨나이다 하니

4. 사울이 백성을 소집하고 그들을 들라임에서 세어 보니 보병이 이십만 명이요 유다 사람이 만 명이라

5. 사울이 아말렉 성에 이르러 골짜기에 복병시키니라

6. 사울이 겐 사람에게 이르되 아말렉 사람 중에서 떠나 가라 그들과 함께 너희를 멸하게 될까 하노라 이스라엘 모든 자손이 애굽에서 올라올 때에 너희가 그들을 선대하였느니라 이에 겐 사람이 아말렉 사람 중에서 떠나니라

7. 사울이 하윌라에서부터 애굽 앞 술에 이르기까지 아말렉 사람을 치고

8. 아말렉 사람의 왕 아각을 사로잡고 칼날로 그의 모든 백성을 진멸하였으되

9. 사울과 백성이 아각과 그의 양과 소의 가장 좋은 것 또는 기름진 것과 어린 양과 모든 좋은 것을 남기고 진멸하기를 즐겨 아니하고 가치 없고 하찮은 것은 진멸하니라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나를 보내어 왕에게 기름을 부어 그의 백성 이스라엘 위에 왕으로 삼으셨은즉 이제 왕은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소서>(1절).

그렇습니다. 사울은 열방의 다른 왕들과는 다른 왕입니다. 사울은 선민 이스라엘의 왕으로 여호와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받은 하나님의 종입니다. 백성들에게는 왕이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종입니다. 따라서 그의 말씀을 듣고 그의 말씀대로 백성들을 치리해야 합니다.

 

사무엘 선지자의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소서>란 발언은 사울이 그동안 여호와의 말씀에 충실하지 못했음을 전제로 한 것입니다. 13장의 번제 사건(8-14절), 14장의 경솔한 맹세(24절) 등 사울은 이미 이스라엘의 왕으로서 여호와의 시험을 제대로 통과하지 못한 전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무엘이 다시금 사울을 찾아 여호와의 말씀을 꼭 지킬 것을 당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아직도 늦지 않았다는 것, 이제라도 여호와의 말씀에 충실히 복종하면 그를 버리지 않으시고 다시금 새 출발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다는 의미입니다. 이는 마치 니느웨 성에 대한 요나 의 심판 선언이 최종적인 것 같았으나 그들이 회개하자 하나님께서 그 뜻을 돌이키신 것과도 같은 이치입니다(욘 3:4-10). 여호와 하나님은 인간에 대해 길이 참으사 죄인들이 다 회개하고 새롭게 변화되어 진심으로 복된 삶을 누리길 바라시는 자비와 긍휼의 하나님이십니다(겔 18:23, 33:11, 롬 2:4).

 

그러나 사울은 오늘 본문의 아말렉과의 전쟁에서도 역시 하나님께 불순종하고 거역과 반역의 죄를 범함으로써 결국은 하나님께 버림받고 맙니다(26절, 16:14). <사울과 백성이 아각과 그의 양과 소의 가장 좋은 것 또는 기름진 것과 어린 양과 모든 좋은 것을 남기고 진멸하기를 즐겨 아니하고 가치 없고 하찮은 것은 진멸하니라>(9절). 이는 사울이 <말씀을 들으소서>한 사무엘 선지자의 당부에도 불구하고 아말렉에 대한 하나님의 명령을 부분적으로만 이행했다는 뜻입니다. 열등한 짐승들만 진멸하고 유용하고 우수한 것들은 다 전리품으로 취했다는 것입니다.

사울은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사울이 아말렉 왕 <아각>을 살려둔 이유를 말해 보십시오.

-사울과 다윗이(27:10, 30:26-30) 우호적이었을 뿐 아니라 은혜까지 베푼 <겐 사람>(6절)들은 어떤 족속이었습니까(창 15:19, 출 2:16-21, 18:1, 민 10:29)?

-옛 이스라엘 지도에서 5절에 나오는 <아말렉 성>을 특정해 보십시오.

 

주님, 사울은 일국의 왕이지만 선민 이스라엘의 왕이었습니다. 왕 이전에 기름부음을 받은 하나님의 종이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함으로 백성을 치리해야 했음에도 그는 그 원칙에 전혀 충실하지 못했습니다. 사무엘 선지자의 당부에도 불구하고 그는 또 다시 자신의 욕구대로 하나님의 명령을 져버렸습니다. 저희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 멸망이 선고된 도성도 다시 살아나 새 출발할 수 있지만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면 기름부음을 받은 선민의 왕도 결국은 버림받는다는 사실을 깊이 깨닫게 해주시옵소서.

 
   

라이터에 스며 있는 이야기

 

“지포 라이터가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된 것 이면에는 실제 베트남전에

참전했던 병사의 감동적인 사연이 있다. 전투 중 가슴에 총을 맞고

병사 한 명이 쓰러졌다. 죽은 줄 알았던 병사가 기적처럼 살아났는데

그 이유는 윗주머니에 넣어 둔 라이터 때문이었다.”

 

김성삼 저(著) 《128분 나를 바꾸는 시간》(지식의 숲, 43쪽) 중에 나

오는 구절입니다.

<딥 블루 씨>, <황혼에서 새벽까지>, <호커스 포커스>, <오션스 13>,

<엑스맨: 더 데이즈 오브 퓨쳐>,<인디아나 존스>, <펄프 픽션>,

<스콜피온>, <화성침공>, <맨 오브 아너>, <러시>, <투건즈>,

<배리드>, <미녀삼총사>, <고스트 라이더>, <캡틴 아메리카>,

<워크 더 라인>, <월-E>, <왓 우먼 원트>, <아웃 오브 사이트>,

<트와일라잇 사가>, <쥬라기 공원>, <웨딩 싱어>...

이 영화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지포 라이터가 나온다는 것입니다.

지포 라이터는 창업 100여 년이 된 글로벌 브랜드인데도 처음 만들었던

바로 그 동네인 브래드 포드에 공장이 있습니다. 소유주도 지금까지

똑같습니다. 지금 지포를 이끄는 사람은 창업자 조지 블리즈데일의 외

손자 찰스 듀크입니다. 그런데 창립 80주년인 2012년 지포 라이터의

누적 생산량은 무려 5억개를 돌파했습니다.

베트남전 당시 미 육군 소속 안드레스 중사의 지포 라이터가 총알을 막

아서 목숨을 건지면서 유명해졌기 때문입니다. 라이터의 중심에 총알이

박힌 것입니다. 라이터에 ‘구원’의 이야기가 스며든 것입니다.

지금은 ‘이야기’의 시대입니다. 기술의 발달로 상품의 질이 비슷비

슷해진 시대에 소미자는 상품 속에 들어 있는 이야기를 사고 싶어 합니

다. 비단 상품 뿐 아닙니다. 자신의 독특한 이야기가 있는 사람이 경

쟁력이 있고 행복합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과의 동행한 이야기가 있는

사람은 가장 행복합니다.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 (창5:24)

   

빌립보서 2:4

 

각각 자기 일을 돌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라

Each of you should look not only to your own interests,

but also to the interests of others.(NIV)

   

듣기

이 세계에는 말씀하시는 음성이 있어서

듣는 귀의 반응을 기다리신다.

이 말씀은 세상에서 다른 삶을 살라고 직언한다.

당찬 호기심으로 사는 삶,

이 세상에서는 천시받는 그 음성을 듣는 삶을 살라고 한다.

나는 예수님이 토라를 읽으면서 취하셨던 것과

똑같은 방법으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길이 있다고 의심 없이 믿는다.

예수님은 유대교의 종교 어휘를 배우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대화를 하기 위해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셨다.

-키스 앤더슨의 [경청의 영성] 중에서-

 

우리의 신앙은 말하기보다 듣기가 중요합니다.

주님도 듣기를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라고 하셨습니다.

성내기를 속히 하는 자는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한다고 하셨습니다.

우리 신앙은 들려지는 말씀에 반응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음성에 귀 기울이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09월 30일 (수)

   

하나님과 동역하였다 (삼상 14:43-52)

43. 사울이 요나단에게 이르되 네가 행한 것을 내게 말하라 요나단이 말하여 이르되 내가 다만 내 손에 가진 지팡이 끝으로 꿀을 조금 맛보았을 뿐이오나 내가 죽을 수밖에 없나이다

44. 사울이 이르되 요나단아 네가 반드시 죽으리라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이 내게 벌을 내리시고 또 내리시기를 원하노라 하니

45. 백성이 사울에게 말하되 이스라엘에 이 큰 구원을 이룬 요나단이 죽겠나이까 결단코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여호와의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옵나니 그의 머리털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할 것은 그가 오늘 하나님과 동역하였음이니이다 하여 백성이 요나단을 구원하여 죽지 않게 하니라

46. 사울이 블레셋 사람들 추격하기를 그치고 올라가매 블레셋 사람들이 자기 곳으로 돌아가니라

47. 사울이 이스라엘 왕위에 오른 후에 사방에 있는 모든 대적 곧 모압과 암몬 자손과 에돔과 소바의 왕들과 블레셋 사람들을 쳤는데 향하는 곳마다 이겼고

48. 용감하게 아말렉 사람들을 치고 이스라엘을 그 약탈하는 자들의 손에서 건졌더라

49. 사울의 아들은 요나단과 이스위와 말기수아요 그의 두 딸의 이름은 이러하니 맏딸의 이름은 메랍이요 작은 딸의 이름은 미갈이며

50. 사울의 아내의 이름은 아히노암이니 아히마아스의 딸이요 그의 군사령관의 이름은 아브넬이니 사울의 숙부 넬의 아들이며

51. 사울의 아버지는 기스요 아브넬의 아버지는 넬이니 아비엘의 아들이었더라

52. 사울이 사는 날 동안에 블레셋 사람과 큰 싸움이 있었으므로 사울이 힘 센 사람이나 용감한 사람을 보면 그들을 불러모았더라

 

<... 내가 다만 내 손에 가진 지팡이 끝으로 꿀을 조금 맛보았을 뿐이 오나 내가 죽을 수밖에 없나이다>(43절).

요나단은 자신의 행위의 정당성을 변명하면서도 겸손히 아버지 사울의 뜻을 좇기로 작정합니다. 그러나 백성들이 나서서 요나단의 구명을 위해 사울에게 호소하고 탄원합니다. <이스라엘에 이 큰 구원을 이룬 요나단이 죽겠나이까 결단코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그의 머리털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할 것은 그가 오늘 하나님과 동역하였음이니이다 하여 백성이 요나단을 구원하여 죽지 않게 하니라>(45절).

 

백성들의 주장은 하나님께서 요나단을 도구로 블레셋과 전투를 치르셨고 금번 믹마스 전투를 승리로 이끄셨다는 겁니다. 따라서 요나단에 대한 처형은 마땅히 철회되어야 옳다는 것입니다. 당시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사람을 해치는 일은 그 자체가 곧 하나님을 거역하는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인간의 경솔하고 무책임한 맹세가 애꿎은 하나님의 동역자를 해치는 일이야 말로 전혀 하나님의 뜻에 합당치 않다는 주장입니다. 결국 요나단을 지키겠다는 백성들의 강한 의지가 <요나단을 구원하여 죽지 않게>했습니다.

 

사울도 권력을 잡긴 했지만 이제 백성을 다스리는 일은 적을 대하듯 칼을 휘두르는 방식으로 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랬다가는 민심이 다 떠날 것이고 왕에 대한 원성이 높아질 것이라는 사실을 그도 새삼 깨달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백성들의 소리를 들을 수밖에 없었고, 또 그게 자신의 아들을 살리는 길이기도 했기에 백성들의 주장을 따르기로 한 것입니다.

 

무엇을 택하고 무엇을 포기할 것인가? 우리는 늘 그런 선택의 기로에 섭니다. <생명과 맹세>의 대립 가운데서 백성들은 <생명>을 택한 것입니다. 생명의 힘이 사울의 칼의 힘을 이긴 것입니다. 믿음이란 세상의 허세와 거짓을 꿰뚫어 보는 힘이자 생명을 살리는 결단입니다. 우리는 생명을 파괴하는 탐욕이 아니라 요나단처럼 억울하게 희생당할지도 모르는 한 생명을 구하는 일에 언제나 참된 지혜와 믿음을 모아야 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입니다.

 

-백성들의 적극적인 구명으로 죽음을 면한 요나단의 당시 심경은 어떠했을까요?

-본문 47절에 나오는 <소바의 왕들>은 어떤 사람들이었습니까(삼하 8:3)?

-본문 49절에 나오는 <이스위>는 누구와 동일 인물이었을까요(31:2, 대상 8:33, 9:39)?

 

주님, 백성들은 사울 왕의 맹세가 무모하고 어리석었음을 잘 알았습니다. 그럼에도 사울이 자신의 아들을 죽이려하자 적극 나서 탄원하며 구명했습니다. <그는 하나님과 동역한 사람이라>며 머리털 하나도 땅에 떨어져서는 안 된다고 왕의 고집을 가로막았습니다. 그리고 결국은 요나단의 생명을 지키고 구했습니다. 저희도 살아가며 언제나 생명을 택하고 생명을 지키고 구하는 일에 헌신하게 하시옵소서. 거기에 보람이 있고 기쁨이 있고 하나님의 뜻이 있음을 깊이 깨닫게 해주시옵소서.

 
   

우리는 누구나 시인입니다

 

“셸링은 『예술철학』에서 다음과 같은 내용을 말했습니다.

‘여러분,누가 시인입니까? 역사적으로 유명한 시인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나는 여러분에게 다시한번 묻습니다. 과연 누가 진정한 시인

입니까? 인간은 누구나 시인입니다.’”

 

강영계 저(著) 《사랑》 (새문사, 173쪽)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플라톤은 “사랑하면 누구나 시인이 된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철

학자 셸링은 《예술철학》에서 인간은 누구나 시인이라고 하였습니다.

옳습니다. 우리는 비록 시집을 펴내는 시인이 될 수는 없더라도 누

구나 시인입니다. 사랑하기 전에도 시인입니다. 눈 길을 걸어도 시

인이 되고 달이 떠도 시인이 됩니다. 아니 밤만 되어도, 커피만 마셔도

시인이 됩니다. 시골 담벼락에 먹기 좋은 호박을 심지 않고 곱디 고운

채송화를 심은 가난한 농부도 시심(詩心) 가득한 시인입니다.

‘죽은 시인의 사회’ 속에 사는 우리는 시인이 되어 죽어가는 그리

움과 사랑에 색을 칠해 주고 노래를 불러 주어야 합니다.

무엇보다 성도들은 그냥 시인이 아니라 하늘의 시인들입니다.

우리 마음속에는 하나님, 영혼, 사랑,죽음, 죄 용서 등 영원에 잇닿은

여러 생각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생활에 파묻히고 죄악에 빠져 잊어버

리고 사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때 하늘의 시인이 말을 건네 주어야 합

니다.

“하나님이 계십니다. 우리에게는 영혼이 있습니다. 주홍빛 같은 죄를

씻는 길이 있습니다. 생명의 삶을 사는 길이 있습니다....”

성도들은 영혼과 영원에 색깔을 칠해 주는 하늘의 시인입니다. 그리

하여 사람을 살리는 고귀한 존재들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열심으로 너희를 위하여 열심을 내노니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로다.”

(고후11:2)

   

디모데후서 1:7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이니

For God did not give us a spirit of timidity,

but a spirit of power, of love and of self-discipline.(NIV)

   

가치

기쁨은 우리의 내면에서 우리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가치를

먼저 발견하는데 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것을 삶 속에서 누릴 때 비로소 기쁨이 오는 것이다.

때문에 어찌 보면 기쁨은 배워야 할 부분이요, 회복해야 될 감정이다.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지 않았는가?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고 난 다음에 하나님을 알게 되면,

성령이 우리 속에 오셔서 새로운 일을 시작하신다고 말이다.

-김형국의 [기쁨] 중에서-

 

내가 무엇으로 살아가는 사람인지는

그가 추구하는 가치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무엇인가를 가지고 되는 것의 가치가

우리를 영원한 기쁨으로 초대할 것 같지만

그것으로 기쁨을 누리지 못합니다.

오히려 우리 속에 있는 하나님을 향한 믿음의 가치가 분명할 때

세상이 기뻐하는 것이 아닌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로 인하여 기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