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종이 제사보다 낫다 (삼상 15:17-23)
10월 03일 (토)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 (삼상 15:17-23) 17. 사무엘이 이르되 왕이 스스로 작게 여길 그 때에 이스라엘 지파의 머리가 되지 아니하셨나이까 여호와께서 왕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을 삼으시고
<사무엘이 이르되 왕이 스스로 작게 여길 그때에 이스라엘 지파의 머리가 되지 아니하셨나이까 ...>(17절). 처음 사울이 취했던 겸손한 행동을 회고하는 말입니다. 그러나 왕위에 오르고 권력이 주어지자 사울은 점차 교만하여 결국은 비천한 자를 들어 왕으로 세우신 하나님의 명령까지도 무시하는, 그래서 하나님을 후회하시게 까지 한 패역한 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마 23:12).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벧전 5:6).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서 죽으심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빌 2:7-11).
당시 사울의 불순종이 더욱 가증했던 것은 사무엘이 그의 죄악을 지적하자 <가장 좋은 것으로 길갈에서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하려고 양과 소를 끌어 왔나이다>(21절)하며 자신의 행위를 제사를 빙자해 정당화하려 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저 유명한 사무엘 선지자의 금언이 선포됩니다. <...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22절).
이 말씀은 예배에 합당한 기본자세가 무엇인가를 밝인 중요한 가르침입니다. 즉 ① 예배는 형식보다 예배자의 마음 자세가 중요하다는 것이고 ② 영이신 하나님께는 숫양의 피나 기름보다 인간의 전 인격적인 마음을 원하신다는 것이고(시 51:10, 요 4:24) ③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이야말로 모든 신앙생활의 척도가 된다(딤후 3:16-17)는 것입니다. 제사는 그림자요 순종이 신앙의 실체라는 것입니다. 의식으로서의 제사로는 죽은 짐승의 고기를 드릴 뿐이지만 말씀에 대한 순종으로 드리는 제사는 자신을 바치는 것입니다. 따라서 순종이야 말로 우리가 드려 마땅한 산 제사요 영적 예배라는 것입니다.
-당신이 생각하는 진정한 제사를 정의해 보십시오. -전도서 5:1 말씀을 옮겨 적어 보십시오. -사무엘이 왜 <거역하는 것이 점치는 죄와 같다>(23절)고 했을까요?
주님, 왕이 되기 전에는 그토록 겸손했던 사울이 권력을 쥐자 완전히 바뀌어 교만하고 불순종하며 하나님을 반역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주님, 순종이 진정한 제사고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는 일이 번제보다도 하나님께 더 큰 기쁨을 드리는 일입니다. 저희들 다시 한 번 오늘 본문의 말씀을 마음 깊이 새기게 하사 늘 말씀에 순종하므로 진정한 예배, 영적 제사를 드리며 사는 성도들 되게 해주시옵소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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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십자가 보혈의 무한 능력 화를 내는 죄, 미워하는 죄, 더러운 생각이 스치는 죄 등, 우리는 죄 사함을 받았어도 육에 속하여 사는 동안은 죄로부터 완전하게는 자유롭지 못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과거의 죄를 사함받았다 하더라도 새롭게 짓는 수많은 죄로 인해 지옥에 떨어져야 할 것이다. 이는 천국은 머리카락만 한 죄가 있더라도 들어갈 수 없는 완전하고 거룩한 곳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죄를 범하는 우리의 구원은 사실 전혀 보장될 수 없다. 그러나 십자가의 보혈은 우리를 영원히 보호할 능력이 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도다”(롬 8:1). -스데반 황 목사의 ‘그리스도의 보혈 교회’에서-
우리는 죄 사함을 받아도 또 쓰러지고 호흡이 마치는 순간까지 죄를 짓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의 보혈은 모든 죄를 사할 능력이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주의 속량 때문에 죄사함 받은 자로부터 죄와 싸울 수 있는 거룩한 마음을 거두지 않으십니다 따라서 그들은 비록 죄에 쓰러지더라도 죄와 싸울 수 있는 거룩한 생명과 마음이 있기 때문에 회개하고 다시 일어섭니다. 이처럼 십자가의 보혈은 우리의 구원을 보장합니다. 이는 그 보혈은 영원토록 죄사함의 효력을 나타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구원은 영원토록 안전합니다. 한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요, 한번 거듭남은 영원한 영생을 얻어 거듭난 것입니다. 이것이 십자가 보혈의 무한한 능력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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