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사람의 중심을 보느니라 (삼상 16:1-7)
10월 05일 (월)
나는 사람의 중심을 보느니라 (삼상 16:1-7) 1.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미 사울을 버려 이스라엘 왕이 되지 못하게 하였거늘 네가 그를 위하여 언제까지 슬퍼하겠느냐 너는 뿔에 기름을 채워 가지고 가라 내가 너를 베들레헴 사람 이새에게로 보내리니 이는 내가 그의 아들 중에서 한 왕을 보았느니라 하시는지라
<... 너는 뿔에 기름을 채워가지고 가라 내가 너를 베들레헴 사람 이새에게 보내리니 이는 내가 그의 아들 중에서 한 왕을 보았느니라>(1절). 사울의 비극에 대해 슬퍼하고 있는 사무엘에게 하나님이 <네가 그를 위하여 언제까지 슬퍼하겠느냐>(1절)하시며 사울 왕 후임에게 기름을 붓도록 베들레헴 사람 이새의 집으로 보내십니다. 베들레헴은 사무엘의 고향인 라마에서는 남서쪽으로 약 16km, 예루살렘에서는 남서쪽으로 약 10km 거리의 해발 690m에 위치한 작은 유다 성읍입니다.
<이새>는 보아스와 모압 여인 룻 사이에서 태어난 오벳의 아들로 그 이름의 뜻은 <여호와의 사람>입니다. 그의 할아버지 보아스가 부자였으므로 이새 역시 부유했음이 분명합니다. 하나님이 사무엘에게 이새의 여덟 명의 아들 중 하나 즉, <내가 네게 알게 하는 자에게 나를 위하여 기름을 부을지니라>(3절)고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사울에게 기름을 부었던 것은 백성의 요청에 따른 것이었으나 다윗에게 기름을 붓은 것은 곧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사울을 선택할 때 그의 탁월한 신체 조건을 중시했던 것처럼(9:2, 10:23, 24), 사무엘도 지금 이새의 아들 엘리압을 보며 그 마음에 이르기를 <여호와의 기름 부으실 자가 과연 주님 앞에 있도다>하며 그의 준수한 외모를 보고 예단했다는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이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의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 ...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7절)고 하셨습니다.
사람은 외모를 보고 판단하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시고 사람을 택하신다는 말씀은 사람에 대한 판단의 기준이 서로 전혀 다르다는 뜻입니다. 사람은 육신의 눈을 가지고 외적 용모, 신장, 이력, 배경 등을 척도로 삼지만 하나님은 마음의 눈으로 그 사람의 내적 인격, 신앙, 진실성, 성실성 등을 감찰하사 결정하시고 판단하신다는 말씀입니다(대상 28:9, 시 7:9, 눅 16:15).
-<베들레헴>이란 지명의 뜻은 무엇일까요? -사무엘이 왜 <사울이 들으면 나를 죽이리이다>(2절)라고 했을까요? -사람에 대해 판단할 때 <그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5절)고 하셨는데 현대 사회에서도 적용 가능할까요?
주님, 저희는 여전히 사람을 외모로만 봅니다. 용모를 보고, 키를 보고, 이력을 보고, 배경을 보고 그 사람을 판단하고 선택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저희의 중심을 보신다고 하셨습니다. 그 사람의 신앙과 인격과 마음을 보시고 진실성, 성실성을 보시고 판단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보시는 것은 사람의 그것과 다르십니다. 부디 사람의 내면을 감찰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늘 자신의 중심을 살피며 자기를 더욱 바르게 관리하며 사는 저희들 되게 해주시옵소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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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수복과 나비
“흘러내리는 침을 정상적으로 삼킬 수 만 있다면, 세상에서 가장 행 복한 사람이 된 기분일 것 같다.”
장 도미니크 보비 저(著) 양영란 역(譯) 《잠수종과 나비》 (동문선, 27쪽)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1995년 12월 8일, 프랑스의 세계적인 여성잡지 엘르(Elle)의 편집장이며 준수한 외모와 화술로 프랑스 사교계를 풍미하던 43세의 장 도미니크 보 비가 뇌졸중으로 쓰러졌습니다. 3주 후, 의식을 회복했지만 전신마비가 된 상태에서 유일하게 왼쪽 눈꺼풀만 움직일 수 있었습니다. 가만히 있으면 입안에 고인 침이 밖으로 흐르고 삶에 대한 그리움으로 소리 내어 울 수도 없는 상황은 마치 두껍고 온 몸을 마비시킬 듯 답 답한 잠수복을 입은 것 같습니다. 이러한 절망 끝에서 그는 나비 같은 날개짓을 시작합니다. 그는 눈 깜빡임 신호로 알파벳을 지정해 글을 썼습니다. 때로는 한 문장 쓰는데 꼬박 하룻밤을 샜습니다. 그런 식 으로 대필자인 클로드 망디빌에게 20만 번 이상 눈을 깜박여 15개월 만에 쓴 책이 《잠수종과 나비(The Diving Bell and the Butterfly)》 입니다. 움직일 수 없는 자신의 육체를 잠수복에, 훨훨 자유롭게 날아가고 싶은 의식을 나비에 비유했습니다. 그의 말에 의하면, 흘러내리는 침을 삼킬 수만 있다면 세상에서 참 행복한 사람입니다. 자연스런 들숨과 날숨을 가진 것만으로도 행복한 사람입니다. 그가 잠수복 같은 육체 속에서 나비처럼 날아 발견한 인생의 가장 큰 진리는 바로 ‘감사’였습니다. 주변에 소소하게 펼쳐 있었던 수많은 감사의 일들을 감사하지 않고 지 나치며 불평하고 살았던 나날들에 대한 깊은 회한이었습니다. 잃고 난 다음 깨달아 감사하는 것은 절반의 행복입니다. 잃기 전 지 극히 평범한 일상 가운데 눈 앞에 차오는 수많은 감사의 일들을 감사 하며 기뻐하며 사는 것이 신앙이며 행복입니다.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살전5: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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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12:10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며 Be devoted to one another in brotherly love. Honor one another above yourselves.(NIV)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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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피는 하나님의 아들의 피이기 때문에 아무리 작은 죄라도 완전하신 하나님 앞에 허락될 수 없고 누구든지 먼지만 한 죄를 짓더라도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없다. 이것은 그 영혼이 지옥에 떨어지고 결코 나오지 못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이 세상의 어떤 것으로도 사람의 그 죄를 씻을 수 없다. 결코 불가능하다. 오직 사람의 죄를 씻을 수 있는 유일한 것은 의인으로서 내 대신 죽으신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 외에는 다른 것이 없다. 그 피는 독생하신 하나님의 피이며, 완전한 의인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피이다. 그 피는 하나님의 아들의 피이기 때문에 무한하고 영원하신 하나님의 거룩함과 공의를 만족시킬 수 있는 것이다. -스데반 황 목사의 ‘그리스도의 보혈 교회’에서-
하나님의 의의 조건을 만족시킬 수 있는 것은 완전하게 거룩하신 십자가에서 흘리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 외에 그 어떤 것도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 피는 하나님의 공의와 거룩의 요구를 만족시켰고 이에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죽음에서 일으키심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죄인들과 세상과 화목하게 되었음을 확인시켜 주셨습니다. “예수는 우리가 범죄한 것 때문에 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롬 4: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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