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Faith - Hymn

다윗 (삼상 16:15-23)

鶴山 徐 仁 2020. 10. 7. 14:39

다윗 (삼상 16:15-23)

 

10월 07일 (수)

   

다윗 (삼상 16:15-23)

15. 사울의 신하들이 그에게 이르되 보소서 하나님께서 부리시는 악령이 왕을 번뇌하게 하온즉

16. 원하건대 우리 주께서는 당신 앞에서 모시는 신하들에게 명령하여 수금을 잘 타는 사람을 구하게 하소서 하나님께서 부리시는 악령이 왕에게 이를 때에 그가 손으로 타면 왕이 나으시리이다 하는지라

17. 사울이 신하에게 이르되 나를 위하여 잘 타는 사람을 구하여 내게로 데려오라 하니

18. 소년 중 한 사람이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베들레헴 사람 이새의 아들을 본즉 수금을 탈 줄 알고 용기와 무용과 구변이 있는 준수한 자라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계시더이다 하더라

19. 사울이 이에 전령들을 이새에게 보내어 이르되 양 치는 네 아들 다윗을 내게로 보내라 하매

20. 이새가 떡과 한 가죽부대의 포도주와 염소 새끼를 나귀에 실리고 그의 아들 다윗을 시켜 사울에게 보내니

21. 다윗이 사울에게 이르러 그 앞에 모셔 서매 사울이 그를 크게 사랑하여 자기의 무기를 드는 자로 삼고

22. 또 사울이 이새에게 사람을 보내어 이르되 원하건대 다윗을 내 앞에 모셔 서게 하라 그가 내게 은총을 얻었느니라 하니라

23. 하나님께서 부리시는 악령이 사울에게 이를 때에 다윗이 수금을 들고 와서 손으로 탄즉 사울이 상쾌하여 낫고 악령이 그에게서 떠나더라

 

<... 내가 베들레헴 사람 이새의 아들을 본즉 수금을 탈 줄 알고 용기와 무용과 구변이 있는 준수한 자라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계시더이다>(18절).

사울 왕의 한 신하가 다윗에 대해 한 말입니다.

온갖 인간적인 자질 뿐 아니라 <여호와께서 함께 계시더라>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다윗은 기름 부음을 받을 때부터 여호와의 영이 그를 감동하셨는데(13절), 그 후에도 그런 상태가 계속됐음을 뜻하는 증언입니다.

<하나님께서 부리시는 악령이 사울에게 이를 때에 다윗이 수금을 들고 와서 손으로 탄즉 사울이 상쾌하여 낫고 악령이 그에게서 떠나더라>(23절).

 

그러나 사울은 다윗과 달리 여호와의 영이 떠난 자리를 악령이 대신 차지하면서 자주 정신적인 혼란과 고통, 번뇌에 시달렸다고 합니다(15절).

<번뇌>란 극심한 불안과 우울증으로 인한 <정신착란>을 뜻합니다. 그래서 여호와의 신에 감동된 다윗의 영감 어린 수금 연주가 왕의 번뇌를 진정시키는 데 큰 효과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일종의 음악을 통한 치료요법이었던 셈입니다. 이처럼 다윗은 <용기와 무용>뿐 아니라 시를 쓰고 악기를 연주하는 능력에도 뛰어났던 이스라엘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왕이었습니다. 유다 지파에 속한 베들레헴 출신의 일개 양치기 목동이 사무엘 선지자에 의해 기름 부음을 받고 성별되어 이스라엘의 진정한 영웅이 되었습니다.

 

사실 다윗이란 이름은 예수 그리스도와 관련하여 가장 많이 등장합니다. 그리스도의 족보는 다윗에게로 거슬러 올라가며, 또 그리스도를 <다윗의 자손>이라고 부르는 것이 유대인들의 오랜 전통이자 성서적 전통으로 되어 있습니다.

사울도 처음에는 다윗을 크게 사랑하였습니다. <다윗을 내 앞에 모셔 서게하라 그가 내게 은총을 얻었느니라>(22절). 그러나 다윗에 대한 백성들의 칭송이 자신을 앞지르자(18:7) 그때부터 다윗을 시기하고 질투하며 극단적으로 적대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사울은 집요하게 다윗을 추적하며 죽이려했습니다.

 

-다윗에 대한 당신의 생각을 간략히 적어 보십시오.

-사울 왕의 다윗에 대한 질투심에 대해 당신의 생각을 적어 보십시오.

-당신은 다윗이 지은 시편 가운데서 한 편을 꼽는다면 어디를 드시겠습니까?

 

주님, 다윗이 하나님의 택하심을 입고 기름 부음을 받은 것은 수금을 잘 타고 용기가 있고 무용하고 구변이 좋아서가 아니었습니다. 또 그 외모가 준수했기 때문도 아니었습니다. 그에게는 분명 남이 가지지 못한 믿음이 있었고, 하나님 마음에 드는 경건이 있었습니다. 여호와의 영의 뜨거운 감동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그를 크게 사용하사 이스라엘의 위대한 성군이 되게 하셨습니다.

저희로 하여금 다윗의 존재와 영성과 생애에서 큰 감동과 도전을 느끼게 해주시옵소서.

 
   

상처가 그대로인 이유

 

“그리스도는 그 상처들을 잃어 버리지 않으셨다. 예수님께서는 그 상

처들을 입은 채 무덤 속으로 들어가셨다가, 그 상처들을 가지고 돌아

오셨다. 그 상처들은 우리의 눈으로 볼 수 있으며, 실제적이고 분명한

것이었다. 부활은 그 상처들을 없애지 않았다. 죽음의 굴레에서 벗어

난 예수님이었지만 상처는 여전히 간직하셨다.”

 

월터스토프 저(著) 박혜경 역(譯) 《나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습니다》

(좋은씨앗, 148쪽)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 자리에 없었던 도

마는 예수님의 부활을 의심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도마가 이르되 내가 그의 손의 못 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 자

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

하니라.” (요20:25b)

 

이윽고 도마에게 나타나신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요20:27b)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에도 십자가의 못 자국 창 자국을 그대로 가지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상처는 그분의 정체성을 상징합니다. 그

상처는 그분이 누구신지를 말해줍니다. 예수님은 온 삶과 영혼과 몸

으로 사랑의 흔적 사랑의 상처로 가득하셨던 분입니다. 그리고 부활하신

후에도 그 상처를 간직하시며 상처 가득한 우리를 보금어 안고 계십니다.

 

 

   

마태복음 18:20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For where two or three come together in my name,

there am I with them.(NIV)

   

오직 하나, 내가 하나님 앞에

행복은 소유에 달려 있지 않습니다.

나의 세계관과 나의 생활 철학에 따라

행복하기도 하고 불행하기도 합니다.

돈, 명예, 지식, 지위를 다 가졌다 해도

내 마음이 다른 곳을 향해 있으면 행복할 수가 없습니다.

가장 중요한 관심, 인간이 마땅히 지녀야 할 관심

바로 '의(義)'입니다.

의를 최대의 관심으로 삼아야 합니다

쉬운 예로, 여러분이 지금 임종을 맞는다고 생각해봅시다.

이제 죽는 시각인데 재산이 소용 있습니까?

장수한 것이 보람입니까?

지식이나 명예가 무슨 소용입니까?

오직 하나, 내가 하나님 앞에 어떠한 모습으로 설 것인가---

그 때에는 의(義)만이 문제가 됩니다.

-곽선희 목사의 ‘두 예배자의 관심’에서-

내가 의롭게 살아왔나 돌아볼 때에

뉘우치고 후회하게 됩니다.

의가 침해될 때에는 존재를 상실하는 아픔을 느끼게 마련입니다.

돈을 잃어버린 것은 참을 수 있어도

명예를 잃어버리면 참기 어려운 것이 사람입니다.

하물며 나의 의가 짓밟힐 때에야

그 고통이 엄청날 수밖에 없습니다.

'배부른 돼지보다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되겠다'고

하는 말이 있습니다.

사람이 배만 부르다고 만족할 수는 없습니다.

사람의 결국은 얼마나 의롭게 살았느냐 하는 것입니다

 

10월 07일 (수)

   

다윗 (삼상 16:15-23)

15. 사울의 신하들이 그에게 이르되 보소서 하나님께서 부리시는 악령이 왕을 번뇌하게 하온즉

16. 원하건대 우리 주께서는 당신 앞에서 모시는 신하들에게 명령하여 수금을 잘 타는 사람을 구하게 하소서 하나님께서 부리시는 악령이 왕에게 이를 때에 그가 손으로 타면 왕이 나으시리이다 하는지라

17. 사울이 신하에게 이르되 나를 위하여 잘 타는 사람을 구하여 내게로 데려오라 하니

18. 소년 중 한 사람이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베들레헴 사람 이새의 아들을 본즉 수금을 탈 줄 알고 용기와 무용과 구변이 있는 준수한 자라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계시더이다 하더라

19. 사울이 이에 전령들을 이새에게 보내어 이르되 양 치는 네 아들 다윗을 내게로 보내라 하매

20. 이새가 떡과 한 가죽부대의 포도주와 염소 새끼를 나귀에 실리고 그의 아들 다윗을 시켜 사울에게 보내니

21. 다윗이 사울에게 이르러 그 앞에 모셔 서매 사울이 그를 크게 사랑하여 자기의 무기를 드는 자로 삼고

22. 또 사울이 이새에게 사람을 보내어 이르되 원하건대 다윗을 내 앞에 모셔 서게 하라 그가 내게 은총을 얻었느니라 하니라

23. 하나님께서 부리시는 악령이 사울에게 이를 때에 다윗이 수금을 들고 와서 손으로 탄즉 사울이 상쾌하여 낫고 악령이 그에게서 떠나더라

 

<... 내가 베들레헴 사람 이새의 아들을 본즉 수금을 탈 줄 알고 용기와 무용과 구변이 있는 준수한 자라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계시더이다>(18절).

사울 왕의 한 신하가 다윗에 대해 한 말입니다.

온갖 인간적인 자질 뿐 아니라 <여호와께서 함께 계시더라>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다윗은 기름 부음을 받을 때부터 여호와의 영이 그를 감동하셨는데(13절), 그 후에도 그런 상태가 계속됐음을 뜻하는 증언입니다.

<하나님께서 부리시는 악령이 사울에게 이를 때에 다윗이 수금을 들고 와서 손으로 탄즉 사울이 상쾌하여 낫고 악령이 그에게서 떠나더라>(23절).

 

그러나 사울은 다윗과 달리 여호와의 영이 떠난 자리를 악령이 대신 차지하면서 자주 정신적인 혼란과 고통, 번뇌에 시달렸다고 합니다(15절).

<번뇌>란 극심한 불안과 우울증으로 인한 <정신착란>을 뜻합니다. 그래서 여호와의 신에 감동된 다윗의 영감 어린 수금 연주가 왕의 번뇌를 진정시키는 데 큰 효과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일종의 음악을 통한 치료요법이었던 셈입니다. 이처럼 다윗은 <용기와 무용>뿐 아니라 시를 쓰고 악기를 연주하는 능력에도 뛰어났던 이스라엘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왕이었습니다. 유다 지파에 속한 베들레헴 출신의 일개 양치기 목동이 사무엘 선지자에 의해 기름 부음을 받고 성별되어 이스라엘의 진정한 영웅이 되었습니다.

 

사실 다윗이란 이름은 예수 그리스도와 관련하여 가장 많이 등장합니다. 그리스도의 족보는 다윗에게로 거슬러 올라가며, 또 그리스도를 <다윗의 자손>이라고 부르는 것이 유대인들의 오랜 전통이자 성서적 전통으로 되어 있습니다.

사울도 처음에는 다윗을 크게 사랑하였습니다. <다윗을 내 앞에 모셔 서게하라 그가 내게 은총을 얻었느니라>(22절). 그러나 다윗에 대한 백성들의 칭송이 자신을 앞지르자(18:7) 그때부터 다윗을 시기하고 질투하며 극단적으로 적대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사울은 집요하게 다윗을 추적하며 죽이려했습니다.

 

-다윗에 대한 당신의 생각을 간략히 적어 보십시오.

-사울 왕의 다윗에 대한 질투심에 대해 당신의 생각을 적어 보십시오.

-당신은 다윗이 지은 시편 가운데서 한 편을 꼽는다면 어디를 드시겠습니까?

 

주님, 다윗이 하나님의 택하심을 입고 기름 부음을 받은 것은 수금을 잘 타고 용기가 있고 무용하고 구변이 좋아서가 아니었습니다. 또 그 외모가 준수했기 때문도 아니었습니다. 그에게는 분명 남이 가지지 못한 믿음이 있었고, 하나님 마음에 드는 경건이 있었습니다. 여호와의 영의 뜨거운 감동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그를 크게 사용하사 이스라엘의 위대한 성군이 되게 하셨습니다.

저희로 하여금 다윗의 존재와 영성과 생애에서 큰 감동과 도전을 느끼게 해주시옵소서.

 
   

상처가 그대로인 이유

 

“그리스도는 그 상처들을 잃어 버리지 않으셨다. 예수님께서는 그 상

처들을 입은 채 무덤 속으로 들어가셨다가, 그 상처들을 가지고 돌아

오셨다. 그 상처들은 우리의 눈으로 볼 수 있으며, 실제적이고 분명한

것이었다. 부활은 그 상처들을 없애지 않았다. 죽음의 굴레에서 벗어

난 예수님이었지만 상처는 여전히 간직하셨다.”

 

월터스토프 저(著) 박혜경 역(譯) 《나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습니다》

(좋은씨앗, 148쪽)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 자리에 없었던 도

마는 예수님의 부활을 의심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도마가 이르되 내가 그의 손의 못 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 자

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

하니라.” (요20:25b)

 

이윽고 도마에게 나타나신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요20:27b)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에도 십자가의 못 자국 창 자국을 그대로 가지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상처는 그분의 정체성을 상징합니다. 그

상처는 그분이 누구신지를 말해줍니다. 예수님은 온 삶과 영혼과 몸

으로 사랑의 흔적 사랑의 상처로 가득하셨던 분입니다. 그리고 부활하신

후에도 그 상처를 간직하시며 상처 가득한 우리를 보금어 안고 계십니다.

 

 

   

마태복음 18:20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For where two or three come together in my name,

there am I with them.(NIV)

   

오직 하나, 내가 하나님 앞에

행복은 소유에 달려 있지 않습니다.

나의 세계관과 나의 생활 철학에 따라

행복하기도 하고 불행하기도 합니다.

돈, 명예, 지식, 지위를 다 가졌다 해도

내 마음이 다른 곳을 향해 있으면 행복할 수가 없습니다.

가장 중요한 관심, 인간이 마땅히 지녀야 할 관심

바로 '의(義)'입니다.

의를 최대의 관심으로 삼아야 합니다

쉬운 예로, 여러분이 지금 임종을 맞는다고 생각해봅시다.

이제 죽는 시각인데 재산이 소용 있습니까?

장수한 것이 보람입니까?

지식이나 명예가 무슨 소용입니까?

오직 하나, 내가 하나님 앞에 어떠한 모습으로 설 것인가---

그 때에는 의(義)만이 문제가 됩니다.

-곽선희 목사의 ‘두 예배자의 관심’에서-

내가 의롭게 살아왔나 돌아볼 때에

뉘우치고 후회하게 됩니다.

의가 침해될 때에는 존재를 상실하는 아픔을 느끼게 마련입니다.

돈을 잃어버린 것은 참을 수 있어도

명예를 잃어버리면 참기 어려운 것이 사람입니다.

하물며 나의 의가 짓밟힐 때에야

그 고통이 엄청날 수밖에 없습니다.

'배부른 돼지보다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되겠다'고

하는 말이 있습니다.

사람이 배만 부르다고 만족할 수는 없습니다.

사람의 결국은 얼마나 의롭게 살았느냐 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