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리앗 (삼상 17:1-11)
10월 08일 (목)
골리앗 (삼상 17:1-11) 1. 블레셋 사람들이 그들의 군대를 모으고 싸우고자 하여 유다에 속한 소고에 모여 소고와 아세가 사이의 에베스담밈에 진 치매
<블레셋 사람들의 진영에서 싸움을 돋우는 자가 왔는데 그의 이름은 골리앗이요 가드 사람이라 그의 키는 여섯 규빗 한 뼘이요>(4절). <싸움을 돋우는 자>란 히브리어 <아쉬 하베나임>으로 <둘 사이에 있는 자>란 뜻인데 이는 양쪽 군대를 대표하여 각 한 사림씩 나서서 싸워 그 전쟁의 승패를 가름하는 선봉장을 가리킵니다. 적진인 블레셋 군대의 골리앗은 거인족인 아낙 자손들의 지역으로 유명한 가드 출신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거인족의 후예답게 골리앗의 신체적 조건은 무시무시한 수준이었습니다. <그의 키가 여섯 규빗 한 뼘>이었다고 합니다. 한 규빗이 약 45cm, 한 뼘이란 약 13cm 정도를 말하므로 당시 골리앗의 키는 약 283cm 정도였다고 추정할 수 있습니다. 보통 사람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장대한 거구였음을 수치로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거기다 완전무장을 했습니다. <놋 투구에, 비늘갑옷에, 놋 각반, 놋 단창, 자루가 베틀 채 같은 창이며, 방패까지> 들었습니다. 그런 거대한 괴물 같은 자가 나서서 맞은편 이스라엘 군대를 향해 외쳤습니다. <너희가 어찌하여 나와 전열을 벌였느냐 ... 너희는 한 사람을 택하여 내게로 내려 보내라 그가 나와 싸워서 나를 죽이면 우리가 너희의 종이 되겠고 만일 내가 이게 그를 죽이면 너희가 우리의 종이 되어 우리를 섬길 것이니라>(9절).
그러나 사울 왕과 이스라엘 군대는 속수무책이었습니다. 감히 누구도 골리앗 앞에 나설 수 있는 자가 없었던 것입니다. 당시 이스라엘 군대의 눈에는 골리앗이 괴물일지언정 결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일대 일로 싸워 골리앗을 이길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사울과 온 이스라엘이 블레셋 사람의 이 말을 듣고 놀라 크게 두려워하니라>(11절). <놀라다>는 말은 히브리어 <하타트>, <두려워하다>는 히브리어로 <야레>라고 하는데 이 둘 다 극단적인 공포심을 표현할 때 사용하는 단어입니다(왕하 19:26, 사 30:31, 렘 8:9). 정신적으로 상대에게 완전히 압도당해 거의 이성을 상실한 상태를 뜻합니다. 골리앗이란 존재가 당시 이스라엘 군대에 그토록 치명적인 공포의 대상이었던 것입니다.
-당신이 상상하는 골리앗은 어떤 존재입니까? -그동안 당신의 인생에도 골리앗과 같은 거대한 적이 있었습니까? -여호수아 11:22 말씀을 옮기고, 골리앗과 관련한 당신의 소감을 적어 보십시오.
주님, 여호수아 시대 다 진멸하지 않고 가사와 가드와 아스돗에 아낙 자손들을 조금 남겨둔 것이 화근이 되어 결국 거기서 거대한 골리앗이 나왔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충실히 이행했던들 안 만날 수도 있었던 골리앗을 만나 죽음의 공포에 휩싸인 사울과 이스라엘 군대를 보며 오늘 저희도 많은 깨달음을 얻게 해주시옵소서. 늘 말씀에 순종하여 살게 하사 스스로 화를 자초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게 해주시옵소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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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 아기의 미소, 그리고 어머니의 사랑
“천사는 세 가지 보물을 안고 하늘로 올라갔다. 그런데 보따리를 풀자 꽃은 시들어 있었다. 아기는 맹렬하게 울고 있었다. 하지만 어머니의 사랑은 여전히 향기와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었다.”
임한창 저(著) 《삶이 당신을 속일지라도》 (국민일보, 28쪽) 중에 나 오는 구절입니다. 어느 날 하나님께서 천사를 불러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에 내려가서 가장 아름다운 것 세 가지를 찾아오너라” 천사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을 찾아 다녔습니다. 마침내 가장 아름다운 세 가지를 발견했습니다. 이슬을 머금은 영롱한 장미, 맑고 순수한 아기의 미소, 그리고 어머니의 사랑이었습니다. 천사는 이 세 가지를 들고 하늘 나라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돌아와 보니 장미꽃은 이미 시들어버렸고, 순수한 아기의 미소는 탐욕스럽게 변해 있었습니다. 어머니의 사랑만이 변치 않고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 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가장 닮은 어머니의 사랑. 유대인 탈무드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곳에 다 계실 수 없기 때문에 어머니를 보내셨다. 하나님께는 등이 없으시기에 어머니를 보내셔서 아기를 업어주셨고 가슴이 없으시기에 어머니를 보내셔서 안아주셨으며, 젖줄이 없으시기에 어머니를 보내셔서 젖을 먹여 길러주셨고 어머니의 따뜻한 손길로 돌보아 주셨다. 그러므로 어머니는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이 땅에서 계시해 주시는 분이시다.”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엡6: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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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명기 11:14
여호와께서 너희의 땅에 이른 비, 늦은 비를 적당한 때에 내리시리니 너희가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을 얻을 것이요 then I will send rain on your land in its season, both autumn and spring rains, so that you may gather in your grain, new wine and oil.(NIV)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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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얼굴과 얼굴로 대할 때에 여러분은 어떠한 기도를 하겠는가? 도대체 우리의 기도는 말이 너무 많다. 소원이 너무 많다. 약속도 많다. 지금까지 내뱉은 거짓말도 산더미같이 쌓였는데 또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인가? 예배하는 자는 하나님 앞에 있다.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과 나를 생각한다. 달리 더는 필요 없는 것이다. '주여, 나를 불쌍히 여기옵소서'라는 한마디면 족하다. 저 죽어 가는 강도를 긍휼히 여기신 것처럼 나를 긍휼히 여겨달라고 기도하면 그뿐이다. -곽선희 목사의 ‘두 예배자의 관심’에서-
우리의 기도는 너무 복잡하고 바라는 것이 많습니다. 어떤 때에는 원수를 갚아달라는 둥 고래고래 소리지르고 협박 공갈을 합니다. 온갖 불평과 원망을 다 토로합니다. 이렇게 하면서 하나님을 만났다고 생각하십니까? 하나님을 만난 자는 말이 없습니다. 하나님을 얼굴과 얼굴로 대할 때에 말이 필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느 성자에게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내게 구하라. 내가 너에게 무엇을 줄까?" 이렇게 대답하십시오. "나의 소원을 반납합니다. 주님의 마음대로 하옵소서. 나는 아무 소원도 구하지 않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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