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입력 2020.08.25 03:16
與, 코로나·수해 대형 재난에 "테러 방조" 野 압박에만 골몰
최승현 정치부 차장
나치는 대형 재난을 통해 독재 체제를 완성했다. 1933년 2월 27일 베를린 제국 의회 의사당 화재 사건이다. 국권의 상징이 사실상 전소(全燒)됐으니 이를 지켜보던 수도 시민들의 심리적 충격은 막대했다. 당시 총리였던 히틀러와 나치는 이 순간을 놓치지 않고 정치적 승부처로 삼았다. 체포된 용의자는 정신병력이 있는 공산주의자로 경찰에 단독 범행이라고 진술했고 당국도 그렇게 판단했다.
하지만 히틀러는 "독일을 차지하기 위한 공산주의자들의 조직적 봉기" "악랄한 병균에 철퇴를 가하라는 하늘의 계시"라며 공산당은 물론 사회민주당 소속 정치인, 지식인 수천 명을 무차별 체포했다. 일주일 뒤 총선에서 나치당은 43.9%를 얻으면서 큰 승리를 거뒀고, 두 달 후에는 그렇게 장악한 의회를 통해 수권법(授權法)을 통과시켰다. 히틀러와 나치당에 입법을 포함한 국가 운영의 전권이 쥐어졌으며, 다른 정당들은 해산 절차를 밟게 됐다.
더불어민주당이 최근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 집중호우로 인한 수해(水害) 등 대형 재난에 대처하는 방식을 보며 한 세기 전 불타오르던 베를린 의사당이 떠올랐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국가적 재난을 야당 압박의 도구로 삼는다는 점에서 나치당의 행태를 연상시키는 패턴이 보이기 때문이다. 코로나 사태의 경우, 8·15 광복절 집회 주도자 사랑제일교회 전광훈 목사에 대한 비판이 민주당을 통해 '코로나 확산은 모두 미래통합당 책임'이라는 정치 구호로 둔갑하고 있다. 이해찬 대표는 "감염 폭발 책임을 부인하는 통합당을 이해할 수 없다"고, 박광온 최고위원은 "통합당 방치로 대재앙과 같은 일이 벌어졌다"고 했다. 민주당은 아쉽겠지만 통합당은 광복절 집회에 참여하지 않았다. 오히려 주호영 원내대표 등 당 지도부는 전 목사를 향해 "공동선(善)을 무너뜨리는 행위는 용서할 수 없으며 대가를 치러야 한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여당의 '낙인찍기' 공세는 증폭되고 있다. 전당대회 연설에선 야당 말살의 광기까지 느껴진다. "극우 세력이 바이러스를 퍼뜨리고 통합당이 배후에 있다"(김부겸), "바이러스 테러범 방조한 김종인 위원장 끌어내리자"(이원욱) 등 뻔뻔한 음모론이 난무한다. 수해 피해 관련해선 난데없이 전 정권이 소환됐다. 통합당이 이명박 정권 당시 4대강 사업의 홍수 방지 효과를 언급하자 설훈 최고위원은 "낙동강 강둑이 터진 가장 큰 이유는 4대강 보가 물의 흐름을 방해해 강둑이 못 견딜 정도로 수압이 올랐기 때문"이라고 했다.
국민의 안전과 직결된 대형 재난이 여권을 통해 정쟁의 소재로 둔갑해 가뜩이나 불안한 민심을 더욱 뒤흔들고 있는 셈이다. '사람이 먼저다'라며 집권한 여권이 정작 재난 상황에선 '정치가 먼저다'라고 외치는 꼴이기도 하다. 재난 피해를 수습하면서 국민을 지키는 최종 책임은 정권에 있지만, 이들은 자신들 과오는 절대 인정하지 않는다. 더 큰 문제는 위태로운 재난을 도구 삼아 자신들을 반대하는 집단은 한곳으로 몰아 짓밟겠다는 발상처럼 느껴지는 '토끼몰이'식 재난 정치가 일상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예일대 교수 티머시 스나이더는 저서'폭정'에서 베를린 의사당 화재와 나치당을 언급하며 "갑작스럽게 닥친 재앙이 견제와 균형을 끝장내고 야당을 해산시키고 공정 재판의 권리를 중단시킨다. 속지 말라"고 했다. 광화문 집회 일부 허용 판결을 내린 판사까지 비난하는 민주당 행태를 보면 이 시점에 딱 맞아떨어지는 경구(警句)다. 혹시라도 여권의 누군가 코로나 사태를 '친문세상' 완성의 호기로 생각하고 있지는 않을지 등골이 서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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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8/24/202008240407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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