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월 31일 (금)
스스로 높아지면 넘어지리라! (다니엘 11:10-19) 10. 그러나 그의 아들들이 전쟁을 준비하고 심히 많은 군대를 모아서 물이 넘침 같이 나아올 것이며 그가 또 와서 남방 왕의 견고한 성까지 칠 것이요
<... 그의 마음이 스스로 높아져서 수만 명을 엎드러뜨릴 것이나 그 세력은 더하지 못할 것이요>(12절). <... 포악한 자가 스스로 높아져서 환상을 이루려 할 것이나 그들이 도리어 걸려 넘어지리라>(14절).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라>(잠 16:18)고 했습니다. 스스로를 상대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 자기 밖에는 모르는 사람, 지독하게 이기적인 사람, 독선적인 사람, 타협을 모르고 관용을 베풀 줄 모르는 사람이 바로 다름 아닌 교만한 사람입니다. 한 나라나 사회나 개인이나 교만하면 결국은 자기 발에 결려 넘어집니다. 스스로를 높이는 사람은 반드시 하나님이 강제로 낮추십니다.
그러나 스스로 자신을 낮추면 하나님이 그를 반드시 높이신다고 했습니다.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신다>(약 4:6)는 말씀도 있습니다. 찰스 스탠리는 <사탄은 아침마다 우리의 삶에 지뢰를 매설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사탄이 가장 애용하는 지뢰는 바로 <교만>인데 거기에 걸려들어 스스로를 높이면 결국 하나님에게서 눈을 떼고 오직 자기 자신만을 바라보게 된다고 합니다. <무릇 마음이 교만한 자를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나니 ... 벌을 면치 못하리라>(잠 16:5).
성경에 나오는 위대한 믿음의 선진들은 다 하나님 앞에 머리를 조아릴 줄 알았던 겸손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기독교 신앙이 말하는 사랑이란 <내가 먼저>라는 교만과 이기적인 기득권의 벽을 넘어 <우리 모두가 향유해야 할 삶의 권리>에 마음을 쓰는 진실과 겸손에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늘상 그릇된 현실을 역전시키는 위대한 파라독스로 나타납니다. <스스로 높아지면 넘어지고 스스로 자신을 낮추면 높아지는 역설의 진리>, 그게 우리가 꼭 배우고 실천해야 할 성경적 가르침의 진수입니다. 부디 늘 겸손함으로 기독교 진리의 이 역설을 삶 속에서 깊이 체험하실 수 있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구약 성경의 인물 중 교만하여 실패한 사람과 겸손하여 축복받은 사람을 각각 한 명씩 적어 보십시오. -신구약 성경 중 교만을 경계하고 겸손을 평가하는 말씀 중 한 구절만 선택해 적어 보십시오. -오늘 본문처럼 하나님은 그게 이스라엘이든 이방 민족이든 교만하면 다 물리치시고 결국은 넘어뜨리십니다. 이유가 뭘까요?
주님, 일찍이 하나님을 반역하여 하늘에서 쫓겨나 사탄이 되고 마귀가 된 천사장과 그를 추종했던 천사들은 교만하여 다 그렇게 타락했고, 아담과 하와 역시 하나님과 같이 된다는 사탄의 미혹에 빠져 결국은 그렇게 범죄를 저질렀습니다. 교만이 얼마나 무서운 원초적인 죄인가를 깨달으며 언제나 겸손하게 살아가도록 늘 자신을 잘 관리하고 단속하는 저희들 되게 해 주시옵소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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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디아서 5:14
온 율법은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 같이 하라 하신 한 말씀에서 이루어졌나니 The entire law is summed up in a single command: "Love your neighbor as yourself."(NIV)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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놓치지 말아야 할 것 한동안 나는 현대 기독교가 제시하는 회심의 개념이 너무 협소하다고 말했다. 첫 번째 못이 박히는 것-예수님께 삶을 의뢰하는 선택-은 강조하면서도 마지막 못-예수님의 부르심에 합당한 내가 사명을 감당하는-은 무시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시작을 기뻐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진정한 초점은 큰 그림에 두어야 한다. 이 그림이 어디로 가는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잘 끝낸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놓쳐서는 안 된다. -고든 맥도날드의 [영적 성장의 길] 중에서-
우리는 십자가에 달리시고 부활하신 주님을 믿습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이것만 믿는 것은 시작에 불과합니다. 내가 지고 가야 할 십자가가 있습니다. 내가 삶속에 못 박혀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주님이 십자가에 우리의 죄를 대신해서 달리신 것만 인정합니다. 물론 그것조차도 가슴 깊이에서 울리는 고백인지 물어보아야 합니다. 시작은 주님이 지신 십자가를 인정하였지만 마지막 내가 감당해야 할 십자가는 버린다면 그것은 너무나 이기적인 삶입니다. 마지막 그 십자가도 주님이 대신 지어주시기에 믿고 질 수 있어야 합니다. |
07월 30일 (목)
내가 참된 것을 보이리라 (다니엘 11:1-9) 1. 내가 또 메대 사람 다리오 원년에 일어나 그를 도와서 그를 강하게 한 일이 있었느니라
다니엘서에는 이 세상 왕들과 세상 나라들의 운명, 장차 도래할 하나님 나라에 대한 계시가 점진적으로 소개됩니다. 그간 나라가 바뀌고 왕이 바뀌었지만 다니엘의 지위와 권한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습니다. 그는 여전히 메대를 다스리는 총리로 실질적인 권력가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여전히 철저한 기도의 사람이었고, 환상과 계시를 받는 하나님의 종이었습니다.
이 11장에 나오는 예언들만 해도 사실 다니엘의 시대로부터 약 200년 – 370년 후에 발생될 사건들임에도 마치 이미 일어난 과거의 역사처럼 아주 구체적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실제 이후의 역사를 살펴보면 이 예언들이 다 그대로 이루어졌음을 확인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다니엘에게 <이제 내가 참된 것을 네게 보이리라>(2절)하신 그대로 하나님의 계시와 예언의 말씀은 다 사실이었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은 정직하며 그가 행하시는 일은 다 진실하시도다>(시 33:3).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리라>(사 40:8).
세상에서 참되고 진실한 것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뿐임을 더욱 실감하게 되는 요즘입니다 그 누구의 말도, 약속도, 다짐도 다 진실하지 못하고 참되지 못함을 깨닫는 시대입니다. 그렇습니다. 풀은 마르고 꽃도 시들지만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약속과 계시는 영원합니다. 반드시 이뤄지고 성취됩니다. 주님은 반드시 다시 오신다고 하셨습니다.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요 14:2-3)고 하셨습니다. 주님 말씀과 그 약속의 진정성을 의심하지 마십시오. 그게 어떤 것이든 주님의 예언은 다 이루어집니다. 일점일획도 어긋남 없이 다 성취됩니다. 타성에 젖지 마십시오. 매너리즘에 빠지지 마십시오. 불감증을 경계하십시오. 아직 이뤄지지 않았을 뿐이지 주님의 약속과 예언은 반드시 말씀하신대로, 예언하신대로 이뤄집니다. 그래서 당신의 참되시고 신실하심을 스스로 확증하십니다.
-하나님은 참되시나 우리 인생은 그렇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약속에 신실하시나 사람은 아닙니다. 세상을 믿지 마시고 오직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뢰하십시오. -구속사적으로 볼 때 이제 남은 하나님의 궁극의 약속은 주님의 재림입니다. 당신은 지금 주님의 다시 오심을 고대하고 계십니까? 확신하고 계십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딤후 3:16)한 까닭은 무엇일까요?
주님, 하나님은 참되시고 신실하신 그 존재만큼이나 계시와 예언의 말씀에도 어김이 없으십니다. 약속하신 바는 반드시 이루시고 예언하신 것은 꼭 성취하십니다. 일찍이 다니엘을 통해 주신 계시와 예언도 그 긴 역사를 통해 다 이루셨습니다. 오늘 저희로 하여금 다시 한 번 하나님의 참되심을 깨닫게 하시고 저희도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본받아 자신의 말과 행위에 좀 더 책임적이게 하시옵소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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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이 따라오는가
“인디언들이 더 이상 못 가겠다고 나섰다. 영혼이 아직 따라오지 못 했으므로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다.”
스텐 나돌니 저(著) 장혜경 역(譯) 《느림의 발견2》(들녘, 83쪽)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아메리칸 인디언들은 말을 타고 달려갈 때 가끔씩 말에서 내려 뒤를 돌 아 본다고 합니다. 말을 쉬게 하려는 것도 자신이 지쳐서도 아닙니다. 자신의 영혼이 잘 따라오고 있나 확인하기 위함이라고 합니다. 영혼이 곁에 왔다 싶으면 그제서야 다시 달리기를 시작한다고 합니다. ‘수급불류월(水急不流月)’ 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물은 급하게 흘러가도 달은 떠내려가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우리 영혼도 세속의 물줄기를 따라 쓸려가지 않고 변치 않는 달처럼 떠 있어야 합니다. 스티븐 코비가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에서 말하는 바와 같이 ‘속도 보다는 방향’입니다. 시계보다는 나침반이 먼저입니다. 빠른 속도는 올바른 방향 후의 일입니다. 바울사도는 자신의 달음질이 향방 없는 것이 아니고, 자신의 싸움이 허공을 향한 몸짓이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향방 없이 총을 쏘면 총알만 낭비할 뿐입니다. 성도들에게는 하나님이 주신 신앙의 뚜렷한 방향이 있습니다. 첫째는, 예수님의 성품을 닮는 성화이고(being), 둘째는, 전도 선교 구제하는 삶입니다(doing).
“그러므로 나는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 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 같이 아니하며” (고전9: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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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보서 2:8
너희가 만일 성경에 기록된 대로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하신 최고의 법을 지키면 잘하는 것이거니와 If you really keep the royal law found in Scripture, "Love your neighbor as yourself," you are doing right.(NIV)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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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정하기 하나님께서는 깨진 질그릇들을 사용하셨다.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고후 4:7) 하시기 위해서였다. 그렇다고 해서 교인들에게 아무런 노력도 할 필요 없이 생긴 그대로 살라고 부추기는 것은 아니다. 다만 스스로에 대해 진실을 인정하는 것이야말로 변화를 시작하는 열쇠가 된다는 의미일 뿐이다. 아내와 나는 자주 "우리가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지 않음을 인정한 그날이 곧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기 시작한 날이기도 했다"라고 이야기 한다. -피터 스카지로· 웨렌 버드의 [정서적으로 건강한 교회] 중에서-
하나님은 깨진 우리를 부르시고 사용하십니다. 우리의 온전함과 완벽함이 하나님이 택함을 입는 조건은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은 있는 모습 그대로를 인정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더 성고하고, 더 완전해진 후에 주님을 따르겠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지 알아야 합니다. 주님은 우리가 우리 자신을 인정하는 그 순간부터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가고 사용하십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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