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월 28일 (화)
아름다운 걸작품 (시편 8 : 1~9) 1.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주의 영광이 하늘을 덮었나이다
1923년 시카고의 에지와트 비치호텔에서 미국 최대 부호 아홉명이 자리를 같이 했을 때 언론에서는『20세기의 신화』라고 대서특필했습니다. 그러나 25년 후인 1948년에 그들 중 한 명은 미치고, 셋은 파산하고, 둘은 출옥 후 패인이 되었고, 셋은 자살했습니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 돈을 인생의 목표로 삼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올바른 목적을 상실하고 어리석게 살아가면 나침반 잃은 배와 같습니다. 나침반을 잃으면 목적하는 항구는커녕, 그 배의 결과는 파선이요, 침몰이요, 죽음입니다. 인간의 삶의 목적은 주의 이름을 온 땅에서 정말 아름다우심을 드러내는 것입니다(1,9).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은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본문을 작시한 다윗은 참으로 어린아이 같이 순수한 사람입니다. 어린아이처럼 감탄사를 연발하며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계를 보면서 정말 좋다. 멋있다. 아름답다고 감동하고 있습니다. 감동해 보신 지가 얼마나 된 것 같습니까? 사탄은 우리를 속입니다. 그래서 주님의 세계를 보고 그 안에서 살면서 그 사랑과 은혜와 축복을 느끼지 못하도록 합니다. 바쁘게 만들고, 짜증나게 하고, 염려하며 낙심하게 합니다. 이런 유혹에 넘어가지 않아야 합니다. 어린아이처럼 감탄사를 연발하며 감동 있는 신앙생활하시고, 기쁨이 넘치고 행복한 삶을 살아가십시오. 다윗은 우주를 바라보면서도 “주의 손가락으로 만드신 주의 하늘과 주의 베풀어 두신 달과 별을 내가 보오니”(3) 감탄하고 있습니다. 다윗의 시는 체험과 경험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는 외롭게 양을 치면서 밤하늘에 영롱히 빛나는 달과 별빛을 보았습니다. 은하수의 강을 보았을 것이고, 힘차게 떠오르는 아침 해를 보았고, 한 낮의 강렬한 태양을 보았으며, 저녁노을을 보면서 하나님이 지으신 대자연을 보면서 저절로 머리가 숙여졌을 것입니다. 대자연의 신비를 깨달은 사람은 하나님의 작품 앞에 초라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4절에서 ‘사람이 무엇이관대’라는 이 말속에는 하나님께서 결코 사람에게 그렇게 관심을 둘 대상이 아닌데라는 뜻이 담겨있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 특별한 관심을 두고 계시니 이상하다는 말입니다. 그 구체적인 표현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우리를 생각하십니다. 생각한다는 말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는 말입니다. 관심이 있기에 생각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얼마나 죄인된 우리를 사랑하시고 생각하셨던지 자신이 죽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그 하나님 당신의 죽음의 자리가 바로 갈보리 십자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권고하십니다. 권고는 조심스럽게 충고한다는 뜻입니다. 우리의 인격을 최대한 존중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의 대화의 파트너로 우리를 인정해 주십니다.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습니다. 영적으로는 사람만이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다는 존재로 만드셨습니다. 어느 피조물에도 없는 하나님의 형상을 사람만이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왜 사람을 이러한 영화로운 존재로 삼으신 이유는 “주의 손으로 만드신 모든 것을 다스리는 그 임무를 주시기 위해 이런 특별한 존재로 창조하셨던 것입니다(6-8). 놀라운 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창조의 모든 걸작품을 인간에게 확실하게 맡기신 것입니다(창 1:28). 다윗같이 순수한 신앙인으로 하나님을 경외하고, 주어진 삶을 살아가심으로 감격이 넘치는 아름답고 복된 생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 나는 삶의 목적을 주의 이름을 위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점검해 봅시다. - 구원받은 사람으로 나의 신분에 대한 자아정체성이 있으십니까? - 가까운 공원에서 솟아오르는 생명의 소리도 들으며 하나님의 숨결을 느껴봅시다.
창조의 하나님, 지금 보고 누리고 살아가는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걸작품인 것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살아왔습니다. 이제는 함부로 하거나 교만하지 않고 겸손함으로 사명 다하게 하시옵소서. 교회에서도 가정에서도 사회에서도 이런 책임감 있는 존재로 살아가게 하시옵소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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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 후에 알아야 할 것
“승리한 장군이 귀국하자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어 그를 환호했습니 다. 함께 있던 한 정치인이 장군에게 저렇게 많은 사람들이 나와 환 영해 주니 기쁘겠다며 부러워했습니다. 그러자 장군이 말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저 사람들은 내가 전쟁에서 지고 돌아왔다면 나를 비난하기 위해 나왔을 테니까요.’ 나폴레옹을 워털루에서 물리치고 돌아온 영국의 군인이자 정치가 웰링 턴의 이야기입니다.”
막스무스 저(著) 《막스무스의 지구에서 인간으로 유쾌하게 사는 법》 (갤리온, 132-133쪽)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로마 시대 개선식에는 흥미로운 전통이 있었습니다. 전쟁에서 승리를 하고 로마로 돌아오는 개선장군은 화려한 행진을 하였습니다. 이때 개선 장군 바로 뒤를 따르는 소리꾼은 그가 듣게끔 계속 외칩니다.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이는 라틴어로 “죽음을 기억하라”는 의미입니다. “지금 최고 영 예를 누리고 있지만 언젠간 반드시 죽는다. 교만하지 말라” 는 의미 입니다. 혹은 “지금은 승리해서 이런 영광이 임하지만 패했을 경우 죽음이 올 수도 있으니 겸손하라” 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또한 “전공으로 교만해져서 반란을 꾀하다 죽음을 당하지 말고 겸손하라” 는 뜻도 있었을 것입니다. 승리 후에 늘 겸손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 승리로 인해 승리 보다 더 큰 몰락이 올 수도 있습니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 (잠16: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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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후서 5:21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God made him who had no sin to be sin for us, so that in him we might become the righteousness of God.(NIV)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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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종 낙타는 매일 주인 앞에 와서 무릎을 꿇고 하루를 시작한다. 그러면 주인은 낙타에게 적당한 짐을 실어 준다. 주인이 욕심을 부려서 낙타에게 너무 많은 짐을 실어 주는 일은 없다. 그러면 얼마 가지 못해서 쓰러져 죽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얼마만큼의 짐을 감당할 수 있는지 아신다. 그래서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만큼의 짐만을 실어 주신다. 성경은 감당하지 못할 시험은 주시지 않는다고 말한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어떤 짐을 지워 주실 때는 우리가 넉넉히 감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떤 인생의 문제로 씨름하고 있든지 우리가 감당할 수 있기에 주시는 것이다. -궁인의 [리액션] 중에서-
하나님이 함께 하는 삶은 행복합니다. 내 삶에 얹어주시는 짐은 나만이 홀로 지고 가는 짐이 아님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은 감당할 만한 짐이라는 사실을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주님은 짐으로 인해 우리를 무너뜨리지 않습니다. 그 짐은 항상 대신 지어주시는 짐이었습니다. 인생의 모든 짐을 대신 지시고 계시는 주님이 내 안에 계시면 행복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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