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Faith - Hymn

행복, 그 위대한 여정(1) (전도서 3: 11-13 )

鶴山 徐 仁 2020. 6. 15. 10:13

06월 15일 (월)

   

행복, 그 위대한 여정(1) (전도서 3: 11-13 )

11.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들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

12. 사람들이 사는 동안에 기뻐하며 선을 행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이 없는 줄을 내가 알았고

13. 사람마다 먹고 마시는 것과 수고함으로 낙을 누리는 그것이 하나님의 선물인 줄도 또한 알았도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행복한 삶을 살도록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가 우울하게 사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그러면 우리가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행복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닙니다. 대단한 일을 하고 많은 것을 가짐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아주 평범한데 있으니 생을 즐겁게 사는 것입니다.

이 중요한 즐거움은 크게 두 가지로 세상이 주는 즐거움과 하나님께서 주시는 즐거움입니다. 세상이 주는 즐거움은 일시적이고, 참된 만족이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람의 욕심이란 한이 없어서 나중에는 그 욕망을 채울 수가 없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이 주는 즐거움으로는 일시적인 행복은 누릴지 몰라도 진정한 행복은 누릴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진정한 행복은 하나님이 주시는 즐거움으로 구원받은 사람, 성령 충만함을 받은 자로 하나님을 영광을 위해 사는 자만이 누릴 수 있는 즐거움입니다.

이제 하나님 안에서 선을 행함으로 즐거움을 누려야 합니다(12). 선한 일은 남에게 도움을 주는 일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기쁨과 유익을 주고 복을 나누어 주는 일입니다. 예수님도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눅6:38)고 하셨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가장 선한 일은 복음을 듣지 못하고 믿지 못하는 사람을 구원하는 일입니다. 더 나아가 가정에서 생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어야 합니다(13). 나에게 돈이 많고 적으냐의 문제가 아니고, 학벌이 높고 낮음이 문제가 아니며, 세상의 권세나 명예의 문제가 아니고 건강하며 장수하느냐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세상 모든 것을 다 소유했어도 즐거움이 없는 사람은 불행한 사람인 것입니다. 솔로몬은 남자로서 해보고 싶은 것은 다 해보고 누려본 자로 고백하기를 "모든 것이 다 괴로움이요 헛되어서 바람을 잡으려는 것과 같다"(전2:26)고 탄식하였습니다. 행복은 내가 속한 가정에서 먹고 마시고 자고 깨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애기하고 오손 도손 사는 것, 즉 평범한데 있다는 것입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이것을 무시하지만 지혜로운 사람은 소중히 여깁니다. 이 즐거움은 내게 주어진 일터에서 수고하며, 사명감으로 사는 자만이 누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즐거움을 누려야 합니다(14). 인간은 본래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영적존재입니다. 그래서 오직 여호와 하나님을 신앙해야 진정한 행복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 신앙이 인간 행복의 전제조건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의식이 없다면 모든 세상 즐거움이 구비되었다고 할지라도 아무 유익이 없을 것입니다. 영혼의 즐거움이 진정한 행복이 되는 것입니다.

 

- 나는 지금 어떤 즐거움을 추구하고 있습니까? 점검해 보십시다.

- 나는 선을 행함과 가정생활에서의 감사와 즐거움은 어느 정도인지 생각해 봅시다.

- 신앙인으로 복음과 교회를 섬김으로 즐거움을 누리지 못하다면 다시 기도하십시다.

 

거룩하신 하나님, 이제 저의 삶에서 불평불만을 거두어 주옵소서. 평범한 것을 소중히 여기며 감사하고 즐거워하며 살아가게 하시옵소서. 믿음의 눈으로 세상을 보며 맡은 일들을 감당하게 하시고, 은혜 안에서 즐거운 생을 살아가게 하시옵소서.

 
   

현장

 

“작가 마크 트웨인은(중략) 젊은 날 미시시피 강을 오가는 정기선에서

조타수로 일했다. 스물여덟 살 무렵부터 마크 트웨인이라는 필명을

썼는데, 마크 트웨인이란 ‘증기선의 수심을 측정하는 선원의 외침소

리’ 로써 안전 항해 수심 약 3.7미터를 뜻한다. 이런 직업적 특수용

어를 필명으로 쓸 만큼 미시시피 강은 그의 작품의 원천이었다.”

 

고미숙 저(著) 《고미숙의 로드클래식》 (북드라망, 200쪽)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우리들은 시인이나 소설가를 낭만적으로 바라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커피를 마시며 비오는 날 떠오르는 번뜩이는 영감으로 글을 쓴다고 상

상합니다. 물론 그런 낭만성이 있지만, 대부분의 작가들은 치열한 삶의

현장 속에서 글을 씁니다. 글의 주제도 현장에서 나오며 소재도 그러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책상 똑똑이’가 되어 뜬 구름 같은 이야기만

할 뿐입니다. 마크 트웨인은 미시시피 강이라는 현장 속에서 이름까지

바꾸면서 그 유명한 《톰 소여의 모험》과 《허클베리핀》을 저술하였

습니다. 삶의 현장, 사람들이 사는 현장은 언제나 아픔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아픔 속에서 사는 것이 인생입니다. 하나님은 높고 높은

하늘 보좌에 계시지 않고 우리들의 아픔 속으로 들어오셨습니다. 인간

으로 오신 하나님이신 예수님은 우리들과 함께 울고 웃으시며, 우리

들의 약함과 괴로움을 몸으로 체험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우리를 너무

나도 잘 이해하십니다. 예수님은 지금도 우리들이 아파 우는 현장 속

에 함께 하시며 위로하십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요1:14)

   

로마서 5:1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Therefore, since we have been justified through faith,

wehave peace with God through our Lord Jesus Christ,(NIV)

   

고통은 지나가다

우리가 고통당할 때는 우리의 시선이

온통 현재의 어려움에만 쏠리기 쉽다.

요한계시록을 읽다 보니 주님이 일곱 교회 중에서

생명의 면류관을 주겠다고 약속한 교회는 서머나교회밖에 없다.

우리가 고통 중에 있을 때 고통당하는 현실에만 몰두하면

절대 그 고통을 이길 수 없다.

우리의 눈을 지금이 아니라 영원으로 돌릴 때

현재의 고통을 이겨내는 능력을 얻을 줄 믿는다.

-이찬수의 [오늘을 견뎌라] 중에서-

 

누구나 이 땅 가운데서 고통을 만납니다.

그러나 이때 믿음이 필요합니다.

믿음의 생각은 믿음을 먼저 생각하지만

믿음이 아닌 육신적인 생각은

세상의 논리를 고통을 피하려고만 합니다.

고통이 당신을 향하신 하나님의 섭리라는 사실은 전혀 생각하지 않고

세상적인 방법으로 문제를 덮으려고 합니다.

현재 당하는 고난은 장차 하나님의 영광이 됩니다.

그래서 승리하실 주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