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에드워드 토머스Edward Thomas는
‘다들 헴릿이 자기를 위해 쓰였다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그 책은 나를 위해 쓰였다.’고 말했답니다.물론 농담조의 말이긴 하지만,
이 말은 엄중한 진실을 품고 있습니다.
나는 이 말을 어떤 사람도 셰익스피어를 읽은 다른 누군가에게
‘네가읽은 셰익스피어는 잘못 해석한 거야’라고 말할 수 없다는 의미로 듣습니다.
만약 천 명의 독자가 햄릿을 읽었다면 천 명의 햄릿이 존재하고,
만 명의 독자가 읽었다면 만 명의 햄릿이 존재하겠지요.
”김무곤 저(著) 《휘둘리지 않는 힘》(더숲, 11쪽)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독서의 힘은 지식을 쌓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생각의 힘’을 기르는데 있습니다.
명작은 늘 다의적(多義的) 해석이 가능합니다. ‘해석의독점’은 있을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를읽었다면 어떤 사람에게는 ‘노인’이,
어떤 사람은 ‘바다’가 떠오릅니다. 또 어떤 사람은 ‘상어 떼’가 임팩트 있게 다가옵니다.
모두각자의 처지, 각자의 층에서 작품을 보기 때문입니다. 정답은 없습니다.
독서를 통하여 작가의 말에 설득 당하기도 하고, 버티기도 하고,
자신의 생각을 말하기도 하면서 생각의 힘이 강해지는 것입니다.
세익스피어의 햄릿 안에는 천 개의 마음의 들어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햄릿을 읽는 사람이 천명이라면 천명의 햄릿이 존재합니다.
독서를통해 천개의 마음, 천 생각을 배워 생각의 근육을 키울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다릅니다.
성경을 읽노라면 겨우(?) 생각의 힘을 키우는정도가 아닙니다.
성경 속에는 구원의 길, 생명의 길, 영원의 길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죽음을 앞두고 있다고 합시다.
그가 어느 시인의좋은 싯구에 영혼을 맡길 수 있을까요?
어느 소설가의 말에 죽음과죽음 후의 일을 맡길 수가 있을까요?
오직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우리 영혼을 기댈 수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