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의 영이 기드온에게 임하시니 기드온이 나팔을 불매 아비에셀이 그의 뒤를 따라 부름을 받으니라>(34절).
<임하시니>로 번역된 히브리어 원어 <라바쉬>는 <옷을 입히다>는 뜻을 가진 말입니다.
따라서 34절 말씀은 하나님의 영이 기드온을 옷 입히듯 감싸셔서 그로 하여금 전혀 달리 행할 수 없는 상태가 되게 하셨다는 뜻입니다. 한마디로 <성령 충만>케 하셨다는 의미입니다. 전에는 교회에서 장로님들이 대표 기도를 할 때 <우리 목사님에게 성령의 두루마기를 입혀 주옵소서>하는 문장을 많이 구사했습니다. 역시 같은 의미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내가 붙잡는 것보다 붙잡히는 것입니다. 내가 주님을 붙잡기보다 주님이 나를 붙잡아 주셔야 합니다. 우리의 구원은 나의 지혜나 능력의 산물이 아니며 신앙의 여러 열매들도 나의 노력이나 의지보다는 주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맺어지는 것입니다. 구약시대 역시 여호와의 영이 임하실 때, 하나님이 성령의 두루마기를 입히실 때 비로소 명철과 지혜, 예언, 또 비상한 용기와 담력이 나타났습니다.
뿐만 아니라 성령 충만한 자가 부는 나팔 소리에는 많은 사람들이 반응하며 움직이기도 합니다. <기드온이 나팔을 불매 아비에셀이 그의 뒤를 따라 부름을 받으니라>. 성령 충만한 기드온의 나팔 소리에 아비에셀 족속과 아셀과 스불론과 납달리(35절) 지파의 무리들도 다함께 그에게로 모였다는 것입니다.
또한 기드온은 양털 이적을 통해서도 자신의 소명을 거듭 확신했습니다. 기드온의 <양털 시험>(37-40절)은 하나님에 대한 불신이 아니라 결전의 시간이 다가옴에 따라 자신과 병사들의 믿음을 북돋우고 승리를 확신하려는 데 그 뜻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소명과 성령의 역사와 분부하신 사명에 대한 투철한 책임 의식을 가지십시오. 좀 더 분명한 확증이 필요하다면 기드온처럼 회의나 불신이 아닌 선의로 기도하여 표적을 구하십시오. 반드시 은혜를 베푸실 것입니다.
<그 밤에 하나님이 그대로 행하시니 곧 양털만 마르고 그 주변 땅에는 다 이슬이 있었더라>(40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