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이 금강산 관광지구를 시찰하며 "보기만 해도 기분 나빠지는 너절한 남측 시설들을 싹 들어내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노동자 합숙소보다 못한 꼴불견" "낙후하고 남루하다" "땅이 아깝다"고 했다. 이 시설은 김정은 소유가 아니다. 현대아산은 2002년 북에 약 5000억원을 주고 금강산 50년 독점 개발권을 따냈다. 당연히 토지 이용권도 포함된다. 여기에 우리 기업이 투자한 돈만 4000억원이다. 어떤 계약과 합의도 북한 집단엔 언제든 휴지조각이 될 수 있다. 금강산 관광은 김정일이 시작한 것이다. 그 아들인 김정은이 북 간부들 앞에서 금강산 사업을 비판한 것은 남북 경협을 접으라는 말과 다름없다. 김정은은 "해당 부서를 엄하게 지적했다"고도 한다. 축구 국가대표팀이 평양에서 사실상 감금된 채 무관중·폭력 경기를 겪은 것도 '남한과 상종 않겠다'는 김정은 뜻 때문일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22일에도 "남북 평화 경제 구축"을 강조했다. 그 하루 만에 김정은의 '금강산 철거' 발언이 나왔다. 그래도 청와대는 '남북 대화가 열릴 가능성이 있다'고 매달린다. 김정은이 "남측 해당 부문과 합의하라"고 한 것만 주목했는데 '해당 부문'은 우리 정부가 아닌 현대아산이고 '합의'는 일방 통보일 것이다. 통일부 장관은 "금강산 우리 시설이 많이 낡은 것이 사실"이라며 김정은에게 동조하는 듯한 발언도 했다. 우리 국민의 재산권이 통째로 날아갈 판인데 북을 비판하는 공직자 하나 없다. 정권은 '남북 쇼'가 깨질까 봐 김정은 심기를 살피는 데
급급하고 안보 부서는 그런 정권과 북 눈치를 본다.
백두산에서 '백마 쇼'를 보여준 김정은의 첫 조치가 '남측 시설 들어내기'였다. 다음엔 개성공단 차례가 될 것이다. 남한 기업 돈으로 핵을 만들더니 이제는 '너절하다'며 철거하려 한다. 김정은의 토사구팽이다. 북한과 협상하고 거래하되 북을 마치 '정상 집단'인 양 포장하고 국민을 속이는 일은 그만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