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Faith - Hymn

납달리와 단 지파의 기업(수 19:32-48)

鶴山 徐 仁 2019. 10. 4.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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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월 04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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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본문 납달리와 단 지파의 기업(수 19:32-48)

32. 여섯째로 납달리 자손을 위하여 납달리 자손의 가족대로 제비를 뽑았으니

33. 그들의 지역은 헬렙과 사아난님의 상수리나무에서부터 아다미 네겝과 얍느엘을 지나 락굼까지요 그 끝은 요단이며

34. 서쪽으로 돌아 아스놋 다볼에 이르고 그 곳에서부터 훅곡으로 나아가 남쪽은 스불론에 이르고 서쪽은 아셀에 이르며 해 뜨는 쪽은 요단에서 유다에 이르고

35. 그 견고한 성읍들은 싯딤과 세르와 함맛과 락갓과 긴네렛과

36. 아다마와 라마와 하솔과

37. 게데스와 에드레이와 엔 하솔과

38. 이론과 믹다렐과 호렘과 벧 아낫과 벧 세메스니 모두 열아홉 성읍과 그 마을들이라

39. 납달리 자손의 지파가 그 가족대로 받은 기업은 이 성읍들과 그 마을들이었더라

40. 일곱째로 단 자손의 지파를 위하여 그들의 가족대로 제비를 뽑았으니

41. 그들의 기업의 지역은 소라와 에스다올과 이르세메스와

42. 사알랍빈과 아얄론과 이들라와

43. 엘론과 딤나와 에그론과

44. 엘드게와 깁브돈과 바알랏과

45. 여훗과 브네브락과 가드 림몬과

46. 메얄곤과 락곤과 욥바 맞은편 경계까지라

47. 그런데 단 자손의 경계는 더욱 확장되었으니 이는 단 자손이 올라가서 레셈과 싸워 그것을 점령하여 칼날로 치고 그것을 차지하여 거기 거주하였음이라 그들의 조상 단의 이름을 따라서 레셈을 단이라 하였더라

48. 단 자손의 지파가 그에 딸린 가족대로 받은 기업은 이 성읍들과 그들의 마을들이었더라

본문 해석

모세는 납달리 지파에 대해 <은혜가 풍성하고 여호와의 복이 가득한 납달리여 너는 서쪽과 남쪽을 차지할지로다>(신 33:23) 그랬는데 정말 모세의 예언대로였습니다. 동쪽으로는 갈릴리 바다 서쪽 연안과 요단강 상류지역, 서쪽으로는 아셀 지파, 남쪽으로는 스불론과 잇사갈 지파, 그리고 북쪽으로는 가나안 땅 북쪽 지경에 닿은 땅이었습니다. 이곳은 강우량도 많고, 기후도 좋고 따라서 땅도 비옥한 곳이었기에 가히 축복의 땅이라 불릴만한 곳이었습니다. 곡물과 올리브, 포도 같은 과수도 풍성했고, 갈릴리 주변의 아열대성 식물들로 인해 경관도 빼어난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 축복의 땅이 점차 죄악에 오염되어 바알 등의 우상을 숭배하며 추악한 음행을 저지르는 등 온갖 불순종과 악행을 다 범하게 됩니다. 그래서 결국 하나님이 그들을 징계하사 B.C. 734년 앗수르의 포로가 되게 하신 것입니다.

<이스라엘 왕 베가 때에 앗수르 왕 디글랏 빌레셀이 와서 ... 갈릴리와 납달리 온 땅을 점령하고 그 백성을 사로잡아 앗수르로 옮겼더라>(왕하 15:29). 

 

한 편 단 지파의 기업은 남쪽으로는 유다 지파, 북쪽으로는 에브라임 지파 사이에 위치해 있었습니다. 그리고 동쪽으로는 베냐민, 서쪽으로는 지중해와 각각 접해 있었습니다. 그런데 단 지파의 경우 유다 지파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인구수에 비해 땅이 너무 작았을 뿐 아니라 영토 안팎에 아모리, 블레셋 같은 강한 이방 족속이 있었기 때문에 정착하는 데도 많은 어려움을 겪어야 했습니다. 

 

결국 단 지파는 북쪽으로 이동해 <레셈>을 쳐서 <단>이라는 지명으로 개명한 뒤 자신들의 영토로 삼기에 이릅니다(47절). 그래서 야곱은 <단을 길섶의 뱀이요 샛길의 독사로다 말굽을 물어서 그 탄 자를 뒤로 떨어지게 하리라>(창 49:17)고 했고, 모세도 <단은 바산에서 뛰어나오는 사자의 새끼>(신 33:22)라고 했습니다. 단 지파의 영웅은 뭐니뭐니해도 전설적인 인물로  유명한 삼손이었습니다. 

결단과 적용

-주님의 복음이 처음 시작된 곳이 바로 납달리 땅이었습니다. 마태복음 4:14-16 말씀을 옮겨 적어 보십시오.

-단은 야곱의 몇 번째 아들이며 그의 어머니는 누굽니까?

-출애굽 때와 가나안에 들어갈 때 납달리 족속은 각각 몇 명이었습니까(민 1:43, 26:50)?

오늘의 기도

주님, 이사야 선지자는 여호와께서 납달리 땅을 멸시당하게 하실 것이나 후에는 영화롭게 하실 것이라고 예언했는데 과연 그랬습니다. 

앗수르에 짓밟혀 포로로 잡혀갔고(왕하 15:29), 또 그리스도가 오사 그 땅에 구원의 빛이 비취게 된 것입니다. 

납달리 땅에서 복음이 선포되었습니다. 이렇듯 주님의 출현은 납달리 지파뿐 아니라 죄 아래 있던 전 인류에게 생명의 빛을 비추는 사건이었음을 믿습니다. 부디 오늘 저희에게 세상을 향해 그 주님의 빛을 반사해야 할 사명이 있음을 깨닫게 해 주시옵소서. 

인문학 큐티더 보기
그리스도인이 인문학을 알아야 하는 이유
인문학 나눔

“남편을 전도하려 한다면, 남편이 좋아하고 흥미롭게 여기는 주제가무엇인지,  

남편이 두려워하는 것은 무엇인지, 남편을 화나게 하는 것은무엇인지 등에 대해 

잘 알아야 할 것이다.  땅을 잘 알아야,철학을 잘알아야 복음을 더 잘 전할 수 있다.

”한재욱 저(著) 《인문학을 하나님께2집》 (규장, 17쪽)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기독 메시지

주님은 우리가 ‘세상의 빛과 소금’이라고 하셨지 

‘교회의 빛과 소금’이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마5:13a)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마5:14a)그리스도인이 있어야 할 곳은 구름 위가 아니라 이 세상입니다.  

우리가세상에서의 사명을 다하기 위해서는 세상을 잘 알아야 합니다.

많은 신학자들은 신학이 학문의 왕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왕은 어떻게 처신해야 하겠습니까?  

폭군은 백성의 마음을 모릅니다.  반면,성군(聖君)은 백성의 아픈 마음과 오류까지 잘 알고 헤아립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신학이 성군이 되자면 다른 학문을 바로 알아야합니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이성을 선물로 주셨고, 학문은 이성적 연구의 결과물이기에 

모든 학문은 하나님이 주신 ‘일반은총’에 속합니다.  그러나인간의 죄성으로 

말미암아 많은 학문들이 하나님을 거부하며 어그러진방향으로 흐르고 있습니다.  

이에 그리스도인에게는 그 방향을 바로잡을책임이 주어졌습니다.  

이를 위해서도 일반 학문을 잘 알아야 합니다.한마디로 땅을 모르고 

땅에 복음을 전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땅의 이야기가 바로 인문학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이 인문학을 알아야 하는 이유입니다.

그림 큐티더 보기
미가 7장 18절
고린도전서 15:10

주와 같은 신이 어디 있으리이까 주께서는 죄악과 그 기업에 남은 자의 허물을 사유하시며 

인애를 기뻐하시므로 진노를 오래 품지 아니하시나이다  

Who is a God like you, who pardons sin and forgives the transgression of the remnant of his inheritance? 

You do not stay angry forever but delight to show mercy. 

도서 큐티더 보기
살아서 죽고 살아서 새롭게 살라는 것

예수님을 따르는 것은 제자의 길이다.

 배우려고, 닮으려고, 본받고, 함께 하려고 따르는 것이다. 

우리가 예수님을 따르는 것은 결국 별세하려고 따르는 것이다.

 별세의 예수님을 본받으려고 따르는 것이다. 

예수님의 죽음을 따르고 결국 예수님의 부활을 따르는 것이다.

 그것이 우리의 가는 길이다.

예수님은 단번에 별세하실 것이며 

우리는 날마다 별세하라고 말씀하신다.

 이는 지금 살아서 별세하라는 것이다

 살아서 죽고 살아서 새롭게 살라는 것이다.

 이것은 날마다 삶의 현장에서 별세의 생활을 하는 것이다.

 -이중표 목사의 ‘별세의 은혜’에서-

 

일반 은혜는 예수님과 따로 받는 은혜입니다.

 병을 고쳐도 내 병 고친 것이요, 

사업이 잘 되어도 내 사업 잘 되는 것이요,

 환난에서 건짐 받아도 나 도움 받은 것입니다. 

그러나 별세는 예수님과 내가 함께 받는 은혜입니다.

 예수님이 죽어야만 내가 죽고 

예수님이 살아야만 내가 사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죽지 않고는 받을 수 없는 은혜가 별세의 은혜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생명을 바쳐서 이루어주신 최고의 은혜입니다. 

이 은혜에 이르면 이 세상 모든 것은 다 별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