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를 공용어로 쓰지 않는 비영어권 102개국 4만 명에게 70단어를 제시하고
정감이 가는 단어를 고르게 했더니 1위가 어머니(mother),
2위는 열정(passion), 3위는 미소(smile)였다.
그 밖에 사랑(love), 영원(eternity), 환상(fantasy), 목적(destiny),
자유(freedom, liberty), 고요(tranquility) 등의 단어가 꼽혔다고 한다.
여기에 제시된 단어들 중 어머니를 제외한 모든 단어들은 추상명사다.”
최복현 저(著) 《여유》 (프리스마, 138쪽)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현대 철학의 새로운 흐름을 제시한 언어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은
세계를 언어로 명제화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이런 전제에서 그는 언어를 최대한 명확하게 다듬는 것이야말로 세계에 대한
우리의 경험적 가능성을 확고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한계를 느꼈습니다.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이 있다는 것을 느낀 것입니다.
비트겐슈타인은 다른 철학자들의 책을 읽지 않은 것으로 유명합니다.
그런 그가 가장 탐독한 책 중의 하나가 키에르케고르의 책입니다.
그는 도저히 논리적으로 설명되지 않은 삶의 절대적 역설을
강조한 키에르케고르를 좋아했습니다.
그리하여 비트겐슈타인은 그의 명저 《논리철학 논고》의 마지막 구절을 철학사에 남는
유명한 말로 장식합니다.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
(Wovon man nicht sprechen kann, darüber muß man schweigen.)
말로 할 수 있는 것이 있고, 말로 할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 말하고자 할 때, 오만과 월권이 발생합니다.
무엇보다도 삶에서 가장 아름다운 언어들, 이를테면 사랑, 그리움, 자유 등은
과학적 언어로 담을 수 없는 그 무엇입니다. 우리 이성의 한계, 언어의 한계는 뚜렷합니다.
‘하나님’은 더욱 그러합니다.
우리가 말로 표현하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사랑은 지극히 일부일 뿐입니다.
말로 다 담을 수 없는 하나님이 우리의 언어 속으로 들어오신 그 사랑에 감사할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