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세계 경제가 3.7% 성장한 반면 한국은 6년 만의 최저인 2.7% 성장에 그쳤다. 1인당 소득이 우리의 2배 가까운 미국(2.9%)보다도 낮았다. 다른 나라들이 호황을 누리는 사이 한국은 잠재 성장률(2.8~2.9%)에도 못 미쳤다. 그것도 막바지 석 달간 정부가 집중적으로 국민 세금을 투입해 만든 결과다. 4분기 정부 재정 지출의 성장 기여도는 전체 성장률보다 높은 1.2%포인트에 달했다. 정부가 세금 퍼부어 인위적으로 성장률 숫자를 만든 것이다. 말 그대로 '세금 주도 성장'이다.
정부 부문을 뺀 민간 부문의 성장 기여도는 -0.3%포인트로 금융 위기 이후 최악이었다. 지속 가능한 경제성장을 위해 가장 중요한 설비투자(-1.7%) 증가율은 9년 만의 최저치였고, 서민 경제와 밀접한 건설투자(-4.0%)는 외환 위기 이후 20년 만에 가장 저조했다. 민간 지표 중에선 반도체 초호황 바람을 탄 수출이 유일하게 호조를 보여 5년 만의 최고치인 4% 증가율을 기록했다. 투자·소비 등 경제의 주 동력이 전반적으로 위축된 가운데, 수출과 세금 투입의 두 축에 의존했다. 성장률 자체도 낮지만 성장의 질(質)도 좋지 않았다.
그나마 수출은 이미 하강세가 시작됐다. 작년 12월(-1.2%) 감소세로 돌아선 데 이어 이달 들어선 작년 같은 기간보다 무려 14.6%나 줄었다. 수출의 20%를 차지하는 반도체 시황 전망이 나빠 전체 수출 감소세가 더 길게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설상가상으로 수출 시장 비중이 25%에 이르는 중국 경제성장률이 지난해 28년 만의 최저로 내려앉았고, 올해는 더 떨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둘째 수출 시장인 미국도 장기 호황이 끝나간다는 분석이 유력하다. 이대로면 2%대 초중반의 저성장 기조가 굳어질 수 있다.
성장 동력이 꺼져가는 이런 상황은 구조 개혁과 신산업 육성을 게을리해온 역대 정부 모두의 책임이다. 하지만 이 정부의 반기업·반시장 정책이 찬물을 끼얹은 측면도 크다. 최저임금 과속 인상을 비롯한 소득 주도 정책 여파로 자영업자 100만명이 폐업하고 청년 실업 대란이 터지는 등 서민 경제가 흔들리고 있다. 기업들은 숱한 압수 수색과 수사에 시달리며 투자는커녕 정권 눈치 보느라 여념이 없다. 2년 사이 33%나 올린 최저임금과 급속한 근로시간 단축이 수출 경쟁력까지 떨어뜨리는 등 경제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런데도 정부는 기업을 더욱 옥죄는 상법·공쟁거래법 개정을 강행하겠다고 한다.
주력 산업이 퇴조하는데 인공지능·바이오·공유산업 같은 새 먹거리 육성은 경쟁국에 뒤처지고 있다. 반도체 이후의 산업 정책도 보이지 않는다. 산업 경쟁력을 뒷받침할 노동 개혁은 완
전히 거꾸로 가 노조 천국이 되고 있고, 규제 개혁도 경쟁국에 비해 지지부진하다. 대통령이 기업 대표들을 청와대로 불러 "투자에 힘써달라"고 요청하면서도 30조원 반도체 투자를 막는 송전탑 문제 하나 해결하지 못하는 게 이 정부다. 민간 부문의 활력이 쪼그라들고 있는데 세금 퍼붓기만으로 경제가 성장할 수는 없다. 세금 주도 성장은 결코 지속 가능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