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政治.社會 關係

[중앙시평] 최순실 사태, 절망 그리고 희망

鶴山 徐 仁 2016. 12. 1. 20:25

[중앙시평] 최순실 사태, 절망 그리고 희망

                
      

광장 군중, 성숙한 시민의식 과시
품격혁명이 대통령 역할 끝내
패권·지역 정치 장벽 허물어지고
숙의민주주의 시대가 열릴 것
대중은 품격을 갖춘 지도자 원해
품격이 말하는 새 시대 오고 있어


김민환 고려대 미디어학부 명예교수

김민환
고려대 미디어학부 명예교수




박근혜 대통령은 국회에서 일정이나 절차를 정해주는 대로 물러나겠다고 했다. 얼핏 보면 하야 요구를 수용한 듯하지만, 시간을 벌겠다는 속셈이 있어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그 정도 처방으로 국민의 분노가 가라앉을까?

 박 대통령과 최순실이 공범 관계인지, 박 대통령이 헌법이나 법률을 위반했는지도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많은 국민을 분노하게 한 것은 사실은 관련자들의 품격 그 자체다. 우리는 그동안 역대 대통령의 임기 말마다 볼썽사나운 꼴을 많이 보았지만, 지금처럼 수준이 저급한 행태를 본 적이 없다.

 검찰이 수사 결과를 발표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사람들은 이번 일을 최순실의 농단으로 이해했다. 그에게 휘둘린 대통령을 안타까워하는 국민도 많았다. 그러나 수사 결과는 박 대통령과 최순실이 공범이며, 관련자 일당이 모두 같은 수준의 한통속임을 여지없이 드러냈다.

 검찰이 수사 결과를 발표한 뒤에 청와대가 보인 태도는 청와대의 수준을 그대로 까발렸다. 대통령 변호인은 검찰이 대통령을 공범으로 기재한 것을 하나도 인정할 수 없다며 ‘검찰의 발표는 증거를 엄밀히 따져보지도 않고 상상과 추측을 거듭한 뒤 환상의 집을 지은 것’이라고 일축했다. 청와대 대변인도 같은 논평을 냈다. 대통령은 검찰의 조사에 성실히 응하겠다던 약속을 접었다. 그 방침은 여전히 불변이다. 한마디로 최순실 수준이다.

 여당이나 야당 지도부가 보여주는 대응 수준도 딱하기는 마찬가지다. 우왕좌왕 갈피를 잡지 못하는 꼴은 일이 급박하게 돌아가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내뱉는 담론의 수준은 늘 국민의 귀를 더럽힌다. 여당 대표가 스스로 말한 바 있지만, 그이뿐만 아니라 야당 대표까지도 ‘근본이 없는 사람’ 같아 보인다. 제2야당의 대표가 제1야당의 대표를 일컬어 ‘똥볼 찰 사람’이라고 했다는데, 정치권 전체가 관중 앞에서 똥볼 차기 시합을 벌이는 것만 같다. 권력욕은 넘치는데, 시대적 과제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소통할 줄도 타협할 줄도 모른다. 적나라하게 드러난 상층부의 수준 자체는 우리를 절망하게 한다.
 
 그러나 광장으로 가면 말이 달라진다. 지난달 19일 저녁이었다. 그날 광화문 일대에 60만이 모였다. 경복궁역 지하 출구를 통해 내자동 로터리를 건넜다. 청와대 쪽으로 가는 자하문로 일대에는 차벽이 늘어서 있었다. 좁은 보도를 걷다가 이면도로를 걷다가 하며 신교동로터리를 지나자 차벽이 끝났다. 경찰에게 물었더니 자하문 터널 밖에서부터 교통을 통제한다고 했다. 터널이 끝나는 데까지 찬바람 맞으며 걷는 것 말고 다른 방법이 없었다.


 길을 가는데 하얀 승용차 한 대가 곁에 와서 섰다. 운전자가 창유리를 내리더니 타라고 했다. 유리창에 ‘무료셔틀’이라고 쓴 종이가 붙어 있었다. 그가 말했다.

 “박 대통령이 물러날 때까지 집회가 열리는 날이면 차량 통제 구간에서 사람 나르는 일이나 열심히 할 생각입니다.”

 운전자는 세 사람을 더 태우더니 터널 밖까지 데려다주었다. 교통비를 내고 싶었지만 사양했다. 혹시 명함이 있느냐고 물었다. 그는 손을 내젓고는 차를 돌렸다.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그가 다시 네 사람을 태우고 와서 내려 주고 차를 돌리는 걸 보았다. 이게 내 눈으로 확인한 우리 국민의 수준이다.

 요즘 광화문광장은 하나의 거대한 미디어다. 그 미디어를 통해 우리 군중은 성숙한 시민의식을 세계만방에 과시하고 있다. 군중은 집회를 축제로 승화시켰다. 과격한 언설에는 야유를 보내고, 차벽에 오른 사람은 말로 끌어내렸다. 집회가 끝난 광장은 휴지 한 장 볼 수 없다. 국민은 혁명군이다. 그들은 광장에서 품격혁명을 주도하고 있다.

 국민의 분노가 정점으로 치닫는 변곡점에서 시민단체가 과격 폭력시위를 주도하던 일도 이번에는 되풀이되지 않았다. 시민단체가 절제를 보인 결과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비록 부드러우나 범접할 수 없는 위엄으로, 군중 스스로가 전혀 새로운 분위기를 조성했다. 예전의 시각으로 보면 싱겁기 짝이 없는 새로운 시위문화가 되레 하나의 거대한 쓰나미가 되어 집회 참가자를 50만으로 100만으로 200만으로 끌어올렸다.

 광장의 힘은 대통령은 있어도 대통령 역할은 이미 끝나게 했다. 광장의 힘은 결코 거기서 끝나지 않을 것이다. 그 힘은 넘치고 넘쳐 고질이 된 패권정치를 몰아낼 것이다. 드디어 정치판은 대대적으로 개편될 것이고, 지역 정치의 장벽도 허물어질 것이다. 그 흐름에 저항하는 세력은 준엄한 심판을 받을 것이다.

 광장에서 드러난 대중의 품격은 우리나라에서 드디어 숙의민주주의(熟議民主主義)의 시대가 열릴 것이라고 예고하고 있다. 대중은 이제 품격을 갖춘 지도자가 나설 때라고 믿는다. 시위군중의 함성을 등에 업고 품격이 말하는 새로운 시대가 도도하게 밀려오고 있다. 두고 보면 안다.

김민환
고려대 미디어학부 명예교수


[출처: 중앙일보] [중앙시평] 최순실 사태, 절망 그리고 희망